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1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3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4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5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므로 거대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한 여호수아의 믿음을 사용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돌고 있는 동안 소리내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겼을 때 함성을 지르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여호수아를 포함한 백성들은 온 힘을 다해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은 거짓말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거대한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명성을 열방에 퍼지게 하셨으므로 이제 열방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높여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세상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 수 있도록 성도들이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것과 여리고의 승리를 떠올릴 것이며, 모세의 곁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늘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안에는 이렇게 그의 신앙과 인격과 지나온 시간과 경험 그리고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이름을 떠올리면 평상시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잘 짓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떠오릅니다.
이름은 이렇게 나 자신을 대변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이름을 떠 올릴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 같습니까? 타인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동일한 인격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죄가 없는 자신의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우리의 심령에 가장 귀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은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향유는 잠시 동안 진한 향기를 내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만 조금 후에 그 향기는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처음과 나중 되시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은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이름을 높여 주실 것이며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운 이름으로 남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성도는 반드시 영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도서 7장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날마다 잔칫집이라 할지라도 헛되다고 한 것은 사람이 잔칫집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잠시일 뿐 결국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인생은 영벌이기 때문입니다. 초상집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반성을 하게 됩니다. 혹여 부지불식간에 험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책망 받을 일을 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되므로 잔칫집에 가도 절제하며 경건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하던 성도가 죽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살다가 천국에 들어간 것이므로 죽음 또한 큰 축복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성도를 불쌍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날마다 잔치를 벌이는 부자보다는 가난하지만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간 성도가 훨씬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솔로몬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고 했던 말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시간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늘 자기 반성을 하면서 죽음을 대비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인생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희로애락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 의미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쳇바퀴처럼 도는 인생속에서 천국에 소망을 두는 믿음을 가져야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구원을 쟁취하기 위해서 본성대로 사는 죄를 멀리해야만 거듭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한 것은 돌아가신 분을 보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더 진실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살라는 충고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깨닫고 자신을 추스르는 기회로 삼는 것이 잔칫집에 가서 웃고 떠드는 것보다 더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고난을 당하면 조금도 인내하지 않고 좌절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고난에서 건져 주실 때까지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준비하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한데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에 더 늦어집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출발한 것이 사실일수 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마음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언제든지 뛰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하나님을 믿는 자녀의 모습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소유를 얼마만큼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은 사후에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서 사후를 준비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세상을 볼 것인지 아니면 세상만 볼 것인지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것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생보다는 사후에 관심을 갖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인정했고 사람들에게 완벽한 믿음을 보여주려고 좋은 옷을 입고 회당과 큰 거리에서 기도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가식적인 행동을 분별하지 못하고 신앙이 좋다고 칭찬했을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실수를 하는데 하나님의 칭찬보다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므로 이것은 참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외적으로 볼 때는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열매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수많은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해야 하며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귀한 사명을 받은 성도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세상에 취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술에 취하며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할 몸을 더럽힌다면 음부에 떨어진 부자처럼 이를 갈며 억울해 할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이 신앙이 좋아서 복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늘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잔치를 벌였기 때문에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젊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죽음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생의 마지막 순간이 여러분에게 와서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을 계산하자고 할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을 갑자기 만나기 전에 늘 믿음으로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낸다면 아무리 세월이 화살처럼 빨라도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죽음을 기다리는 성숙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 7장 3절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죽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근심을 갖겠지만 그 죽음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만들기 때문에 마음에는 평안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좋은 일로 인해 크게 웃는 세상적인 웃음은 