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을 잉태한 마노아 부부
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6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밭에 각종 씨를 뿌리면서 정말 이렇게 작은 씨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각종 열매가 달리는 것을 보면서 뿌린 대로 거두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한 알의 씨가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작은 믿음이 겨자씨처럼 성숙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삼손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이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인들을 사망에서 건져줄 단 한 명의 의인이 없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신 것처럼,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나실인인 삼손을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블레셋에게 압제를 당하자 고통을 호소했고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 중에 마노아를 눈 여겨 보셨습니다. 아기가 없는 마노아 부부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아기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직접 오셔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그냥 주시면 되는데, 왜 굳이 찾아 오셔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네가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먼저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보물을 깨끗하고 예쁜 그릇에 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부모가 거룩하고 정결한 신앙으로 나실인의 삶을 살면서 삼손을 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은 완전해서 영혼을 소성 시키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삼손의 부모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결하게 되어 지혜를 가지고 삼손을 키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부모가 자녀를 믿음으로 키울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나실인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노아처럼 아기를 잉태할 것을 미리 알려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오셔서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삭이라고 이름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할 것을 알려주시며,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사가랴는 세례 요한을, 다윗에게 솔로몬을, 리브가에게 야곱과 에서가 태어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특별히 부르셔서 성도로 살아가게 하신 것은 놀라운 축복이므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3장 7절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이 부부에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모두 버리고, 아주 특별한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삼손이라는 아이를 얻는 대신 이 부부는 새로운 결단을 해야만 했는데, 나실인이 될 삼손을 위해서 그들이 나실인으로 먼저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나실인은 구별되었다는 뜻이며,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부족한 곳이므로 포도주를 음료로 마셔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조차 마시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몸이 좋지 않은 디모데에게 네 몸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말한 것을 보면,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포도주는 포도를 발효한 즙을 말하는 것이며, 독주에 해당하는 쉐칼은 과실주나 곡주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독주는 물론 음료로 사용되는 포도주까지 모두 금지하셨습니다.
나실인은 부정한 것을 먹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하며, 언제나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므로 일반인으로 살아온 마노아 부부로서는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하는 일을 스스로 절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기에 그들은 죽도록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손을 잉태한 어머니가 술을 마신다면 삼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며, 삼손의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삼손을 제대로 교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술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들이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다행히 셈과 야벳은 옷으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지만, 함은 아버지를 조롱하다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물론, 함의 인격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조롱했겠지만, 노아가 술에 취해서 잠이 들지 않았다면 함은 시험에 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저주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잠들었다는 것은, 포도주를 마시는데 익숙해 있었다는 뜻이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다는 의미이므로 자녀들에게 본이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노아는 함을 책망하고 저주하기 전에 자식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돌아보았다면 그는 하나님께 먼저 회개했을 것입니다.
사사기 13장 18~20절
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 즉 20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자녀를 낳는 사람들은 아기를 평범하게 키울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요셉도 마리아를 사랑했지만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 조용히 그녀와 헤어지려고 했던 것을 보면, 마리아 역시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아기를 지켰고 구원자를 잉태한 것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이었습니다.
