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
17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사무엘 상의 저자는 사무엘 선지자이며, 사무엘하의 저자는 갓선지자와 나단선지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록 연대는 B.C1010-931년경에 기록 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기록 장소는 이스라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세상은 그 빛을 영접하기를 거부하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영적으로 환한 대낮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보고 느끼고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은혜인지 알기에 빛과 어둠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악한 삶을 보시면서도 쉽게 심판하지 않고 그들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인생을 통해 주시면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훗날 심판을 받아도 핑계 댈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죄도 숨길 수 없으므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자신이 지금 누구를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알아야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세상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이므로 인간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영적인 자녀로 지혜롭고 명철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분명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믿음이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사무엘하 1장은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려는 사람과 거짓말에 속지 않는 사람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다윗을 속여서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했던 아말렉 소년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판단을 하는 다윗의 대화는, 사람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말렉 소년은 다윗이 어떤 신앙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몰랐으므로 그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수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다윗이 자신의 가족과 백성을 강제로 끌고 갔던 아말렉에게 크게 승리한 후 시글락에 머물고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아말렉은 다윗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글락을 공격했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다윗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생과 영혼을 책임지시므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속여서도 공격해서도 안 됩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인생이기 때문에 사울에게 고통을 당한 세월도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죄를 지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괴롭히는 아말렉에게 진노하셨고 다윗이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므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평생 전과기록이 따라 다니며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만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는 눈처럼 하얗게 지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하게 인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이 아무리 인간적이고 경우 바르고 착하게 살아도 그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참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족할지라도 참 생명을 품고 있는 성도는 그 생명이 영원까지 이어지도록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며 지켜주고 계십니다.
이 세상이 심판 받는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역시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잊게 되면 아말렉 소년처럼 간교한 꾀를 내는 엄청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소년이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온 것을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울 곁에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소년은 사울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왜 자신이 사울을 죽인 영웅이 되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사람이든 인생의 기로에 설 수 있는데 그 순간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판단하는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31장 4절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사울은 율법적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 즉 이방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수치보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더 엄중 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곁에 있던 병사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병사는 왕을 죽일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말렉 소년은 자기가 사울의 부탁대로 그를 죽였다고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사울을 죽인 자체로 다윗에게 큰 벌을 받을 것도 모르고 사울을 죽였다는 증거로 왕관과 팔에 거는 고리까지 가지고 와서 더 큰 죄를 쌓았습니다. 소년은 다윗이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원수를 자기가 죽였다고 하면 크게 기뻐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하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혜로 선과 악을 판단하기 때문에 쉽게 속지 않습니다. 이 소년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다윗을 속여서 잘 살고 싶다는 소년의 생각처럼 성도들도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이기 위한 기도와 거짓된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이 하나님을 말씀과 믿음을 통해 만났다면 올바른 신앙을 가졌을 것이므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얻을 재물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사울의 죽음을 보았고 다윗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면 다윗은 사울의 소식을 소상하게 전해준 그에게 감사를 표했을 것이고 상을 내렸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사람이 눈앞의 욕심을 버리고 선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를 바라면 소년처럼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부풀려 말할 것이고 상대가 다윗 임에도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거짓말도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살고 싶은 욕심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죄를 지음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장 14절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이것이 바로 소년이 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도 애통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을 이방인이 죽였다는 것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사울을 죽였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이며 왕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문제를 해결할 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법대로 냉철하게 판단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였습니다. 사울이 죽었다면 자신에게 득이 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보다는 우선 순위를 정해서 실수없이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시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결정인지 먼저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의 이런 신앙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통일 왕국을 건설하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판단과 결정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삶의 수준과 지식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해결하는 방법이 달라서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보고 있는 백성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신중하게 행동한 것처럼 성도들은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백성들이 다윗을 더욱 존경하고 따를 것이며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므로 이스라엘이 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은 다윗이지만 그는 인간적인 감정을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큰 걸림돌이 사라지게 하셨다고 믿고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쫓겨 다닐 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사울의 죄가 더 충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사울을 공격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심판하신 지금 그의 고난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리어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는 억울해도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 하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며 백성들을 돌보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했으며 매 순간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리며 선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일 하시도록 인내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며 다윗처럼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29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안에 사는 외국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년이 자신을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것은 이스라엘에 임시로 체류하는 타국인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를 분배 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땅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이방인만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소년은 왕에게 사울의 죽음을 알리면 어쩌면 이스라엘 사람처럼 땅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기만하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실수를 합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나그네로 살고 있는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잘 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을 떠나거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소년이 나는 이스라엘안에 사는 외국인이라고 떳떳하게 말은 했지만 하나님과 다윗의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세상사람들과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을 자신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어리석은 소년과 같습니다. 물론 사울은 심판 받아야 할 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심판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야 할 문제이므로 이방인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사울을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1장 16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소년은 실제로 사울을 죽이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은 사탄의 도구가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증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에게 거짓말을 한 순간부터 아무리 자신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고 변명하면서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다고 소리쳐도 그에게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기 전에 돌이켜야 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 18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말은 곧 그 사람이므로 그가 말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하기 전에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없이 행동하다가 양심에 찔리거나 손해 볼 것 같으면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거나 실수했다며 말을 번복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므로 실수라고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말과 행동은 좋은 관계를 끊기도 하고 나쁜 관계를 회복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하기 전에 늘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년은 욕심 때문에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자신의 말에 의해서 죽음이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소년이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서 하나님을 바로 알았다면 이런 죄는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삶을 배웠다면 다윗을 속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거짓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회개했을 것입니다. 소년이 한 거짓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훗날 우리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너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는 직고하고 싶지 않아도 여러분의 입술로 낱낱이 고하게 될 것이므로 지금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1장 26절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다윗이 어떻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왕자이면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고 다윗이 위험할 때마다 구해 주었으며 섬기기를 다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요나단이 사울과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죽었지만 하나님 앞에 선 두 사람의 사후는 다를 것입니다. 요나단처럼 인생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산다면 죽어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울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왕으로 세워 주셨는데도 욕심과 질투를 버리지 못해서 다윗을 괴롭힌다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아말렉 소년처럼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았으면서도 참 이스라엘이 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호받은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복을 원했기 때문에 그는 악인의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모두 누리면서 감사보다는 더 큰 욕심을 내다가 스스로 불행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욕심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며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언제나 정직하고 선한 삶만 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의 하나님을 아는 그의 믿음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를 늘 회개하도록 하였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용서받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심으로 회개한 다윗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셨고 다윗이 나라와 백성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소년에게 분노하면서도 이제 자신이 받았던 고난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도 실감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고난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끝까지 인내하며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보상받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준비해 주신 왕좌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으므로 세상의 권력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고난을 멈춰 주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원수인 사울이 쫓겨나고 백성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그 자리를 만들어 주실 때까지 참고 견뎌내야만 빼앗기지 않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울 왕과 원수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인내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내기 바랍니다. 억울한 일을 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고난까지 여러분이 성장하는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윗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큰 복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