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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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압살롬의 죽음

사무엘하 18장 9-18절

9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10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11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12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14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16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의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런 이름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아버지와 화평하지 못했습니다. 은혜 안에서 평안을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그는 이름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저도 열 명이 넘는 아기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기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평생 사랑 받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여 밤새 기도하며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기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아프면 더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 저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이름을 아버지 하나님은 평화라고 지은 것은 그만큼 압살롬을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압살롬이 늘 하나님과 함께 하며 평안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압살롬이라고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책잡을 곳이 없을 만큼 잘 생긴 압살롬이 복수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이 조금 더 아버지를 믿고 의논했다면 다윗은 기꺼이 도와주었겠지만 압살롬은 아버지를 판단했을 뿐 어떤 일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이든 악이든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 중에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이런 때를 위해서 선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압살롬은 이복 형 암논에게 자기 여동생 다말이 성폭행을 당하기 전에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자 그는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한 순간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말았습니다. 형편없이 망가져서 우는 여동생을 보면 화도 나겠지만 조금 침착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거나 아버지와 상의했다면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이자 그는 서서히 판단력을 잃었고 반역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한 순간에 망가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서서히 어두워질 때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만 빛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헤브론에서 사람들이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고 나팔을 불며 환호했을 때 그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넘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면서 어쩌면 아버지를 완벽하게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판단력을 잃으면 이렇게 자신을 통제할 힘이 사라지고 맙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를 때 압살롬은 아버지의 후궁을 겁탈하는 이런 악행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악한 아히도벨의 계략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죄를 짓고도 그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가 저지른 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었으며 다시는 아버지 다윗에게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높은 담을 쌓은 압살롬이 다윗을 공격하기 위해서 궁을 나섰던 이 때가 그의 마지막 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힘을 과시하려고 했던 압살롬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이 깨졌을 때 하나님께 받는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만약 압살롬이 서운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었다면 사람의 서운한 감정을 이용해서 사람의 인생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왕이며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도 실수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버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배웠기 때문에 다윗의 연약한 부분을 감싸주었다면 훨씬 좋은 결말을 맺었을 것이며 생명을 잃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를 공격했던 압살롬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할 시간조차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인데 배신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돌이킬 기회 없이 큰 책망을 받게 되므로 성도들은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18장 5절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다윗은 출정하는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 장군에게 압살롬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그를 살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용서한 아버지의 전쟁은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것입니다.

지금은 자녀를 해치는 부모들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녀를 죽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이 와중에도 살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요압의 악함을 보게 됩니다. 요압은 압살롬처럼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 다윗을 괴롭히기 위해서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압살롬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자기에게 큰 이득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다윗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고 압살롬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선과 악함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그는 번번이 악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버지 신앙을 흉내라도 냈다면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 역시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압살롬은 이미 혈기와 존속살해와 반역과 욕심에 매여 마음이 어두워져 귀를 닫아 버렸기 때문에 누가 권면 한다고 해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다윗은 직접 전쟁터에 나가려고 했지만 장군들이 극구 말리자 군사들을 셋으로 나누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를 군대장관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이 세 사람에게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장군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을 함께 들은 백성들은 아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다윗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장군들은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다윗에게 데리고 와야 했지만 요압은 자기 마음대로 압살롬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무엘하 18장 8절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양쪽 군사들은 에브라임 수풀 근처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 지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수풀에서 이만 명가량의 군사들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칼보다 수풀에서 죽은 자가 많다는 것은 다윗 군사를 피해 도망가던 압살롬 군사들이 수풀 속에 있는 구덩이나 벼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만약 압살롬의 군사 이만 명이 다윗의 군사들과 맞붙어 싸웠다면 다윗은 크게 패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기게 하시는 방법으로 수풀 속에 있는 구덩이나 벼랑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군사와 마주치자 놀라서 노새를 타고 도망하던 중 평상시 그의 자랑이었던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그를 버리고 노새가 도망치자 그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감히 아버지이자 믿음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압살롬은 이제 나무에 매달린 채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이런 고난을 당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돕는 자를 보내어 살려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가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요압의 부하는 곧바로 요압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요압은 다윗이 그토록 간절히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 왜 당장 압살롬을 쳐서 죽이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지금 당신이 나에게 은 천개를 준다고 해도 나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며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요압의 부하이지만 왕의 명령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소년의 이런 판단과 결정은 성도들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성도에게는 사람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먼저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났다면 절대로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더 단단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진리를 더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거짓목회자와 이단을 구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년이 압살롬을 죽이지 못하겠다고 하자 요압은 지체하지 않고 작은 창을 가지고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기회주의자인 요압은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힘을 가졌다고 판단했을 때는 다윗을 협박해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이 자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자 망설일 것도 없이 죽인 것입니다. 다윗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그는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을 통해 큰 권력을 가지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자 압살롬을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의 선택은 모두 악이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은 불행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이미 모든 힘을 잃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굳이 죽여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자신이 나서서 압살롬을 죽일 필요가 없었지만 이런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됩니다. 압살롬이 죽고 사는 것은 생명의 주인 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며 다윗이 왕으로서 판단해서 결정 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요압은 무방비 상태로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만약 요압이 압살롬을 살려서 다윗에게 데리고 왔다고 해도 그는 반역자이기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굳이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다윗에게 맡겼다면 요압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백성들은 다윗을 잘 섬기는 요압을 존경했을 것입니다. 요압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망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요압이 먼저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긍휼하심이 얼마나 큰지 백성들에게 알려 줄 기회를 막고 말았습니다.

