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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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스스로 담을 허는 어리석은 자

전도서 10장 5-11절

5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6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7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8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10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1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국가의 최고 통치자입니다. 왕은 입법, 사법, 행정 등의 모든 국가기관은 물론 군의 통수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왕이 어떤 인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기도 하고 멸망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왕은 인격과 상관없이 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권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권력을 갖거나 소유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신앙과 선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반드시 노력해야 하며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별력이 떨어져 지혜자를 버리고 우매자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이 전체를 보는 지혜를 갖지 못하면, 당장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들의 말을 듣고 지혜자를 멀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전도서 10장 4-5절

4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 5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여기에서 주권자는 어른과 같은 말로 통치자 지배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주권자를 영적으로 본다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어리석은 주권자들의 허물로 인해 고통을 당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주권자를 배척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주권자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며, 그런 주권자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돌이키는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왕이 불합리한 통치를 한다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왕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반드시 물으실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더 행할 것이기 때문에 세상은 마지막 날을 향해 갈 수밖에 없으므로 더 밝고 깨끗해질 수 없는 곳이 세상입니다.

상식도 예의도 도덕도 사라지고 지위나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신분과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더 높이는 것에 관심을 둘 것입니다. 왕이 어리석으면 우매자는 높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며,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간사한 종들은 말을 타는 영화를 누릴 것이고, 충신들은 도리어 반역으로 몰려 간신들의 말을 끄는 노비로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은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남겨둔 칠천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직 말씀으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말씀으로 살아내는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인생 중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잘 판단하고 결정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의 우매함은 다른 사람이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27장 22절에 보면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곡식은 가루가 될 정도로 빻아져도 미련한 사람이 지혜로워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우매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우매한 행동들이 모여서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매자는 어리석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면 즉시 돌이켜서 우매한 자리를 떠날 수 있지만 자기의 감정과 이익이 먼저이기 때문에 돌이키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어떤 사람때문에, 내가 가진 이념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말씀보다 세상을 앞세운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시고 분노하셨을 때 하나님보다 더 높이 섬김을 받고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기를 했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자 간절히 회개하였으며 그 회개로 인해 용서를 받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처음부터 법과 규례를 지키고 모세의 율법을 지켰더라면 솔로몬은 후회가 가득한 전도서보다는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시편과 잠언을 더 많이 남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법과 규례를 잘 지켜서 후회 없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의 본성대로 행하면 되기 때문에 쉽게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된 선택을 회개하고 돌이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지금 말씀안에서 잘 판단하고 결정하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말씀에 굴복하며 날마다 죽는 자처럼 산다면 그 순간은 인간의 의와 본능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본 사람만이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은혜의 깊이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재물과 권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것을 알기에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영혼구원을 위해서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시며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큰 권력을 가졌을 때 교만하고 우매한 자가 되지 말고 솔로몬처럼 세상의 왕으로 세워 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떠난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다에 이처럼 어리석은 왕이 있었는데 그는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는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15년 연장을 받은 후 하나님을 반역했던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역시 변질 되었으므로 생명을 15년 연장 받은 세월이 죄로 채워졌기에 15년을 더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그 시간을 선한 믿음으로 채웠는지 아니면 죄로 채웠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그 당시 남유다의 정세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공격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쳐 들어와 자신들을 위협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고민 끝에 앗수르를 힘으로 대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를 드리자 놀랍게도 하룻밤에 앗수르 군사가 십팔만 오천명이 죽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봤던 선한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그런 그가 15년이라는 세월을 선물로 받자 남유다에서 가장 악한 왕인 므낫세를 낳았고 그의 신앙조차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 군사를 물리쳐 주셨고 죽을 병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지만 히스기야는 거룩한 신앙을 오래 간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는 하나님만 의지하기 때문에 신실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이 지나고 나면 감사를 잊어버리고 그 때부터 자신의 의와 사탄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참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편안한 시간이 지속되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 답답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세상의 일을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고난에 쫓기지 않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지만 삶이 평안해지면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려야 하는 것처럼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 평안은 자신이 무엇을 해서 받은 은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믿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고통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보기에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편안한 시간을 허락하셨을 때 그 자리를 지키며 믿음으로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며, 하나님과 긴밀한 소통을 위해서 늘 기도한다면 그 복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울 때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가만두지만, 고난을 벗어나 긴장을 놓으면 그 때 교만과 불만과 욕심으로 심하게 흔들며 넘어지게 합니다. 