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와 우매자
12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5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6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가 되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의 역사를 감당하신 것을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일러준 곳에 가서 제단을 쌓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의 등에 지워주고 모리아 땅으로 향했습니다. 제단에 도착하여 이삭을 결박하여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급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인간의 깊은 고뇌와 갈등을 믿음으로 뛰어 넘은, 아브라함의 진실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네가 사랑하는 너의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의 견고한 믿음을 위해서 이런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명령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뛰어 넘는 순종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는 아들을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삭의 생명을 거두실 생각이 없었고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불순종하였더라도 이삭을 죽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순종한 사람에게는 그 응답이 생명을 살리는 축복이 되고 불순종한 사람에게는 그 응답이 저주가 될 뿐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물을 줄 것이니 네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놓으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든 불순종 하든 물을 주십니다. 그릇을 닦지 않은 사람에게도 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죄를 사해 주시는 은혜와 서원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순종한 사람은 생명을 살리는 물을 마실 것이고, 불순종한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순종한 사람은 그 은혜가 축복이 되지만 불순종한 사람은 그 은혜가 도리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에 좋은 결말을 얻었지만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이삭을 대신해서 죽어 줄 숫양을 미리 준비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사건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십자가를 지고 죄를 사해 주셨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미리 다 준비해 주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순종은 미리 준비해 두신 그 은혜를 누리는데 사용되는 것이고, 불순종은 그 은혜를 도리어 저주로 받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도 분명 갈등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기뻐하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수없이 생각하고 망설였겠지만 그는 지혜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 우선이므로 일단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신 것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온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의 것인데 더 이상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드리는 적은 물질과 생명과 헌신에 관심을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감사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당연히 복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보다는 대가를 바라는 교만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인데, 보혈을 통해 죄를 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만을 버려야만 아무 공로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사탄의 꾀임에 빠진 우매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계획을 세웠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 가룟 유다를 통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서 죽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성공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간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창조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얄팍한 술수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담으로 인한 원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성육신 하신 것은 아주 중요하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가 필요했기에 육신을 입고 오셔야 화목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을 입은 사람이었다고 조롱하는 말에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사탄과 그의 영향을 받은 우매자들은 광대한 빛을 어둠으로 가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사탄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위대함을 아는 지혜자는 죄된 자신이 그 영광을 가릴까봐 자신을 더 낮추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증인도 없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내신 위대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자입니다.
사탄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부활과 재림으로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의 완성이었습니다. 사탄과 세상은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성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면 신앙이 무너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자가 되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9-23절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부자는 재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날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롭게 즐기며 잔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이며 고운 베옷은 회개를 뜻하는 것이므로 부자는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외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자들의 교만을 책망하시는 뜻으로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할 것이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막12;39-40]
부자는 왕처럼 호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불우한 이웃에게는 인색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는 믿음이 없는 우매자였습니다. 쾌락을 즐기며 흥청거리던 부자의 대문 앞에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토록 가난했던 나사로가 사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믿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졌지만 잘 살던 부자와 참 된 믿음을 가졌음에도 음식을 구걸해야 했던 나사로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가 번 재물로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마지막 날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물질을 맡기신 것은 곁에 있는 형제를 구제 하라는 명령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자가 어리석은 우매자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판단할 수 있지만 실은 그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교회에서는 회개하고 헌신하며 거룩한 믿음을 보여주지만 세상에 나가면 마음대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믿음 있는 척한다면 사람은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눈동자처럼 보고 계시기 때문에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속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을 다 얻은 왕처럼 살았지만 자신의 영혼은 영원한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도 가난할 수 있고 병들 수도 있으며 멸시와 무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둠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목적이므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16절에 어리고 어리석은 왕이 통치하는 세상에 산다면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축적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대신들이 통치한다면 성도들은 생명과 재물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와 찬양을 방해하지 않는 위정자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하며 교회가 핍박 받지 않도록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왕인 것처럼 쾌락을 즐겼던 부자는 사후에 지옥으로 갔고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믿음을 지켰던 나사로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가복음 8장 38절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겠다고 하신 것처럼 말씀을 버린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부자는 지옥에 떨어져보니 말씀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부자는 아마도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형제들에게 간다면 형제들이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말하길 모세와 선지자가 전한 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은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씀을 전하는 기적을 본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전도하는 성도를 거부하는 사람은 강퍅한 심령을 가졌기 때문에 기적을 본다고 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잃지 않는다면 지혜자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며, 기적을 경험하고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매자라는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날마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지혜자와 우매자로 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목회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여러분이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지혜자로 세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도서 10장 17절
왕은 귀족의 아들이요 대신들이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귀족의 아들이란 단순히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것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지혜자를 말합니다. 그런 지혜자가 통치하는 나라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신들이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달보다는 백성을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평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처럼 이타적인 삶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왕과 대신들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지혜자이며 백성들에게 존중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인격과 품성을 지닌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 성도들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은 위정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만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는 것이며 백성들이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10장 18절
게으른 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 즉 집이 새느니라
우매자는 게을러서 자신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귀찮아서 믿음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작은 부품 하나라도 망가진다면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차를 늘 점검하는 것처럼 믿음 역시 작은 부분이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게을러서 살피지 않는다면 그 사고는 생명과 직결될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부자는 베풀어야 할 때 인색했고 긍휼히 여겨야 할 때 교만 했기 때문에 고난에 처했을 때 물 한방울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흩어 구제해야 하는 자리를 허락하셨다면 형제를 힘껏 돕는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전도서 10장 19절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라
이 말씀은 성도들이 평상시에 헷갈려 하는 부분을 아주 깊이 있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푼다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웃음을 위하여 떡이 만들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최고의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대로 살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비록 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실존한다는 것을 아는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은 자들은 참 된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전하고 있지만, 술에 관한 개념이 올바로 잡히지 못한 성도들은 포도주가 생명을 기쁘게 한다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죄도 아닌데 왜 금지하느냐고 묻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3절에 보면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고 잠언 23장에 보면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하면서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해 질 것이며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는데 왜 못 마시게 하느냐고 묻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을 때 술과 담배, 도박 그리고 첩을 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행위 때문에 믿음이 방해를 받자 법으로 금지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물이 풍부한 나라가 아닙니다. 과일을 즙으로 짜서 물을 대신해서 먹었는데 냉장고가 없다 보니 발효가 되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먹는 것이므로 우리가 먹는 술 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게 되고 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무방비 상태로 사탄의 조종을 받게 되므로 그것은 분명히 죄가 됩니다. 여러분이 물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 마셔야 한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을 굳이 마셔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하기 바랍니다.
20절에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고,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면서 혼자 있을 때 불평한 것을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불평하는 것은 그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반역하지 않는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자 불만을 갖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넘치게 받은 부자를 저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우매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고 조롱하면서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심중의 불평과 침실에서 몰래 혼자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면서도 이 상황을 예수님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아만장군을 찾아간 게하시는 몰래 금품을 받으면서 그것을 엘리사가 절대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악한 행동이나 거짓말을 절대로 들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을 철저하게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저주와 악한 계략을 새와 날짐승이 전파한다는 것은 온 창조물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는 뜻이므로 지혜자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솔로몬도 자신의 죄를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어둔 밤에 행한 죄를 대낮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셨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침실에서 몰래 저지른 죄를 낱낱이 드러내신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기에 솔로몬은 지금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끝까지 믿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이 맞느냐고 불평한다면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우매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을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지혜롭게 영분별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왕은 재림을 기다리고 계신 위대한 심판주이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