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이스라엘의 죄
17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언제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레위인은 밤늦게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브아 성읍에서 하룻밤을 지내려고 했는데, 그 곳에 살고 있는 베냐민 자손 비류들이 레위인과 성적인 관계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두려운 마음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어 악하고 더러운 비류들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부정적인 행동으로 아내가 집을 떠났고, 그 여인을 데려오기 위해서 직접 유다 베들레헴까지 간 레위인이 이제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내를 비류들에게 주고 만 것입니다. 그녀는 밤새 비류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시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레위인은 그녀를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보내며 자신의 아픔을 알렸습니다. 레위인이 이렇게 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 개인의 복수를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악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몇 명에게 당한 수모를 베냐민 지파 전체가 자기를 괴롭힌 것처럼 부풀려 말하므로 이스라엘이 대신 복수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레위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는 자신이 성전에서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음란한 삶을 살았고, 시체를 만졌으며, 그 시체를 잘라 각 지파에게 보냄으로써 이스라엘과 베냐민 자손을 이간질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것도 미안한 일인데, 자기의 복수를 위해서 아내를 쪼개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냈다는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겼다면 이런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만 명이 죽고 베냐민 지파가 몰살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 된 삶과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레위인이 당한 일을 듣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미스바로 모였고,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도 미스바에서 열리는 총회로 모였습니다. 미스바 총회로 모인 이스라엘이 전쟁터로 나갈 수 있는 군사는 모두 400,000명이었습니다.
베냐민 자손들은 그제야 자기들만 빼고 이스라엘이 모여 총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때, 베냐민 자손들이 총회에 와서 몇 명의 비류들이 벌인 일이니 자기들이 처리하겠다고 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죄를 보지 못한 베냐민 자손은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기보다는 자기들만 총회에서 뺀 것이 서운했는지 전쟁을 준비하는 강경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총회에 불려온 레위인에게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말해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의 복수를 해 줄 것인지 생각하면서 자기의 잘못은 모두 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삶을 살다가 일어난 개인 일을 지금 하나님 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가 일어난 일을 마치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해결해 주셔야 하는 것처럼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0장 4~6절
4레위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이 말씀을 보면, 내가 내 첩과, 나를 치러, 내가 묵고 있던, 나를 죽이려, 내 첩을 욕보여,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억울한지, 베냐민 자손들이 얼마나 악한지 토로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레위인이 부풀려 전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레위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간질하는 레위인도 나쁘지만, 속는 이스라엘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어이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전쟁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하는데, 영적인 지혜가 없기 때문에 베냐민 자손을 심판하기 전까지는 결단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만장일치로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과 베냐민 자손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기 전에 돌이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더라면, 레위인이 억울해도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이 사건을 전해들은 이스라엘이 지혜롭게 판단했다면, 베냐민 자손이 먼저 용서를 구했다면, 많은 희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레위인 역시 베냐민 자손처럼 추하고 더러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죄는 회개하지 않고, 오로지 베냐민 자손을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자고 했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돌이킬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은 정직한 신앙을 가진 것처럼 심판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고 상대방 허물을 드러내는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잘못이 보일 때는 정죄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죄 사함 받도록 함께 기도하며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20장 18절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베냐민 자손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수는 26,000명이었고, 기브아 주민 중에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700명이었으므로 26,700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냐민을 상대하는 이스라엘 용사는 400,000명이었습니다.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는 서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돕는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며 겸손한 자를 돕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은 누가 먼저 벧엘에 올라가면 좋겠느냐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땅에서 입술로 달싹거리는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 한다든지, 감정대로 중언부언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하는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분별하시므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옳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성장하고, 기도를 통해 능력과 축복을 받는 그릇이 되므로, 늘 겸손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베냐민은 서로 하나님의 백성, 즉 믿음의 형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모세를 연단하시고 순간순간마다 기적을 베푸시며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400,000명의 군사들이 있고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냐민 지파의 악한 죄를 심판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게 누가 그들을 치러 올라가면 좋겠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이 대답이 절대로 응답이 아닙니다. 성도가 드리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성도가 드린 기도보다 더 좋고 선한 방법으로 역사해주시고, 또 구원을 위해서 모든 상황을 주관해 주실 때 그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온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드렸는데도 구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 기도는 인간적인 입장을 전한 것일 뿐 하나님께서 흠향 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들이 유다가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도 베냐민 자손에게 22,000명이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면, 그 전쟁에 하나님께서 동참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실 필요가 없고, 자격 또한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크게 패했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전쟁에 지고 돌아온 이스라엘은 억울한 마음에 여호와 앞에서 날이 저물도록 울었습니다. 22,000명이 죽은 이 상황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관심이 없기에, 어떻게 하면 베냐민을 몰살할 수 있는지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제 베냐민을 향한 분노만 남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실컷 울고 나서 우리가 다시 올라가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느냐고 여쭈어 보자 여호와께서는 올라가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하게 부르짖었으니까, 이제는 도와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한 기도는 인간의 하소연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응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치러갔지만, 또 18,000명을 잃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또 다시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밤이 저물도록 울면서 기도했지만 패하자, 이번에는 언약궤 앞에서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입니다. 제사를 드린 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내일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들은 언약궤 앞에서 베냐민 자손을 내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분노 때문에 형제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목적은, 레위인에게 행했던 베냐민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들의 복수를 위해서 전쟁에서 이기려는 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면 형제와 전쟁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화해를 청하고 함께 회개하는 것이 옳은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넘겨주겠다고 하자 자기들이 승리할 것을 믿었고, 베냐민 자손은 두 번에 걸쳐 승리했기 때문에 사기충천 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누구의 편일까요?
