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19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어떤 가게이든 가게마다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어떤 가게는 향수냄새가 나고, 어떤 가게는 담배 냄새가 나며 어떤 가게는 독한 화학약품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그 냄새가 너무 독해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보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 가게에서 나가지 않는 이상 냄새를 피할 수 없습니다.
냄새를 맡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 장소를 떠나는 것뿐입니다. 그 곳을 떠날 마음도 없으면서 냄새가 싫다고 화를 내거나, 냄새를 없애달라고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가게마다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 역시 성격과 인격과 환경에 따라 자기만의 특별한 체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을 만들기 때문에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으므로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체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향기가 납니까? 여러분은 어떤 향기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있습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의 향기가 좋아서 여러분 곁에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상을 찡그리며 여러분의 곁을 떠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향기를 싫어한다면 고집 피우지 말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을 바꾼다면 다른 향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도 나는 상관없으니까 삶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쩌면 인생을 한참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며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비방하며 늘 불평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역겨운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수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남의 말을 하다가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가 되는 일이라면 반드시 고쳐야 하며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사랑보다는 의무로 행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의무는 겉으로 보기에 동일한 행동을 하는것 같지만 풍기는 향기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받는 입장에서는 그의 진심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헌신하는 것과 보여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의무로 하는 것은 동일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향기가 진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지혜가 너무 귀해서 사람들은 그의 곁에 모여들었고 하나님께서도 솔로몬을 사랑하셨기에 지혜와 은혜를 충만케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성읍의 열 유사보다 더 지혜롭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하나님의 지혜를 자신의 의로 착각했기에 교만과 정욕과 음란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큰 권력을 갖게 되자 백성들을 함부로 다루기 시작했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자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솔로몬의 거룩한 향기는 세상의 악취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완벽하게 보였던 다이아몬드도 흠이 있는 것처럼 솔로몬은 지혜롭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인간의 교만과 타락과 죄로 뭉친 결함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이간질하며 자신의 눈과 귀를 가렸던 사람들이 자기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서 아부했던 사람들이 충성된 신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마음에 두자 지혜의 향기는 사라지고 세상의 악취가 그의 체취가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그제야 자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헛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쉽게 버리는 사람은 사탄도 그 사람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쉽게 버림받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때 사탄도 그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믿음을 버린 사람은 이미 생명이 없으므로 사탄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할 때 나는 향기는 믿음이 없는 세상사람들도 좋아하는 거룩한 향기이므로 성도는 변함없이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썩을 때 나는 냄새는 세상의 냄새보다 더 역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도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조롱할 것입니다. 자기들은 신앙도 없으면서 성도는 신앙을 지켜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지혜는 성읍을 지키는 열 유사보다 더 능력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문제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두 여인의 재판에 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여자가 솔로몬에게 와서 죽은 아기는 저 여인의 아기이고, 살아있는 아기는 자기의 아기라며 자신의 아들을 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두 여인은 사흘 전에 해산을 했는데 한 여인이 잠을 험하게 자다가 태어난 지 사흘 된 아기위에 눕게 되어 아기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죽은 아들을 안고 다른 여인의 방으로 가서 살아있는 아기와 자기의 아기를 몰래 바꾸었습니다.
잠자던 여인이 일어나 아기를 살펴보니 그 아기는 이미 죽어 있었고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살아 있는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며 다투다가 결론이 나지 않자 여인들은 솔로몬 왕이 지혜롭게 판결해주기를 바라고 온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아기의 어미가 누구인지 고민하다가 두 여인이 모두 살아 있는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아기의 어미를 찾는 방법으로 아기를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엄한 목소리로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하자 한 여인이 울면서 아기를 죽이지 말고 차라리 저 여인에게 주라고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한 여인은 아기를 둘로 잘라서 저 여인도 나도 아기를 갖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마음입니다. 자신들은 어차피 불 못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므로 세상과 사람을 망치는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행동을 보면서 차라리 다른 여인에게 줘도 좋으니 아기를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여인과 나도 저 여인도 아기를 갖지 못하도록 죽여 달라는 여인 중에 누가 아기의 어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한 여인에게 아기를 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솔로몬의 명판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의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와 사탄의 마음과 같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사망 한 가운데 던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죄인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솔로몬이 아기의 생명을 이용해서 어머니를 찾는 이 판결은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판결로 백성들은 솔로몬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지만 사람의 칭송이 솔로몬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들이 평안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라는 것을 잊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형통한 시간이 지속되면 자신이 의로워서 누리는 줄 알고 교만 해집니다. 