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나가기
16장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지혜자

전도서 8장 9-17절

9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16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17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성도들은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을 보면서 공의의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시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잘 산다는 이론이나 논리가 세상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서 기도했고, 다윗 역시 악한 자가 선한 자를 핍박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세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솔로몬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최종적으로 악인은 잘 되지 못하고 장수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만약 악인들이 죽을 때까지 잘 산다고 해도 그들이 누린 날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복은 세상사람들이 원하는 복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악인들은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죄를 짓는데 더 담대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즉시 심판하신다면 두려워서라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악인들은 죄를 지어도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놓고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스스로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인내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모르는 악인들은 무지와 욕심에 따라 죄를 짓다가 결국 영생을 받지 못하고 지옥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 세상에서 더 오래 산다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결국 죽음이라는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몸이 늙어서 활동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기 때문에 어쩌면 인생의 무상함과 무력함 때문에 사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100세를 살았다고 해도 장수의 복을 누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죽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곳이며 사후에는 시간이 없는 영원한 세계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것이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제가 전도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기독교가 편협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왜 죄인이며 내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에 간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것이 편협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된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은 인간의 이해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전해 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불신앙을 설득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고난을 받는 의인도 있고 평안을 누리는 악인도 있습니다.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도 있고,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인생은 사람이 결정짓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흡이 멈추는 순간 그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에 무엇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어떤 세계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후손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에서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생과 영벌은 모두 시간이 없는 영원이기 때문에 생존세계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정하신 법이기 때문에 육신을 벗는 순간 그의 혼은 이미 천국이나 지옥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장수의 복은 성도가 세상에서는 부활한 자로, 사후에는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이어서 사는 것이 장수의 복입니다. 그런 영원한 복을 받아 누릴 성도가 감사하지 못하고 세상의 풍요로움을 갈망한다면 불행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두가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전도서를 봐야만 솔로몬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왕의 절대적인 권력으로 사람들을 괴롭혔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바로 징벌을 내리시지 않았고 그 역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지 않기에 인생을 즐기며 더욱 담대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만약 죄를 지을 때마다 책망하셨다면 쉽게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두려운 마음을 가질 때 악행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을 말씀 드리자면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말씀으로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세월이 있었습니다. 고난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든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으면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감사하지 못할 때나, 불평이 생기면 여지없이 아이들이 다쳐서 들어오거나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는데도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했는데 제가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일이 생긴다는 것을 우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남편을 힘겨워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인내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너를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네가 하는 말을 들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으니까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후에는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에 다툼은 있는 법입니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면서 남편과 신앙적인 의견이 달랐기 때문에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생각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 제가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저의 손에 들려 있던 사기그릇이 쨍 소리를 내며, 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정확하게 반이 잘려나가 반은 제 손에, 반은 씽크대 위로 떨어졌습니다.

