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것만 보여주세요
경쾌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흐르는 물을 돌로 막으면 물은 금방 하나로 뭉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웅덩이가 되어주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쉽게 본색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소리도 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아이들이 첨벙 들어가 몸을 담글 수도 없고 몇 개의 돌로 막을 수도 없지만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면서 많은 생명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납작한 돌을 들어 물수제비를 뜨며 누구의 돌이 더 많이 뛰는지 뜀 수를 세려고 여러 개의 돌을 던져도 강물은 그 돌들을 다 품어줍니다. 이렇게 강물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행하는 강물을 보면서 온유한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온유하다는 것은 강물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믿음은 온유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 받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덮어주기는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덮어주거나 감싸주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베풀 줄도 알아야 하고 상대의 실수를 덮어주고 감싸줄 수 있어야 큰 그릇을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쁜 습관과 강퍅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는 훈련을 하면 사람마다 개인 차는 있겠지만 노력하기만 한다면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은 생각만 가지고는 절대로 고칠 수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나쁜 습관은 오랫동안 동일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된 것이므로 그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가져야만 고칠 수 있습니다. 작은 웅덩이처럼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은 신뢰받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셔도 유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강물처럼 은혜가 풍성한 성도는 사탄이 돌을 던지고 강한 바람을 휘몰아쳐도 그 고난이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참는 인내를 보이기 때문에 도리어 사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감정이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성장하지 못한 사람은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기분 나빠하고 조금 칭찬하면 금방 들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 어렵습니다.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이해 타산적인 사람은 자기 것을 나누거나 희생하지 않는 강퍅한 마음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문제 자체를 이미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한 답을 한 가지 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혈기나 격해지는 감정을 억지로 참기 보다는 그의 인격 자체가 선하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문제를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가 있는 곳마다 부족한 인격과 잘못된 행동 때문에 불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모난 성격과 부족한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등경위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따라서 등불을 줄이거나 끄지 말고 사람들이 그 빛을 따라 진리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강퍅한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만 비추려 하고 감정에 따라 심지를 줄였다 키웠다 하기 때문에 신뢰받지 못합니다. 진리대로 살아야만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가 지경을 넓힐 수 있도록 안심하고 많은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온유의 뜻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 자세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온유 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덕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영역에 붙들려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복음안에서 인내하며 선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고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척하는 것은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 중에 스데반이 있는데 그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며 영혼구원을 위해서 순교하는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죽음 앞에서도 말씀을 선포한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 8장 1절
7: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일곱 집사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고 권세 있는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어느 날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했을 때 장로와 서기관들과 사람들은 복음을 통해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깨닫자 도리어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돌을 던지는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평안한 가운데 요동이 없었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전하는 말씀은 힘이 없기 때문에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스데반처럼 성도의 삶을 통해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스데반처럼 말씀대로 살면서 복음을 전해야만 어떤 공격을 받아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신앙을 버리도록 성경을 의심하게 만들고 고난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그들을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천사처럼 보였던 스데반의 얼굴은 공회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이 얼마나 큰 평안을 주는지 알려주었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도 주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온유한 주님의 형상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스데반의 긴 설교를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은 스데반이 전한 말씀을 잘 듣고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말하길 ‘여러분은 내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고 하셨고 지금 여러분이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발 붙일 만큼의 유업과 자식도 주시지 않은 가운데 아브라함의 씨가 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만 주셨습니다. 약속과 함께 아브라함 자손들이 다른 나라에서 종으로 살면서 사백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받은 후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 두 조상을 낳았습니다. 그 형제 중 요셉이 불행하게도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바로 왕의 은총을 받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때 온 땅에 흉년이 들었고 굶주렸던 형들이 양식을 찾아 애굽으로 왔을 때 요셉은 그들이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인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었던 요셉은 그들을 용서했고 가뭄으로 고생하는 식구들을 애굽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출애굽 때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수로 번성하였습니다. 