자신을 높이고 섬김을 받는 것에 집중하다가 믿음을 떠나 멸망 길로 가고 있다는 것도 잊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불행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신의 의로 바꾸어 의인인 체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나치게 의인이 되면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열방은 하나님에게는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와 같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세상이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거대해 보이는 섬들조차 먼지처럼 보잘것없다면 인간의 의와 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하찮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마음에 품는 순간 은혜는 마음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얕은 말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교만해 질 수밖에 없으므로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람은 일단 자신이 전문가처럼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자기 의견에 확신을 가지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권면하는데도 듣지 않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으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욕심을 갖는 것과 같고,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잘못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처럼 어려운 결단이지만 의를 버린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7장 21절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많이 씁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심을 갖게 되면 상대방의 말에 매여서 스스로 올무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사람들의 말을 마음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큰 문제가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매이다 보면 소극적이 되고 자존감도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을 보고 삶 자체가 흔들려서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는 합니다.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글을 읽게 되면 당황스럽고 두렵고 고통스럽겠지만 그들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사람의 말은 그저 공중에서 사라지고 마는 하찮은 것이므로 평상시 말씀으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마음대로 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야고보가 말하길 사람들은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밖에 없지만 만일 말에 실수가 없다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성도들은 굳은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멀리 보면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기 위해서 유다 총독으로 온 느헤미야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은 느헤미야가 성을 중건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느헤미야를 심하게 모함하였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하고 나서 왕이 되려고 한다고 모함했지만 느헤미야는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유다와 백성들을 위해서 성을 중건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자신을 돕는 말인지 아니면 낙심케 하기 위해서 비방하는 말인지 먼저 분별해야 합니다.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말인지 아니면 칭찬 같지만 신앙을 심하게 흔드는 말인지 판단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실수하기 때문에 혹여 다른 사람이 나를 비방하는 말을 들었다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가끔은 남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관대하게 대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비방한 것이 생각나거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의 결정과 판단이 모두 의롭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았을 때 의인인 체 하고 살았던 그 시간들이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자신의 지혜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지혜를 남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죄 된 행동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를 믿고 살아왔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까 인생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시종을 인간은 절대로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전도서 7장 26절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솔로몬은 교만해지자 의로운 자로 자처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탄의 올무에 단단히 묶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떠난 자리에 교만과 어리석음 그리고 욕심과 정욕이 가득 차자 판단 능력이 떨어졌고 분별력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주보다 값진 지혜가 빛을 잃자 권력에 욕심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왕비와 비빈을 얻자 그들이 가지고 온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남자가 아내를 잘 만나는 것은 어쩌면 복 중의 가장 큰 복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내로 인해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은 여인들의 손은 포승처럼 솔로몬의 지혜를 흐리게 하였고, 음란한 환경과 육체의 향락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음란한 여인들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인간이 되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쾌락의 시간이 지나자 교만과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의가 자신을 어리석게 만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과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는 포승과 같은 악한 여인을 피할 수 있지만 지혜와 은혜를 버린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여인에게 잡힐 것이므로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사탄은 지혜가 없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만들어 지혜로운 사람의 충고를 들을 수 없도록 귀를 닫게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 일을 하나님의 지혜로 명철하게 대처하던 솔로몬이 음란하고 간교한 여자들이 가지고 온 우상에 빠지자 아둔해 져서 사탄의 공격을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26절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사악한 여인을 피할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난 죄인은 악한 여인에게 힘없이 붙잡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지혜로워서 악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악인이 성령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여인은 우상을 숭배하던 음탕한 이방여인을 말하지만 지금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물질과 인간관계와 인간의 의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생은 올무와 그물에 걸릴 수 있으며 사탄의 포승 줄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28절에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천 사람 가운데 찾은 한 사람은 죄를 깨달은 자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천명의 아내들 가운데 그리고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세상을 향한 욕심을 갖는 것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공의의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전도서 7장 29절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이 많은 꾀를 내어 죄를 짓게 되자 저주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꾀를 내어 말씀을 거역하였고 만물을 저주아래 두었습니다. 여기서 꾀는 계략, 계책을 말하는 것인데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은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 위해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게 꾀를 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꾀는 흙으로 만들어진 본성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여러분은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늘의 상급을 받는 자녀가 되기 바랍니다.
많은 세월을 보낸 후 돌이키려고 하면 기회가 적기 때문에 너무 늦습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 깊은 골짜기가 생겼을 때 이제는 어떤 것이 선인지 어떤 것이 헛된 것인지 아는 지혜가 생겼을지라도 돌이킬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들은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지함을 깨닫고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섬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사람이 측량하지 못할 깊은 것이며 하나님의 길은 어리석은 사람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욕심대로 악을 쫓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의 풍요를 더욱 넘치도록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길을 쉽게 찾도록 믿음의 동역자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오직 심령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