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20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사사기 강해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지 알았을 것이며, 은혜를 받고도 강퍅했던 이스라엘의 신앙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때는 평생 잘 할 것처럼 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주신 복을 다시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구원이고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천 년을 하루 같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구원의 목적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고 싶어 하시는 왕국에 관심이 없는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심판을 반복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음행과 술에 취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은 모두 썩을 육체가 원하는 것이므로, 이 육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죄의 끈을 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마음 한 쪽은 하나님께, 한 쪽은 세상에 걸치고 산다면 같은 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롭게 살았지만 감사를 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기에, 하나님과 우상을 오가며 박쥐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거룩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술 취함과 성적 타락과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해지는 마지막 날, 멸망당하는 세상과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두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사기 강해를 하면서 이렇게 은혜를 모르고 끝까지 사탄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인내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이방인에게 먼저 전해진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셨다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복음을 영접한 사람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들에게 임한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을 얼마나 구원하시고 싶으면 이방인의 구원을 보고 시기해주기를 바라셨을 것이며 돌아와 주기를 바라셨겠습니까?
이렇게 깊은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택함을 받은 선민이라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21장 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미스바 총회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에게 자기의 딸을 아내로 주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정말 인간의 이기심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레위인이 보낸 시체를 보고 미스바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정 때문입니다. 한 지파가 타락했다면 하나님께 먼저 회개하고, 백성들을 위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데, 이들은 자기의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정을 가장 먼저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 된 삶을 회개하기보다는 상대방 즉 베냐민 자손의 죄를 탓하는 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지금 왜 모였는지, 레위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베냐민의 타락이 결국 그들만의 문제인지 판단해야 하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는 돌아보지 않고 이기심만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자기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만 탓하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며, 모든 계획은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비류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어떤 결정을 하든 자기의 딸을 주지 않겠다는 결정 그 이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돌아온 이들은 21장 3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셨느냐고 하나님을 도리어 원망했습니다. 과연 이 일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입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얻은 실패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처럼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지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느냐고 원망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모두 잊고 쾌락에 빠져 살다가 진노의 채찍을 맞으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것처럼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거친 바람을 통과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일이며,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능히 극복할 수 있기에 충만한 성도들은 이것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600명만 남고 베냐민 자손이 몰살을 당하자,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총회에서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했다는 핑계를 대며 인간의 강퍅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딸을 주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 대신 희생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10장 3절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사사기 10장 3절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가 된 기록이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고 그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입니다.
사사기 20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모두 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길르앗 땅은 요단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길르앗 야베스의 군대가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사 12,000명이 가서 야베스 거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모두 죽이고 처녀 400명을 강제로 끌고 와서 베냐민 자손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성읍 사람들을 죽이고 400명의 처녀들을 강제로 끌고 온 것을 보면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기의 힘으로 생각한 이스라엘이 힘없는 야베스 거민을 죽이는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큰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사탄에게는 강하시고, 약한 성도에게는 언제나 부드러운 은혜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사탄에게는 약하고, 믿음의 형제에게 교만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훗날 암몬족의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한 적이 있었는데 사울 왕이 이들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인데,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의 처녀 400명이 베냐민 자손과 강제로 결혼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모릅니다. 암몬의 폭정에서 구해준 사울에게 감사를 잊지 않았던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목숨을 걸고 벧산 성벽에 걸려있던 사울과 아들들의 시신을 가져다가 매장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다윗은 비록 자신을 괴롭혔던 사울 왕이지만, 야베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거두는 선한 행위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와 베냐민 지파의 관계가 대를 이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강제로 끌려온 여인들이 자손들에게 지금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야베스와 베냐민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보다 상대방의 신앙이 더 정직할 수도 있고 신실할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곁에서 안연히 살아가는 사람을 모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는데, 야베스처럼 약한 사람들을 자기의 악한 목적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12지파 중에 한 지파를 몰살하고 또 죄도 없는 여인과 아이들을 모두 죽인 이런 사건은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 25절을 보면, 사사기가 끝나는 마지막 구절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그들과 동행하셨고, 기도에 응답하셨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셨는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사는 죄를 범했습니다. 