산상수훈 강해 — 마태복음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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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가족을 전도할 때

마태복음 5장 1~12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실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돼지고기를 금하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의 말씀은 결국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삶의 중심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영적 교훈으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세상을 향한 욕심과 정욕을 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아가면 세상은 그 믿음을 빼앗기 위해서 예수님을 핍박한 것처럼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심령이 가난한 성도가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지혜와 명철을 갖게 되어 등불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를 핍박하는 그 자체가 악한 영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받는 핍박으로 인해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내적 성장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은 그만큼 믿음으로 성숙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T.V 장학 프로그램에서 일등 한 학생이 외국에 가서 사용할 숙박권과 비행기표를 받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까지 웃음 짓게 합니다. 그 학생은 퀴즈프로그램에서 일등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공부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여행권을 손에 쥐고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받고 기뻐하며 행복해 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천국을 직접 눈으로 봐야만 천국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천국을 선물로 받고 천국에서 이미 살고 있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사는 자녀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성도입니다. 천국을 봐야만 믿는 것은 도마처럼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일상에서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

15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세상의 권세와 왕권 그리고 주권들과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면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할 때 세상의 모든 권세들이 성도가 사명을 감당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됩니다. 반대로 권세와 왕권과 통치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멀리한다면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우선인지 판단하는 지혜가 있어야만 전능하시고 만왕의 왕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질과 건강 그리고 자녀들의 잘 됨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삶을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둔다면 결국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서 욕심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늘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복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심령은 마음 혹은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쓸데없는 것을 모두 버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자신들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을 알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세상의 권세와 물질 그리고 인간의 의로 심령을 채우지 말고 신실한 믿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욕심과 정욕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신실한 믿음으로 채운다면 그 성도는 영적으로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능으로 채워지는 욕심과 정욕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천국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욕심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심령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잊게 되면 내 것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우주만물의 주인인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청지기로 세워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세상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성도들은 인정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 하지만 원하는 것을 응답 받고 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으로 들어와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 때문에 설교도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으며 자기 생각과 다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유인 에덴동산을 아담과 하와에게 거저 주시며 말씀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것들과 생명까지 모두 사탄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행복하게 살라고 주신 집을 사탄의 거짓말을 분별하지 못해서 모두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게 된 아담 즉 사람에게 다시 안정된 집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 값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탄의 말을 아버지의 말씀보다 더 믿고 따랐던 지혜롭지 못한 아담의 죄를 아버지가 그대로 떠 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생명을 잘 관리하지 못한 아담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의 값을 치르셨는데 그것이 바로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보혈을 흘리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아담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죗값으로 죽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과 만물은 처음부터 사람의 것이 아니며 사람을 속여서 빼앗은 사탄의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므로 회복도 하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세상의 것을 거저 맡겨 주시며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지기인 것을 잊고 주인의 이름을 떼어 버리고는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며 절대로 돌려 드릴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까?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물까지 빼앗는 악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아담에게 한 행동이므로 이런 사람들이 바로 썩은 것으로 심령을 가득 채운 부한 자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사람들이 욕심과 탐욕을 버리지 못한 채 심령이 부한 자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과 생명까지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하며 언제든지 세상을 버릴 수 있어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고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심령이 가난할 수 없느냐고 묻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기도만 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만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소유가 아니라 자신은 다만 청지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겸손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으면 자녀를 키울 수 없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가 올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물질이 적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고 내 자녀가 다른 자녀보다 뛰어나지 않아서 낙심한다면 그런 생각은 청지기가 아니라 내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아가라는 것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말씀이지 사람이 해야 하는 기본적인 부분까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면서 받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0~21절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이기고 죄를 멀리하면서 말씀대로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를 멀리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악한 생각과 본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에서 가장 밀어내기 힘든 것이 재물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노력해서 쌓아 놓은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라는 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하늘 창고에 쌓아 놓는 것이라고 설교하는 분도 있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사망에 빠진 내 생명을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소유주이고 왕이십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이 변함없이 회복되고 치유되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면 성경말씀은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말씀이 믿어질 때 그리스도의 대속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 모든 것이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심판과 재림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확실하게 인정하고 믿는 사람이 자신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귀중한 보물을 땅을 파서 묻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풍속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물을 땅에 묻어 놓으면 벌레나 곰팡이에 의해서 피해를 입으니까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욕심껏 재물을 쌓아 놓고는 도적이 들까 봐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도둑이 들지 못하도록 담을 더 높이 쌓고 창살로 철통 같이 막고는 그 안에서 스스로 감옥에 갇힌 것처럼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길 네가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오늘 내가 네 생명을 거둔다면 너는 그 많은 재물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청지기가 아닌 주인이라는 생각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은 영원히 지속되는 거룩성과 무한한 가치성에 있어서 이 땅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창고에 쌓아 놓을 수 있는 보물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행하는 선한 일을 말합니다. 선한 일은 자기의 것을 희생하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청지기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살면서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에 부한 자들에게 말하길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는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곧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방법입니다. 물론 소유가 줄어드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말씀대로 선하게 산다면 정신적인 풍요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떠날 때 열명의 종에게 한므나씩 나누어 주면서 내가 돌아올 동안 능력껏 이익을 남겨 보라고 하였습니다. 왕위를 받아 가지고 귀인이 돌아왔을 때 한므나로 열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고 다섯므나를 남긴 종은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에 순종한 종들이 받는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수건에 싼 한므나를 가지고 와서 자기는 혹시 이것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주인은 크게 진노하며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고는 열므나를 가진 종에게 그 한므나 마저 주어 버렸습니다. 주인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그는 열므나가 이미 있는데 왜 더 주느냐고 하였더니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한므나를 수건에 싸 두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장사를 하다가 그마저 다 잃었다고 해도 왕은 그를 칭찬했을 것입니다. 왕을 위해서 무엇인가 노력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왕은 그가 주인의 마음을 깨닫고 열심히 일했다면 망하지 않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가난한 심령으로 헌신하는 선한 마음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열므나를 남긴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에 목숨을 다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열므나를 남긴 사람은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한므나를 더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하는 사람들이 받는 하늘의 상급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은 목숨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귀한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과 상급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복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다른데, 사람이 원하는 복은 세상의 소유를 많이 쌓아 놓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육체의 가시적인 풍요함을 넘어 영원한 세계에서 누리는 평안과 안식입니다. 비록 세상에 있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실 것을 믿기에 욕심과 정욕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이 있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처소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흩어 구제함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지킬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처럼 세상의 삶이 평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선한 자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보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 그 성도를 악한 자와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며 천사와 사람을 보내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소개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문을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으며 성벽은 벽옥으로 만들었고 성은 정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맑은 유리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두문은 진주이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 되어 주셔서 해와 달이 필요 없을 만큼 밝은 빛으로 밝혀 주시므로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영광으로 가득한 새 예루살렘성에서 살아갈 자녀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이미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이 땅에서 기쁨으로 살아가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최선과 욕심을 구분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아름다운 천국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썩어질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영광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욕심과 정욕을 가질 수 있는 육체가 없습니다.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으며 청지기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선한 양심으로 사명을 감당한다면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 이 땅과 하늘의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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