이 덫에 히스기야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역대하 32장 24-25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드렸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경건해서 병이 나은 것처럼 교만해졌고 곧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선한 삶을 살면서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 믿음을 보시고 세상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성도들이 간절하게 기도했기 때문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심령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 때 보다는 응답 받은 후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면 그 때부터는 사탄과 자신이 파 놓은 욕심과 정욕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도하기만 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울면서 매달리면 건져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면 잊어버려도 되는 하나님, 이것이 바로 우매자인 인간이 파 놓은 함정입니다. 이 함정에 히스기야가 스스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앗수르를 물리치고 병이 나은 것이 자신이 경건해서 이룬 것처럼 인간의 의를 내세우자 판단력이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이런 히스기야의 변질된 믿음을 쉽게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변질된다면 가장 먼저 사탄이 알아보고 접근할 것이므로 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사탄은 간사한 바벨론의 사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이루게 되었느냐고 히스기야를 높여주는 척하였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자들에게 성전은 물론 보물창고를 다 열어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면 판단력이 흐려지므로 히스기야처럼 철저하게 인간적인 생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마치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벗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법과 규례에서 벗어나도 죄의식을 갖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죄는 한번 범할 때 두려운 것이지 반복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히스기야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10장 8절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히스기야는 안일하게 파 놓은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꾀는 아무리 지혜로워 보여도 결국 멸망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능력이고 보호인지 잘 깨닫지 못해서 교만하게 행동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는 매 순간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성령의 울타리를 세워 사탄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해주시고, 방패가 되어 세상에서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막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겸손하게 산다면 사탄은 여러분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사랑의 담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영광에 취하여 아들 므낫세가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 그의 신앙이 어떤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에게 온전한 믿음을 배우지 못한 므낫세는 은혜의 담을 헐어서 백성들이 뱀에게 고통을 당하게 하였으며 돌들을 떠내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므낫세는 나무를 쪼개어 보호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정책을 펼쳤고 아버지 히스기야가 부순 산당을 다시 세웠고 이방사람들의 가증하고 음란한 행위를 받아들여 남유다를 문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선조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철저히 악한 인간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셨고 그곳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그 사명을 소홀히 하였을 때 사탄 즉 뱀이 들어와 사람이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였고 영원한 사망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명을 가볍게 생각할 때 뱀은 쉽게 여러분에게 접근할 것이며, 그 강한 독으로 여러분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세워 둔 지계석[땅의 경계를 가리키는 돌]을 세운다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우리를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이며 강도라고 하셨는데, 뱀은 담으로 넘어 들어가 사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은 담을 튼튼히 세우고 문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메꾸면서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성령의 울타리 안에 있다면 뱀이 들어올 구멍이 없기 때문에 물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과일 나무를 쪼개어 양식의 부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십자가를 쪼개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지만 예수님을 매달고 있는 그 나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수많은 나무 중에 오직 하나의 나무가 선택되어 십자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나무는 자라면서 성전의 기둥이 되어 금으로 덮였던 백향목처럼 되기를 기대했겠지만 사형수를 매다는 십자가로 만들어졌습니다. 더구나 다른 나무는 행악 자만 달고 있으면 되는데, 자기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의 핍박을 받아야 했고, 예수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함께 봐야 했으므로 삼중고를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 나무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해 달라고 부탁하고 계십니다. 죄 사함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은 그 나무처럼 충성해 달라고 부탁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헌신이며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0장 10절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철 연장의 날이 무디면 나무를 절대로 넘어뜨릴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은 지혜의 날을 날카롭게 갈고 있어야 사탄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연장의 날은 하나님과 성도뿐만 아니라 사탄도 열심히 날을 갈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불평과 불만과 유혹과 욕심으로 게으르다면 악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잘라낼 수 없을 뿐더러 결국 뿌리가 말라서 죽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열심히 날을 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사탄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믿음의 날을 갈아 교만과 욕심이 자라지 못하도록 잘라내야 하며 더 굵은 아름드리가 되어야 합니다. 굵은 아름드리는 사탄의 공격을 받아도 상처는 남겠지만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는 믿음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영광의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함정을 파는 미련한 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함정을 메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담을 허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담을 더욱 튼튼히 세워 생명을 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만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성도는 비둘기처럼 순전하며 뱀처럼 지혜롭기 때문에 세상에서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서 떠나는 모든 자들이 우매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받은 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신했던 악한 자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함정을 메꾸었고 헐어버린 담을 다시 쌓았으며 백성들의 양식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었던 솔로몬처럼 함정을 파고 담을 헐며 나무를 찍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안에서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삶을 살아내면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강한 팔로 품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 되신 그리스도의 곁에서 언제나 자신을 비춰보며 진리의 길을 가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 바랍니다.

물 위에 던진 떡 · 스스로 담을 허는 어리석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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