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죄를 돌아본 다윗
24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30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1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32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33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34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사람들은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세월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는데 기쁨만 있는 인생도 슬픔만 있는 인생도 없습니다. 수많은 사건 중에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처럼 큰 고통은 없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도 자기 마음대로 관계를 해치는 것은 당하는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아주 슬픈 일입니다.
다윗은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던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은혜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다윗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공격을 당해 궁에서 쫓겨난 다윗은 그동안 가졌던 세상의 권세와 노력과 갈망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식에게 쫓겨난 부끄러운 처지에 놓였지만 어려움에 처하자 도리어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다시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축복의 통로인 것 같습니다.
압살롬은 삼 년 만에 외가에서 돌아왔지만 이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지 않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면서 용서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반역을 꾀했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을 협박하여 2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가 굳이 아버지를 만나 용서를 받으려고 한 것은 반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5장 6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압살롬은 송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위로해주는 척하며 백성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말을 압살롬이 잘 들어주자 백성들은 압살롬이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것을 알기에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무능함을 전했고 속은 사람들은 다윗을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압살롬의 간사한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사람들은 다윗 때문에 압살롬이 억울하게 도망 다녔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충분히 포섭했다고 생각한 압살롬은 다윗을 또 다시 속였습니다. 자기가 외가에 있을 때 서원한 것이 있는데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하나님께 갚고 싶다고 하자 다윗은 어떤 서원인지 묻지도 않고 보내 주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선한 마음을 또 다시 이용한 것입니다.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포섭하였고 이제는 아버지를 왕좌에서 밀어내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사무엘하 15장 10-11절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기 위한 목적으로 헤브론으로 내려갔습니다. 어이없는 것은 다윗의 신하 이백 명이 압살롬의 계획을 눈치 채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신하들은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합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고 아버지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하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압살롬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생각 없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압살롬의 반역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권력구조를 가진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므로 고위 관직들은 다윗이 어떤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는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거짓말에 속아 다윗을 배신하는 자리에 참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면 교회가 분열되고 그로 인해 영혼들이 실족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악한 영에 붙들리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본이 되지 못하는 목회자와 직분 자들이 도리어 귀한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천국 문을 막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과 사탄의 영이 함께 역사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진리로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은 물론 자신의 영혼까지 지옥에 떨어뜨리게 됩니다.
훗날 압살롬을 따른 사람들은 사망에 빠졌고 다윗을 따른 사람들은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 자신이 머물 자리를 잘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아히도벨과 함께 반역을 꾀했는데 아히도벨은 다윗과 수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모사로서 사명을 감당했던 지혜자입니다.
압살롬이 신하 이백 명에게 헤브론으로 가서 제사 드리자고 했을 때 압살롬은 아히도벨도 불러서 이 일에 동참시켰습니다. 이 때 아히도벨이 압살롬이 돌이키도록 지혜롭게 행동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다윗의 모사로 살도록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히도벨은 이미 분위기가 압살롬 쪽으로 기울었다는 생각에 압살롬의 모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히도벨이 생각하기를 압살롬은 잘못을 해도 아들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겠지만 자신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다윗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악한 계략을 꾸민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한다면 다윗에게는 치욕적인 일이기 때문에 압살롬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죄를 짓도록 하였습니다.