사탄에 의해서 무너졌던 에덴동산을 가나안에서 회복해야 하는 이스라엘이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그들은 오직 자신만 생각하며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을 때는 고난을 당했고,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사기는 심판과 용서의 반복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 때문에 이런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죄를 지었던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주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말씀을 배우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며 성적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알곡을 고르고 계시므로 바람에 날려가는 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번 믿음의 저울로 달아 보실 때에도 미달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르쳐야 하며, 배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충만해야만,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이스라엘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동족을 살해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사사를 끊임없이 세워 주셨고, 많은 사건을 통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고 인내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타락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수많은 은혜를 입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400년 동안 노예로 고통을 받았던 애굽을 출발해서, 홍해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보호를 받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 사람으로 남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세상 사람이 풍족하게 사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다면, 변질된 이스라엘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죄로 가득한 이 육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대로 살면서 거듭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사기 19장 29절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레위인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극악한 죄를 짓고도, 아내의 시신을 나누어 이스라엘에게 보낸 이 사건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토막 살인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죄가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 이스라엘인이며, 하는 일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건이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며, 이런 일을 막아주지 않은 하나님이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은 하나님께서 조롱을 당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인데도 하나님은 왜 막아주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롱당하는 것보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녀가 누구인지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으신 것입니다. 이 레위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첩과 함께 술을 마시고 성적 쾌락을 즐기기도 했으며 시체를 만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본성대로 사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해도 상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레위인의 죄는 그 한 사람의 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것처럼 목회자와 성도들이 쾌락과 음란한 죄로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면, 선한 성도들은 자기가 죄를 지은 것처럼 복음 전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교회와 목회자만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조롱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에 상관하시지 않고 오직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찾기 위해서 더 많은 사건을 만드실 것입니다.
레위인이 아내의 시체를 잘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낸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한 한 인간의 호소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잘 들여다보면, 사탄이 레위인을 이용해서 공동체를 이간질 하는 기회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지파가 함께 성장했을 때 이스라엘이 강해질 수 있는데, 베냐민 지파를 몰살하여 궐을 낸 것은 사탄의 이간질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욥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했던 사탄을 볼 때, 사탄은 이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당신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거룩한 삶을 기뻐하지만, 이 레위인이 술과 여자, 그리고 시신을 만지면서, 당신의 뜻에 반하고 있는 이 모습을 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모세의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출애굽 시켰고,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오면 강건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들은 결국 자기의 유혹을 받아들였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조롱할 수 있는 방법은 성도들이 타락하는 것이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거든 죄를 이기기 위해서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한 지파에게만 시신을 보낸 것이 아니라 모든 지파에게 보낸 이유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이 사건에 매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유다 지파가 처음 시신을 받았을 때 크게 놀랐을 것이며 수군수군했을 것이고, 혹시 다른 지파도 받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다른 지파들도 다 받았다는 연락을 계속 받았을 때, 유다 지파는 열 번이 넘게 같은 사건을 대하는 것이므로 점점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사탄이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사건을 크게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이 무서운 사건을 반복해서 말하다가 점점 이성을 잃고 흥분하면서 판단이 흐려지도록 이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면 시신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데, 계속해서 수군거리는 것은 사탄이 만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며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용히 살던 사람이 시골에 가면,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를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곧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어질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려고 해도 와글와글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 없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창문을 닫으면 개구리 소리가 멀리서 들리므로, 조용히 기도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개구리 소리처럼 와글거리는 육의 소리에 지배를 당하게 될 것이며, 수군거리는 세상의 말에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진다면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고 대적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오랜 세월 동안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과 술과 쾌락에 빠졌던 이스라엘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들을 올바로 세우라고 사사를 세워 주셨는데도, 사사까지 타락한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사사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호수아 강해를 할 때는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영적으로 배울 것이 많았는데,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해 심판 받는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사・기・강・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