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1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4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7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골로새서 1장에 보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은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모든 만물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소유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놓고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의 뿌리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통해 양분을 공급받은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결국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걸고 지키려는 물질과 목숨과 사람들 조차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전도서를 쓴 솔로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것을 빌려서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쓴 솔로몬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를 만나 보고자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했을 때 책망을 받았지만, 주인의 뜻을 온전히 분별했을 때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뜻을 정확하게 깨닫자 청지기는 강퍅하게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길 청지기는 주인의 마음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청지기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맡겨준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사명을 감당하면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이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면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마음이 너그러울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청지기들이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의 사정과 형편에 맞게 도와 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것은 청지기들이 자신을 도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읽고 선한 일을 하는 청지기를 보면서 크게 기뻐했고 생명을 살리는 선한 행동을 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하지만 청지기의 입장에서는 주인의 뜻이 구제라고 해도 자기가 주인의 것을 마음대로 나누어 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불편했고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의 마음으로 보면 이미 내 소유이므로 소유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나누는 것이 싫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선한 청지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주인의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인의 선한 뜻이 빛이 나도록 선한 청지기는 더욱 충성했고, 자기가 주인에게 빚진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경하며 순종했습니다. 주인은 선한 청지기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선한 청지기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맡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인품을 가진 주인의 선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강퍅하게 행동한 사람이 바로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어둠에 갇혀 있는 세상에는 선한 청지기보다 불의한 청지기가 더 많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들이 악한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긴 하지만 주인의 재산을 더 많이 늘려 주기 때문에 주인이 선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불의한 청지기를 곁에 둘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으며 계산하고 또 계산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받아냈습니다. 이렇게 일한다고 해서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주인의 뜻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 주인은 분명 죽도록 충성하는 그를 향해 불의한 청지기라고 책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횡포를 부렸던 그는 주인에 의해서 한순간에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주인 몰래 과실을 따가는 사람들을 잡아서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원망을 들었습니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주인의 재산을 지키며 충성했는데, 왜 주인이 자기에게 불의하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생각할 때 주인의 재산을 자신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선한 청지기가 더 책망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늘 자신만 책망하는 주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주인의 신앙과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주인의 인생관 그러니까 삶의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책망하는 주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에게 너의 악한 결정과 행동은 온전한 삶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인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는데 도리어 사랑이 없다고 책망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주인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하는 행동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주인을 대신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자기가 아낀 덕분에 주인이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청지기가 하는 일이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책망을 듣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지혜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아낀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인이 구제를 원한다면 주인의 것을 가지고 구제하면 됩니다. 어차피 주인이 원하는 일이니까 자신이 굳이 강퍅하게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서 그 동안의 잘못을 사과했고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이 바뀌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기 시작하자 그들은 베풀어준 자신보다 그 청지기의 주인에게 감사하며 주인을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과 더불어 마음을 돌이킨 자신까지 사랑을 준 것이었습니다. 주인의 뜻과 상관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만 했을 때는 칭찬을 듣지 못하고 힘만 들었는데, 주인의 뜻을 알고 나누어 주자 도리어 주인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이렇게 지난날을 후회하며 가던 길을 돌이킨 불의한 청지기의 마음을 지금 솔로몬이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누리던 모든 영광과 권세와 생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주셨던 하나님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았던 그 삶이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어도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것으로 탕감해 준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재산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망에 빠질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여러분이 받은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 뿐이지 여러분이 그들의 죄를 탕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 사랑과 희생을 전한 것 뿐 우리의 것을 나누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이 굶는데도 하나님께 받은 재물과 은혜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는 주인의 것을 나누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고 자신만 위해서 산다면 주인의 진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성도들과 정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주인의 재산을 아껴야만 칭찬을 받고 마음대로 나누면 책망을 받는데 이것은 불신앙과 교만 그리고 소유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 젖어 있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넘치도록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얼마나 불의한 청지기였는지 깨닫자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그 시간들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림자와 같은 인생을 두 손에 움켜쥐고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누린 권세와 영광이 그림자와 같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하나님앞에 서기가 두려웠습니다. 