처음부터 그릇에 금이 가 있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방법으로 그릇을 자르셨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국을 담았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금이 갔던 그릇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분명 쨍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으로 듣고 크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훈련이 어떤 훈련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실 때까지 내 생각을 버리고 인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신앙의 문제는 다툰다고 해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얼마나 헛된 일인지 인내해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잠잠히 인내하고 있어야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인내하라고 하신 말씀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저를 성장시키기 위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잘못할 때마다 아이들이 다치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절대로 죄를 짓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는 즉시 징계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의인을 괴롭히고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는데도 장수하며 풍요를 누리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악인들의 장수가 복이 아니고, 풍요가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은 100세이지만 천국에서 사는 것은 영원한 것이므로 세상에서 오래사는 것이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나라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면 악인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천국보다는 세상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8장 14절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이없는 일중에 악인들이 받아야 하는 벌을 의인이 대신 받는 것처럼 보이고 의인들이 받아야 하는 상을 악인들이 대신 받아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권선징악이 세상에는 없는 것처럼 악한 자들이 풍요한 삶을 살고 착한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합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 거짓없이 노력하고 밤잠을 설치며 일을 하는데도 안타깝게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반면에 잔인할 정도로 악하고 거짓되며 나눌 줄 모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데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불의와 불공평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는 충분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악한 영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육신을 벗고 영원한 세계를 보는 순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에서의 삶이 영생을 받는 관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 헛되고 헛된 세상의 삶이 왜 필요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이 당장은 좋게 보이겠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믿음없이 살았던 그 시간들이 심판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영육간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나서야 자신을 높였던 그 시간들이 하나님께 큰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처럼 마지막에 회개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회개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사후에 받을 심판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할 고통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을 때 심판을 받는 것이 정해진 사실이라면 세상에서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정해진 사후세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경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법으로 정하셨다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구원이며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영웅이 죽었을 때 통곡하며 큰 아쉬움을 표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웅은 점점 잊혀지게 됩니다.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영웅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잊히면서 역사가 만들어지므로 우리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삶의 목적 그리고 죽음 후에 맞이할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영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유를 안다면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헛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핍박을 받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핍박하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모든 체제를 바꿀 것이므로 말씀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영에게 유혹을 당할 수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훗날 반드시 후회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성을 거스르는 선한 마음보다는 마음껏 죄를 짓고 쾌락을 즐기는 세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도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늙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은혜를 쏟아버린 자신을 발견했고, 진리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후회하는 마음으로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는지 후회스러웠습니다. 세상을 쫓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다 보니 그 때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죄로 흘려보냈던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라도 회개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회개하는 아픔은 고난이 아니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왕으로 군림했지만 이런 죄인을 의인의 반열에 세워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처럼 마지막에 돌이킨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이런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70-71절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있었던 가룟 유다는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았던 믿음이 좋은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랐지만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자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특별한 복을 받았지만 말씀을 머리로만 알 뿐 그의 심령이 변화되지 않았기에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변화되지 않았고 언제나 말씀을 판단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을 보고도 마귀의 뜻을 따랐습니다. 어쩌면 그는 교만했기에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생각을 했으므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가룟유다를 본 마귀는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더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재정을 맡았던 그가 향유를 드리는 여인을 책망한 것은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불평한 것이 아니라 향유를 팔아서 그 돈의 일부를 횡령하려는 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가룟유다를 서서히 예수님과 멀어지게 만들었고 사탄에게 순종하는 가룟유다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 넘길 생각을 넣었다고 하였고 누가복음 22장 3절에 열둘 가운데 하나인 가룟인이라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분별을 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도구가 되어 솔로몬처럼 평생 자신을 위해서 살기도 하고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엄청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건 어느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이킬 기회는 숨을 쉬고 있는 지금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돌이킬 기회가 없습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께서 인내하실 때 그림자와 같은 세상에 마음을 주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8장 16절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궁을 짓는데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가 성전을 지은 왕이라고 칭송했고 강한 나라를 통치한 왕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개인은 나라를 더 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밤잠을 설쳐야 했고, 왕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로부터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늘 초조했습니다. 남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아내 천 명과 결혼했으며, 왕으로서 엄청난 재물을 소유했던 솔로몬은 밤잠을 설칠 정도로 외로웠고 두려웠으며 허탈했습니다.

권세자는 뛰어난 업적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한걸음 노력해야 하므로 늘 외롭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공격적인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권력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주위에 사람들을 믿지 못하므로 혼자 인내하다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장래일을 알 수 없으므로 미래에 필요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매일을 열심히 살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전과 궁을 짓고 나자 그제야 지쳐 있는 백성들이 보였습니다. 화려한 궁에 살면서 재물과 권세와 쾌락을 즐겼지만 그의 안에서는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왕의 권세를 가지고도 영적으로 말라가는 자신을 보면서 솔로몬은 하나님만 인간을 충만케 하실 수 있으며, 참 기쁨과 감동으로 행복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로몬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도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것을 보면 지혜가 무조건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을 올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고 늘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처럼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연약한지 알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 위에 던진 떡 ·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지혜자
70% · 16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