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들
10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1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12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13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4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15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7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18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솔로몬이 말하길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 평생 땅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가지고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탐심은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과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후회하더라도 나도 솔로몬처럼 그런 영화를 누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물론 솔로몬처럼 잘 사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앞선 믿음의 사람들의 권면과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훨씬 다양하고 알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살게 되면 처음에는 겸손하겠다는 다짐도 하고 노력도 하지만 재물과 권력은 사람을 탐욕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됩니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무엇을 깨달았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솔로몬의 마음을 한번이라도 들여다보는 지혜가 있다면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습니다. 권면을 들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권면하는 사람과 지금까지 쌓아 놓은 관계를 바탕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충고를 듣는 사람이 권면을 받아들이고 성장했을 때 권면해 준 사람에게 돌아갈 이득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상대방의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성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생각하기를 자기는 누릴 것을 다 누려 놓고 우리에게 그런 삶이 헛되다고 말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면하는 사람이 얻을 것이 없는데도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다해서 권면한다면 그 마음은 사랑이므로 관계를 해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는 전제하에 권면을 듣는다면 서로 좋은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금덩이를 버린 형제에 대한 동화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옛날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무척 사랑했고 동생은 형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길을 떠났는데 가는 도중에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속에서 무엇인가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는 급히 내려가서 주워온 것은 금덩이 두 개였습니다. 형제는 의좋게 하나씩 나누어 갖고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강에 도착해서 나룻배를 탔는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동생이 갑자기 금덩이를 꺼내더니 강물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형은 깜짝 놀라서 그 아까운 것을 왜 물속에 버리느냐고 묻자 동생이 대답하길 저는 평소에 형님을 존경하고 따랐는데 금덩이를 하나씩 나누어 갖고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금덩이는 내가 발견했기 때문에 두개 모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형님이 미워지는 자신을 보면서 더 이상 금을 가지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동생의 말을 들은 형님도 금덩이를 강물에 던지며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고 고백 하였습니다. 금 때문에 형제가 멀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처럼 금이 없는 삶이 좋았다는 생각에 과감히 버린 것입니다. 이 형제처럼 자신의 마음이 죄라는 것을 알고 불씨를 없애 버린다면 천만 다행이지만 탐심에 넘어졌다면 아주 슬픈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보면 거의 이기적인 마음과 돈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동업을 시작했다고 해도 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욕심과 오해가 생기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신뢰하거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감정대로 행동한다면 아무리 돈독한 사이라 할지라도 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실망하면 이 사람이 언젠가는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편히 대하지 못하고 마음을 열 수 없습니다.
신뢰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는 신뢰를 깬 사람이 하나님안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끝까지 진심을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만 믿음안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전보다 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자신을 비춰봐야 합니다.
탐심을 가졌다는 것은 사탄이 개입했다는 증거이므로 움켜쥔 손을 펴서 나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이든, 지식이든, 능력이든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행동이므로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자신이 가진 영적 능력을 나누어 주고 상대방에게 물질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흩어 구제함으로 부요케 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마음을 베푼다면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삶이 축복받은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사람들과 피조물은 모두 저주를 받았으므로 죄를 탕감 받지 못한 사람이 죄인인 것처럼 세상의 재물과 권력은 모두 불의한 재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주 받은 세상에서 얻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얻은 불의한 재물을 믿음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곳과 이웃을 돕는 곳에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도들이 영혼 구원을 위해서 불의한 재물을 사용한다면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영적 열매는 결국 세상의 것으로 헌신해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2장 16-17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구절은 오늘 본문을 함축해 놓은 말씀 같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이 불의하다는 뜻이므로 모든 피조물이 악하기 보다는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이라는 뜻이므로 성도들이 구원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용하여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금덩이를 버린 형제처럼 두 사람의 관계를 해치는 욕심의 근원을 없애 버린다면 형제의 의를 상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은 아주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형제는 금덩이를 줍는 행운을 누렸지만 그것이 서운함으로 시작하여 살인까지 유발시킨다는 것을 깨닫자 화의 근원인 금덩이를 버림으로써 다시 관계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동화를 통해 금덩이가 문제가 아니라 금덩이 때문에 변하는 인간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만 없었다면 혹은 동생만 없었다면 금덩이 두 개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깐 할 수 있겠지만 육신의 정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5-16절