사람은 선하게 살든 죄를 짓든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지금 하나님께 선한 청지기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불의한 청지기로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의를 죽이고 하나님의 의에 의지하고 살아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전도서 9장 9절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위해서 시간과 정열과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은 허상이라고 말해주어도 자신의 계획과 일과 지식과 지혜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성도들이 알려주지만 세상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죽도록 세상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천명에 가까운 여인들과 쾌락을 즐겼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습니다. 한 여인과 혼인하여 아내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그는 인간적인 쾌락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 은혜를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자신과 달리 선량한 백성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참된 낙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솔로몬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의인과 악인,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가 일반이라는 말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이 성공한 삶, 특별한 삶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결국 다른 인생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 일반입니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동굴 속에서 어떤 사람은 큰 돌을 높이 쌓아 놓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들은 제각각 자신이 쌓은 돌무더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둠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입니다. 작은 빛 한 줄기만 들어와도 돌무더기가 크든 작든 동굴에 갇혀 있다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 돌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 권세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동굴속에서는 어떤 사람도 특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오면 동굴에서 했던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 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을 벗어나 빛으로 나온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인데 그들이 가난하든 병들었든 부자이든 건강하든 일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왕이라는 직위와 하늘의 지혜와 세상의 권력을 주셨습니다.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세상에 드러내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빛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 아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굴복시켰고, 많은 재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등불을 스스로 끄는 어리석은 죄입니다.
어둠에 숨어서 살다가 인생의 끝에 서자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시간들이 지옥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세상을 뒤로 하고 죽음의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생명의 주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솔로몬은 그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왕의 권세로 호령했던 그 시간이 죽은 사자처럼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두려웠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동안 자기 때문에 고통 받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 있는 개처럼 소망과 기회를 가지고 날마다 돌이킬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왕의 권세보다 더 큰 힘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자처럼 기회가 없는 자신보다 날마다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살아있는 개처럼 귀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어서 냄새 나는 사자 같은 자신보다는 작지만 살아서 주인의 사랑을 받는 하늘의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영혼들을 그 동안 핍박했다는 것을 깨닫자 두려웠습니다. 사후에 갈 지옥과 천국은 모두 호흡이 있는 동안 결정되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잘 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지만, 하나님 없이 노력하는 시간은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간들이므로 헛된 것이며 하나님이 없는 지식과 지혜 역시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많이 가져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주어진 모든 시간과 환경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인생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행실이 선하든 악하든 근본이 죄입니다.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고 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흰색이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검은색을 다 버리고 흰색으로 다시 빚지 않으면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은 헛된 것입니다. 흰색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과해야 합니다. 보혈을 통해야만 죄를 씻김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어두운 동굴에 있을 때 죽음의 다리를 건넜다면 세상은 왕의 죽음을 슬퍼했겠지만, 죽은 그는 사람들이 우는지 그리워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영벌에 처해져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권세도 인간의 의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었을 때 종들이 힘이 없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그는 너무 평안했습니다. 그의 기쁨이 얼마나 크면 자신을 살아있는 개로 표현했겠습니까? 솔로몬은 가던 길을 돌이키고 나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고 보호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드린 회개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눈물이었고 기도였습니다. 성도가 깊은 진리안에서 느끼는 기쁨을 세상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쁨을 언제 느꼈습니까?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이 오직 사탄에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솔로몬처럼 감사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에게만 생명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전능하신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건지셨다는 것을 아는 성도들은 낙심하지 않을 것이며 절망하지 않을 것이며 불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만진 사람은 목숨을 다하여 충만한 믿음으로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리스도께 찬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천대받는 개처럼 살았지만 자신을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천국을 바라보았기에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보고 있는 이 영광을 여러분도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이 두렵지 않고 권세가 부럽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 때문에 기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느낀 구원의 감동과 바울의 충만함을 느낀 성도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으며 십사만 사천의 성도가 부르는 찬양을 함께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2절
1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천국은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토록 살아가는 천국에 들어가는 여러분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죽음의 다리 앞에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본 솔로몬은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을 가운데 두고 세상과 천국을 동시에 바라본 솔로몬은 회개와 기쁨을 동시에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 믿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많은 것을 받고도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주인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순종했던 선한 청지기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