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던진 떡 — 전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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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

전도서 2장 18-26절

18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희생을 선택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물론 의무이기도 하지만 자녀들이 잘 성장하는 것을 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없이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감사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희생을 알아주고 감사하며 섬길 때 그 헌신은 빛이 나는 것이며 올바로 성장한 자녀는 부모의 기쁨이 됩니다. 부모의 희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는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아무 조건없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그 은혜를 성도들이 잊지 않고 감사한다면 아들을 잃은 아픔을 알아주는 성도들을 더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인간이 창조주에게 만족을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성도에게 많은 능력과 지혜를 넘치도록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주는 자녀에게 아끼지 않고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한 예로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는 자녀가 잘 성장해서 이 사업을 물려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키운 사업을 물려줘야 하는데 만약 내 자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버지는 늘 마음이 불안할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하지만 부모는 언제나 자녀를 먼저 생각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준비되지 않은 자녀들은 재산을 물려 받고 나서 사업을 확장 시키기 보다는 분열되거나 실패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올바로 성장하지 못한 자녀가 평생을 바친 사업을 무너뜨리는 것을 본다면 아버지는 그동안의 수고가 너무나 헛되고 허무하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처럼 왔다 가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자녀의 역량에 따라 흔들리기 보다는 하나님처럼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사도 바울처럼 율법에 매인 사람일지라도 고난을 통해 자녀로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길을 개척하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면 부모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 것이며 경험을 통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이겨낸 자녀들은 일이 잘 될수록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며 세상을 넓게 보면서 세밀하게 분석하는 지혜를 가지고 차별화 된 기술을 구상하면서 자신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게 될 것입니다. 세상 일이 잘 될수록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큰 울타리와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녀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배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자신의 공로를 끼워 넣으려고 했던 가인과 아간과 같은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들이 지은 죄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무수히 발생하므로 끝없는 인간의 악한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사탄의 계략에 빠지면 일평생 수고해도 영원한 안식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성공했더라도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없어서 늘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무엘상 20장 31절에 보면 사울 왕은 아들 요나단에게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나라가 절대로 네 것이 될 수 없으니까 반드시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을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죽임을 당해야 할 어떤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윗보다 하나님께 먼저 부름을 받은 사울인데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자 의로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죄입니다. 이것은 소유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죄입니다. 내 자녀가 자신의 권력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자 생명을 경시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처럼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왕으로 세워 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소원대로 사울을 초대 왕으로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사울이 만약 보잘것없는 자신을 일방적으로 왕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욕심은 죄를 부르고 죄는 사망을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는 사람과 하나님없이 자기만 보는 사람의 차이는 사후에 드러나는데 그것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을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적으로 보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절대로 다윗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지만 욕심에 사로잡히자 다윗을 원수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곁에 두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쉽게 버리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다윗이 백성의 인정을 더 받았기 때문에 왕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꾀를 냈는데 딸 미갈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다윗은 블레셋 진영으로 용감하게 들어가서 적들을 죽이고 양피 이백을 가져다 사울에게 주었습니다. 생명과 세상의 전쟁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다윗은 사울이 죽이고 싶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혈기를 잠재우지 못하면 결국 살인하거나 다투기 때문에 서운함과 분함과 근심은 모두 십자가 아래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욕심과 근심과 혈기는 판단을 흐리게 하므로 자신과 상대를 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했다면 자신의 권력을 반드시 아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욕심과 질투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자 자기 아들만 보였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아무리 다윗을 미워해도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 부어 세운 왕이라고 믿었기에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이런 아들을 본 사울은 자기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다윗을 생각 없이 돕고 있는 요나단이 답답했습니다.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요나단은 자연스럽게 왕의 자리를 계승 할 수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는 아들 때문에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서 불안했습니다. 분노가 사울 왕을 집어삼키자 그는 결국 사랑하는 아들 요나단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사탄에게 붙들리면 아들도 결국 그 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다윗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아들이 한심해서 그를 죽이려는 사울과 죄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단 하나님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욕심을 부린다고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와 내 자녀 만큼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는 항상 어둡고 답답하고 불안하게 살 것이므로 지옥과 같은 삶을 삽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되 사울처럼 하나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움켜쥐려 한다면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솔로몬도 이스라엘이 자기 소유라고 생각했으므로 아들 르호보암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아들이 아버지의 공력을 높이 세울 지혜자인지 아니면 우매자라서 아버지의 공력을 무너뜨릴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염려대로 르호보암은 지혜가 없는 우매자였기 때문에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분열시키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불안한 것은 없는데 르호보암을 믿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워서 솔로몬은 더욱 인생이 헛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물려줘도 자녀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한순간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권력과 재물이기 때문에 아들 르호보암을 본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이미 짐작했을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2절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사람이 살면서 하는 모든 수고와 애간장이 녹듯 아파하며 지냈던 그 시간들이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솔로몬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결국 사람은 죽음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 모든 시간들이 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누렸지만 그 모든 것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살면서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말을 알고 그 때를 준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가 이제 조금 안정이 되었는데 몸은 늙고 병들어서 머지않아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면 지금까지의 노고가 헛되게 느껴질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렸는지 어이없는 웃음이 나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며 살았는지 허탈하기도 합니다. 물론 희생한 보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희생한 만큼 보람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솔로몬처럼 모든 영화를 누린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서서 자기 것처럼 사용했던 세상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욱 허무할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유와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한 가지 예로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원서를 넣고 그 결과를 알기까지 부모들은 마음을 졸이며 근심합니다. 합격과 불합격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간이 녹는 것처럼 초조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잠시 뿐이고 부모는 또 다시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자녀 역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또 밤잠을 설치면서 공부해야 하고 또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인생은 고난의 연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상 밖으로 모순된 점이 있는데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므로 이것도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다.

