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13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가 15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세상은 악이 선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선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지만, 악은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뜻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악한 자들이 생명을 해치는 곳에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말씀대로 선하게 사는 것보다는 죄를 짓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그 죄를 회개하도록 돕고 진리안에 바로 세우는 것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영원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이 상식과 도덕적인 기준이 조금씩 변질되자 이제는 더 이상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에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지자 인간성에 기초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해도 책망하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인격의 주체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만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비정상적인 교육 정책을 통해 선생님들의 입지가 사라졌습니다. 선생님들의 권위가 사라지자 선생님들은 책임감과 확신을 가지고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협력보다는 다툼을 보여주고 있고 유명인들의 타락한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죄가 되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요하면 면죄부를 받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기 때문에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만 지혜와 지식과 도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예의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녀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면서 부모들 역시 타락한 세상에 무디어졌기 때문에 올바른 것을 가르치거나 책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 죄가 심판의 조건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진리안에서 판단하지 않고 그래도 타락한 세상보다는 내 자녀가 낫다는 생각으로 변명해 주기 때문에 선한 길로 인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리대로 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질 된 세상에 빗대어 이 정도면 우리 아이는 괜찮다거나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곧 그 부모안에 말씀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할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법이 무너졌기 때문에 세상의 법이 무너진 것이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온전한 법을 세우고 말씀의 반석위에 서야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백성에게 한줄기의 선한 빛을 비추시며 사탄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금도 보호하고 계시기에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직이나 도덕을 버린 권모술수가 난무할지라도 선한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자가 곳곳에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균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선한 지혜를 알려주어도 악한 세상은 듣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선한 지혜자를 사용하셔서 영혼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들 역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셨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선하신 역사를 사탄도 알고 있기에 방해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지혜자로 하여금 힘있는 세상의 왕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선한 지혜자라면 하나님의 이런 역사하심을 알고 하나님앞에서 어떤 자랑도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자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 마지막에는 선한 지혜자가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솔로몬이 말하고 있는 가난한 지혜자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윗과 골리앗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라 간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우왕좌왕하며 흥분한 상태가 됩니다. 더구나 작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흉벽을 쌓고, 전쟁을 선포한다면 작은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큰 임금이 작은 성읍을 공격하는 이런 전쟁은 싸울 것도 없이 수가 적은 쪽이 패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지금 군사력이 약한 이스라엘과 강한 블레셋 군대는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40여일 동안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을 모욕했지만 이스라엘 군사 중 누구도 그를 상대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은 나와 일대일로 싸워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될 것이고, 만약 너희가 지면 너희는 우리의 종이 되라고 위협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창과 갑옷은 3미터 되는 거인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으므로, 골리앗의 키를 3미터로 보고 있는데 그런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울 왕조차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던 그 때 어린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왔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비록 어린 다윗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지킬 수 있는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자기가 나가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보며 형들은 자신들도 나설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어린 다윗이 자원하자 교만하다며 책망하였습니다.
형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적도 없으면서 이제 다윗이 믿음으로 행하려 하자 막으려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탓인데 이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는 골리앗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25절에 보면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많은 재물을 상으로 주고 자기 사위로 삼을 것이며, 골리앗을 죽인 자의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 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다윗이 왜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생각을 읽고 그가 어떤 관점에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올바른 판단을 한다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진리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주는 상을 받으려고 골리앗에게 간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자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통해 이 상황을 본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사람이 주는 상을 받기 위해서 골리앗과 싸운다면 그 싸움은 이겨도 성도로서 진 싸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기로 각오했다면 그것은 다윗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행위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결단해도 막상 문제를 만나면 몸에 익힌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사람들의 전쟁을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믿음의 전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골리앗과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상대가 아무리 큰 임금이라 할지라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을 행위로 드러냈을 때 세상의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진정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거대한 블레셋 장수를 목동이 무슨 힘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다윗은 평상시 아비의 양을 지킬 때 꾀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을 해치려고 하면 짐승의 수염을 잡고 싸웠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양의 생명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기에 골리앗이 그저 하나님을 모르는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기골이 장대한 장수가 아니라 곰이나 사자처럼 짐승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미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삶의 경험들은 다윗처럼 반드시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기 때문에 매 순간 충실하게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만약 