다음 날 하나님의 약속대로 총 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에게 베냐민은 크게 패했고, 18,000명의 용사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광야로 도망쳤지만, 이스라엘 군사가 맹공격을 하므로 또 7,000명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 600명은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서 넉 달을 지내며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이 가라앉지 않은 이스라엘은 용사가 없는 베냐민 마을로 들어와 가축과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힘없는 믿음의 형제를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의 행동을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열두 지파를 세우셨습니다. 열두 지파는 출애굽을 했고, 가나안에 들어왔으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차지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스스로 열두 지파 중 베냐민 지파를 궐을 낸 지금, 이들이 온전한 이스라엘인지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이 풍요롭게 사는 것을 보고 우상숭배를 하며 타락했고 음행을 저질렀으며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레위인의 죄에 동참하면서 베냐민 지파를 몰살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제사로서, 희생하는 짐승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만큼, 번제를 드리기 전에 무엇보다 번제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법을 알아야 하며 두렵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 감사를 알므로 그런 사람이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온전히 열납 되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는 백성들은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정직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번제의 뜻을 살펴보았을 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마음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을까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감사도 없으며 자기희생도 없고 법도 모르는 그들이 번제를 드린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욕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온전하다 끝낸다는 뜻이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쟁을 종식하고 화평과 친교와 연합이 이뤄졌음을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정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죄를 지은 자가 흠 없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나서 제사장이 회막문에서 잡았습니다. 피는 제사장들이 제단 사면에 뿌리고 내장과 콩팥 간 등을 제단에서 불살라 드렸으므로 이를 화제라고 하였고, 여호와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의 가슴과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었고, 나머지 고기는 제물을 드린 자가 제사장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가 되는 기쁜 날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것이며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냐민 자손을 이기게 해 달라는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으니 이제 자기들 편이 되셨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화목제를 드린 후 베냐민 자손을 찾아가 회개와 화합을 위해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의 형제인 베냐민 자손을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내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번제와 화목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베냐민 자손을 몰살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뜻일까요?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차례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경고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레위인의 죄가 드러난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경고였고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멀어진 그들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부르시는 음성을 외면했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를 위해서 기도했으며, 제사를 드리고 응답 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한 번도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이스라엘은 전체가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1장 14절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해서 멸망이 임박해 있을 때, 가혹하고 처절하게 유다 백성의 파멸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레미야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한 채 회개를 거부하고 파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타락은 하나님의 용서의 마음까지 닫아버렸기 때문에, 눈물로 유다를 위해서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그들을 구해달라고 부르짖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네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고통가운데 부르짖더라도 나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에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스라엘이 울면서 기도하고,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그들 모두는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공격하는 이스라엘이나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베냐민 자손이나 모두 하나님을 버린 상태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믿음의 형제와 싸우기 위해서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 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면서 아버지입니다. 자식들이 싸우는데 누구를 도울 것이며, 누구를 심판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상대가 되지 않는 베냐민 자손에게 거듭 패배하면서, 그 이유를 깨닫고 돌이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베냐민 자손의 싸움은, 먹물에 먹물을 타면 결국 먹물인 것처럼, 그들은 먹물처럼 검은 상대방의 죄를 서로 판단하고 심판하지만 결국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는 죄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베냐민 자손은 600명만 남았습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은 그제야 뉘우쳤고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를 주기 위해서 선택한 이스라엘의 결정은 죄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를 드렸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의 자녀를 힘이 없는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로 주기 싫었던 그들은 핑계를 댔습니다. 우리가 미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베냐민 자손에게 절대로 딸을 주지 않기로 결정 했으므로 자기들의 딸은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자기 딸들과 혼인 시켜서 베냐민이 다시 부강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회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죄를 돌리며 주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처녀 사백 명을 강제로 베냐민 자손과 결혼시켰고 실로의 딸들도 강제로 결혼시켰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이런 판단과 결정이 지혜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죽이고 강제로 그들의 딸을 빼앗은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께 또 하나의 죄를 쌓을 뿐이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낀 옷을 다 풀지 않으면 또 다른 죄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 남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신앙, 선한 양심이 없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신앙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타락한 신앙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지혜로운 믿음과 신앙을 가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기도일 수 있고 제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베냐민 자손을 심판한 것 같지만 도리어 수만 명이 죽는 심판을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변질된 베냐민의 죄는 곧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베냐민을 탓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먼저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치료하셨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교회까지 변질되고 맙니다. 여러분, 베냐민 자손처럼 형제의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고 연약해 보이거든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헌신하기 바랍니다. 믿음의 형제의 연약함과 죄는 곧 우리 모두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수만 명의 용사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믿음의 형제가 몰살당하기 전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에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곧 자신의 죄 때문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 전체와 교회가 변질된 것은 곧 나 한 사람이 올바로 서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인 성도들이 음행을 행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버리며, 죽음을 만지고 자르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며,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준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로 품어 주실 것이며 이 세상에서 절대로 부끄럽게 살지 않도록 높이 세워 주실 것입니다.
겸손한 믿음과 헌신으로 믿음의 형제들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기도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서로를 품고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