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사사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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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죄를 이겨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

사사기 1장 1~7절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사사기의 히브리 제목은 ‘쇼페팀’으로 ‘지도자들’, ‘구원자’라는 뜻이며 이 책의 중심인물인 여러 사사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뉘우치지 않고 더 큰 죄를 범하자 이방 군대를 동원한 하나님께서 심판과 형벌을 내리십니다.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백성들이 회개하자 사사를 통해 구원하시지만, 그들은 또 다시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이렇게 죄와 심판과 회개와 구원을 반복하는 기록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저자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무엘 선지자로 보고 있거나 한편으로는 요시야 시대의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기록한 연대를 사무엘로 본다면 대략 B.C 11세기경이며, 요시야 시대의 인물로 본다면 B.C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기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가 사망하자 백성들은 각기 자기의 생각대로 처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도자의 명령을 듣고 살았던 백성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받은 감사를 잊은 인간이 얼마나 큰 죄악과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지 사사기를 통해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처신했다는 말씀만 보아도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윤리관은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하므로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과 결정이 옳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의를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면서 회개하는 신앙을 가져야만 얽매였던 죄의 끈이 끊어지는 것처럼 깊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매여 있을 때에는 법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유가 속박 당하고 제한 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좋아 보일 수 있고,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환한 대낮같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보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으로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안전한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을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둠이 내린 밤처럼 앞을 볼 수 없기에 결국 자신이 옳은 대로 살아가지만, 선한 잣대가 없으므로 사탄의 명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넓은 길을 자유롭게 가는 것 같지만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고 살았으므로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아본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보면서 인생의 방향을 잘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감사를 모르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악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도 결국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는 존재이므로 여러분은 사사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올바른 길을 가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신앙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는지, 이스라엘이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진노하셨는지 살피면서 그들을 따라간다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얼마나 믿음이 충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높은 산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죄의 산이라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힘으로 죄의 산을 정복하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죄를 정복한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 좋은 인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착한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죄의 산을 정복해 보려고 했지만 한걸음도 오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기 생명까지 버리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은 자일 없이 빙벽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절대로 죄의 산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죄의 산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자일이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법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에 갇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자일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오를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올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의 산은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하지 않고 내 물질과 권력과 명예와 능력으로 오르겠다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믿음만 가지면 쉽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을 두고 산 밑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산은 인간의 지혜로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사기 1장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는 것으로 한 세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준 것처럼,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었다는 것으로 또 한 세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가나안이 보이는 곳까지 인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여 땅을 분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하셨고,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이 백성이 차지하게 해 줄 것이니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며, 네 길이 평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모든 지파에게 분배한 후 죽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후계자를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후계자를 세우지 않으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의 신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을 그대로 전했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지 삶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자세하게 알려드렸습니다. 여러분은 말씀대로 살아내면서 하나님께 응답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운 말씀과 경험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성숙했기 때문에 저는 깊이 참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교회를 떠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며, 여러분이 스스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 중에는 말씀과 기도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지도자 없이 스스로의 믿음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우지 않은 것은 모세에게 규례와 법도를, 여호수아에게는 말씀대로 살아낸 것을 보고 배웠으므로 백성들이 이제부터 스스로 살아 주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백성들을 향해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길 것인데, 너희들은 어떤 신을 섬길 것인지 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우리는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거나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약속한 이 말을 지켜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쳐줄 기회가 없었으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하였으니까 그 말에 스스로 증인이 되어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믿음으로 죄를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아주기를 원하셨기에 후계자를 세워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스스로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들 역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우리는 하나님만 섬길 것이니 걱정 말라고 다짐했던 그 약속을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이들의 악함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죄를 이겨 내기를 바라시지만, 맨손으로 빙벽을 오르는 사람처럼 또 다시 죄를 짓고 좌절하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므로 다음 세대에게, 또 그 다음 세대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기적을 보았으며,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스스로 살아내야 하며,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가르쳐줘야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신앙이 아니며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와 법도를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며, 모든 판단과 결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내하시며 사랑을 베푸셨는지 안다면, 절대로 인간의 의로 사는 죄는 짓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가나안 족속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면 되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산다면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방나라들의 침략을 막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유지했다면 가나안에서 사는 것은 평안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고, 남은 인생 역시 하나님만 여러분의 보호자라고 믿는다면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기 1장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호수아의 신앙을 보고 배운 백성들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신앙을 보여주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신 것처럼 유다가 올라가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없이도 이제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백성들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놀라운 경험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응답하셨던 그 은혜를 지금 백성들이 직접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응답을 직접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응답 하시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시므온과 함께 가나안 족속에게 올라갔습니다.

사사기 1장 4절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세상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에게 가나안 족속을 넘겨주신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기도와 믿음은 절대로 부끄럽지 않도록 역사해주신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백성들에게 먼저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그 약속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경험을 하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실존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성도들이 삶으로 그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특혜를 받고 있는지, 어떤 보호하심과 인도를 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께 수많은 응답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헌신과 충성을 보여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헛되고 헛된 신앙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성도들이 충만한 믿음을 갖는다면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은 환경과 사람과 연약한 신앙을 이용해서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언제나 사탄의 방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성도들은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아도니 베섹과 전쟁을 했으므로 가나안족속과 아도니 베섹에게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아도니 베섹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베섹 성읍을 통치하는 우두머리를 칭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그들을 쫓아가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었습니다. 그러자 아도니 베섹이 말하기를, 나도 옛적에 칠십 명의 왕을 잡아서 그들의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었더니 그들이 내 상 아래에서 음식을 주워 먹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칠십 명의 왕에게 비참한 굴욕을 주었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행한 것과 동일한 부끄러움을 나에게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귀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도니 베섹 역시 칠십 명이나 되는 왕의 수족을 자를 정도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도 자기를 이길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막강한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일하신다면, 아도니 베섹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강함은 하나님의 약함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을 직접 주도하셨고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아도니 베섹을 상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하시자 그는 자신의 악행을 그대로 보응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과 악의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입니다.

여러분의 선행은 반드시 빛 가운데 드러내어 칭찬받게 하시고, 아무도 모르게 행한 죄라 할지라도 악행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보응을 받으므로, 항상 말씀대로 사는 지혜와 명철을 가져야 하며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행했던 악행을 그대로 당하고 나서야 아도니 베섹은 깨달았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나서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깨달았고,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이때 크게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살아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지키셨습니다. 가나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은혜이므로 절대로 하나님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승리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며, 언제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여호수아처럼 자신을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이런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지도자가 없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도니 베섹의 실패를 통해, 상대가 어떤 힘을 가졌든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며 그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며 명령에 불복하는 것 역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70명의 왕을 죽인 세상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도니 베섹도 한순간에 굴복시켜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사사기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모두 알고 계시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며 악한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여러분이 더 아름다운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뻐하셨던 하나님을 잊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내는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죄를 이겨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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