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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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사무엘하 11장 1-5절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다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람은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행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선한 지식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악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며 비 진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교육시키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그 지식으로 거듭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한 지식을 가르쳤다고 해도 배운 대로 사는 것은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람을 완벽하게 가르쳤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운 대로 선하게 산다면 악이나 배신이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이 이처럼 타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고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 입니다.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노고가 소용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선한 말씀을 주셔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성도가 진리를 깨달아야 사탄의 공격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선한 양심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숙한 삶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인간의 본성을 이기는 강한 능력과 지혜와 명철을 주시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지식과 경험과 지혜를 가졌다고 해도 인간은 높으신 하나님께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늘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악한 인간의 본성을 믿음으로 이겨 내기 위해서 인내하며 노력해야만 진리의 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기심을 버리기 위한 노력과 양심적인 행동을 한다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양보하고 베푸는 사람의 곁에는 항상 좋은 관계를 맺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진리로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성도에게 주어진 책임은 하나님을 만나는 날까지 진리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하며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믿음으로 이겨 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에 도착하는 날까지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살면서 좌절하고 낙심하기도 하며 또 다시 회복하기도 하겠지만 모든 문제를 성령께 도움을 청한다면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과감히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할 때에는 그토록 지혜롭고 올바른 판단을 빠르게 했던 다윗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자 거짓과 술수와 악한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신실했을 때나 지금 타락했을 때나 마음이 모두 진심이기 때문에 그 죄를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을 버리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에 사탄의 역사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조차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둠에 휩싸입니다.

다윗은 모든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켰던 다윗을 왕으로 축복하셔서 섬김 받는 자리에 세워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때가 바로 복을 받고 난 직후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세상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여유가 생기면 세상으로 눈을 돌립니다. 사람은 고난이 사라지면 자신의 의를 세우는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지금의 이 여유로움이 자신의 믿음이 좋거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잃으면 하나님께 응답을 받은 것은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받았고 혹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감사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교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다윗이 지금 누리는 풍요로운 삶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고난 중에도 기도했기 때문에 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잊어버리고 정욕에 휩싸인 것입니다. 다윗은 주위에 있는 강한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고 왕의 자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처럼 다윗이 하나님을 떠나자 그 빈 마음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사무엘하 11장 2절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이스라엘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그 때에 다윗은 궁에서 저녁이 돼 서야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과거에 믿음으로 살던 다윗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군사들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던 사람이었지만 왕이 되자 서서히 충만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댐이 크다고 해도 물이 마르거나 썩기 때문에 댐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믿음이 있다고 해도 인간적인 생각대로 산다면 곧 썩고 말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다윗이 어떤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취한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은 집안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보통 목욕을 했으므로 옆집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행위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그런 법이 있음에도 왕이 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15-16절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윗이 영적으로 나태 해지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혔습니다. 성경에는 목욕하고 있는 여인이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탄이 그의 영안을 흐리게 했기 때문에 여인이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윗은 그녀를 마음에 두는 순간 죄를 낳고 말았습니다. 죄는 성장하기 때문에 마지막엔 살인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죄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살인하게 됩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충성과 믿음이 인간적인 욕심과 정욕 때문에 변질 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렸던 사탄이 승리하는 순간입니다. 그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바닷가에서 모래로 만든 작품을 보았을 것입니다. 모래로 만드는 작품은 노력에 비해 조금만 바닷물이 닿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정말 아까운 작품입니다. 성도들의 믿음도 모래 위에 짓는다면 아무리 높게 쌓는다 할지라도 사탄이 조금만 건드리면 보기 흉하게 무너지고 정욕의 바다가 덮치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오랫동안 신앙의 작품을 만들어도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이 충만할 때는 사탄이 유혹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힘이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면 사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맙니다. 성도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멀리서 잘 보이지도 않는 밧세바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탄은 잠시 방심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윗을 공격한 것입니다. 성령의 울타리가 걷히면 사탄의 공격이 시작되며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면 마음이 어둡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 능력을 상실합니다.

