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 — 마태복음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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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만왕의 왕

마태복음 5장 1~12절

찰스 스펄전이 말하길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한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는 절대로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시간을 잃은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도들이 소금과 등불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변함없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령이 부자인 사람들이 존경받는 세상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신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고 자신의 의와 고집과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받는 상급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는 성도들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핍박을 받더라도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성도는 안 좋은 상황이나 헌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난 성령 충만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람을 온전한 성도로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열매로 성도가 충만하면 악한 영은 성도의 선한 행실을 막을 수 없으며 실족시킬 수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것처럼 안전한 은혜는 없습니다. 세상과 사탄이 어느 방향에서 공격할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성도들은 안전합니다. 환한 대낮에 사는 것처럼 모든 상황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사망에 빠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화목 제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의 영혼을 어둠에 가두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입은 성도들은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며 애통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사랑으로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권능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결론은 인간의 의와 욕심과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면 하나님께 큰 평강을 날마다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얻어지는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간의 의를 버리는 훈련을 계속한다면 천국을 온전히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땅을 기업으로 받아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호의와 관대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진리를 위해서 살아온 성도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비추는 성령의 빛은 세상이 싫어하는 빛입니다. 빛으로 인해 감추고 싶었던 더럽고 추악한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을 막으려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핍박을 받을지라도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크기 때문에 큰 소망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삶을 실천한 선지자들은 자신을 희생했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전하는 진리는 세상과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거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이렇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을 볼 때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기뻐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책망과 권면을 들으며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진리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은 핍박과 조롱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했기에 선지자와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1~12절

11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는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무릇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라는 정점을 향해서 달려오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사랑의 발자취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고 모든 죄마저 용서하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난 복음을 유대인에게 전하다가 바울은 크게 핍박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그들에게 핍박을 당했지만 도리어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이 함께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고 큰 은혜 가운데 복음을 전하면서 병도 함께 고치는 기적을 보였습니다. 그 기적을 본 무리들이 바나바를 쓰스 즉 제우스신이라고 불렀고 바울은 허매 즉 말하는 신이라고 섬기며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바나바와 바울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동을 단호하게 만류하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기적과 동시에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방해하기 위해 이고니온까지 따라온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무자비하게 돌로 내리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바울을 성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이 때 정신을 잃은 사도 바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의 영이 하늘에 올라가 보좌를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통 가운데서도 그는 한번도 그리스도를 믿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아파했습니다. 바울의 충성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평생 함께할 수많은 동역자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연단하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을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영적인 전쟁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불 시험은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서 제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자체가 성도들을 정금으로 만들기 위한 용광로이므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 당하는 것이 싫어서 용광로에서 녹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면 하나님께서는 정금을 얻기 위해서 불의 온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오는 시험은 반드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만약 그 시험을 피해서 도망 다닌다면 하나님께서는 택한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훈련의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훈련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자녀와 물질과 세상을 통해서 일하시므로 스스로 헌신의 자리를 피하는 선택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돌과 흙에 섞여 있던 금 조각이 쓸모 있는 정금이 되는 것이 쉽겠습니까? 욥이 죽기를 간구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 정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박해의 정도가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이지만 그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련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광로에서 받는 큰 시련을 믿음으로 견디는 그리스도인들은 정금과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천국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좋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땅의 언어로 천국을 표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핍박을 받고 고통을 감내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지 않으셨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이 받은 영광과 승리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기대와 소망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핍박하는데 만약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핍박을 받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길로 올바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핍박과 고난은 성도들이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받고 감당하시기 때문에 그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에게 불 시험을 주면서 아담처럼 죄를 지으라고 유혹하지만 마지막 날이 오면 도리어 그 불이 세상을 덮어버릴 것입니다. 순교한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천국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것 것처럼 믿음을 위해 살던 성도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소유한 자로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9~10절