짐승들이 와서 양을 물어갈 때 다윗이 두려워서 대적하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골리앗을 상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짐승들의 입에서 양떼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임재를 알기 때문에 골리앗을 상대로 기꺼이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골리앗을 보면 두려웠겠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자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이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훈련을 받으면서도 훈련인지 모르고 축복의 기회가 와도 기회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훈련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말씀으로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경험이 곧 용기이며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처럼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삶을 살아내야 하며 그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할 때 내가 모욕 받는 것처럼 아파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군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분열되고 있는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세상의 조롱을 받을 때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처럼 타락하는 것을 보면서 애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도와 주실 것을 믿었기에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은 너무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작은 소년이 자기에게 걸어 나오자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났을 것입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무기 없이 나오자,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고 하면서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자기 신이 하나님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을 핍박하고 함부로 대해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 때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름으로 네게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실 것이니, 이 사건을 통해서 온 땅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전쟁과 구원은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응수하였습니다. 다윗의 말대로 골리앗은 무너졌고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이런 담대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삶을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상대보다 자기가 더 많이 가지면 이겼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비록 세상에 속하더라도 수가 많은 쪽에 서려고 하고,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다윗은 산상수훈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한 것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애통하는 자처럼 생명을 사랑했으며, 온유한 자처럼 자신의 것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은혜를 사모했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청결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처럼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와는 의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보고 사는 다윗을 형들은 욕하고 핍박했지만 다윗은 오직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조롱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의 용기를 냈습니다. 이런 다윗이 바로 작은 성읍을 지키던 가난한 지혜자입니다.
전도서 9장 15절 말씀에 가난한 지혜자가 성읍을 건졌지만 그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처럼 골리앗을 이긴 어린 다윗은 사람들에게 잊혀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만 감사할 뿐 그 감사를 이어가지 않기 때문에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당연시 되는 것을 보면서 훗날 그들이 후회할 것을 알기에 진리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지혜를 넘치게 가졌다고 해도 세상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합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위험에 처한 성읍을 구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지혜자의 말을 듣고 승리를 거둔 왕을 칭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가난한 지혜자가 하는 말을 듣고 그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승리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사람들이 바로 가난한 지혜자입니다. 만약 지혜자가 한 나라의 왕이었거나 갑부였다면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해서 시간을 내고 돈도 아낌없이 주었을 것입니다. 지혜자의 말을 잊기는 커녕 명언이라며 기억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지혜자의 말을 들으려고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의 말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부자들은 돈을 한 자루씩 들고 회당에 가서 헌금 했지만 예수님께서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먹으며 진리를 전하고 계시는데도 그들은 조금도 보살펴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외면하면서도 그 말씀으로 복을 받으려는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지금 진리를 전하고 계신 예수님은 외모는 초라하지만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이며, 모사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의 뜻안에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므로 언제나 깊이 있고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자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어렸을 때부터 봤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볼 뿐 구세주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치 않고 오직 말씀만 전하셨습니다. 복음이 그들의 심령에 선포되자 죄가 드러났지만 찔림을 받은 그들은 회개하기는 커녕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를 하였습니다.
말씀에 찔림을 받았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복이지만 악한 영에 사로잡힌 그들은 말씀안에서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지금도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사람들에게 조롱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전에는 권면하던 지혜자들이 신하와 가난한 백성이라는 이유로 의견을 무시했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던 것을 떠 올렸습니다.
자기가 잘못된 길을 갈 때마다 가난한 지혜자들은 하늘의 지혜를 알려 주었지만, 감히 왕인 자신에게 충고하는 그들에게 분노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와 경험이 상대보다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면, 그 말씀이 진리와 지혜라 할지라도 자신의 의를 내세우며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이 가진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혜로운 자들 때문에 균형 있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사탄을 아버지로 남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성도를 볼 때 아버지 없는 고아로, 남편 없는 과부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가 열심히 진리를 전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우매함을 깨닫고 나자 너무나 많은 지혜자들이 자기 곁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곁에 있는 지혜자의 말을 듣고 살아내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재물과 재능은 하나님의 지혜와 역사하심을 결코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사람이 있거든 그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어른이든 청년이든 순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육의 눈으로 볼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세상으로 나가 가난한 지혜자가 되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높여주든 높여주지 않든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여러분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지혜를 전하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여러분을 칭찬하실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지막 종착역은 천국이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를 보면서 흔들리지 말고 감정에 휘둘리지 말며 욕심 앞에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믿음으로 살아낸 그 경험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용기이며 강력한 무기이므로 영원한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영혼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