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나가기
15장

끊어지지 않는 죄의 끈

사무엘하 14장 21-33절

21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부모의 사랑을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그 사랑이 정말 참 사랑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른 자녀보다 내 자녀가 부족할 때 부끄럽거나 화가 난다면 그 사랑은 자녀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비록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내 필요와 자랑을 위해서 자녀를 사랑하는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부모도 있지만 자신을 빛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부모도 있기 때문에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듭니다.

피를 나눈 가족도 이런데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세상은 더 심할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가까이하고 손해가 되면 멀리하는 곳입니다. 이해관계를 따져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잔인할 만큼 쉽게 배신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상대를 속여 이득을 취하고 꾀가 많은 사람의 처세술을 배우기 위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주위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어둠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밝게 보는 눈이 없으면 악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세상에서 죄 된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의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도 해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높은 지식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윗이 악령에 굴복하자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했고 아버지의 역할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으며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지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사라졌으므로 사탄의 공격을 방어할 능력과 문제를 판단할 지혜까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한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성도들은 성령께서 자신의 삶을 어디로 인도하는지 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예민하게 되어 사탄이 접근하는 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어서 일의 이치를 말씀의 법에 따라 판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 지혜롭고 명철했던 다윗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말씀과 멀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윗도 지금까지 자신이 올바르게 판단을 했고 결정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자신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단선지자가 암 양을 빼앗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했을 때 놀랐던 것입니다. 아들을 잃었을 때 회개했지만 이미 그의 영적 상태가 사건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암논과 다말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압살롬을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하자 일어나는 일들의 전체 상황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문제는 계속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돌이키려고 노력한다면 죄에서 파생되는 같은 문제를 두 번 겪지 않습니다. 한 번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간파할 수 있고 성령께서 주신 지혜로 사탄의 계략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마음의 고통은 남을 수 있으므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문제들이 신앙을 흔들기 위한 어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르면 깊은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배운 감정과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잊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흔들림 없이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책망할 자를 책망하고 위로할 자를 위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문제들을 계속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절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압살롬이 형 암논을 살해한 후 외가로 도망을 가서 삼 년이 흐르자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습니다. 이 때 아버지로서 혹은 왕의 권한으로 압살롬을 불러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었다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올바르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자 그의 마음을 알아챈 요압은 드고아에 사는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서 비유 하나를 가르쳐주며 다윗에게 가서 전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여인은 요압의 부탁을 받고 다윗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아들이 둘이 있는데 그들이 들에서 싸움을 했고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형이 아우를 쳐서 죽였습니다. 온 족속이 동생을 살인한 큰 아들을 죽여 한다고 하는데 그가 죽으면 저희 집은 상속자가 끊어지는 것이니 왕께서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여인의 말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아픔과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쉽게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네 큰아들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내가 막아 줄 것이니 네 아들을 죽이려는 사람을 나에게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대답을 들은 여인은 그제야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왕께서는 남의 아들은 살인을 했는데도 살려주겠다고 하시면서 왜 당신의 아들 압살롬은 용서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후계자인 압살롬의 귀환을 그토록 기다리는데 당신의 아들은 왜 용서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다윗은 여인의 말을 듣고 나서 요압이 꾸민 음모라는 것을 알았지만 영적으로 빛나던 전에 다윗 같으면 여인이 충고하기 전에 알았을 것입니다.

왕인 다윗에게 감히 이런 행동을 요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윗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에게 도망을 다니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다윗이 아니라 우리아를 죽인 죄인 다윗이기에 함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요압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다윗을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는 교만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다윗의 문제이므로 요압이 다윗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요압은 의도적으로 자기의 의중을 여인을 통해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다윗이 여인의 말을 듣고 흔쾌히 승낙을 하면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고 다윗이 분노하면 여인이 책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나단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선하게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윗을 직접 찾아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여인을 이용해서 자기 생각을 대신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여인의 뒤에 숨어서 모든 책임을 여인에게 떠넘기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사탄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이 지혜롭지 못한 판단과 결정을 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곁에 두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는 그를 속이려는 사람이 있어도 속지 않았지만 하나님과 멀어지자 그는 모든 것에 속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삶에도 적용되는데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람들은 영적으로 빛이 나는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우면 상황을 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이려는 사람과 업신여기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성도는 인간의 지혜로 살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면 자연스럽게 선한 사람을 구별 할 수 있습니다.

