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 20년을 지낸 삼손
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앞으로 20년 동안 나만을 위해서 살아줄 수 있겠느냐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무작정 알아서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할 일과 목적과 계획 그리고 선택에 대한 결과까지 모두 알려주신다면 20년 동안 믿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시고 성도들이 해야 할 일과 일의 목적 그리고 계획과 그에 대한 결과까지 모두 다 알려주셨습니다. 자녀에게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 부모처럼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와 마지막 날 도착할 목적지까지 모두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음대로 산다면 마지막 날 받는 심판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도로서 남은 시간이 얼마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너에게 맡겨준 성도의 직분을 잘 감당했느냐고 물으실 것이며, 맡겨준 2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왔느냐고 분명히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세상이 어지러워서, 달콤한 꿀을 먹느라고, 혹은 유혹하는 사람 때문에 일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겠지만, 이미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핑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따라서 착한 종이라고 칭찬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나는 저 사람을 모르니 어둠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것인지 그 자리에서 정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생각을 바꾸지 않아서 성도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모두는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자신의 결정이 가장 타당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넓은 마음과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비판하는데 약하기 때문에 타당한 증거를 제시해도 생각을 잘 바꾸지 않으므로, 영적인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자기와 다른 판단이나 생각을 들으면 수긍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비판받은 것 같아서 불쾌해지는 것입니다. 말씀까지도 자기의 신념에 맞는 말씀만 들으려고 하고, 비판적인 말씀은 버리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을 들으면, 자기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기 때문에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권면하는 것을 곧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확증한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의 틀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생각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더 올바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고집스럽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며 화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삼손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있습니다. 블레셋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할 능력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치시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삼손이 나실인으로, 사사로 살아야만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삼손의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없는 타락한 상태이며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한심한 것은 자기의 악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블레셋에게 전가시키며, 자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블레셋을 공격해도 자기 잘못이 아니며, 자기의 모든 행동은 유다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자기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거기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지는 사람이 사사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선한 뜻을 드러낼 수 있는데 삼손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믿고 일하고 섬겨야 하는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로 인한 죄는 남아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죄를 낳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잘못을 하나님께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용서하시며 삶의 지혜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와 장인이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블레셋 사람들과 시비도 붙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끊임없이 복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사용하였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불렀는데,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자 분노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기 위해서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사사기 15장 11절
유다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삼손이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블레셋을 공격한 것이라면 숨을 이유가 없습니다. 유다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사사로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데, 그는 인간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장인의 말을 듣고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에 홰를 달고 밭으로 몰아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한 나라의 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도 용서받기 힘든 일인데, 그 핑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블레셋이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입니다. 삼손이 이런 일을 벌인 이유를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곡식과 열매를 모두 잃은 이유가 삼손의 장인과 아내에게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죽인 것입니다. 아내와 장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삼손은 또 다시 더 큰 복수를 다짐했고, 훨씬 많은 사람을 죽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유다 사람들은 사사인 삼손을 넘겨줄 것인지 아니면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과 전쟁을 선포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삼손이 유다를 위해서 살았다면 그들은 죽더라도 삼손을 보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 넘겨주었습니다.
사사인 삼손을 너무 쉽게 넘겨준 유다의 행동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피해가 올까 봐 두려웠던 유다는 삼손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묻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사사를 넘겨도 되느냐고 기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다는 정복자인 블레셋이 두려워서 삼손을 원수들에게 넘겨주고 만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에 우리가 이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삼손이 죽는 순간까지 복수의 복수가 반복된 것입니다.
유다가 삼손을 결박하여 그들에게 넘겨주었을 때 삼손은 절망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블레셋을 공격한 것은 모두 유다를 살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를 보호하지 않고 넘겨주는 것이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사사로서 성숙하지 못하고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삼손과 큰일을 도모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늘 당해야 했는데, 삼손이 결박된 채 오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환호성도 잠시뿐, 삼손은 포박된 줄을 쉽게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포박한 줄이 끊어졌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화가 난 삼손은 손이 자유롭게 되자 또 다시 1,000명을 죽이는 대학살을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원할 때마다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삼손인데,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요?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았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사로서 백성들과 함께 블레셋을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겸손하게 인내하며 힘을 기르면서 성장했다면 삼손의 힘은 더욱 빛이 났을 것입니다. 큰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블레셋에게 괴롭힘을 당할지라도 시간을 두고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맨 손으로 1,000명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그 힘으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마음대로 살았으므로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삼손이 나라를 위해서 일했다면 동족에게 버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삼손이 신중한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블레셋을 물리치고 유다를 해방시켰을 것입니다.
삼손이 잘못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같은 죄를 지을 뿐입니다.
