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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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전도서 7장 8-18절

8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11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기 머리만 믿고 시험 때만 공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는 평상시 열심히 하지 않고 며칠 만 공부해도 어느 정도 성적이 오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늘 성실히 공부하는 학생은 성적과 상관없이 그의 몸이 정직과 성실을 기억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급하게 공부한 친구보다 삶의 질이나 인격이 훨씬 성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을 만나게 되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낙심하기도 합니다. 공부 뿐 아니라 사업도 그렇고 자녀를 키우는 것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모든 삶의 방향이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세상사람들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지혜보다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세상은 힘써 노력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고 흥청망청 사는 것과 상관없이 소유가 많은 사람이 인정받는 곳이기 때문에 어쩌면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 더 실망하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주만물과 인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죄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사람들과 최종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지혜와 인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기에 억울한 마음보다는 성실함을 가질 수 있고, 얕은 꾀보다는 깊은 지혜를 길어 올리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나중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셨기 때문에 때에 맞게 모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아담이 말씀에 복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지 않았다면 그것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물질인 흙으로 만든 인간의 본성을 아셨기 때문에 이미 사람이 죄를 지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5절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때가 될 때까지 이미 계획된 십자가를 간직하고 계셨다가 말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은 비록 악한 영과 악한 자와 함께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변함없는 믿음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전도서 7장 10절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가 없는 우매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백년이 넘도록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이 해방을 맞이하고도 잠깐의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 애굽의 삶이 좋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은 내가 교회 일을 열심히 못 하지만 과거에는 정말 밤낮 가리지 않고 성경을 읽고 헌신했으며, 지금은 여유가 없지만 과거에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래에 소망이 없는 우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순간 부족함 없이 채워 주신 것을 잊고 과거에 했던 자신의 행위만 회상하면서 감사를 잊었기 때문에 이렇게 우매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 현재 네가 어떤 헌신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신앙과 삶은 그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소망으로 살기 때문에 현재 주어진 시간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이 세상사람들보다 제약도 많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은 악한 자에게 원치 않게 빼앗기기도 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을 까봐 취하지 못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속여서 빼앗은 재물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아는 성도들은 빼앗긴 것 같지만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멀리 보지 못하는 이런 자들을 우매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지금이 좋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던 때가 좋았습니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구속을 당하는 지금보다는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 때가 훨씬 좋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영원한 나라를 온전히 아는 성도는 그런 우매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살던 과거가 좋았다는 것은 하나님안에서 중생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새생명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구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 것입니다.

전도서 7장 10절

지혜는 유산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부모에게 유산을 받으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성도들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으면 세상에서 보배로운 존재가 됩니다. 유산을 받으면 사는데 큰 유익을 주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므로 유산보다 훨씬 귀중한 것입니다. 지혜는 생명의 빛을 내면서 성도들이 받은 물질과 권세와 재능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더욱 가치 있게 사용하도록 도와줍니다. 지혜로 인해 성도들의 사후가 달라진다면 성도들은 받은 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 7장 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뒤돌아 보아라 이 두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인생은 언제 태풍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지, 언제 잔잔한 바다처럼 평안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과 고난으로 장래 일을 헤아릴 수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평안과 고난이 교차하는 인생이기에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은 결국 인생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신 것처럼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평안과 고난이 교차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한다고 해도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사람은 장래 일을 설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고 해도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는 삶을 말씀대로 살아내야만 그 경험을 통해 참 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과 내가 반드시 이 일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인간의 의를 내려 놓은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6-7절

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부하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는 것과 죽이고 살리는 일을 동시에 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이 이런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 없을 뿐더러 맡긴다고 해도 의심때문에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현재 가진 믿음에 따라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을 사람이 마음대로 낮출 수 없고, 훈련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실 때 그 어떤 사람도 훈련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형통할 때는 더 겸손해야 하고, 시험을 받을 때는 회개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길을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 곧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직한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보시고 강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소유에 따라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인생을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을 성장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사와 인내로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으로 떠난 데마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당장은 편히 살 수 있겠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끝이 나게 됩니다.