다윗도 성령의 불로 밝혔던 믿음이 사라지자 여인만 보였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믿음의 사람도 이런 죄를 쉽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조심하기 바랍니다. 신하가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라고 정확하게 알려주었지만 다윗은 이미 정욕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밧세바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는 밧세바와 동침한 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완전 범죄를 꿈꾸었지만 죄는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여인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서 두려운 마음에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임신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다윗과 밧세바의 죄가 드러나면 그들은 죽어야 합니다. 밧세바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임신 사실을 알렸고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간계를 꾸미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아기를 가진 밧세바와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강제로 동침 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전쟁터에 있었던 우리아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다윗의 부름을 받고 궁으로 달려왔습니다. 다윗은 전쟁 상황이 궁금했던 것처럼 우리아에게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를 묻고는 집에 가서 편히 쉬라며 왕이 내리는 음식까지 보냈습니다. 지금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우리아를 영웅으로 대접하며 아내와 동침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터에 있는 언약궤와 군사들을 생각해서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시위병들과 함께 잠을 청했습니다. 우리아가 밧세바에게 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당황했습니다. 그를 불러 왜 집에 가서 자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내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아는 정직하고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다윗 같으면 아마도 우리아와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의지하며 큰일을 도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직한 믿음을 가진 우리아가 도리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과 쾌락에 빠져 있을 때는 정직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우리아처럼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다윗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여야만 자기가 살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 간계를 생각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13절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자기 죄를 덮기 위해서 정직한 우리아에게 술을 먹여서 밧세바에게 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요? 우리아는 다윗이 자신의 노고를 치하하는 줄로 알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왕이 주는 술을 마시며 왕이 후덕한 사람이라고 존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충직한 우리아를 마주하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도 우리아도 버릴 수밖에 없는 죄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다윗은 살인을 향해 치닫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아가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동침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다윗이 우리아가 또 집으로 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도 우리아를 죽이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끔찍했을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언덕을 구르며 몸집을 불려 나가는 눈덩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아가 말을 듣지 않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내용은 암몬과 전투를 시작했을 때 우리아를 맨 앞에 세워서 적으로 하여금 우리아를 죽이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압이 동생의 복수를 위해 아브넬을 죽였을 때 다윗은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 요압에게 이번에는 다윗이 살인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악한 자들과 하나로 결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으로 요압을 바라보면 그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요압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도 죄는 그를 한 순간에 악의 구덩이로 던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품은 밧세바라는 죄의 손을 잡고 사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은 이상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요압은 아마도 다윗의 편지를 받고 크게 웃으며 비웃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17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는 다윗이 아끼는 서른일곱 용사 중 하나입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나라에 엄청난 손실일 뿐 아니라 함께 죽은 부하들 역시 용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에게는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미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요압이 보낸 병사가 우리아가 죽었다고 전하자 다윗은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죽을 수 있다고 위로하면서 우리아가 죽은 일로 걱정하지 말고 더욱 힘써 싸워서 그 성을 함락 시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칼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죽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우리아를 맨 앞에 세워서 죽게 한 것은 명백한 살인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계획이 이루어진 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지혜롭고 명철했던 다윗이 죄 때문에 선한 판단력을 잃고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죄는 모든 판단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깨닫지 못하므로 큰 죄를 저지르면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죄에 붙들리면 정직하기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모든 관계를 해칠 때까지 거짓말을 멈추지 않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가 마지막에 맺는 열매는 모든 것들과 단절입니다.

다윗과 밧세바로 인해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에게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아만 죽인 것이 아니라 많은 백성들의 영혼을 죽인 것이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다윗이 만약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했다면 당장은 부끄러운 마음은 있겠지만 살인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아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다윗에게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며 요압의 조롱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27절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우리아가 죽자 다윗은 임신한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습니다. 우리아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들인 다윗의 행동은 악인들의 행동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런 악한 죄를 용서하실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난 아기가 다윗의 열매가 되도록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다면 살인을 저지른 그에게 생명의 열매를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다윗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만약 악하게 사는데도 원하는 대로 일이 해결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아주 버림을 받았다고 믿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조금만 돌리면 바로 축복하시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밧세바를 궁으로 들이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아를 죽인 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죄를 고백하며 악의 길을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생명을 거두시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계획은 성공했지만 영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가 죽었을 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악한 판단으로 인해 큰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제 연단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 채찍이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다윗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연단이라고 부르는 도구로 아픔을 주실 것이며 사랑의 채찍으로 다윗이 도망칠 수 없도록 고통을 주시며 회개를 촉구하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얻은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선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다윗과 같은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늘 신중하게 판단하고 지혜롭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정직한 신앙으로 축복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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