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사사기 · 조춘숙
나가기
2장

철 병거를 쫓아내지 못한 불신앙

사사기 1장 18~21절

[1] 죄를 이겨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

18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이스라엘은 출애굽 한 후 모세와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대로 백성들을 이끌며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자 영토를 각 지파에게 분배해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온전히 감당한 것입니다. 지금 모세와 여호수아가 감당했던 일들을 쉽게 말씀드리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으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점령하는 모든 성읍에 거하는 사람들을 다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무서운 명령이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명령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뒤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경험을 했으므로 언제든지 먼저 순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아야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것을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세상을 운영 하시는지, 그것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9편 7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러분에게 성경 읽기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올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주신 것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모든 것의 기준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고 사람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라는 말씀은, 충만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을 소성시키는 율법을 알아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며, 소성시킨다는 것은 정신 잃은 사람을 깨어나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여호와의 말씀은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드린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은 죄인들을 살아나게 한다는 놀라운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죽은 영혼을 살리는 거룩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 마음을 주셔서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어둡고 혼란스럽고 죽을 것처럼 괴롭다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말씀을 의지해야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마음에서 깨어날 수 있으며 어두운 영적 상태에서 깨어나야만 어두운 환경도 바뀔 수 있습니다.

요즘 직장인의 10명 중의 9명이 만성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 가출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거나 초기단계라고 합니다. 피로 누적으로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과 개인적인 시간 부족으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 이런 이유들로 우울증에 빠지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자신의 상태를 쉽게 알리지 못하는 고충을 겪으며, 쉬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자 결국 몸이 약해지면서 병을 앓고 마는 것입니다. 이 우울증은 상황에 변화를 주지 않거나 혼자 겪어내려고 한다면, 증상이 심해지므로 가족이나 심리 상담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주부, 그리고 공부하는 아이들까지 우리 모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순간까지 나를 도와 주셨다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만 병도 고치고 새로운 삶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의지해야만 영혼이 소성될 수 있기에 미련한 방법 같지만, 말씀으로 돌아가야만 완치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시키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면, 말씀이 없는 사람은 결국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멸시 받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더라도 사람들이 병들고 낙심하며 허망한 마음에 주저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점령하는 성읍마다 사람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며 음란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에게 동화되어 타락할까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어둠이었습니다.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들과 혼인하여 자녀를 낳게 될 것이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의 풍조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우둔한 자로 살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앙을 지켜주기 위해서 들어가는 성읍마다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거나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섬긴다는 신뢰를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믿지 못하셨기 때문에 타락한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명령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자녀가 믿음직하면 다른 자녀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자녀가 부족하면, 내 자녀 곁에 있는 다른 자녀의 행실을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부족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면 한 사람이 천 명을 쫓는 은혜를 입기 때문에 상대방의 수가 아무리 많고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여호와께서 모든 전쟁에 승리하도록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았고, 들리는 것만 듣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모두 말씀해 주셨지만 심판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 너희들이 나를 배신하면 다시는 그들을 너희 목전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고 옆구리의 채찍과 눈에 가시가 되어 결국 너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자 결국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슬픈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방주에 탔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저주를 받은 함처럼, 예수님께 여러 번의 기회를 받고도 지옥에 떨어진 가룟 유다처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심판을 받는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의 쾌락과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사사기 1장 19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백성들이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느냐고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줄 것이니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응답을 받은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올라가 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기도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모세와 여호수아가 거둔 승리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시므온과 함께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진멸하였고, 산지 주민을 쫓아내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충만한 믿음이 산지에 사는 강한 주민들을 몰아내는 큰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산지에 사는 주민들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이스라엘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미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므로,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원수들을 물리쳐 주시면 그 다음에 우리가 순종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을 보여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는 자신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큰 승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골짜기에 사는 거민들이 철 병거를 가진 것을 보자 그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배신하게 했고 그들 스스로 물러나게 한 것입니다.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고, 가나안 땅까지 편하게 들어온 그들이 아직도 세상 사람의 힘을 보고 있습니다. 