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를 세우신 하나님
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았고, 자신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잊었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잘못 놓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고 마음 밖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필요 없는 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많은 기회와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삶을 유지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셨고,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막아주지 않으셨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이중으로 범죄 한 구산’이라는 뜻입니다. 즉,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이므로 그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 파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일부러 고통을 당하도록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격을 막아 주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는 출애굽을 막았다가 열 가지 재앙을 받고 나서야 포기했는데, 하나님께서 바로를 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의 악한 본성을 그대로 두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떠나자 이방인들의 공격을 받았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예표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사사들을 세우신 것은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죄악의 땅에 오신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난을 벗어나 평안해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스스로를 높이며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선을 행할 자질이 없고 자신을 지킬 힘과 능력이 없으며 생명을 보호할 지혜도 없습니다. 만약 인간 스스로 선을 행할 자질이 있고, 생명을 보호할 능력이 있다면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것입니다. 어쩌면 사탄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들에게 이런 배신은 당연할 것입니다. 아세라와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나자 쾌락과 음란한 생활에 빠져들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만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상의 뜻은 ‘아무것도 아니다’, ‘공허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없고 믿을수록 공허한 우상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 주셨던 그들의 심령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공허 하였으며, 열매가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들은 8년 동안 이방인의 노예로 살면서 핍박을 당하자 그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언제나 평안과 안식을 주셨던 하나님을 배신했던 그들이 고난을 당하자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지 그 뻔뻔함이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 찾고, 평안하면 버리는 이런 인간들이 부르짖는다고 해서 다시 그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더 안타깝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그토록 내 품을 벗어나지 말라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창조한 하나님이라고 하셨던 아버지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차갑게 버렸던 그들이 다시 부르짖자 기다리신 것처럼 응답하셨습니다.
사사기 3장 9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옷니엘은 ‘구원자’, ‘하나님은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들은 단순히 재판관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직무까지 수행하였습니다. 옷니엘이 사사로 부름 받고, 구산 리사다임과 전쟁을 했을 때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옷니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메소보다미아 왕을 물리쳤습니다. 사사도 백성처럼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을 사사들이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8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옷니엘의 헌신으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후 40년 동안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고난을 받은 세월보다 회개했을 때 누린 평안의 세월이 훨씬 긴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사사 옷니엘이 죽자, 이스라엘은 또 다시 죄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로운 시간이 길어지자 구산 리사다임에게 당했던 고통을 모두 잊어버렸고, 하나님과 옷니엘에 대한 감사까지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을 때, 열방의 공격으로 인해 가졌던 두려움과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과 사사를 향한 감사를 더욱 마음 깊이 새겼다면 이런 죄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사는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에게는 언제나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이용하여, 어려운 순간만 모면하면 다시 죄를 짓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인생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속에 들어오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면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악한 인간들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을 뿐 자신의 인생에 참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세상의 발판을 만들어주시는 것은 세상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계속 사사를 세워 주시는 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달라는 부탁이며,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소유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를 판단하며 자신의 복을 논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세상에 주셨고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에게 더 많은 재물과 명예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세상에 높이 세워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가나안의 문명과 문화가 더 비중 있게 이스라엘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자, 또 다시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이며 왼손잡이인 에훗을 사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사사기 3장 12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세우시는지 알려주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8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자 고통스러워하며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을 사사로 세워 40년 동안 평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타락했고, 결국 감사를 잊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타락하는 것을 보고만 계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채찍으로 사용할 모압을 강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과 멀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택이지만, 그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이 말은, 화와 복 모두 이스라엘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족속입니다. 그들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지대에 살면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모압을 통과하겠다고 부탁하자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또한, 발락 왕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고, 이스라엘을 음란하게 살도록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모압의 죄를 보신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며 암몬과 모압은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모압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강성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말씀대로 살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보호하셨을 텐데, 이스라엘은 단지 세상의 복을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찾고, 부유하고 편안해지면 버리는 그들은 결국 복음의 축복을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젊은 황소라는 이름답게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암몬 족속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쳤고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이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었던 르우벤 지파를 공격했다는 의미이며,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의 일부를 점령하여 십팔 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항상 연대책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몇몇 족속이 모압 왕에게 통치를 당했다는 것은 곧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 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다시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지금은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를 차별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왼손잡이를 장애로 취급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들 위에 사사로 세우신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35절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시편 18편 35절에 보면,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오른쪽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왼손잡이인 에훗은 사사로서 신임 받기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며, 오른손잡이인 백성들이 그를 온전히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대했을 것이며, 왼손잡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큰 힘을 가진 왕을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예수님을 보내시며 유대인의 왕이니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거지 나사로가 믿음이 충만해도, 부자가 보기에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를 따르고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힘은 나사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인정하는 세상의 잣대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학벌이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되고, 재산이 없는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더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세상을 떠나 육을 벗고 동등한 입장에 섰을 때, 그제야 진리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소유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왼손잡이 에훗을 그들 앞에 세우셨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속여 공물을 바치는 척 하면서, 둘이 있는 자리에서 비둔한 그를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함이 강한 인간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조롱하며 무시했던 에훗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강한 모압 왕을 죽이고 이스라엘 구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는다면, 그 즉시 오른손잡이들이 모압 왕에게 고통을 당하며 사는 것과 같은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서 약한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조건들은 일시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며, 외적인 것은 구원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노예가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선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세상의 힘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소유가 많고 적음은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흐름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만 영적으로 성숙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물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보이는 지식과 세상의 힘을 무너뜨리고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으며, 소유가 없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힘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연약해 보이는 예수님을 멸시하며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구세주를 죽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세계를 믿지 않고, 나중보다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죽음에 직면해서야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부자처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고 나서야 후회할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우시고 강한 힘을 가진 모압과 암몬을 무너뜨리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얼마나 큰지 경고하신 것이며 이스라엘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세상은 아직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다면, 지금 모압에게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며, 응답을 받고 나서 또 하나님을 떠날 것을 알기에 또 다른 채찍을 준비하실 것입니다. 이런 반복된 삶으로 인생을 허비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스스로 진흙에 떨어져 자신의 아름다운 빛을 감추고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사사인 에훗으로 인해 80년 동안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의 죄로 18년의 고난을 당한 것인데도 회개하자 불쌍히 여기시며 80년 동안 평안하도록 지켜 주신 것입니다.
사사기 5장 6절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에훗이 죽고 난 후에 타락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이 삼갈이 세워진 것입니다. 삼갈과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은 6인의 소 사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짧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사들이 활동했던 시대의 형편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부름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드보라는 삼갈에 대해 노래하므로 그가 믿음이 충만했던 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갈은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블레셋은 다윗의 시대나 분열왕국 때에도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입니다. 이들은 결국 스가랴의 예언대로 알렉산더대왕에게 패한 후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몰아냈다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블레셋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소 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전쟁터로 나가는 삼갈을 신임할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하찮은 조건과 장애를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내세울만한 조건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빈손이라 할지라도 거지 나사로처럼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일하기에 충분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강한 자와 약한 자를 구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소유로 하나님의 은혜를 달아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용하실 때, 조건과 소유를 보시지 않습니다. 왼손잡이와,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한 자와 세상의 힘이 없어서 소 모는 막대기만 가지고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 나오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랑으로 삼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일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주시며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깨달은 지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상급과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자신을 주신 예수님, 사람들의 칭찬과 섬김을 원하시지 않았던 예수님,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말씀대로 사셨던 예수님처럼 여러분도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자신의 소유를 보며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를 덧입는 성도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