나단선지자와 같이 선한 사람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회개하게 하였으며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요압과 요나답과 같이 악한 사람은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계략을 꾸미므로 다윗은 곁에 누구를 둘 것인지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은 요압이 여인을 통해 간계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더욱 지혜롭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압살롬의 반역을 불렀고 간사한 요압이 압살롬을 살해하는 불행을 막지 못했습니다. 솔로몬 대신 왕이 되려고 욕심을 부리던 아도니야의 반역도 막지 못해서 자녀들이 죽이고 죽는 불행을 초래하였습니다. 다윗의 욕심과 정욕과 쾌락의 죄가 가정을 몰락시킨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진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믿음으로 충고하는 선한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의 권면이 듣기에 불편하더라도 올바른 말씀이라면 듣고 행해야만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다윗의 자녀들을 이간질했던 요나답이나 다윗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요압과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곁에 있다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며 그로 인해 여러분의 인생은 늘 고단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요압은 다윗을 돕는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헌신한 것처럼 보이며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다윗과 선한 일을 도모하지 않았고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요압과 같은 사람에 속지 말고 하나님께 악한 자와 악한 영이 삶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도와 달라고 늘 기도 드리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14장 21절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다윗은 자신이 우유부단하여 압살롬이 살인할 수밖에 없는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그술로 도망간 압살롬을 삼 년 동안 만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데려오라는 여인의 간청이 요압이 꾸민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압살롬을 부른 것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전에 성령으로 충만한 다윗 같으면 압살롬을 만났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인지 백성들은 살인한 압살롬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일을 처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전혀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이기 때문에 압살롬이 보고 싶을 수 있겠지만 아버지이기 전에 왕으로서 그리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압살롬이 형을 살인한 죄를 책망 받고 회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용서한다면 그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가 불러서 요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2년 동안 아버지가 만나주지 않자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아버지에게 크게 책망을 받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과 아버지께 돌이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더 큰 일을 만들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식이기 전에 죄인이며 요압은 권력을 잡으려는 야욕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다윗은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아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품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압살롬의 마음에 원망만 쌓이도록 시간만 보냈기 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후궁들을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단호하게 결단하지 못한 다윗의 신앙이 큰 고난을 가져왔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결정을 통해 만들어질 결과에 대해서 칭찬과 책망 중에 어떤 응답을 하실 것인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압살롬은 아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용서할 수 있고 품에 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떠나서 그는 고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아들이기 전에 하나님의 법대로 공정하게 처리해야만 백성의 신뢰도 회복하고 압살롬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어둠의 영이 지배하는 곳이지만 교회는 성령과 악한 영이 함께 역사하는 곳이기 때문에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영 분별을 해야 하고 믿음의 반석에 서야 합니다. 교회는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고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죄는 회개해야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용서를 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음 아프더라도 더 날카롭게 영적으로 책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를 속이기 위해서 노력하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현대 교회들은 성도들을 제대로 치리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올바로 치리 해야만 성도들이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데 사람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교인을 빼앗는 교회의 병폐로 인해 교인들이 쉽게 교회를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치리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말씀의 법으로 성도를 치리 하고 성도들은 치리를 받고 회개하며 믿음을 회복한다면 기독교는 결코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와 목회자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치리를 하면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씀은 희석되고 교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보편화되자 목회자는 말씀보다 세상의 복을 전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는 어쩌면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한 것에 만족하며 가정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암논이 다말을 겁탈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고 다말이 강하게 거부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며 압살롬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살인한 것이므로 자신의 죄라는 생각보다 그들의 죄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런 생각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충만하면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므로 자신에게 이 모든 죄를 살피고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은 아비의 죄이고 자녀들의 마음을 면밀히 살피지 못한 죄이며 가장으로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죄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 시켜서 암논과 압살롬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의 탓만 하다가 우유부단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어려운 상황을 남의 탓만 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윗은 아마도 자신의 신앙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깊이 회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대로 처리하다가 압살롬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만약 나단이 전한 말씀을 잊지 않고 요압과 압살롬을 책망했다면 솔로몬이 반역한 아도니야를 죽이는 불행까지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늘 앞으로 일어날 일과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일을 처리했던 다윗이 영적 지혜를 잃자 계속해서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평상시에는 믿음으로 잘 살다가 자녀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가 생기면 전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 성도에게 저런 세상적인 면이 있었는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판단력이 저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실망스러울 정도로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런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자녀들이 보호받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생각이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도울 기회조차 막아버리는 잘못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큰 문제로 만들기 때문에 영적으로 예민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일어난 문제를 전체적으로 살피면서 두세 걸음 앞서 일의 진행 상태를 체크한다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성경은 요압이 계략을 꾸며서 압살롬을 다윗에게 데리고 온 사건을 나열하다가 갑자기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아름답다는 것과 한군데도 흠이 없다며 그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굳이 성경에 압살롬의 출중한 외모를 기록한 것은 세상은 성품보다 겉모습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비록 죄인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죄보다 겉모습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인 압살롬을 칭송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토록 칭찬했던 아름다운 머리털 때문에 압살롬이 요압에게 죽게 된 것을 보면 인간의 자랑이 너무 보 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압살롬도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동생이 암논에게 강제로 강간을 당했는데 오빠로서 가만히 있는 것이 옳으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감정만 앞세워 복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암논을 심판하실 때까지 기다렸다면 원수를 갚아 주시는 것은 물론 압살롬과 다말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셨을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지만 다윗이 끝까지 인내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던 것처럼 압살롬은 암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이며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어쩌면 다윗이 생명을 아끼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울이 알았기 때문에 다윗을 더 괴롭혔을 것입니다. 사울의 악행을 알면서도 끝까지 인내했던 다윗은 결국 사울이 아들들과 함께 죽는 것을 보았고 그 가정의 몰락도 보았습니다.

살다 보면 선한 사람이 언제나 더 고통을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훗날을 살피지 않고 자기가 편한 대로 행동하지만 선한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죄에 붙들리자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을 좋아하고 죄를 싫어하신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지혜롭던 다윗이 하나님과 멀어지자 모든 일을 인간적인 판단과 감정에 의해 처리하므로 실수를 연속해서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을 보고 어리석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나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요압과 같이 간사하고 간교한 사람을 곁에 두지 말고 압살롬처럼 자신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적인 사람을 멀리하기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판단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자신의 믿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 끊어지지 않는 죄의 끈
60% · 15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