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사사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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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차원이 다른 삶을 주고 싶은 하나님

사사기 2장 1~6절

1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6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부모는 자녀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며 인내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과 경험을 말해주게 됩니다. 물론, 자녀들은 지난 일을 반복해서 듣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며 부모님이 겪었을 고통을 자신의 간접적인 경험으로 이해하는 성숙한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반복해서 전해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처럼 높은 수준의 인격과 믿음과 차원 높은 지혜를 가지고 성숙하게 살아간다면 부모는 그 때부터 자녀의 판단을 믿어주고 존중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은데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성도를 신뢰하며 그의 판단을 존중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반복하는 것이며,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같은 사건을 말씀하시며 잊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백성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기적과 이적을 베푸시며 얼마나 인내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끝난 사건이지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거나 세상의 풍습을 따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얼마나 큰 권세를 갖게 될 것인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얼마나 두려워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정복할 것이며, 말씀대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낸다면 그들과 후손들이 어떤 복을 받을 것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순종하기만 하면 고통스러웠던 애굽에 대해 말씀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매번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습니다. 율법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기에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고난을 만날 때마다 매번 천사를 보내시고,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위대한 지도자와 사사를 세워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택함 받은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사랑을 받는다는 것과 높은 지혜를 통해 거룩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들이 내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보이는 것을 버리지 못했고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우둔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눈으로 보는 이 세계가 아니라 영으로 보는 수준 높은 세계로 이끌어 올리고 싶어 하시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어둠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과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배신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기록한 것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사사기 2장 1절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내가 이르기를’,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직접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온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언약의 사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 기묘자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길갈과 보김에서도 함께 계셨고 맹세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도 자신이라고 하시며 모든 사건을 과거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꾸 과거를 돌아보며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이들의 믿음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답답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여호와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모두 실행하고 계시는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고, 그들의 제단을 헐라는 명령도 어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에,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여리고를 정복하러 떠날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서 여호수아를 향해 칼을 겨눈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여호와의 백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군대장관이 칼을 겨눈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군대장관이 자신에게 왜 칼을 겨누었는지 깨달은 여호수아는 그 앞에서 신을 벗었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겠다는 믿음을 보여 드렸습니다.

이런 여호수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죽기를 각오하고 할례를 행했으며, 생명조차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랬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잊었기 때문에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상의 단을 헐지 않았고 가나안 거민과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을 보신 여호와의 사자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이제는 너희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거두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가나안 사람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이고,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되게 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게 하여 너희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는 동안 고난을 당할 수 있었지만, 가나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 때, 불뱀은 늘 그들의 곁에서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에 불뱀이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거둬지자, 불뱀은 백성들에게 쉽게 접근했고 큰 위험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큰 능력인지 알지 못합니다. 고난을 당해야만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평안하게 살 수 있었던 보호의 울타리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신 결과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수준 높은 지혜를 갖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나와서 회개하기보다는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전하시며 제자들이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기쁨을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전하신 것은, 예수님과 같은 영적 충만함을 가져야만 이 세상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과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 곳인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두 명의 제자들은 그 은혜와 영원한 세계를 깨닫지 못했고, 그 결과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음으로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들은 것을 실천해야만 그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분히 받았으므로, 이제는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단계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모세와 여호수아가 신앙으로 살아내는 것을 보았고, 믿음으로 살 때 받는 은혜와 상급이 얼마나 큰지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도록 축복해 주시면 타락했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그 은혜를 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높은 빌딩을 세우기 위해서는 땅을 그만큼 깊이 파야 합니다. 하지만 빨리 세울 욕심에 땅을 파지 않겠다고 불평한다면 빌딩을 완성하더라도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높은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으로 믿음과 헌신 그리고 인내하는 삶을 보여드려야만 하나님께서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하늘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더 이상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 없다고,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높은 빌딩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 땅을 파고 있느냐고 불평한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육에 매인 복만 갈구할 것입니다.

사사기 2장 4~5절

4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김은 벧엘의 다른 이름이며, ‘우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너희들이 불순종했기에 이제는 보호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자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이 두려웠던 백성들은 소리 높여 울며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회개는 오래가지 않았고 또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린다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동일한 죄를 짓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제사가 형식적이고 거짓 된 제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운 것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안한 삶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 같아서 회개하며 울었다면 그렇게 쉽게 타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노하실 때마다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물이 진심이 없는 악어의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는 것에는 두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을 보시며 그의 죄가 너무 충만하여 그들에게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어서 흘리는 눈물과, 하나님께 더 많은 세상의 복을 받지 못해서 절망하는 눈물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늘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거저 받았고 그 선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저 착하고, 베풀고,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한 차원 높게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제사를 드렸다면, 법을 지켜야하고 자신을 쳐서 복종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였고 모두 죽었습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동일하게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베드로는 통곡하는 것으로, 가룟 유다는 돈을 돌려주는 것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회개와 죽음은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는 회개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 더 큰 죄가 되는 자살을 하므로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가 모두 끝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 그리고 내세를 열심히 전하는 것으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비록 십자가에서 순교하는 고통을 당했지만, 남은 인생을 정직하고 겸손한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겸손입니다.

이런 자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겸손이라고 본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책망이 두려워 울면서 제사를 드린 것은 복을 빼앗길까 봐 회개하는 척하는 형식적인 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거든 진심으로 돌이키고 같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겸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며 제사를 드리는 장면을 전하다가, 갑자기 2장 6~10절에서 ‘전에 여호수아가’로 시작하면서 여호수아는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고 전했습니다.

사사기 2장 11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곧바로 11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바알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아주었던 여호수아를 정말 그리워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내 말을 잘 들어주었는데, 여호수아가 지금 있다면 내가 얼마나 일하기 좋을까, 그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는 전능하신 분이며, 미련한 인간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그리워하신다는 것은 대단한 은혜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뜻대로 행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 놓고 역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정말 그립다는 마음을 드러내신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여호수아를 본받아 흔들림 없이 순종했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으므로 실망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전한 책망을 듣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용해서 더 풍요롭게 살고자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똑같이 경험했지만, 여호수아처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오직 자신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들은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고,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해 준 말씀을 모두 잊고 살았기 때문에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상급과 심판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있었다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 텐데, 내가 이렇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신뢰를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면서 눈물도 흘렸고 서원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으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생각과 삶은 같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수준도 다를 것이며, 세상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의 결과도 분명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쾌락을 버리지 못해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자신들을 구출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고,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애굽이라는 나라와 왕과 백성들에게 하늘의 진노를 쏟아 부어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배신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터인데 그 목전에서 다른 신을 부르고 있는 백성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과 사랑을 보여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것입니다.

사사기는 회개하는 백성을 축복하시고 죄를 짓는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신하고 회개를 반복하는 백성들이 또 다시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시는 것을 보면서, 백성들은 정말 진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인지, 반복해서 죄를 짓는 그런 인간을 버리실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 때문에 또 다시 용서하시기 위해서 마음 아파하시는 분이므로 우리가 먼저 죄를 멀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차원 높은 신앙을 갖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버리면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사는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던 여호수아처럼 수준 높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의 감정과 사정에 따라서 배신하는 차원 낮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축복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소유한 것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므로 더욱 겸손한 신앙을 보여드리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잘못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사를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바랍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면 여러분부터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바랍니다.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믿음은 행위가 없으면 그것으로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행위로 보여드리며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행위로 증명해 보이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차원이 다른 삶을 주고 싶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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