철 병거를 가진 골짜기 거민과 무기를 갖지 못한 자신들을 비교하자, 그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을 세상의 힘과 비교하면 그것이 인생이든 사업이든 자녀이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거대한 세상이 주는 문제를, 가진 것 없고 연약한 여러분의 마음에 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한 순간에 쓰레기처럼 쓸모없어지고, 결국 세상의 권세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은 일이 없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좌절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우상에 굴복한 것이며, 성도들 역시 세상의 간교한 계략에 끌려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의 능력으로 살아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도와 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던져주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하나님보다 세상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스스로 어둠을 선택하는 것이며 절대로 회복할 수 없도록 자신을 죄로 묶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영혼이 소성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실수와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17장 18절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과거에 요셉 자손이 자기들이 받은 분깃이 적다고 여호수아에게 불평했을 때, 너희들이 받은 분깃이 적다고 생각되면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자손은 그 골짜기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은 철 병거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너희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큰 민족이고 큰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기에 강하다고 해도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기에 능히 쫓아낼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기에 몹시 두려워하는 요셉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신앙을 가졌을 때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신 적이 없기 때문에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을 진멸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숱한 전쟁을 통해 체득한 경험이 있으므로, 두려워서 할 수 없다는 요셉 자손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산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한 유다가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강력해 보이는 철 병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골짜기라는 것은,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깊은 계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지와 대조적으로 쓰인 저지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지금 점령해야 하는 이 지역은, 블레셋 사람들이 거하는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철 병거는 아주 좋은 무기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각 나라마다 강력한 무기를 소유하기 위해서 국방비로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핵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위로는 북한이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작은 나라이므로 더욱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인 것은 확실하지만, 성도들은 북한이 가진 위협적인 핵무기를 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노력을 조금만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방 나라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셨고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평안을 주실 때, 믿음으로 바로 서서 국력을 다지고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노력했다면 자손들이 가나안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도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처럼 말씀을 가진 성도들이 깨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나라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가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자 세상 사람들은 물론 성도들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지켜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으며, 나라가 평화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타락으로 인해 나라는 점점 영적인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백성과 섞이지 말고 그들이 섬기는 신을 부르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며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의 채찍이 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과 상관없이 산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불안할 것입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강력한 무기를 수입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도와 주셨는데도, 철 병거로 무장한 사람들이 두려워 스스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상대가 강해서 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골짜기 거민을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은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않은 직무유기 내지는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뜻입니다. 능력이 충만한데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전쟁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뿐 아니라 므낫세 지파 역시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했습니다. 베냐민 자손도, 에브라임도, 스불론도, 아셀도, 납달리도 하나님과 약속을 버리고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의 말처럼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올무가 되었고 덫이 되었으며 옆구리의 채찍과 눈에 가시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사람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스라엘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므로 거룩한 나라를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는 불신앙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들과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서 충분히 그들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을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왕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라고 하셨을 때 애굽 왕이 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은 그들을 종과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바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장자와 많은 군사를 잃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한 이스라엘이 지금 하나님께서 모두 쫓아내라는 명령을 하셨는데도 자신들의 편안함을 위해서 쫓아내기 보다는 가나안 사람들을 노예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로 고통 받는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크신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이 이제 애굽 왕과 똑같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응답을 받으면 물질적으로 누리는 풍요로움을 지켜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잊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려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으며 영생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단 한 가지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명령대로 원주민들을 쫓아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복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만약, 가나안 사람 중에 구원받을 자가 있었다면 그는 라합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성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는 우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이고 영광을 돌렸다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어둠의 세력이 넣어준 인간의 의와 자존심 욕심과 정죄하는 마음, 쾌락과 악한 습관을 모두 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명령을 거역하고 쫓아내지 않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성해졌을 때 가나안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그들이 가진 철 병거를 빼앗은 것처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아 힘을 더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까지 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천국은 가야 하기에 적당히 절충하는 삶을 살지만, 말씀은 타협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사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욥의 고백을 기억하면서 정직한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순종하는 이스라엘, 그 은혜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배신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반복되는 사사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도,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것도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귀한 믿음을 보여드리며 큰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 철 병거를 쫓아내지 못한 불신앙
9% · 2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