물론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 게으르고 악하게 살아도 장수하며 부를 누리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일을 보면서 왜 저렇게 죄를 짓는 악인은 잘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인은 가난해야 하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도들은 이런 일들이 구원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야만 불평하지 않으며 그 삶이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세상과 성도는 사는 목적과 의미와 결과와 삶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성도가 악인이 풍요롭게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나안 족속들이 잘 사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다가 그들의 우상을 섬겼던 죄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과 같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그 삶을 평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좋아할 것도 없고, 고난을 만났다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인생은 고개를 넘는 것처럼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자신이 믿음의 향기를 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아까워서라도 사탄과 세상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6-17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거나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는 것은 스스로 패망하는 길이며, 지나치게 악인이 되거나 지나치게 우매자가 되면 기한 전에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는 시소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혜가 뛰어난 것처럼 스스로 높이며 다른 사람들 위에 서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의를 낮추는 행동이기 때문에 교만한 죄가 됩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이미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은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까지도 자신의 믿음이 좋아서 받는다는 생각때문에 상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이것은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이렇게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택하고 부르신 영혼에게 너는 보잘것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믿음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지만 내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역사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달렸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소유와 능력과 권세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직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자 집 앞에서 구걸하던 나사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갔고, 자신의 의를 자랑했던 부자와 바리새인은 구원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 믿기 때문에 부자가 입은 옷과 그의 가식적인 행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진실된 믿음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복의 기준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한번만 보여주신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세상을 버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악한 인간의 본성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의와 지혜는 결국 패망을 부르기 때문에 여러분은 진리안에서 지나치게 의롭지도 말고 또한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참 된 의인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며, 자신이 지혜자라고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는 우매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교만한 지혜자도 되지 말고 우매자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기한 전에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해지거나 죄를 짓게 되면 멈추기 힘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님의 지혜로 신중하게 판단하면서 그리스도의 길로 가야 합니다.

죄는 언덕에서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질 뿐 절대로 작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지금 우리가 죄를 붙들고 세상에서 구른다면 그것은 곧 멸망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높은 은혜의 언덕에서 죄를 품고 구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여러분은 처음부터 지혜롭게 죄의 싹을 자르며 사탄이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기 바랍니다. 잠언 1장 7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믿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환난 날에 주님을 불러도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주님을 부지런히 찾아도 만나지 못하는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롭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문제를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하고 있습니까?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영혼 구원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만약 자신이 지혜가 있다고 믿고 있는데 주님의 의를 삶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의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판단해야 하고 해결하기 위한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재능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으면 헛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이 자기 것인 줄 알고 마음대로 살았는데 인생의 마지막에 서자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내 몸이고 내 삶이며 내 소유인 줄 알았지만 죽음 앞에 서자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와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성도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인생 중에 행한 일들을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심판 받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매 순간 노력해야 합니다.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여러분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갈밭을 걷는 것처럼 험한 세상을 살고 있기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은 안전한 복음의 신을 신고 성도의 본분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지혜자가 될 것인지 우매자가 될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한 성도는 인생의 마지막에 금과 은처럼 심판의 불에 타지 않는 믿음과 충성과 사랑의 열매를 남길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간다면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지혜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항상 옳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들의 사랑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우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와 우매는 어쩌면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두 알면서도 지혜롭게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아니면 우매한 자처럼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만 고집할 것인지 그 생각의 차이가 지혜와 우매로 나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시면 지금까지 가졌던 사람을 향한 서운함도, 세상이 주었던 기쁨도, 목숨처럼 매달렸던 일도, 죽도록 헌신했던 신앙까지도 모두 놓아야 합니다.

이런 안개와 같은 세상에 여러분의 귀한 영혼을 맡기지 말고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께 여러분을 맡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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