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사사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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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사탄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사사기 17장 7~13절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는 잘못 끼울 수밖에 없습니다. 단추를 쉽게 끼울 수 있도록 단춧구멍을 만들어 주었는데, 옷을 입는 사람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옷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첫 번째 단추는, 다른 단추들이 제 자리를 잡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첫 단추의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제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믿음의 자손들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세 번째 단추의 역할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영적인 질서를 잘 지키는 성도들의 선한 행동을 보며 복음을 영접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성도들은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운 옷처럼 더욱 삐뚤어지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단추를 모두 풀고 처음부터 다시 올바로 끼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단추를 바르게 끼우려고 해도 첫 단추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옷을 단정하게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죄와 싸우면서 굳게 세워야 하는 질서를, 사탄에게 굴복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회개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 같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바벨론 같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성도들이 달라져야만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빛을 내지 않는다면, 세상의 질서는 무너진 그대로 진행할 것이므로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성도들이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구원의 옷을 얼마나 더럽혔는지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400년이 넘는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고비를 넘기며 가나안에 들어간 그들이 말씀으로 질서를 지켰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고, 말씀을 버렸으며 가나안 사람들보다 더 우상을 숭배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성적으로 타락한 것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면 음란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마음의 정욕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부끄러운 욕심에 매여서 남자와 여자가 순리대로 관계를 맺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막아 주시지 않고 변질된 상태로 두셨기 때문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레위인과 그의 아내를 보면 레위인이 아내를 두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자, 그의 아내는 분한 마음에 남편과 똑같이 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남편이 음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동일한 죄를 짓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9절에 보면, 하늘에서 미가엘과 용이 싸웠는데 미가엘을 이기지 못한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 쫓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며, 성도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끊임없이 참소하고 중상모략 하는 악한 영입니다. 이들은 천하를 다니며 한 영혼이라도 넘어뜨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가엘에 의해 땅으로 쫓겨난 이 상황은 종말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이지만, 사탄의 역할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군사들과 전쟁을 하고,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성도들을 참소하고 중상모략 하는 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만 아담과 하와처럼 죄를 짓지 않을 것이며, 천국을 침노하는 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속이고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을 저지르는 영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우상숭배자들과 섞여 살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탄에 대한 경각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미디어를 이용해서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고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단순히 뿔이 달리거나 무섭고 흉한 모습을 했을 뿐 아이들과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며 실제로 존재하는 악한 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완벽한 사람들의 모습과 동물들을 변형시켜서 눈을 하나나 셋으로 만든다든지, 동물들에게 뿔을 달아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누구나 보는 만화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사탄의 전략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올바로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법칙을 깨기 위해서 성의 개념조차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장 약한 부분이 성이라는 것을 알기에, 변질시키는 방법으로 부부의 개념을 바꾸며 놓은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이유는 바로 성적인 타락 때문입니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성적으로 맺는 이런 관계는 순리대로 자녀를 생산하고 번성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번성하고 생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부다처제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어기고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전에는 동성의 애틋한 마음을 우정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모두 성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생각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람은 가나안에 자리를 잡았고, 조카 롯은 자기가 보기에 아름다운 소돔과 고모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그 도시들은 성적으로 문란했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소돔으로 추측되는 도시 밥 에드라에서 건물의 지붕들이 집중적으로 불에 탄 흔적과 바위들이 타고 남은 유황 재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롯의 아내를 생각하게 하는 소금산 맞은편에 있는 밥 에드라에서 수천 명 내지 수만 명이 살았음을 증명해 주는 200만개가 넘는 도자기와 파편들과 시체들을 발견하므로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3~7절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 말세에 종말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하는 거짓 교사들이 와서 악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주님의 강림과 하나님의 창조가 거짓이라는 말을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파하는 사도들을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들은 자기들이 조롱한 주님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만물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심판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홍수의 심판을 예로 들어 반박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볼 때 만물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세상은 이미 물로 심판을 받았으며, 이제 하나님이 마지막 날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그대로 간수하고 계신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들을 마지막 날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이 세상이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사해를 통해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는 대로 말하는 그들에게 베드로는 하나님은 인생과 다르시므로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인생은 먼지처럼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따라 역사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의 주장에 흔들린다면 의심이 생길 것이므로 늘 깨어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경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조롱하고 있으며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자유이지만, 마지막 날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사탄과 함께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자세히 하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본문을 읽어야만, 레위인과 이스라엘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이며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부름을 받은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하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성막을 철거하고 세우는 거룩한 업무를 분담했고 언약궤를 메거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재판을 베푸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찬양대, 성전 문지기, 성전 건축 및 수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하는 레위인이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사사기 19장 1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첩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첩을 얻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음으로 이에 분노한 첩이 똑같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첩이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아버지에게 돌아가 넉 달 동안 산 것을 보면 두 사람은 헤어진 것 같습니다. 