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1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8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9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0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2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이사야 선지자가 모셨던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했던 웃시야는 왕이 되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거대한 성을 건축하는 힘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시야를 높여 주시자 열방은 큰 권세를 가진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쳤고 그의 이름은 애굽 변방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는 세상에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는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허무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족하기에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노력하더라도 때가 될 때까지는 어려운 환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것을 믿고 때가 될 때까지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를 보시고 반드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웃시야왕은 예루살렘 성문과 망대를 건축해서 나라를 견고하게 하였고, 농사와 목축을 장려하여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획에 함께 하셨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었습니다. 웃시야의 이름을 모르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자 그는 서서히 변질되었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는 교만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스스로 인정하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하겠다던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교만해지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선순위를 바꾸기 때문에 솔로몬처럼 잘못된 인생을 살았다고 후회할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웃시야는 자신의 지혜와 전략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쉽게 버릴 수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많은 재물과 권력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은 그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처럼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사망에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죄를 멈추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매를 들 때까지 반항하는 아이처럼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던 사람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이게 되면 바벨탑을 쌓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내가 지혜롭고 명철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큰 죄이며 사탄의 종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 끝나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후세계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므로 세상에서 당연히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천국의 주인인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웃시야가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교만해지자 제사장만 집전할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드리겠다고 고집 피우며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제사장 아사랴는 제사장 80명을 대동하고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께 범죄 하려는 왕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아사랴는 웃시야 왕에게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의 일이 아니며, 구별된 제사장들이 할 일이라고 막았지만 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만약 왕이 분향을 한다면 법을 어기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크게 책망을 받을 것이라고 간곡하게 만류하였지만 웃시야는 듣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간곡하게 권면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이미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므로 제사장을 멸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웃시야가 제사장의 권면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만 받으시겠다고 법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은 사람이 함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웃시야는 자신이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막는 제사장에게 크게 화를 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는 제사장의 말에 순종했던 왕이 마음이 변하자 제사장에게 도리어 화를 내며 함부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웃시야가 간과한 것이 있는데 제사장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이기 때문에 왕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웃시야가 제사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마에 문둥병이 생기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곧 사망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제사장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왕을 말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때문에 강력하게 말렸지만 이미 마음이 변한 웃시야는 듣지 않았습니다. 웃시야는 제사장이 간곡하게 부탁하며 말렸을 때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왕이라는 신분만 믿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웃시야가 받은 심판은 감당하기 힘든 벌이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생각이 없자 제사장이 하는 말이 모두 자신을 멸시하는 말로 들렸고 감히 왕에게 도전한 것처럼 분노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웃시야를 사랑하셨기에 나라를 부강하게 하셨고 장수의 복을 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잊고 교만해지자 결국 패망의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첫 사랑을 잊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백성을 깊이 사랑하며 장수의 복을 받은 왕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제사장의 말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므로 일단 순종했다면 엄청난 심판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을 때 크게 승리했을 뿐 아니라 그 여세를 몰아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는 것을 본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사랑을 버리고 교만해졌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소유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져서 편안하게 살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응답만 받으면 죽도록 충성할 것처럼 서원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서고 맙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관심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광을 나눌 생각이 없어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쏟아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변해버린 성도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충성을 아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웃시야가 왕으로서 인정받기 까지 보호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많은 계획과 성취를 통해 그를 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받은 것을 모두 빚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심령은 자연스럽게 가난해질 것이므로 절대로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도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살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별궁에 갇혀 있었던 그는 왕의 권세도 누리지 못했고 왕의 묘실에도 들어 가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것인지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만해지는 순간 패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버린 교만한 자는 반드시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누리는 권세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웃시야가 교만해지자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를 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웃시야의 선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친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지 않기 바랍니다.