15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 즉 그가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사람이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다가 평생 수고해서 얻은 재물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폐단이라고 하였습니다. 수고해서 얻은 재물을 사후세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많이 가질수록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해도 육신을 벗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주머니가 없는 수의를 입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내 것처럼 사용했던 육신도 재물도 모두 다 놓고 영혼만 하나님께 가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사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원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 바랍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그리스도가 없으면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사는 동안 반드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사후에 “네 안에 그리스도가 있느냐”고 묻는 하나님의 질문에 답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헛되고 헛되다는 이 인생을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구원이므로 세상에서 얻은 불의한 재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나누지 못하고 살았는데 육신을 벗고 보니 자신이 선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래서 천국의 열쇠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한 것처럼 형제는 처음부터 금없이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금을 갖기 전에는 가난해도 서로의 마음을 살펴주었고 작은 것을 나누어도 아깝지 않았으며 견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형제가 금을 갖게 되자 탐욕에 빠지게 되었고 그토록 사랑했던 형과 아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살인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주는 욕심과 탐욕과 미움과 원망은 살인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재해야 하는 심령을 육체의 정욕으로 채우면 그 때부터는 눈과 귀가 가려져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형과 아우의 관계를 끊어 버리라고 속삭이는 사탄의 말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긴 세월 동안 사랑을 나누었던 형제지만 욕심이 생기면 그 감사했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자기의 생각만 듣게 됩니다. 사랑을 받고 베풀었던 수많은 시간을 버리고 당장 자신의 불편한 마음과 감정만 생각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길 동무가 되어 주었던 형제가 깊은 사랑을 버리고 손에 쥐고 있는 금덩이만 보았다면 그 관계는 여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며 믿음의 관계를 끊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육의 정욕을 이겨내야 합니다. 육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사탄의 술수에 속아 보여주는 것과 들려주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성도들은 작은 것이라도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나누어 주는 것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탄의 꾀임에 빠져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아담에게도 준 하와처럼 악한 마음은 전염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사탄의 속삭임을 받아들이면 화인 맞은 심령이 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어기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과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면 영원한 사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을 가인이 보았다면 동생을 죽일 것이 아니라 아벨을 따라 거룩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아벨이 사랑을 더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동생을 죽인 것처럼, 형과 동생은 어쩌면 형제를 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는 금보다는 형과 아우를 선택했기 때문에 둘 다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죄를 이겨 달라는 부탁입니다. 여러분, 악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선보다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씀대로 사는 성도에게는 선이 훨씬 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안에 있으면 사탄이 주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믿음의 형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온갖 이생의 자랑은 모두 사탄이 주는 선악과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주는 죄를 마음에 둥지 틀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탄의 목적은 결국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단호하게 결단해야만 자신의 생명과 형제들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11절에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그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이 편하게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과 책임에 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 중 한 명이 두개의 금덩이를 혼자 갖게 되면 큰 집과 그 집을 관리해줄 사람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의 안부를 묻던 형제의 아름다운 사랑은 사라지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임금을 주기 위해서 밤낮으로 바쁘게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한 것은 세상 일이 바빠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기에게 남은 것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밤낮 바쁘게 살았던 헛된 인생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급여를 받는 노동자는 주어진 돈 안에서 먹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며 편안하게 잠을 자며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잠을 설치며 수고할 뿐,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평안하지 못했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기에 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능력과 재물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살린다면 그것보다 좋은 인생은 없습니다. 솔로몬이 말하고 싶은 것은 돈과 권력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구원이 빠져 있으므로 후회하는 인생이 될 것이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7절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므로 늘 근심속에 살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 자체가 고난이지만 주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 짐을 자신이 지지 않고 그리스도께 맡기므로 평안을 누리며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으며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심령의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심령의 낙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워 늘 불안하지만 성도들은 언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으므로 매 순간마다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는 큰 영화를 누릴 수 있음에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
4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교회를 평생 다니고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불쌍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들었고 죄를 대속해 주신 것도 들었으며 재림하신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천국 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던 사람이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의지한다면 이런 사람은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사탄의 속삭임에 속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조롱하고 믿음의 사람들의 구원을 훼방한다면 그 죄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문제마다 응답을 받았기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변해서 짓는 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몰라서 지었던 죄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겠다는 맹세도 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자신의 경험했던 그 은혜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세상에서 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한다면 성령을 훼방한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에 진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이런 죄를 짓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밖에 없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께 응답 받았을 때는 감사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돌이켜 불평하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구원을 방해하는 행동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이런 행동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믿음을 가진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직 받지 않는 응답을 받은 것으로 믿는다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받은 응답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조롱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받게 될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때를 정하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렸을 때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고난은 뿌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태풍과 같이 힘겹지만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은 힘겨운 시련이 온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능히 이겨내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