청년들이 이 설교를 들으면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솔로몬이 헛되다고 하는 것은 인생의 끝에 서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이므로 지금은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된 솔로몬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이 텅빈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어느 날 재물도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평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소유가 적은 사람들을 무시하며 함부로 대했지만 그들은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평안했습니다. 그들의 평안과 기쁨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평안하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자기는 쾌락과 정욕을 위해서 먹고 마셨지만 그들은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먹고 마시며 보람 있게 사는 것을 보면서 그런 인생이 큰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복의 기준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안에서 심령의 낙을 누리며 살고 있느냐 아니면 인간의 본능대로 근심하며 살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보다 훨씬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을 보면서 솔로몬은 도리어 자신이 가진 큰 힘이 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부러워하는 자신의 인생이 헛되다고 한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6절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 잡는 것이로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는 것도 헛되고 악한 자들이 평생 모은 재물을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 역시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는 은혜와 물질의 복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죽음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악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선한 사람에게 주셨다고 해도 솔로몬처럼 은혜를 자기 것으로 삼아 타락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지만 받은 사람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기 때문에 많이 받았다고 교만할 것도 적게 받았다고 주눅들 것도 없습니다. 재물을 산처럼 쌓아 놓고 산다 해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사후에 어둠이 지배하는 곳에 떨어지므로 공허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재물보다 사후에 만날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 믿음으로 결단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는 동안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헛되 보이는 세월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생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 솔로몬의 이런 생각들이 황당할 수 있지만 진리를 알면 깊이 이해가 됩니다. 솔로몬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처럼 산 인생은 사후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록한 아가, 잠언, 전도서를 보면 그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는 믿음을 지키려는 자에게 생명나무가 된다는 것을 보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선한 사람으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셨던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빼앗지 않았고 그로 하여금 지혜의 책을 남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 것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후손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가진 지혜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가 남긴 말씀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였는데 그런 지혜를 가진 솔로몬이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선과 악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끝까지 자신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물이 재물이나 성공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믿음으로 받은 구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에 욕심과 정욕이 없는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솔로몬은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국력을 신장시켰지만 자신만을 사랑하는 독선과 오만으로 많은 천적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신실한 믿음을 보고 자란 자신과 달리 세상을 즐긴 솔로몬의 믿음을 보고 자란 르호보암은 지혜롭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쾌락을 쫓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삶이 무엇인지 몰랐으므로 결국 나라를 분열시키고 말았습니다. 술을 먹는 아버지처럼 술을 먹었고 쾌락을 즐기는 아버지처럼 쾌락을 즐겼으며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처럼 백성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 결과 위대했던 솔로몬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고 그가 누렸던 부귀영화는 들의 백합화만도 못한 영광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를 보시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들에 핀 백합화는 죽으면서 씨앗을 남기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매년 똑같은 꽃을 피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람이 누렸던 영화는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고 다시는 되돌릴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이 이렇게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하게 살았던 그들이 누리는 평안과 안식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므로 솔로몬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후회하던 솔로몬의 후회가 여러분의 후회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 솔로몬이 믿음안에서 가난하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이 지금 섬기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부귀영화라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사후에 가는 세상은 지금 우리의 믿음으로 결정되므로 기회가 있을 때 여러분은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네 인생을 정리하고 나에게 오라고 하실까 봐 두려워서 머뭇거리는 삶을 살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겠다는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도 평안과 안식을 누리면서 항상 준비된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보호하심은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사는 동안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이 더 많은 시간을 그리스도를 섬기지 못한 것을 후회 했던 그 회개를 기억하면서 하루하루 믿음으로 지혜롭게 살기 바랍니다.

물 위에 던진 떡 ·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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