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 — 마태복음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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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나를 먼저 전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12절

재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의 소유가 인격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가치와 인격은 그가 가진 세상의 재물로 대체 되었으므로 돈을 숭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 앞에서는 도덕과 양심과 신앙을 쉽게 버리기도 하고 타인의 재물을 취할 수만 있다면 강제로 빼앗는 세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자 어떻게 하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편법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이웃과의 나눔도 인색해졌습니다. 자신만 풍족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면 이웃의 고통에 참여 하는 것에 인색하기 때문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팽배하게 되어 강도와 사기와 살인사건이 늘어 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어둠의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물질만능주의에 빠져가는 사람들에게 진리로 그들의 죄를 드러내야 하는 책임을 맡은 교회들은 지금 잠잠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모두 건물의 크기와 교인 수와 목사의 학벌에 매여 세상보다 더 화려하게 교회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된 진리를 선포하라고 하셨지만 누가 제일 큰 건물을 가졌는지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의 건물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건축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의 충만은 설교 중에 조미료처럼 조금 들어가는 것이고 온통 세상의 축복이 주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셨지만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진리를 전하는 교회를 찾기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호세아 6장 6절에 하나님께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하신 것은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 제사 자체를 싫어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겠지만 정직하지 않은 예배와 제사는 원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무차별 공격을 하였을 때 크게 진노하시며 아말렉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도말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의 실한 짐승들을 죽이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치 없는 짐승들은 죽이고 실한 짐승들은 모두 이스라엘로 끌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실한 짐승들을 살려 둔 이유는 하나님께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싶어서 라고 변명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대로 세상이 인정하는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사울 왕은 어떤 것이 우선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결국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기 위해서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의 자리에서 영원히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나 제사보다 하나님을 먼저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순종의 제사를 온전히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앙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과 의와 자존심과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도 설교도 자기의 수준에서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원하는지 어떤 기도 듣기를 원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확실하게 알고 나서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 했을 때 지금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성도들이 깨어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진리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처럼 나라가 위태로울 때 성도들의 믿음이 빛을 발할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교육 분야 등 각처에 성도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도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어둠을 향해 담대히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자신을 녹여 세상이 썩지 않도록 희생해야 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힘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그동안 수없이 드린 예배는 누구에게 드린 예배이며 끊임없이 드린 기도는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교회가 물질의 복보다 진리와 성령을 가르쳤다면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한 등불이 되어 있는 자리에서 어둠을 밝혔을 것입니다. 교회가 처음부터 타협하지 않고 올바로 말씀을 가르쳤다면 굳이 세상에 나가서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혹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하지 않아도 성도로서 맡은 바 책임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지 백 년이므로 그동안 일관성 있게 교회들이 백 년 동안 복음만 전했다면 아마 지금쯤 말씀으로 변화 받은 성도들이 곳곳에서 죄와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몇 년만 다녀도 아람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을 치료 받았다는 것과 엘리야가 기도해서 삼 년 육 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렸다는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자기의 백성들을 먹여 살렸다는 말씀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성경 이야기로만 들었기 때문에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느헤미야가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고 자기 백성들을 귀환 시키고 성전을 세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통령과 위정자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믿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가 정치인이 되어도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된 것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고난에 처하면 자기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해하고 낙심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주인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거두실 것이므로 절대로 자신이 판단해서 생명을 좌지우지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도 살인이지만 자신을 해하는 것도 죄이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낙심하여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대신 죽어 주셨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교회들과 진리를 전해야 하는 목회자와 진리대로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제 생각대로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을 받기를 원하는 기도를 했고 이 사람은 세상적이기 때문에 회개하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 생각과 전혀 다르게 모든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시길,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데 내가 만약 네가 판단한 것처럼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해서 구원했다면 이 세상에는 한 명도 구원 받을 영혼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편 강도도 믿음의 고백만 듣고 구원하였고 날 떠난 제자들도 용서 하셨다’고 하시며 ‘구원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며 너는 단지 맡겨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하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보기에 악한 자라도 그도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그 영혼들을 용서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전하고 기도해도 돌아오지 않는 영혼은 너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맡겨준 영혼에게 진리를 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맡겨준 영혼에게 진리를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그것을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만 크게 키워 놓고 마음은 세상의 쓰레기로 가득 채웠기 때문에 세상이 교회와 성도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잘못된 길을 갔다면 이제는 돌이켜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사탄의 노예가 되기 전에 간절히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로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라는 것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 살아 남기 위해 물을 찾는 갈급함을 말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하던 임산부나 목이 말라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갈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생명을 걸고 남쪽으로 오는 사람들은 배가 너무 고프고 자유가 그립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강을 건넌다고 합니다. 