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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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전도서 1장 1-11절

1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이며 B.C 935년 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저자는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편하고 풍족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결국 말년에 돌아보면 떨어진 꽃잎과 같기 때문입니다. 활짝 피어나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그 아름다움은 결국 땅에 떨어지면 사람들에게 짓밟힙니다. 자신을 밟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그 시간이 헛되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솔로몬 역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헛됨과는 달리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자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삶은 물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며 왕으로 산다고 해서 만족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어떤 인생을 복된 인생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도서는 이스라엘의 절기인 장막절에 읽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과일을 추수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가 되면 우기로 전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날씨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과일을 추수하고 씨앗을 뿌리는 희망찬 장막절에 사람들에게 전도서를 읽어주었다는 것은 전도서가 비관적인 내용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은 신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 글을 쓰는 솔로몬은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보았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솔로몬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산다면 솔로몬이 진심으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려 본 사람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솔로몬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고생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질이 없거나 노예로 살거나 원수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이든 노예이든 평민이든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노력과 희망과 미움 때문에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 모두 헛되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까? 솔로몬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인생은 소유와 상관없이 하나님 외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비록 하나님을 멀리한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았지만 아직 살아갈 날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바랬습니다. 혼인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것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는 것을 솔로몬은 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결국 죄의 대가인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어떤 모습으로 살았든 모두 나그네의 길이며 아무리 수고한다고 해도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쉽게 비유한다면 아이들의 장난감 블록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블록을 아무리 열심히 쌓아도 밤이 되면 잠을 자기 위해서 높이 쌓아 놓은 블록을 결국 부수어 통에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아이는 블록을 다시 쌓고 부수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본 인생이었습니다.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이 세상에 사람들의 이름만 변할 뿐 그 자리에 똑같은 건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지만 땅은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일까요?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보면서 텅 빈 공간처럼 허무함에 치를 떠는 인생들을 끊임없이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을 지금까지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만들어 그것이 무슨 큰 지식이나 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몇 천년에 걸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성경을 통해 알게 된다면 사람들의 고민은 한 순간에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 사는 것이 비록 허무 할지라도 그 인생이 왜 꼭 필요한지 참 된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무엇인지 연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전도서 말씀을 사람들이 잘못 오해하게 되면 부정적인 관념에 세뇌되어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염세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솔로몬은 물론 인생을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하지만 그 헛된 인생을 통해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의 삶이 필요하다는 솔로몬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만 전도서를 바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처럼 하나님을 떠난 헛된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하고 복된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육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이 살면서 가진 믿음은 영원한 생명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저자인 솔로몬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서 바친 왕일 뿐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선물로 받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가서와 잠언과 시편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침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두 어머니가 한 아기를 두고 자기의 아기라고 주장하자 아기를 친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는 지혜로운 명 판결을 내린 왕입니다. 그리고 대외평화에 힘을 쏟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영화를 백성들로 하여금 누리게 한 위대한 왕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와 부귀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을 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대견하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넘치는 부귀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솔로몬이 세상부귀와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각 나라의 우상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이 하나님보다 재물의 욕심을 넣어주면 쉽게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솔로몬 역시 땅과 재물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미혹 당하여 그녀들이 가지고 온 신들을 숭배하였고 혼합종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이 지속되자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이 텅 빈 그릇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은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가운데서만 누릴 수 있는 영혼의 평안과 안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같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산다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 할지라도 그는 아무 생각이 없는 짐승과 같습니다. 아기들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생각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지식이 많아도 그의 생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오래 살려고 약도 먹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도 사는 동안 조금 더 건강하게 살 뿐 하나님께서 오라고 부르시면 모든 수고를 놓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심대로 살아가기 바빠서 평생 헛된 일만 도모하다가 선한 양심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은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육신의 장막을 벗는 순간 천국과 지옥 둘 중 한 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헛되고 헛된 삶이라 할지라도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솔로몬은 자기처럼 많은 기회를 받고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재물과 권세를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대로,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대로 소유를 놓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숨을 거둔 후에 돈을 무덤에 넣어주고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줘도 그 역시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만 욕심을 가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는 동안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이 세상에서나 사후에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기도 하고 마음대로 살기도 했던 솔로몬은 여러 해 동안 쌓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과 참 된 믿음안에서 세상을 보자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말한 “헛되고”는 히브리어로 “헤벧”인데 바람이나 증기와 같이 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나 속이 텅 비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보고 있는 솔로몬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느꼈던 허무함은 하나님을 떠난 영혼의 공허함이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영혼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후회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도 권력과 명예를 갖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자가 스스로 생명을 버리기도 하고 쾌락에 빠져 타락하며 심적인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약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바쳐 일구어 놓은 사업체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은 바벨탑과 같아서 아무리 쌓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이 계신 곳까지 올라가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죄로 쌓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를 갖게 되었는데도 사탄의 꾀임에 빠져 인생을 허비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에 지나온 세월이 허무했고 그런 자신을 보고 계셨던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을 만나야 했기에 그는 후회가 컸을 것입니다.