마노아 부부 역시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아직 아기를 임신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까지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마노아는 지금 자기와 말씀하고 계신 분이 선지자라는 생각에, 자기 집에 머물러 있으면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해서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네가 준비한 음식은 내가 받을 수 없으니,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라고 하자 마노아는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마노아는 정성껏 대접하려고 했지만 여호와의 사자가 거절하자, 아기를 주시겠다는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당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기묘는 이해를 초월한,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도무지 판단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구약에서 메시아 탄생 예언과 관련하여 메시아의 속성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최고의 수준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자기가 이해가 될 때 하나님을 믿겠다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가 될 때만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도들이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깊은 뜻을 이해시켜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행위로 살아내지 않는 사람들의 신앙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쾌락을 즐겨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지도자, 통치를 의미하며 정사를 어깨에 멘다는 말은 권위의 상징),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영존함은 신성에서 유래함. 후원자, 보호자의 개념), 평강의 왕(백성을 돌보고 책임지는 왕, 평화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마노아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구약 시대에서 역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들의 곁을 떠나 본적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고,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처럼 위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누릴 수 있지만, 사람이 사탄의 꾐에 빠져 사망에 빠진 것을 건져내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오셨기 때문에 성취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거룩하게 되었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보좌와 영광을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대속의 역사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부모가 타락한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신을 만나려고 합니다. 온갖 정성으로 신에게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온갖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절하므로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불러서 신이 온다면 그것은 이미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실인인 삼손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신 것은, 죄로 죽어야 할 백성들이, 나실인인 삼손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삼손 때문에 자신들이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백성들 역시 나실인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나실인의 삶을 살지 않았고,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마노아 부부가 삼손을 위해서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도들 역시 나실인으로 부름 받은 거룩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는 나실인처럼,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는데 왜 나는 안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 자체로 성숙한 믿음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성도들이,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살아,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이야, 혼자 믿음 있는 척하면서 유난스럽게 굴지 말라’는 말을 한다면 결코 특별한 삼손을 잉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고자 하는 천국은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은 사람들, 핍박과 비방을 받아도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참은 사람들,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마노아 부부가 나실인의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셨는데, 그것은 삼손이 사사로 잘 성장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 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삼손과 같이 귀한 영혼들을 맡기고 싶으신 것이며, 그 성도들이 또 다른 영혼을 잘 키워 주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영혼을 맡겨 주셔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거룩하게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 달라고 부탁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사사기 13장 24~25절
24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삼손을 사사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자기를 낳기 위해서 나실인의 삶을 산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능력으로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돕는 사사가 되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삼손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며 그를 인도하셨지만, 세상을 바라본 삼손은 구원의 약속을 직접 받고도 거룩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나고 보호하심을 받고도,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인생을 실패로 끝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시지만, 그 은혜를 어떻게 간직하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드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고난을 당하며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 사랑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시고, 많은 세월을 통해 섭리하셨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누구보다 뛰어난 사사로 만드시려고 하셨지만, 삼손은 인격을 갖추지 못했고, 순수한 믿음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강한 힘은 도리어 화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삼손을 선택하셨다면 그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인격 또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자체로 죄인이기 때문에, 그가 죽도록 자신의 의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누구를 선택하신다고 해도 삼손처럼 죄인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날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육신의 정욕을 죽이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하며, 자기를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서 거룩한 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조금만 세워주면 교만해지고, 악한 인격을 통제하지 못하므로 스스로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부서지고 깨어진 사람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겸손하다는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필요한 곳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특별한 능력을 받았는데도 자기의 힘인 것처럼 사용하다가 죽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사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의 부모들까지 나실인으로 살게 하셨지만, 쾌락을 즐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은 자녀입니다. 삼손처럼 준비 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영혼구원 사역에 동참하며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삼손을 맡기기 위해서 삼손 부모의 삶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맡기실 영혼을 위해서 여러분의 삶에 관심을 가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여러분에게 임하셨을 때 진실하고 정직한 믿음을 보여드린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여러분이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자신 있게 증거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노아 부부가 아기를 잉태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응답하시며, 그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보호하십니다. 성도가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탄은 방해하기 위해서 일하기 시작하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없이는 기도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는 직접 마노아의 아내에게 왔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만 삼손을 낳을 수 있는지 알려주신 것입니다. 마노아 부부가 나실인으로 살아야만 삼손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며, 나실인의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9~10절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선한 열매를 맺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성도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행위로 드러낼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크신 확신을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마노아 부부가 나실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면 삼손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이스라엘을 위한 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삼손이 잘못된 결정을 할 때마다 그의 부모들이 바로잡아 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마노아 부부가 과연 나실인으로 바른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면, 그 배운 말씀으로 살아내야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제는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믿음을 보여드리기 바랍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내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