곧이어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사라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슬픔과 웃음 이 두 단어만 보면 웃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슬픔과 웃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됨을 알려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하며 그 인생을 은혜로 채워 주실 구세주를 간절히 원하는 슬픔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인생을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진 영혼들을 보고 애통할 수 있어야만,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 할 수 있으며 구원을 받은 영혼을 보고 진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쾌락으로 짓는 웃음은 결국 사라지는 안개와 같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날 열매가 없는 자신을 보고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이름이 함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계신 곳에 여호수아의 이름이 있었고, 기드온의 이름이 있는 곳에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계시며 그들의 이름을 높여 주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축복된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인생의 어려움으로 인해 슬퍼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새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과 함께 크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 거듭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지혜자를 세워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지혜자는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감정을 버리고, 오직 사랑하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말씀은 지혜와 훈계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며 말씀을 깨닫게 합니다. 지혜자가 최선을 다해 지혜와 의와 공평과 정직을 행해야 한다고 훈계 할 때 그 훈계를 받을 줄 아는 거룩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때문에 지혜가 있는 사람은 책망을 받으면 더욱 지혜로워지고 모략까지 얻는 명철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우매자는 지혜자의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교훈을 멸시하기 때문에 권면을 듣고 나서도 분을 내므로 결국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지혜자의 말을 듣고도 교만한 것은 지혜자를 멸시하고 하대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것을 보면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신 말씀은 결국 하나님을 하대하고 멸시하기 때문에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련한 자는 책망과 권면을 들으면 그것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옳은 길을 알려줘도 실패하거나 먼 길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혜이므로 그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유혹을 쉽게 받아들이고 세상이 주는 생각대로 행동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이런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는 결단이 있어야 하고, 세상이 주는 생각을 거부하는 인격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사탄은 한 영혼이라도 실족시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다 합니다. 그들의 집요함은 하나님을 상대하려던 악이기 때문에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과 떼어 놓을 수만 있다면 사탄과 세상은 얼마든지 여러분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 줄 수 있고,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존경받게 하며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명예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악한 사탄의 간교한 계략을 분별할 수 있는 영분별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여러분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다가올 때 그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시키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만 영적으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것도 모두 헛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권세와 재물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짓웃음을 웃었을 것이며 뇌물을 바쳤겠습니까? 그 웃음소리를 가시나무 타는 소리로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자신을 높여주는 칭찬으로 들었고, 그 웃음소리가 그칠까봐 두려워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사탄이 자신을 높여 주었을 때 분명히 행복했는데 돌아보니 타고 남은 재처럼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후회해도 이미 젊음도 사라지고 어리석고 늙은 자신만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떠나 세상을 붙든다면 죽은 후에 가시나무와 같이 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곳은 나를 높여주는 사람도,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도, 내 이름을 존경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지나간 인생이 후회스럽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지혜자는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삶을 살지 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책망을 감사로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며, 지혜자의 책망을 불평하며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직접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전도서 7장 7절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지혜자라 할지라도 그가 남의 것을 욕심내고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한다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헌신을 했다고 해도 현재 탐욕을 가지고 뇌물을 받고 자신을 높이는 죄를 짓는다면 안타깝지만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뇌물을 받는 행위는 아무리 명철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매자로 만듭니다. 성도들은 절대로 탐욕을 갖거나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한번 두 번 뇌물을 받고 남의 것을 손쉽게 빼앗다 보면 공의의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될 것이고, 돌이키고 싶어도 쉽게 사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탐학하며 뇌물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산 시간도 있을 터인데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정직했던 그 시간까지 더럽힌 것입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유혹을 받을 때 단호하게 물리치면 두 번째는 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 죄를 짓게 되면 사탄이 그 죄를 붙들고 끈질기게 매달려 그 사람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남의 것을 빼앗는데 사용한다면 그 죄는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성도보다 목회자가 타락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의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그 죄는 더욱 무겁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사탄이 어떤 가면을 쓰고 다가올지 모르므로 늘 긴장하면서 진리안에서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말고, 본능적으로 행동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왜 주셨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평생 쌓아 놓은 믿음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린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이름이 불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세상이 헛되고 헛된 곳이라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거든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바랍니다. 그런 결단이 여러분의 이름을 높일 것이고 삶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성도의 인생은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이생에서 보호받고 사는 것도 감사한데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에서는 믿음을 지킨 여러분의 노고를 축하하는 큰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잔칫집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죄에서 건져 주셨고 사망의 굴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셨으며 사탄의 공격에 방패가 되어 주신 거룩하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여러분의 이름을 선하게 사용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