과연 그들의 심정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만 듣는 배고픔과 목마름은 경험 없이는 알 수 없습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고난과 고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영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 보고자 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그들에게 포위되어서 음식을 구할 수 없게 된 사마리아백성들은 굶주림을 견딜 수 없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이스라엘 왕에게 도와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왕은 나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어서 당신을 도울 수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하길 이 여인들이 오늘은 네 아들을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고 하기에 이미 내 아들을 잡아먹었는데 자기의 아들을 숨기고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아들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옷을 찢으며 탄식하였습니다. 얼만큼 배가 고파야 자기 자식을 잡아먹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에 주리고 말씀에 목말라야 한다는 것은 이 여인들이 당하고 있는 것처럼 처절한 영적 기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말씀에 목말라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 경험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기도 하고 자신의 의를 지키기 위해서 죽는 순간까지 싸우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과감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의를 채우기 위해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면 버릴수록 하나님 의가 그만큼 채워지기 때문에 바울은 날마다 죽는 심정으로 자신의 의를 버리는 훈련을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죄송해서 하루가 고통스럽습니까? 하나님과 날마다 기도로 대화하지 않으면 먹는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고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해서 기도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이 듭니까? 성도라면 세상의 어떤 좋은 일도 말씀을 깨닫는 기쁨보다 더 크지 못하며 교회와 영혼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성도들은 이런 기본적인 신앙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목회자에게나 필요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구원은 목회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직접 받는 것이며 천국은 교회 전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린 간절한 믿음을 가져야만 영생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기업으로 배부를 것입니다. 영적으로 배가 불러야 주위를 살필 수 있으며 자신을 희생할 수 있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절대로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숙한 성도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영혼구원을 위해서 애통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성도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거룩한 성도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세상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후히 주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월을 허비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세월을 사는 곳이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라는 내 말을 믿고 너희들이 살다 보면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느냐 믿지 못하고 있느냐의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독생자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아비로 남편으로 삼고 살았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섬기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깊은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고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러분은 이제부터 어떤 물을 마실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육을 위해서 세상에서 흘러 넘치는 물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을 마실 것인가 분명하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내가 직접 떠 먹어야만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목마를 것이 두려워서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말라버릴 물을 지키기 위해서 영원한 사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보이지는 않지만 믿기만 하면 각자의 심령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다툴 필요도 없고 다시는 목마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봐야만 인정하기 때문에 생명의 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들은 깨끗한 심령에 영원한 생명의 물을 간직해야 합니다.

수가 성에 사는 사마리아여인이 우물물을 길으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기 때문에 여인은 놀라면서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도리어 나에게 물을 달라고 청했을 것이고 나는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생각할 때 자기는 목마를 때마다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있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은 예수가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준 우물은 육의 갈증을 해소할 뿐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과 예수님이 주는 물은 마르지 않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자 여인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복음을 전하러 달려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이 지금 여러분의 심령에 거하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갈급함에 목말라 있다면 진리를 통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명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수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이어지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물은 언제나 값을 치러야 하지만 생명의 물은 값없이 와서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갈급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생명의 물을 나누어 준다면 하나님께서는 땅의 기업을 축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주 앞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영혼이 생명수를 풍족하게 마실 수 있도록 나누어 준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갈급함을 하늘의 능력과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곁에서 차고 넘치는 축복을 받아 사망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살리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산상수훈 강해 · 나를 먼저 전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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