9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사람들은 세상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생명을 경시하며 악해지는 사람들과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을 보면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까지 장사의 품목에 넣어 이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이 타락하자 거짓선지자들이 거짓 복음을 당당하게 전하게 되었고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서는 날이 가까이 왔으므로 바벨론은 멸망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과 생각이 일치한 사람은 모두 바벨론의 죄에 동참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 산다면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낼 것이고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 차지하는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이런 죄를 절대로 짓지 않기 위해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장 6~7절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이사야는 자신은 지금까지 헌신했고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인생을 드렸다고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자신과 찬양하는 스랍을 보기만 했는데도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사야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을 만나 뵙는 순간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영광의 하나님을 뵙자 그는 무너지듯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스랍과 자신의 믿음을 비교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가식적인 믿음을 보여드렸는지 회개하였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모두 불평과 부정한 말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사야가 지금 스랍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을 직접 듣고 있는 것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입술은 정결 해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직해야 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삶은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 서면 정직한 희생이었는지 자신을 위한 헌신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매 순간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진심으로 헌신하고 있습니까? 이사야는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추악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했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고 헌신한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손해 보지 않을 만큼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과 백성들을 생각하자 그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희생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가식적인 신앙을 알기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죄를 용서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지금 우리들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책망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니까 실감하지 못하지만 훗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회개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얼마나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 인지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아담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세상으로 유혹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담대히 물리치셨고 아담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고 핍박 받는 것을 선택하셨지만 인간은 은혜를 알면서도 욕심과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신앙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천상으로 올리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어도 그 역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부정한 말을 했거든 회개하고, 정직한 삶을 살지 못했다면 가던 길을 돌이키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회개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보좌를 본 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정직하고 신실한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고 자신의 인생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죄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큰 그릇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죄를 사함 받은 여러분은 하나님께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얼마나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있게 보고 계시므로 여러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헌신하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일을 찾아서 해야 하며 힘에 지나도록 충성해야만 하나님께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록 어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순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지 않은 것까지 응답을 받고 평안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신을 거저 받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헌신한 만큼 언제나 평안과 안식을 넘치도록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성도들의 헌신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산상수훈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거든 힘에 지나도록 충성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알고 있는 만큼 충성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줄 상급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거든 부모가 헌신하면서 은혜를 쌓아 놓아야 하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평안을 원한다면 받은 은혜 만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유한 성도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자신의 의를 버리면 천국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실천하면 더 큰 긍휼을 주실 것이고 예수님처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면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을 때 어느 날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는 자신의 의를 버리는 방법이 없으며 상을 받을 기회조차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던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의 헌신을 보신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천국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비교할 수 없으며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자녀를 사랑하거든 의를 위하여 살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찬양하지 못하게 하자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주의 백성들이 찬양하고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헌신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달았을 것이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위한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록