애굽의 새 임금은 요셉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것을 견제하여 태어난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던 중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죽을 뻔했던 모세를 다행히 바로의 딸이 데려다가 애굽의 왕자로 키웠는데 모세는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사십 세 되었을 때 형제 이스라엘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족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발각되자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 땅에서 살아온 지 사십 년이 되던 어느 날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불꽃 가운데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그를 부르더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괴로운 탄식을 내가 들었으므로 이제 너를 애굽으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령대로 애굽에 온 모세는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베풀었고 이스라엘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 하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했을 때 여호수아가 가지고 들어온 성막은 다윗 때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이 하나님의 발등 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구약의 사건을 자세하게 전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모두 성취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버린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너희 조상이 메시아가 올 것을 예고한 선지자들을 죽인 것처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너희가 성령을 거스려 의인을 잡아서 넘겨준 자이고 살인한 자가 되었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은 악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말씀이 마음에 찔리자 이를 갈며 스데반을 향해 큰 소리를 질렀고 귀를 막고 돌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으면서도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그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데반은 지금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있다고 전하자 그들은 더욱 더 사악해졌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고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한 후에 눈을 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훗날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 얼굴이 천사처럼 빛이 났다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데반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메시아를 죽인 죄인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만큼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에서 죄를 빼면 연결의 끈이 없습니다.
스데반의 긴 설교를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해 드린 이유는 참 복음은 이렇게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어떤 간증이나 충격적인 사건이나 우스갯소리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전해서 자신의 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역사에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감정을 전혀 넣지 않고 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는데도 하늘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고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며 이를 가는 사탄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로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소망보다 땅의 소망을 전하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이며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진리를 부풀리는 사람은 사탄의 종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은 분명히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줘야 하는 것처럼 과장해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들은 말씀을 좀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서 부풀리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설교는 그리스도를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스데반이 죽던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 교인들은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행 8;1] 스데반의 죽음은 도리어 교회에 큰 핍박을 가하는 불씨가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을 옥에 넣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불평하고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흩어진 성도들은 정착하는 나라마다 복음을 전했고 열심히 교회를 세웠습니다. 온유한 사람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많은 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지경이 넓혀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25절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 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기막히게도 이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스데반의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짧고 간절했던 기도를 기억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스데반의 죽음을 기뻐했던 사울을 불러서 이방인의 구원을 맡기셨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자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죄 때문에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가 걸어간 길을 걷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스데반을 닮기 위해서 노력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스데반처럼 복음만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큰 핍박을 받을 때에도 그들을 용서했으며 하늘 문이 열려 예수님을 본 스데반처럼 삼층천을 보았는데도 겸손했습니다.
스데반이 공회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한 것처럼 바울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회당에서나 총독과 왕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스데반에게 지은 죄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믿음이 성장하면 자신의 죄가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죄가 또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 성화되어 온유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바울에게 있어서 스데반은 절대 잊지 못할 믿음의 선배입니다. 스데반과 바울은 온유한 자로서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지경을 넓히는 놀라운 능력을 보인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14절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설교는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닥쳤을 때 이 말씀은 특히 힘을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해석한다면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을 믿으면 곤경에 처하더라도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했던 것처럼 그의 뒤를 따르는 바울 역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기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받는 고난 조차도 감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풍부에 처했을 때 교만하지 않았고 배고픔과 궁핍에 처했을 때 비관하지 않았으며 어떤 환경에 처하든 복음을 위해서라면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은 바울이 성령께 비밀을 전수받았다는 의미이며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도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그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놀라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면 돌에 맞고 채찍에 맞으며 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하면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밟은 땅을 모두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세상과 하늘의 기업은 엄청나게 많은 상급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들은 실제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살았기에 천국을 상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성도들이 작은 일에 흔들리고 불평하며 세상사람처럼 욕심과 정욕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땅의 기업을 맡기실 수 없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되어 땅을 기업으로 받은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면서 스데반과 사도 바울처럼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했을 때 상대방의 심령에 흐르는 말씀의 물줄기를 보게 된다면 깊은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믿고 맡기신 복음을 성도의 온유함으로 세상에 드러내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