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대로 시행하시는 하나님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성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언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그 사랑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복을 주실 것이고, 내 구원을 위해서 죄를 짓더라도 참아 주실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입니다.
큰 사랑을 베푸시며 자신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자,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그 상대가 하나님이든,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이든 상관없이 악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죄를 짓거나 배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렇게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복을 주실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축복의 잣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보다 인간적인 생각이 크면 절대로 성도로 살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금 네가 가진 것은 모두 내가 준 것이니 달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의 개념으로만 본다면,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든 것을 대가를 받기 위해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은, 주신 자도 여호와이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는 진정한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2~13절
12나중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천국은 마치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찾아 이른 아침에 사람들을 부르러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아침 일찍 만난 품꾼에게 하루 종일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을 포도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 삼시에 나가서 품꾼을 또 데려왔고, 제 육시와 제 구시와 제 십 일시에도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므로 십일 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늦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은 분명히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임금을 똑같이 주자, 그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종일 일한 자기들이 어떻게 똑같이 받을 수 있느냐고 불평했습니다. 주인은 내가 너와 한 약속은 한 데나리온이므로,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계획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보다 오랫동안 일했으니까 상급을 더 받겠다는 것은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가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열한 시까지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는 주인을 빨리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찾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포도원에서 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주인과의 약속보다는 자기가 일을 더 많이 했다는 생각에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욕심을 부리던 이 사람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보다 더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도 제사를 드리면 용서하실 것이고, 용서를 받았으니까 또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해도 하나님은 자신들 편에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는 참으로 어리석은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노략하는 자들을 막아주지 않았고 재앙과 심판을 내리시며 고통스럽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그 자체로 고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믿음으로 살았다면 영원토록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어리석게도 믿음과 의리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들은 경험했지만 쾌락과 음란에 빠져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더 의지했고, 자신을 버려야만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관계보다는 자기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가나안 사람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변함없는 신앙을 가져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 바울이 말하길, 이스라엘이 갈라진 홍해를 건넌 것은 백성들이 모두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늘에서 내려주신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먹었고,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나온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에게 신령한 음료를 준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그 죄는 바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범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르비딤에 장막을 쳤는데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본 백성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당장 마실 물이 없다는 원망을 하며 모세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고 하면서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했지만,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만 갔고 모세도 감정이 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그 어떤 것도 해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기적과 은혜를 경험한 백성들은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에게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자신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켰고, 핍박하던 애굽 사람들을 수장 시킨 모세를 향해 돌까지 던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인 상태로 하나님께 이 백성들이 나에게 돌을 던질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한 것이고, 백성 역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으므로 스스로 기도하거나 인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불편함을 모두 모세가 해결해줘야 하는 것처럼, 그들은 힘들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고 돌을 던지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바쳐서 그들을 설득했고, 겨우 고통 받던 애굽에서 해방시켰는데 한낱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희생에 대한 감사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기적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와 기적은 하나님과 지도자의 일방적인 선물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의 선한 양심과 진심이 없으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모세가 백성들의 핍박을 받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일 강을 쳤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굳이 나일 강을 친 지팡이를 손에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지금 네가 당하는 일은 나일 강을 갈랐던 기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길,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에 서 있을 것이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러면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백성들이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반석을 쳤고, 반석에서 나온 물로 백성들과 짐승이 모두 마셨습니다. 물이 나온 그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반석을 쳤고 백성들이 그 물을 마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민수기 20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돌로 치려는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으고, 반역한 너희들아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까 물이 많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짐승들이 마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내가 반석에서 물을 낼 것을 알면서도 백성에게 내 거룩함을 보여주지 않고 네 감정대로 행동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진노하셨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교만한 행동을 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백성들에게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홍해를 건넌 것은 세례를 받은 것이고, 만나를 먹은 것은 신령한 음식을 먹은 것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물은 신령한 음료를 마신 것인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자기가 신령한 물을 주는 것처럼 감정적으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세례를 베푸셨고 신령한 음식을 주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했음에도 자신이 인도한 것처럼 반석을 내리치는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반석에 내가 있을 것이니 너는 나만 바라보고 반석을 치라고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모세는 원망하는 백성들을 본 것입니다.
모세는 아마도 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이 작은 일에 불평하는 것을 보자 답답해서 화가 났을 것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을 향해 돌을 들자 순간 인간적인 혈기를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모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전했고, 명령대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며 그들을 도와주었지만, 문제를 만날 때마다 불평하는 그들에게 절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감정에 치우쳐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잊었을 것입니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치고 곤하여 마음을 닫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교만이며 죄라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돌을 들고 있는 백성들을 보면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서운했을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변하지 않는 그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보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이런 인간적인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들의 이해는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반석 위에 서 계시겠다고 하셨고, 너는 지팡이로 반석을 치기만 하면 내가 역사하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백성들의 불신앙을 이겨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죄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원망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반석을 내려쳤음으로 모세와 백성들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모세 한 사람의 헌신으로 출애굽의 기적을 만들었고, 모세 한 사람의 불신앙이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의 행동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와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죄의 경중이 없습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이나, 열 한 시에 들어온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일한 사람입니다. 일찍 포도원에 들어왔다고 더 많이 일한 것이 아니며, 지도자라고 해서 더 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교만한 생각보다는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변하지 않는 모습에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일찍 들어온 사람이나 늦게 들어온 사람이나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처럼, 모세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책임은 똑같은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는 결국 그들이 책임질 것이므로 모세는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되는데,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의 책임에 더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은 것을 보면 백성들도 자기의 죄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불평하는 백성들이나, 그 백성들 때문에 인내하지 못한 모세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허무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에게 축복의 땅을 주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에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보고 싶었고, 놀라운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는 모세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바림 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삶을 살아 보지도 못하고,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서 목숨을 다해 헌신한 모세이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훗날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나타난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모세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백성과 모세의 신앙이 다르고 영적인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앞선 자는 본을 보이며 늘 겸손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헌신했던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이 사건을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신령한 물을 낸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가 쳤다고 해서 신령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물이 나오도록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께 물을 달라고 기도만 했더라도 차고 넘치는 물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심에 항상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대하는 것이며,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받았습니까? 모세처럼 감당하기 힘든 사명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교회만 다녀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세처럼 자신의 인생을 모두 드려야 하는 사람도 있고, 백성처럼 모세를 따라다니기만 해도 은혜를 입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불평하고 돌을 들어도 자신이 행했던 기적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백성들조차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내가 물을 줘야 하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이며, 그리스도는 우리와 세상을 보시는 관점이 다른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잘했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신령한 사람이 아니며 흙에 속한 육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며 하늘의 형상을 입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상대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겸손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그리스도를 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닮기 위해서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하나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도록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비록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기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모세와 자기들을 위해서 인생을 희생한 모세를 괴롭혔던 백성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오직 자기들만 위해서 살았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했을 때 사사를 세워 주셨고 사사가 살아있는 동안에 대적들의 핍박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도 사사가 죽으면 그들은 곧바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백성들의 배신과 하나님의 진노와 용서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반복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요? 그냥,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신 것처럼 손만 드시면 모든 것이 끝날 텐데 끝까지 인내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스스로 세우신 약속 때문이며,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싶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지금 우리들이 죄를 짓고도 살 수 있는 것이며,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실 때 돌이키기 바랍니다. 꼭 맞아야 아픈 줄 알고 다 잃어야 하나님이 무서운 줄 안다면, 어쩌면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성숙한 신앙으로 결단하며 삶으로 살아내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된 여러분을 부르셔서 일을 맡기실 것이며 거룩한 역사를 함께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