가정이 하나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하지만 성도들의 가정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가정의 불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만약 지혜가 없다면 그 불화는 더욱 심해지겠죠? 교회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 원수처럼 바라보고 가정이 갈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럴 때는 이렇게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교회와 하나님을 싫어하는 가족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더 많이 사랑해주면 상대가 나에게 마음을 서서히 열지 않을까요? 그 때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서서히 다가가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을 흘리듯 전하면 완강함이 적을 겁니다. 성도들은 불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왜 교회를 안 가냐는 둥… 당신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 가정이 복을 받지 못한다는 둥… 험한 말을 하기 때문에 더욱 멀어지는 게 아닐까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접근하게 되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빛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인격적인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이해할 수도, 교회에 나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다려 주신 만큼만, 당신이 상대를 기다려 준다면 그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반석에서 내려가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상대방의 혀와 같이 편안함을 줘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성도들은 험한 세상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은 복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종으로 삼고 싶어 합니다. 내가 계획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들을 내 뒤에서, 단 한 가지도 실패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라고 하나님께 도리어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자신이 그렇진 않은지 한 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킬 시간과 기회와 물질을 주셨을 때는 취미를 즐기고 내 마음대로 사느라 충성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눈앞의 풍요가 사라지려는 것을 보면 다급해진 마음에 돌이키는 시늉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돌이켰는데도 왜 돕지 않느냐 불평을 하곤 하죠. 정말 돌이켰습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는 척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토록 당당하게 나를 도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쉬운 예로, 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쫓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들은 척 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세상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 달 후면 시험을 치를 자녀에게 지금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자녀는 시험 볼 날이 가까워오자 두려운 마음에 시험 삼일 전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자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왜 진작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지금 하는 것 보이지 않느냐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자녀의 말은 지금이라도 돌이켰으니까 자기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삼 일을 열심히 했지만 그 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잘못했어도 돌이키기만 하면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나보고 지난날의 잘못까지 회개하라는 것이냐고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과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인지 전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아주 어린 아이의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어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진 않나요? 성도가 시험을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탔든, 삼 일을 공부해서 결과가 좋지 않아 벌을 받았든 그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겪는 시험을, 상급받는 기회로 만들라고 알려 주신 것뿐입니다. 말씀을 알아듣는 지혜가 없다면 당신은 아마도 큰 그릇을 만들지 못해 스스로 일어서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말씀대로 열심히 살라는 것은 여러분이 상급을 받도록 권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 아니고 당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영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프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 바로 나라는 증거입니다. 삶의 중심이 인간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도 믿음의 형제들의 권면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그 심령을 보시며 그 중심을 하나님으로 바꿔서 복 받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뿐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성도로서 큰 축복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만이 주시는 큰 상급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고 깨끗한 분이시며 빛이십니다. 바늘 끝만큼의 죄도 더러움도 없으신 분이죠. 하나님께서는 먼저, 본이 되는 삶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셨고 모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의 형상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면서 등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여러분의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보여주세요. 만약 자녀들에게 더러운 것을 가르치겠다고 하수도를 보여주고 집안을 쓰레기통처럼 더럽게 만들어 놓고는 “어때 더럽지? 그러니까 너는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한다면 그 부모는 가장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사람일겁니다. 또 이런 부모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배운 욕을 무심코 부모 앞에서 했을 때, 매를 들고는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며 그 말을 다시 한 번 해 보라고 강요합니다. 겁에 질린 아이는 매가 무서워, 다시 욕을 하고 그 말에 부모는 매를 들고는 또 해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실수로 한 번 내뱉은 말이 잘못이라고 화를 내면서, 정작 어리석은 부모는 그 말을 반복하라고 시킵니다. 이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욕을 깊이 심어주는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 아닐까요?

언제 어느 때고, 아이들에게 깨끗한 집을, 부모들이 먼저 서로를 존중하는 고운 말과 사랑하는 눈빛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깨끗한 것에 대한 개념이 생겨서 조금만 더러워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세상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지체되는 믿음의 형제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세상 사람들을 찾아 위로를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면, 사단이 인도하는 세상의 자리를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날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진리를 올바로 알아야 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해야 하며, 하나님을 잘 섬겨야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교회들은 사람들을 모으는데 에너지를 다 쏟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전도지를 만들어서 뿌리고, 성도들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 와야만 하나님께 상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연말에 전도왕이 되면 마치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한 것처럼 우쭐해 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교회는 점점 커져가고 사람들은 엄청나게 모여드는데, 성도들의 삶에 힘이 없는 건 왜일까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왜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도, 그 의미를 모른 채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다닙니다. 생명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그저 교회를 다닌다는 증거품으로 들고 다니지만, 과연 그들은 몇 번이나 성경을 읽었을까요?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도 왜 웃음이 없는 것일까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세상의 것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며, 성도들의 가정은 왜 사랑에 목말라 부부가 그리고 자녀가 서로를 미워하는 걸까요?