성도들도 이런 잘못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혼동하여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요압처럼 자기가 판단하고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압은 압살롬을 창으로 찔렀는데도 숨이 끊어지지 않자 부하들에게 찌르라고 하여 이 죄에 동참하도록 하였습니다. 앞선 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늘 조심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위정자 그리고 목회자와 가장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죄에 동참할 수도 있으므로 앞선 사람들은 늘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무엘하 18장 18절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모두 일찍 죽었는지 아니면 압살롬처럼 뛰어나지 못해서 아들이 없다고 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자기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만든 비석이 이제 압살롬의 죽음을 알리는 수치스러운 비석이 되어 그의 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고 싶은 과도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자신을 스스로 실패한 인생으로 몰아갔습니다. 아버지를 쫓아내고 그의 후궁들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기념비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인간이든 죽음에 도전해서 이긴 사람은 없습니다. 명예를 쌓고 재물을 모으고 세상이 두려워할 권세를 가졌다고 해도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증거가 바로 죽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므로 모든 사람은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건강에 좋다는 것을 구해서 먹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두시면 모두 소용없는 노력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현명한 것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압살롬처럼 죽은 다음 자신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서 넓은 땅을 마련하고 비싼 대리석으로 무덤을 꾸미며 잔디를 심어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은 다음 비석을 금으로 만들어 세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압살롬처럼 비석에 자신의 공적을 과장되게 써서 후대에 알린 들 그것이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신의 죽음이든 둘째 사망이든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는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전기 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새들도 날아가는 방향에 따라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전기 줄에 앉아 있을 때는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세상은 본향으로 가기 위해서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압살롬처럼 권력에 욕심이 생기거든 인생의 마지막에 만날 죽음을 생각하며 잠깐의 욕심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욕심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너무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눈물을 뒤로한 채 아름다운 육체도, 부질없는 욕심도, 웃고 울던 시간도, 그를 따르던 사람과 소유도 모두 이 세상에 놓고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압살롬과 함께 영원한 사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관심이 압살롬의 생명이었던 것처럼 주님의 관심은 오직 구원받아야 할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돌이킬 기회도, 다시 회복할 기회도, 용서하고 용서받을 기회도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압살롬은 선한 길에서 너무 멀리 갔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배신한 압살롬과 기회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른 요압은 돌이킬 기회를 놓치고 영원한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만 남아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 살았기 때문에 암논과 압살롬이 죽었다고 자책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더 품었다면 자녀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압살롬과 요압이 큰 죄를 지었지만 다윗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밧세바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말을 암논의 방에 홀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압살롬이 억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암논을 책망했다면 큰일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에게 다윗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속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까? 다윗이 죄를 짓고 믿음을 멀리했을 때 하나님과 멀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고 요압은 다윗을 더욱 업신여겼으며 사탄은 다윗의 가정을 마음대로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그 잠깐 사이에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딸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잘못을 깨닫고 돌이켰지만 죄의 흔적은 그를 평생 괴롭힌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까? 여러분은 분노와 혈기 그리고 생명과 미래를 성령께 맡기고 평안 합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이 자신의 미래와 자손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사후에 만날 하나님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정직하고 진실된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 압살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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