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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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

전도서 3장 11-22절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16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솔로몬은 사람이 죽고 난 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세상 일이 궁금하다고 해서 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없고, 하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절대로 세상에 다시 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고 나면 이 세상과 전혀 상관이 없어지므로 살아 있을 때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합니다.

육과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되므로 세상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오직 산 사람의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 친구와의 관계도 살아있을 때 관계이지 죽고 나면 산 사람의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 서로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은 날을 기억하여 음식을 잔뜩 차려 놓아도 세상을 떠난 사람은 그 음식을 절대로 먹을 수 없기에 제사가 무의미 한 것입니다. 사는 동안 일을 다 끝내지 못해도 그 일의 진행이 궁금하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다고 솔로몬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호흡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 똑같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똑같기 때문에 사람과 짐승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가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거룩한 영을 가진 사람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이므로 지금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그 죄를 용서받지 못했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사후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아서 어둠에 떨어진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도로 세상에 데리고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은 죽음은 이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다는 것을 말하므로 지금 믿음으로 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벗으면 구원의 기준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를 다니게 하기 위해서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에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노인이든 청년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만약 죽기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면 그는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던 그 순간을 가장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죽을 힘을 다해 기도했는지 후회했을 것인데 15년을 더 사는 동안 악한 므낫세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어 55년을 치리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에 우상을 세웠고, 성전 마당에서 일월성신을 위한 단을 쌓아 자식들을 불로 지나가게 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신접한 자와 박수들을 양성하여 우상숭배를 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무죄한 백성을 많이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면 나라를 우상으로 가득 채우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히스기야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 그가 하는 후회까지도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도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했던 말과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보다는 자기 혈기와 자존심을 이기지 못한 감정 표출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고 좁은 소견으로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배운 지식과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 만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저 지나가는 하찮은 세상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헛되고 헛된 일에 목숨을 걸었던 젊은 자신에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응답을 받고 기뻐했던 그 때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사람을 하나님보다 두려워하며 개미처럼 작아졌던 그 순간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미워하고 혈기내고 아등바등하며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던 그 때 조금 떨어져서 영적으로 판단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말은 하지 말걸 후회하거나 더 관심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 줄 걸 했던 순간 역시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자존심을 꺾지 못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한두 가지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걸 그랬다고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죽으면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쾌락을 위해서 살았던 지나온 시간들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세상에는 선한 권세자들이 하루아침에 큰 권력과 재력을 잃기도 하고 악한 권세자들이 한번의 어려움도 겪지 않고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편안하게 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입니다. 자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하나의 점처럼 미약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지 언제 끝내실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두 알 수 있다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만약 사람이 일어날 일은 알고 있는데 막을 수 없다면 걱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므로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안다고 해도 사람은 결국 동일하게 판단하고 결정 할 것이기 때문에 사건이 다가올수록 더욱 초조하고 근심만 쌓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루를 만족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오늘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내일은 내일 염려하면 되므로 오늘은 오늘로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내일의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 평안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오늘을 즐기는 사람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오늘을 만족한 날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불행한데도 자기만 위해서 살면서 그들의 불행에 상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내일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 그리고 자존심과 혈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므로 그 삶을 버리지 않는 한 입으로 하는 회개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하고 의지하게 하며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이렇게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누리는 평안과 안식을 이 땅에서 누리는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평안하게 해주고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희생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상대방의 마음과 평안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의 종말을 알지 못하는 것 역시 축복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길 시간조차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일 아침에 사과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라면 영원히 사과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감사하고 사랑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을 믿음과 사랑으로 채우는 아름다운 인생을 산다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이 두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늘을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며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은 늘 감사와 찬양과 기도로 살기 때문에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6절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 인간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주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길은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는 죄를 지었으므로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늘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행해야 하는 재판조차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역했던 인간의 교만이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재판은 사회의 밑거름이 되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재판장이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솔로몬은 크게 탄식하였습니다.

뇌물이 악한 죄라는 것을 배운 성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지 않고 출세를 위해서 뇌물을 사용한다면 죄이기 때문에 분명히 실패합니다. 뇌물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그 사람을 절대로 돕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선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선과 악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과 악에 대해서 먼저 바르게 정의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선과 악을 결정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장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려고 하셨습니다. 재판장을 폭 넓게 본다면 자녀에게 인생 길을 알려주는 부모일 수도 있고 성도들에게 진리와 비 진리를 가르치는 목회자 일 수도 있으며 제자를 가르치는 교사 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판장은 선과 악을 동시에 판단해야 하며 사람들이 살아갈 길을 찾아줘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자신도 선과 악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대로 올바른 판결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판결한다는 것은 신과 같이 아주 큰 권세를 받은 것이므로 재판장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부모와 목회자와 교사는 앞서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것처럼 바르게 판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녀와 성도와 제자에게 거짓 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위해서 살아온 부자와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던 나사로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게 살았고 한 사람은 먹을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 두사람은 세상을 떠난 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사후세계에서 일어났는데 세상과 완전히 뒤바뀐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풍악과 술로 큰 잔치를 벌이며 편하게 살았던 부자는 지옥 한 가운데 떨어져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살면서 한번도 이런 곳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자는 죽음 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늘 굶어야 하는 힘든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개들에게도 무시 받는 인생을 살았지만 육신을 벗는 순간 그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세상의 일을 모두 잊고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브라함의 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더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세상이 하찮게 여겼던 믿음이라고 늘 말씀을 전했으므로 잊지 않기 바랍니다.

부자는 믿음의 사람 나사로가 자기 문 앞에서 굶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짐승에게 음식을 주면서도 그에게는 양식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나사로의 고통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양식을 나누어 주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나사로가 당했던 고통보다 사후에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나사로에게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가 그동안 자신의 집 문 앞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이제 알게 되었지만 돌이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자기 형제 다섯명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 달라고 애걸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세상에 많은 전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가 살아서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본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고 복음을 듣기만 해도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이므로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에게 무서운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선하게 사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천국에 들어간다는 축복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사건을 보면 부자는 사후에도 세상의 근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믿음의 사람 나사로는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자기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면 사후에도 그는 세상의 삶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품에 안긴 나사로가 세상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천국에서는 세상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세상의 일을 기억한다면 그 자체로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금 모든 대답을 나사로가 아닌 아브라함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겪었던 고통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던 그 때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물 한방울 없는 지옥이 더욱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이곳에 형제들이 올까 봐 죽은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했지만 죽은 사람은 세상에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사후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부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부자가 된 것은 믿음이 좋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므로 자주 옷과 베옷을 입고 신앙이 좋은 척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이 있는 척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신앙을 갖지 말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성령께 의지하며 삶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과 행동과 일은 무엇이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서 밥을 하고 콩나물을 다듬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역시 가족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므로 부모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족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며 자녀들은 그런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과 희생과 감사를 알고 바르게 사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일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가족들은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이렇게 건강한 가정들이 모이면 교회는 더욱 건강해집니다. 성도들이 건강한 믿음을 갖는다면 그 누군가는 영향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므로 그런 성도의 희생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바로 상급이며 사명을 잘 감당한 성도입니다. 이렇게 본이 되는 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씀은 힘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관계는 살아 있을 때만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 있을 때 깊이 사랑하고 품어주며 용서하고 나눠 주기 바랍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므로 여러분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라며 넘치는 사랑으로 품어 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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