우리는 전도를 꼭 남에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남에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나에게 인내하라고 말해주는 것이며, 나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줘서 내가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을 이기며 말씀을 가지고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전도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성숙하면, 내 남편과 아내가 변하고 아이들이 그 믿음 안에서 천국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가정이 먼저 변하면 곁에 있는 이웃들은 그의 삶을 보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앉히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성도가 먼저 변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은 힘이 생기고 교회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사는 성도들로 인해 기독교는 더욱 힘을 얻어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내 교회가, 내 가정이, 내가 속한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하나가 된 교회…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신앙만이 능력이며 힘입니다. 심령에 온전한 복음을 전해주지 못하면 영혼들은 힘을 잃어 버려서 세상의 걸림돌에 넘어져 자신의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살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세상의 삶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것, 곧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 믿음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책임을 목회자들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겉모습을 불리려고 하지 말고, 성도들의 영혼을 진리로 배불리 먹이고 그들이 말씀으로 온전히 성장하도록 독려해 주세요. 그리하여 세상의 것이 목말라 세상으로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면 텅 빈 강정과 같은 기독교와 교회와 성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선,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나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나는 지금 돈이 없고, 병이 있고, 너무 가난하다고 핑계를 댑니다. 혹은 저 사람보다 나는 더 많이 배웠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대접을 받아야 하며, 너무 바빠 이웃의 아픔을 들여다 볼 시간 같은 건 없다고 말하죠. 물론 세상의 삶이 고단해서 나보다 더 힘겨운 이웃을 돌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뜨거운 지옥불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사탄에게 고통을 당하고 뜨거운 불 속에서 부르짖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웃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들과 지옥불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내 고통만 내 욕심만 들여다보며 이웃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지옥불에서 자기의 고통만 들여다보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죽은 몸이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고, 거듭난 영혼이 이웃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그 헌신이 바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은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자들처럼 자신의 고통만 들여다보지 말고,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자처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이기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고난과 희생과 섬김과 사랑을 배워야 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지옥에 있는 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이 더 크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이 손에 들려준 떡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에서 부요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희생을 알기에 죄의 본성을 이기고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버려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것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안아줄 손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고 안아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에게 내 것을 나눠주는 것 또한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이웃을 주 안에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선하든 악하든 모두 하나님의 눈에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이기는 빛을 들지 않고는, 더럽고 추한 어둠 가운데서 아무리 나는 선하다고 외쳐도 결국 어둠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오는 것이 거듭남이며,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어둠 속에서 나오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인데 그 말은 곧 교회가 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나 자신인 교회를 위해서 내가 움직이지 않을 때 그 교회는 죽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고, 교회가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바로 하나님의 지체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러분 한 분이 움직여야만 성장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움직이므로 예수님의 몸은 건강해질 것이며 구원받은 영혼들은 여러분의 상급의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 어떤 헌신을 하고 계십니까? 말씀으로 건강해지고 행함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했어도, 은사를 많이 받았어도, 헌금을 많이 하고, 순교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도를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하면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고는 성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헌금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섣불리 판단하거나 비판하게 됩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에…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많이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과연 그렇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길 그것은 네 생각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보좌 앞에 있던 장로들조차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에 드리는데, 하물며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야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른 형제들이 나 보다 더 지혜롭고, 믿음이 있으며,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내가 생각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곳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내 목숨을 드렸다고 해도 머리를 들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더라도, 지금 내 앞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 한 사람만을 생각한다면, 그 대화는 실패한 대화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지만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이 열 사람, 백 사람이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들이 듣는다 해도 시험에 들지 않아야 성공한 대화법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만을 설득하려고, 넓게 혹은 멀리 보지 못하는 대화는 결국 불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자주 합니다. 자녀들과 대화를 할 때나 성도들끼리 대화를 할 때 열 명이 들어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지혜롭게 대화를 해야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대화를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가치 없는 것은 단호하게 자르셨고, 상대방이 말씀을 듣고 당장은 수긍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맘 가운데서 말씀이 점점 자리를 크게 차지하게 되므로 진리의 말씀에 굴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한 대화는 이천 년이 흐르도록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수긍하는 걸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대화법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생각과 말로 설득하기 보다는 주님의 뜻을 전할 때 그 말씀 자체가 권세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은 사람은 스스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대화는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누군가와 대화를 하셨거든 그 사람뿐 아니라 그 말을 들은 백 사람이 세워져야 성공적인 대화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보좌에 앉을 때 그 누구의 시비도 원치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인정하고 굴복하는 만왕의 왕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늠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인간들은 자기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 대신 아들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으로만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더 깊이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세요. 물론 하나님께서 피로만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만왕의 왕이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과연 인간의 죄를 사할 방법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을까요?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던 고통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을 보면 그 십자가만이 사단도 인간도 만물도 굴복시키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길이 만왕의 왕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길이기에 십자가의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 인정을 받고 영광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아들을 높이 드시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린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그 고난의 십자가 보혈이 지금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조롱할지라도 구원받은 여러분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산상수훈 강해 · 만왕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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