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의 우상과 제사장
7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우상과 제사장
부모가 자기 자녀의 행동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녀의 말을 먼저 듣게 되고, 내 자녀가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면, 부모는 자녀를 다 키워 놓고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성교육과 훈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툼이 있을 때, 아이의 기가 죽을까 봐 내 아이 말만 듣고 편을 들어준다면 아이는 선의 기준을 배우지 못합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 하는 아이에게 늘 속는다면 아이는 거짓말을 계속 할 것이고, 성장해서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의 큰 잘못을 쉽게 덮어주는 부모 때문에 자녀들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미가 어머니 역시 아들의 잘못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덮어주므로 문제를 더 키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돈을 훔친 아들이 저주를 받을까봐 아들의 죄를 덮어주는 것은 물론 아들을 위해서 신상을 만드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사사 옷니엘 당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으므로, 사사 시대 초기에 에브라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 1,100개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돈을 훔쳐간 사람을 향해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저주는 신에게 탄원하다, 간청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신께 간구하는 그 자체로 어떤 주술적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액을 훔치고도 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저주하는 것을 보고 신에게 저주를 받을까봐 자기가 훔쳤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때 잘못을 시인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가의 인격이 정해지므로 나중에 용서를 해 주더라도 처음에는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둑질 한 사람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도리어 신상을 만들었고 제사장 복장인 에봇과 드라빔까지 만들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그 신상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사람들의 신앙이 이미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3절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는 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괜찮고, 내 아들이 저주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아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미가가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과 계명을 어겼는데도, 어머니는 아들이 저주를 받을까봐 신상을 만드는 죄까지 지은 것입니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인데, 지금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미가는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요즘 부모들도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도, 다른 사람보다 성공해서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면서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도록 훈육해야 하는데, 올바로 살지 못해도 성공하기만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바람대로 자녀가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 선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축복을 지켜내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잠언에 보면, 부모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자녀들이 복을 받는 방법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 3장 1~10절
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자녀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살면 평안을 누리고 장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자녀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은총을 받으며 귀중히 여김을 받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는 내가 자녀를 도와줘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과 나 때문에 자녀가 잘 되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끊임없이 말씀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살아내도록 지혜롭게 키운다면 축복된 삶을 살 것입니다. 자녀를 품에 가두고 부모의 생각대로만 살게 한다면, 자녀들은 절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지혜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드리는 신앙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가르친다면 자녀들의 삶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만 욕심을 낸다면,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녀들의 죄를 덮게 될 것이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게 될 것이며, 자녀들이 스스로 선을 선택할 기회를 막아버릴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식을 훈육하지 않는 것이 신상을 만드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미가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해서, 자녀의 성공의 기준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 기쁨조차 자기를 위한 자랑입니다.
신상을 만드는 죄를 짓고도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것을 보면, 지금 성도들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버렸지만, 지금은 신앙의 핍박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세상을 향한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해도 미가와 미가 어머니처럼 자기가 판단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말씀의 분별력이 없으면 미가 어머니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사기 17장 9~10절
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모세는 율법을 전하면서 각 지파를 향해 레위인들에게 도피성 6개와 40여 개의 성읍을 떼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사 시대는 종교적 무질서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제대로 시행될 리 없었습니다.
레위인은 유다 지파의 땅에 있으면서 성전에서 봉사해야 하는데도 그는 생계를 위해서 살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침 미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미가는 베들레헴의 레위인을 만나자 크게 만족하였습니다.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는 어쩌면 자기들이 신상을 여호와께 드렸기 때문에 레위인을 만나는 큰 복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처럼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하고도, 세상 일이 잘 되는 것 같으면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헌금이나 기도를 받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며 헌신했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헌금과 기도를 진실된 믿음과 정직한 신앙으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충성하는 자의 믿음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며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미가는 레위인에게 일 년에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다고 하자 갈 곳이 없었던 레위인 역시 미가를 만난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운 미가는 이제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기의 집에 큰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볼 때 지금 이들의 만남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보십니까?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이것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욕심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고 희생해야 하는 레위인이 자기의 생계를 위해서 한 가정의 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잊어버렸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거룩한 직분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은 세상의 성공이나 생계 때문에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레위인처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분을 세상에서 승진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목회자를 자기의 가정의 복을 빌어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으니 자기와 자기의 집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미가처럼, 사례비를 주었으니 성도의 가정이 잘 살도록 기도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백성들이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버리고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책임지도록 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을 보살피며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사의 사명을 잊어버리면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며,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말씀을 버릴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 하는 것이며 자신이 받은 은사와 물질과 능력으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으며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더 많은 소유를 맡겨 주실 것입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정직하게 전한다면 그것으로 목회자는 사명을 다 감당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위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도와 동역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십니다. 그 축복으로 인해 성도들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목회자는 미가의 집에서 일하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고, 성도들은 제사장에게 생계비를 주던 미가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미가처럼 자기가 받는 복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돈으로 목회자를 고용하는 물질 만능의 타락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레위인은 미가가 아들처럼 호의적으로 대접하는 것에 만족했고, 미가의 집을 위해서 기도하며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미가는 그런 레위인에게 네가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이제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사장이 기도했으니까 복을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미가의 신앙과 상관없이 제사장이 기도했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저주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8장 24절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미가의 변질된 신앙을 보면,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도를 행하지 않는 잘못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의 신앙이 모두 이들과 같을 것이므로, 분배 받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전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호수아 19장 40절 이하에 보면, 단 지파는 분배 받은 땅에서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레위인처럼 거할 땅을 찾아 떠돌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갈렙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싸웠다면 하나님께서 분배된 땅을 취하도록 도와 주셨을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반석위에 서지 못한 우리의 신앙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어야만 정착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데, 사탄과 싸우지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입니다.