레위인의 성적인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이런 사건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타락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을 때 가장 먼저 짓는 죄는 바로 음란한 죄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사람들을 타락시킬 때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갔을 때 자기가 지은 죄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면 돌이킬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즐겁게 해 주었던 첩을 잊지 못해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유다로 떠났습니다. 레위인은 성막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성적인 유혹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레위인이 타락하면 백성들에게 경고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이킬 기회가 없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이므로, 성도들이 말씀의 반석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어야만 사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석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땅에 흩어져 있는 작은 쇳조각들은 손으로 잡기 쉽지 않지만, 자석으로 한 번 쇳조각 위로 스치기만 하면 수많은 쇳조각들이 붙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석이 말씀을 가진 성도이고, 쇳조각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영혼으로 본다면, 지금 세상을 향해 성도들이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석이 사탄이라고 한다면,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을 유혹하려고 할 때 성령 안에 있어야만 공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레위인이 말씀으로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지금 땅에 그대로 있는 쇳조각처럼 이스라엘은 썩어가고 있습니다. 백성에게 말씀으로 강한 자극을 줘야 하는 레위인이 타락해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누군가 끌어줘야만 신앙생활을 하는 백성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만났고 경험했고 가나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사가 없거나 왕이 없으면 가장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들과 달리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배신하지 않았으며,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스스로 믿음을 지켰고 다른 영혼들을 구원했습니다. 누군가 인도해주지 않아도,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믿음으로 성도들이 스스로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갖도록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레위인이 타락하자 모두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19장 10절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레위인의 장인은 딸을 찾아온 사위를 반겼습니다. 장인에게 거한 대접을 받은 후 닷새째 되는 날 돌아가려고 했지만, 장인이 더 있기를 청했으므로 시간이 지체되어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레위인은 늦게라도 집으로 가려고 출발했지만, 이미 너무 어두워졌으므로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서 묵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동족이 있는 기브아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누구도 나그네인 이들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밭에서 일하다 돌아오는 노인을 만나게 되었고, 노인은 기꺼이 그들을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인의 집에서 평안히 쉬고 있는 그 때, 성읍의 비류들이 노인의 집 문을 두드리며 네 집에 들어온 레위인을 끌어내라고 협박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롯이 천사를 자기의 집으로 모셨을 때, 비류들이 천사들을 끌어내라고 소리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비류들이라는 뜻은 벨리알의 자손들이라는 뜻이며, 벨리알은 ‘무익한’, ‘무가치한’, ‘쓸모없는’ 뜻으로 주로 사람과 결합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비류들은 문을 세게 두드렸고 레위인을 끌어내어 남색을 원했던 것입니다. 레위인이 유숙한 기브아 땅은 이방인의 땅이지만, 그 당시 베냐민 지파가 기업으로 얻었으므로 이 비류들은 바로 베냐민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 소돔사람들이 심판을 받아서 생긴 사해는 지금 기브아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해를 보면서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했는지 아는데도, 역사적인 경험을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노인은 정말 롯이 한 말을 흉내라도 내듯,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으니 이 남자에게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롯의 말을 천사가 막은 것처럼, 레위인은 그들과 끝까지 싸워야 했지만 자신의 첩을 강제로 끌어내어 그들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자기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 무리에게 준다는 것은 악한 자들만큼이나 레위인도 악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이 문제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간절히 기도했다면, 롯의 집에 있던 천사들이 비류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동일한 기적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쾌락을 위해서 첩을 데리고 오던 레위인은 자기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만 생각하며,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극한적인 이기주의자였던 것입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쉽게 버리는 레위인을 보면서, 타락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므로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에 버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으로 살아야만 이 험한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성도로 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을 조롱하듯 생명을 경시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번성하라는 말씀을 비웃듯 동성애가 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과 질서는 사탄에 의해 무너지고 있으므로, 성도들은 말씀을 지키고 전하며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은 도덕과 양심보다는 육체적인 쾌락을 보호하는 쪽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마약이 합법화되고 있고, 범죄자들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소돔과 고모라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리들에게 던져진 여인은 새벽까지 욕을 당했고, 남편에게 보호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는 집 문지방에 두 손을 놓고 숨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문지방에 손을 대고 죽은 여인의 이런 행동조차도 미신적인 풍습인데, 여인은 문지방에 있는 신이 혹여 자신을 살려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레위인을 끌어내려고 한 것과,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오려고 한 것과, 여인이 문지방에 손을 대고 죽은 것까지 모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한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통해 지금 우리들은 이들의 악함을 보고 있지만, 과연 이 나라와 이 민족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이 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면 선한 판단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어야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고, 자기의 죄를 볼 수 있으며 구원받을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타락한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혼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의 등불을 높이 드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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