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 — 마태복음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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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대화는 지혜롭게

마태복음 5장 1~12절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나서 받는 복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처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화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물과 피를 다 쏟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전부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어 화평의 도구가 되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간의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믿음을 지킨다면 화평케 하는 자라고 칭찬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고백하시던 모습은 화평하게 하는 사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죽지 않고 참지 않으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27-32절에 보면 화평하게 하는 사람의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주며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일이 없는데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그에게 바라지 않는다면 상이 클 것이고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솔직하게 여러분은 정말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오른쪽 뺨을 맞았는데 왼쪽 뺨도 때리라고 내밀 수 있겠습니까? 겉옷을 빼앗는데 하나밖에 없는 속옷까지 주면서 이것까지 가지고 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을 모욕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행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믿음안에서는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 세상의 명예와 자랑과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중심이면 상대를 나보다 옳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내려간 겸손한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상대를 품어주어도 부끄럽지 않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어도 소유가 적어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도 너에게 생명을 거저 주었고 은사와 은혜를 거저 주었으니까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거저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과 은사를 돈을 받고 파는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불신앙이며 말씀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만큼 성도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흉내라도 낸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는 순간까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영혼을 품어준다면 하나님나라에 웃으며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용서와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셔야 합니다. 화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와 인내와 사랑과 화해와 자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행함은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으며 내 뺨을 치는 사람에게 다른 뺨을 돌려 댈 수 있겠습니까? 내 겉옷을 가지고 가는데 어떻게 내 수치를 가려줄 속옷을 벗어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령 충만을 입은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네 자존심과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하면 절대로 할 수 없지만 구원에 초점을 맞추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하고는 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고 저 사람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으니 제가 힘들지 않도록 저 사람이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생각에 하나님의 판단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여러분의 생각이 틀렸고 상대방의 의견이 옳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번쯤은 하나님과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의 입장을 바꿔 놓고 깊이 생각해 본다면 불화를 일으키지 않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불편하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원수가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상대방이 가진 단점을 내가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비판하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내 기준이 자신과 세상이기 때문에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만 온유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하나님의 뜻과 내 생각이 항상 같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언제나 옳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단점만 보면서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해 주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햇빛이 강하면 앞을 보기 힘들지만 선글라스를 쓰면 강렬했던 햇빛이 차단되면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처럼 자기가 다 옳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면 그 의는 강렬한 태양과 같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말씀으로 자신의 의를 가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인간들의 이해 타산적인 관계를 벗어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선을 긋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 품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성도들도 누군가를 조건없이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성화된다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야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있는 한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들보 뿐입니다. 선글라스 색에 의해 보는 것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들보가 자신의 불신앙이고 악한 인격이고 부족한 실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믿음의 형제와 이웃과 가족의 선한 행동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지혜로워서 상대방의 단점을 잘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는 즉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숙한 성도는 상대방 단점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본인의 단점을 고치라는 음성으로 듣고 회개합니다. 상대방의 단점이 곧 자신의 단점이라는 생각으로 회개한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아는 사람은 혈기를 내거나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며 말씀과 지혜로 거듭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기를 원한다고 간구한 것은 결국 자신의 죄와 허물을 버리게 해 달라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성장하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어떻게 가정과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혈기가 나면 소리치고 감정이 상하면 울면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심령에 쌓인 말씀과 지식과 명예와 소유는 쓰레기와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만든 음식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만 교양 있고 인격적인 것처럼 행동해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해도 그 말씀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악한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원수까지 사랑하기 위해서 인내하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므로 선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분을 보신 하나님께서 대신 원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4~25절

24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연단과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손에 박힌 가시도 고통 없이는 뺄 수 없는데 하물며 긴 세월 동안 쌓아 놓은 의와 고집과 자존심을 버리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의를 버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인데 하나님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어 제사의 자리로 백성을 인도했던 제사장처럼 여러분도 나팔을 불며 많은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사망에 던지신 사랑입니다.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던 스데반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가는 곳마다 선한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성도와 성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화평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귀한 복을 받습니다. 사람도 자식을 위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사망에서 건져내어 양자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노력없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거든 여러분이 먼저 사랑을 가지고 섬기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좋은 믿음을 갖고 싶거든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을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드려야 하고 사람들을 품는 선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도들의 헌신보다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셨고 낮은 자리에서 선행을 했을 때 도리어 사람들에게 대접받게 하셨으며 사명을 감당했을 때 높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은 사람의 형편에 따라 흠 없는 수소나 암소, 흠 없는 숫양이나 암양, 숫염소나 암염소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화목제의 주목할 점은 번제와는 달리 비둘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제사 후에 공동 식사를 했기 때문에 비둘기는 여럿이 함께 나누어 먹을 양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사는 수컷 만을 요구하는 반면에 화목 제물은 암수를 구별하지 않고 드렸습니다. 이것은 화목제의 목적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와 교통 그리고 인간사이의 상호 친밀한 교제를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에는 남녀노소나 빈부와 귀천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목제를 드리는 의미는 인간은 원죄로 인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하나님과 화평케 된 것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는 회고의 감사와 미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이 된 짐승은 태울 것은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고기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화목제물 되어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평케 하신 것처럼 이제 성도들도 화평케 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여러분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서 오만하고 교만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못했던 자신을 태워서 흠향 하실 만한 향기로 드린다면 새 생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악한 본성이 죽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살려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평할 것이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흠이 있는 죄인으로 그냥 남아있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외로움과 근심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십자가 아래 내려 놓지 않는다면 두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욕심과 혈기와 근심으로 고통스러웠던 마음의 짐을 십자가 아래 내려 놓는다면 신기할 정도로 편안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그릇처럼 진심으로 거듭난 여러분의 심령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돌이나 금속을 사용하여 인위적인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금으로 화려하게 신상을 만들고 돌을 깎아서 만들었으므로 제사보다는 외형적인 모습과 형식에 치우쳤습니다. 외형적인 모습과 형식에 치우치다 보면 예배의 본 정신을 상실하기 때문에 토단으로 쌓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것처럼 예배시간에는 온 마음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돌로 제단을 쌓을 때 정으로 다듬은 돌은 부정하니까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정으로 쪼아서 돌을 다듬으면 보기에는 훨씬 좋지만 하나님께서는 인위적으로 만든 돌이 부정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를 인간의 의와 방법과 정성으로 다듬어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겉모습이 화려하도록 정으로 쪼고 다듬은 돌로 호화롭게 건물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도들은 말씀과 상관없는 헌신을 열심히 하면서 큰 상급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노력이나 정성으로 높여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진실 된 믿음이 없이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는 하나님께 도리어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돌을 쪼개는 정은 황폐하다, 파멸하다, 살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화평을 깨는 도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황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곳을 파멸하며 말씀으로 구한 생명을 살해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와 헌금과 기도와 봉사를 정으로 다듬으려고 하지 말고 진리와 성령안에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성도가 있는 곳은 언제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화평케 하는 성도는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믿음의 불씨를 키워주므로 교회와 가정이 사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축복을 주셨고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부족한 모든 부분을 채워 주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화평하던 분위기를 깨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면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모두 흩어집니다. 웃음이 멈추고 근심과 두려움에 휩싸이며 행복했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화평을 깨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기쁨과 희망과 소망을 갖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신앙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귀한 하늘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드릴 차례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람의 관계를 화평하게 한다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만난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인은 주인의 뜻을 다 깨달을 수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하는지 모두 알기 때문에 순종하기만 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다 보면 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도 목숨을 다해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순종하다 보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화평케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어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산상수훈 강해 · 대화는 지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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