왕과 제사장은 분명히 하는 일이 다릅니다. 왕이 제사장의 권면을 듣지 않는 것도 잘못 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의 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 역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지파중에서 레위지파를 세워 제사를 담당하게 하셨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제사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법을 어기고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제사를 집전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성도들도 영적으로 변질되면 가장 먼저 교만과 불평이 생깁니다. 그리고 교만해졌기 때문에 교회와 목회자와 믿음의 형제를 판단할 뿐 아니라 선했던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예레미야 5장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예루살렘에서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들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타락하여 채찍을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했으므로 회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사탄의 영향을 받으면 은혜와 사랑을 드러냈던 환한 얼굴을 석고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이런 행동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밝고 친절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 자신이 원하는 말만 들으려고 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필요에 의해서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사랑을 믿는다면 판단하지 말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까지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웃시야가 처음 신앙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죽을 때까지 누렸겠지만 그의 교만이 하나님과 담을 쌓았기 때문에 넘치도록 받은 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웃시야는 별채에 갇혀서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자기도 하나님께 분향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왕의 자리를 빼앗고 문둥병자로 만들 수 있느냐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제사장이 말렸을 때 왜 듣지 않았는지 지난 시간을 후회 했을지 여러분의 생각에는 그가 어떤 마음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행동을 보면 자기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의 생명을 전쟁 중에 지켜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그 생명을 거두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경과 평안과 풍요를 누리게 하셨다면 그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제가 웃시야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말씀을 드린 것은 솔로몬이 2절에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누린다면 그것도 헛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재산과 지혜와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참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면 그의 수고는 결국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이렇게 어떤 문제를 만날지 혹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이용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처럼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물은 죄를 깨끗하게 씻김 받았다는 상징이므로 세례를 받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깨닫게 하셔서 회개하도록 도와 주시며 천국백성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모은 내 재물을 나는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성도들은 성령께서 알려주신 대로 죄를 멀리하고 말씀대로 살면서 천국백성이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은 지식을 통해 인생을 배우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시기 때문에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처럼 확실한 답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인생의 깊은 의미를 알고 헛되고 헛된 시간을 보내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주셨는데도 올바른 인생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이므로 그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할 것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버리고 배신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문둥병에 걸려 별실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가 별실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분향하는 것은 당연히 제사장이 하는 일인데,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하겠다고 했는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야 했지만 웃시야가 끝까지 용서받지 못한 것을 보면 그는 이를 갈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많은 물질과 권세를 가졌을지라도 웃시야처럼 심령이 평안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얼마든지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웃시야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고난입니다. 좋은 일 후에도 고난이 있고, 고난 후에도 반드시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사는 동안 어떤 일을 만날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욥기 3장에 보면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차라리 내가 낙태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욥이 말하길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이 가는 곳은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피곤한 자가 쉼을 얻는 곳이며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않는 평안한 곳이며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도 상전도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높고 낮음, 많고 적음이 있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여 육신을 벗고 나면 종도 상전도 없고 작은 자나 큰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인간이 당하는 고난은 죽어야 끝이 난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육체의 삶은 끝이겠지만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의해 갈 곳이 정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은 인생보다 더 고통스러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후를 위해서 이생의 삶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사람들의 혼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서 6장 7절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입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지만 사람의 식욕은 절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는 것 중에 식욕과 더불어 물욕과 성욕이 있는데 그런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먹고 갖기 위해서 살고 있지만 결국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의 욕심은 죄를 낳게 되고 죄는 사망을 불러오기 때문에 그 삶은 실패하고 맙니다. 세상은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조차 세상의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4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다툼을 살펴보면 모두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죄로 인해 생기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가 지켜야 하는 영적인 의와 평안과 기쁨이 중요하므로 성도들이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세상에 집중하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언한 것처럼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유혹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지 못하도록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갖게 하지만 세상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죄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이유는 허무한 인생을 이용해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세상 일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결국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안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은 사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소유가 많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면 사후에 생각지도 못한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곳에서는 금이나 돌이 같은 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육을 위해서 산 인생은 아무런 공로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성도의 상급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 빛을 낼 것이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