마침 에브라임을 탐지하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의 음성을 알아듣고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이 지금 레위인의 음성을 알아들은 것을 보면,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떠돌던 레위인을 만났을 것입니다. 레위인은 자기가 미가의 집에 머물게 된 경위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지내고 있던 레위인에게 자기들의 앞날이 형통할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하자 너의 길이 형통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고 오직 자신들의 형통함을 위해서 점을 치듯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성도들도 하나님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좋은 일이 아니며 고난이 모두 나쁜 일이 아닙니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도 좋은 결과를 위한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믿는 성도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고난을 당한 사람과 재산을 전부 드리고도 죽도록 충성한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과정 중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더욱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탐을 나갔던 단 지파 다섯 사람이 돌아와서 미가의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가 형통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하자 단 지파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단 지파는 라기스를 공격하러 가기 전에 미가가 가지고 있는 신상들과 에봇 그리고 제사장을 빼앗기 위해서 미가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미가의 집을 단 지파 육백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빼앗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미가가 자기만을 위해서 신상을 만들고 제사장을 세운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처럼 성도들이 자신만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가 복음을 전하기보다 외적인 부흥만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미가의 신상을 탈취하는 것을 본 레위인은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너는 한 개인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오라고 제의했습니다. 한 번 잘못된 선택은 계속하여 죄를 낳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한 사람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다면 더 큰 힘과 권세를 가질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또 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생각인데,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열이 더 힘이 있다는 계산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계산법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열 명보다 백 명이 낫다는 계산보다는, 열 명, 백 명 가운데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냐 하는 계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신실한 신앙을 가진 열 명의 성도보다 백 명의 수를 본다면 욕심 때문에 말씀을 올바로 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성도의 수가 많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결국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충만한 믿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잘 세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소를 버리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제 미가를 버리고 또 한 지파로 옮기면서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단 지파가 신상과 제사장을 데려가려고 하자 미가는 신과 제사장은 나의 소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든 신이고 내가 데려온 제사장이므로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신상을 만든 사람의 것이라면 이 말이 맞습니다. 내가 날 위해서, 내가 내 자녀를 위해서, 내가 내 집을 위해서 만든 신이며, 나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가 섬겨야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미래를 위해서, 내 자녀를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계신 하나님이라는 미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대가를 지불했으니 레위인처럼 자신을 위해서, 내 자녀를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목회자라는 생각이 있습니까?
이런 생각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데 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왜 병이 낫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의 복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정직하게 말씀을 전했다면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성장하는 것이 옳은 신앙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키가 자라는 것처럼, 영의 양식을 먹으면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충성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단 지파는 신과 제사장을 돌려달라는 미가를 위협했습니다. 미가에게 큰 은혜를 받고도 미련 없이 버리고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레위인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악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신상을 가져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따라가시는 것 아니며, 레위인을 데려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상과 제사장을 얻은 단 지파는 무서울 것이 없었으므로, 평안하게 살고 있는 라이스 거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자기들이 분배 받지 않은 땅에 들어가 잔인하게 공격한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기에 충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 위에 굳건히 선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우리는 미가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단 지파와 레위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도둑질한 미가를 처음부터 크게 책망했다면 미가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며 레위인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단 지파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선과 악을 제대로 가르쳐주었다면, 그리고 율법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려주었다면 미가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욕심이, 잘못된 가르침이 아들을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으로 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고 자기만 위해서 살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정직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충성하는 성도가 되고 축복을 받으므로 늘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