사사기 16장 19절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고, 유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공격한 삼손은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을 끝까지 지켜 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품으시면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유다에서 가까운 소렉 골짜기에 사는 매춘부 들릴라를 사랑한 것입니다. 들릴라의 이름은 음탕한, 연약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블레셋 사람과 이미 결혼했던 유다 여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손이 음탕한 여인을 사랑한 것을 본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들릴라에게 삼손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려주면 은 1,100개를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당시 은 한 세겔이 일반 노동자의 4일간 품삯인 것을 생각해보면, 은 1,100개는 그녀가 10년 동안 쓰지 않고 모아도 가능하지 않은 액수입니다. 매춘부인 들릴라는 이렇게 큰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물었고, 어떻게 하면 당신을 억압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듣기만 해도 이상한데 삼손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삼손은 들릴라가 간절히 애원하자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억압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블레셋 방백들은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을 여인에게 주면서 삼손을 잡으려고 함께 방에 있었지만 묶은 끈은 너무 쉽게 끊어져 버렸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딤나에서 만난 여인도 그렇고, 지금 들릴라도 블레셋 사람들과 내통하며 자기의 비밀을 캐고 있는데 왜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이 계속해서 똑같은 수법에 속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도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삼손이 죄의식도 없이 꿀을 먹었던 것처럼 들릴라의 간교한 계략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릴라는 적반하장으로 삼손에게 왜 나를 희롱하느냐 왜 내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내실에 블레셋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여인은 끊임없이 자기의 힘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하는데도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기 때문에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한번쯤 자기의 생각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판단이 늘 옳고 정확하다는 생각과 자기의 힘과 능력을 믿기 때문에 결국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삼손은 조르는 들릴라에게 아무도 쓰지 않은 새 줄로 나를 결박하면 되고,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면 된다며 들릴라를 놀렸습니다. 이것은 자기는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사가 비밀을 캐내려는 악한 여인과 하나님의 은혜를 장난거리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괴롭히는 여인의 본심을 깨닫고 들릴라를 떠나야 하지만, 삼손은 정욕에 매여 있으므로 여인의 재촉에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양심조차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들릴라는 삼손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그를 육적인 쾌락으로 가두어 두었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조른다고 해도 삼손이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고 있고, 어떤 부분을 공격하면 넘어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하며,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세우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점검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극심한 갈등과 고뇌에 사로 잡혔고, 들릴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붙들려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나는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으므로,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떠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삼손이 곁에 있다면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어떤 한심한 행동을 해도 보호해 주셨던 하나님, 사사로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해도 도와주셨던 하나님을 이제는 진짜로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세상을 살면서 실수할 수도 있고,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해도 기다려 주시고 평안을 주시며 인내하시지만 성도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하면 잡지 않으십니다.
삼손이 들릴라를 잃을까봐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결국 그에게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도 생명이 없는 세상을 잃을까봐 진리를 버리고 어둠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끝이 없는 사망의 길이기에 돌이키지 않는다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은 들릴라의 유혹과 같고, 내실에 같이 앉아 있던 블레셋 사람들은 성도들의 구원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와 같은 것입니다.
삼손의 입으로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은 이상 그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삼손은 영과 육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쉽게 버리면서, 매춘부인 들릴라의 말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삼손은 아주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습니다.
사사기 16장 20절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과 삼손만 아는 비밀을 버렸기 때문에 삼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격을 상실하였고, 하나님의 권능도 더 이상 그에게 머물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떠나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기에 자녀로 인정해 주셨지만, 그 비밀을 버리면 보호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삼손은 죄를 반복했지만, 언제든지 자기가 필요할 때 몸을 떨치고 일어나면 힘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은 떠났고 그가 사랑하던 들릴라도 떠났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잡힌 그는 두 눈을 잃었기에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었고 옥중에서 놋줄에 매여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유다의 사사가 노예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한 생명을 죽이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친절하지만, 유혹을 받아들이면 삼손처럼 세상의 가장 낮고 추한 곳에 던져버립니다. 하나님은 섬길수록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시지만, 사탄은 성도들이 쓸모가 없어지면 구덩이에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삼손은 시간이 지나자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고 힘이 돌아왔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원하시던 때가 지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에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기에, 힘이 돌아온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재주를 보기 위해서 그들의 잔치에 불러냈을 때 그는 이 자리가 자기가 죽을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8절에, 여호와여 간절히 기도드리니 나를 생각하시고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달라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이 묶여 있던 두 기둥을 껴안고 집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원수인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큰 은혜를 받고도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께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너무 안타까웠는데, 하나님께서는 늘 강하게 하셨고 원할 때마다 역사해 주셨는데도 그는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 신앙,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믿음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을 만드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사로 멋진 삶을 살게 하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버려졌습니다. 블레셋을 치고 유다를 해방시켜야 하는 사사가 블레셋 사람들의 잔치에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그래도 사사로서 블레셋 사람들을 살았을 때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삼손은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살았지만 유다의 사사로 20년을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멋진 시간이, 삼손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과 인격 때문에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성도로서의 시간은 몇 년입니까? 여러분은 그 시간 동안 어떤 신앙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습니까?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욕심에 붙들리면 세상이 여러분을 속이고 조롱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약합니까? 로마서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을 미워하고 능욕하며,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마음을 가졌는지,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고, 긍정적인 말과 행동보다는 상대를 비판하고 판단만 하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부잣집 앞에서 죽은 거지 나사로는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구원을 받았을까요?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비참한 삶을 산 나사로가 어떤 믿음으로 살았기에 하나님께 드린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브라함 품에 안겼을까요? 가장 약한 부분을 알고 공격하는 사탄의 속성을 볼 때, 나사로는 하나님을 버리면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삼손처럼 세상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고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찾으면 만날 수 있고, 구하면 주시는 자비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는 성도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