전도서 1장 5-7절

5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이 세상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모든 피조물들이 순종하고 있다고 솔로몬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발견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이미 그것까지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질시대에 대해서 배우셨을 것입니다. 학자들이 지질상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대시대에 살던 사람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지층을 연구하다 보면 특정한 층에서만 나오는 화석들이 있는데 그 화석을 보고 그 시대의 삶과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도 지금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영웅도 있었고 가난한 자와 욕심 있는 자도 있었는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던 인간들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4절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고 한 말씀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계속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가 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가 관영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죄로 인해 썩어버린 세상을 홍수로 덮으셨고 말씀에 순종한 의인인 노아의 가족만 방주에 태워서 살려 주셨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한 순간에 세상을 멸하신 하나님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와 아들들은 죄를 멀리하고 선하게 살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원죄를 해결하지 못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덮었던 물들이 물러가자 죄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는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을 자는 추한 행동을 하였고 그런 아버지를 조롱했던 아들 함을 저주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의 악한 본 모습입니다.

땅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고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영원할 것 같은 세상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없어지지만 말씀은 영원히 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사라질 세상과 인생에 매달리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삶은 사후에도 거룩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만 위해서 살다가 사후에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 때는 돌이킬 기회가 없기 때문에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긴 유명한 사람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도, 땅을 많이 가진 갑부라 해도 육신을 벗으면 그토록 소중했던 인생과 전혀 상관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후에는 소유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느냐 하는 것이 심판의 조건이 됩니다. 유명한 사람도 세상을 떠나면 다음 세대는 그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가면 그 보석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 젊고 건강했던 몸이 늙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세상을 호령했던 사람이 무생물처럼 허무하게 흙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상한지 아는 사람만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지는 노을을 보면 감동하고,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 행복을 느끼며, 출렁이는 바다를 보면 위압감을 느끼는데 이것 역시 앞선 세대들이 느꼈던 감정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만진 모든 것과 사건들은 이미 앞선 세대들이 겪었던 일들의 반복일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다음 세대도 동일하게 겪을 일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에 집착하기 보다는 매 순간 거룩하고 정직한 믿음으로 살면서 사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심대로 산다면 영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생명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천명이 넘는 여인들과 쾌락을 즐겼고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열방과 동맹을 맺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원없이 가졌음에도 자신의 인생에 무엇인가 빠졌다는 생각을 했고 그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겉은 커다랗지만 속은 비어 있는 공갈 빵처럼 솔로몬의 인생은 허울은 좋아 보이지만 속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삶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 인생은 터진 풍선처럼 쓸모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풍선과 같이 허울 뿐인 인생은 공기를 가득 담고 있을 때나 터졌을 때나 땅만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더욱 허무할 것입니다.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릅니다. 활시위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화살처럼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지금부터 잘 살아야 합니다. 이미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다시 쏠 수 없는 것처럼 과녁을 벗어난 인생은 회개할 기회를 얻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적들이 화살을 대량으로 쏘았을 때 방패를 세워 그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냅니다. 그리고 그 화살을 적에게 되쏜다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충만했을 때 믿음과 헌신과 충성하는 마음으로 사탄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사탄은 성도들의 충만이 빠르게 식을 것을 알기에 기다리고 있다가 성도들이 던진 믿음과 헌신과 충성으로 반격하며 조롱합니다. 이것이 네가 나에게 보였던 믿음인데 이것 밖에 안되느냐고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결단이 겨우 이것이냐며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했던 말과 행동은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죽도록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시간도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 경배를 드렸는지 아니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 하나님과 상관없는 시간을 보냈는지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화살과 같이 빠른 인생이지만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면 마지막 날 주님께서 천국 문을 활짝 열어주시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서 천국 문을 열어 주시고 품에 안아 주시는 그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잘 살아야 합니다. 그 영원한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과 살기 위해서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고 강조하는 솔로몬의 고백을 뒤로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인생을 채워 그 헛됨 위에 기쁨과 소망과 행복을 가득 채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 위에 던진 떡 ·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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