서운한 마음과 배신은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합니다. 압살롬은 아무리 아버지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지만 아히도벨의 악한 꾀를 들었을 때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판단해야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이 문제를 보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올바로 판단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이미 죄에 붙들려 판단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하 23장 34절에 보면 마아가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사무엘하 11장 3절에 보면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아들은 엘리암이고, 엘리암의 딸이 바로 다윗이 취한 밧세바였으며 그 여인의 남편이 우리아입니다.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이므로 우리아를 죽인 다윗에게 얼마나 큰 분노의 감정이 있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우리아의 죽음과 밧세바의 불행이 억울했겠지만 직접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다면 분명 그의 억울함을 풀어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아를 죽이고 손녀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악행은 분명 죄이기 때문에 아히도벨이 복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복수의 감정을 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아야 합니다. 만약 다윗이 이런 아히도벨의 극심한 고통을 알고 그를 위로하면서 용서를 구했다면 이렇게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또 한 사람을 악한 길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다윗에게 악감정이 있는 아히도벨을 압살롬은 반역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했다는 말을 듣고 그와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백성들이 다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궁을 떠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또 한 번의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나단선지자를 통해 네 아내들을 백주에 이웃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는데도 그는 후궁을 궁에 남기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생각 없이 행동하다가 계속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백주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도록 압살롬을 부추겼습니다. 복수심이 극에 달하자 죄가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아버지의 아내를 범할 정도로 인간은 악해 질 수 있으며 그보다 더한 죄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 되었을 때 군사들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다윗을 보면 그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나면서 아마도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배신으로 아파하는 자신처럼 삶이 편안해지자 쉽게 배신한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도 아프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과 싸울 수 없어서 궁을 떠나는 다윗을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들은 손익을 따지지 않고 다윗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편안한 삶을 버리고 목숨을 바칠 각오로 다윗을 따랐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 중에 블레셋 사람 잇대도 있었는데 그는 요압과 아비새처럼 장군이었고 본국인 블레셋 가드에서 대단히 용맹을 떨쳤던 큰 용사였습니다. 다윗에게 은혜를 입고 귀화한 잇대가 육백 명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을 따르겠다고 하자 다윗은 잇대가 곤경에 처할 것을 염려하여 궁에 남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피난을 떠나는 입장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전쟁이 사람의 의지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끝나는 전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힘이 될 수 있는 잇대를 돌려보내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잇대는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는 다윗에게 이 전쟁에는 자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며 같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와 내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는데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그리고 내가 죽든지 살든지 나는 왕과 함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잇대는 지금 다윗을 따라 궁에서 나가면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윗을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자기와 백성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 알기에 충성을 맹세한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인간의 감정보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잇대가 얼마나 성숙한 인격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에 배신했지만 잇대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 것을 알기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잇대가 다윗이 지은 죄를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죄는 하나님께서 치리 하실 것이고 자신은 다윗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다윗과 동행하였습니다. 지금 피를 나눈 아들은 아버지를 버렸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이방인 잇대는 다윗을 지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은혜를 갚는 마음은 교육보다는 인성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도 배신하는 가룟 유다가 있는가 하면 이방인인 잇대처럼 은혜를 목숨으로 갚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택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였지만 이방인인 성도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영원한 나라를 보느냐 아니면 인간이 중심이 되어 세상을 보느냐 차이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잇대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면 비록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갚을 줄 아는 선한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15장 24절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사독은 다윗의 왕권을 수호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제사장입니다. 사독은 압살롬이 반역을 꾀하자 아비아달 제사장과 레위사람들과 함께 언약궤를 가지고 궁을 탈출했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언약궤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독에게 언약궤를 궁으로 가져가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다윗의 명령대로 반란이 끝날 때까지 궁에서 궤를 수호하였습니다. 다윗이 다시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독에게 언약궤를 가져가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여호와께 은혜를 얻게 되면 궤를 다시 보게 하실 것이고 만일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어떤 고난이 와도 감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다윗의 진심이고 믿음입니다. 그는 언약궤를 가졌을 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실 때 비로소 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면 압살롬과 백성들은 다윗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언약궤가 함께 있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아렉사람 후새를 보내주셨습니다. 다윗이 도망가던 중 감람산에 도착했을 때 다윗의 친구이며 언제나 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었던 모사 후새가 울면서 다윗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다윗은 후새에게 “너는 궁으로 들어가 나를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온 것처럼 속여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방해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히도벨의 계략은 너무 뛰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처럼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 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후새와 같은 모략가가 필요했습니다. 후새가 궁에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듣고 언약궤를 지키고 있던 사독에게 알려주면 사독은 곧바로 다윗에게 전할 것이며 거기에 맞는 전략을 자신이 세우겠다고 하자 후새는 머뭇거리지 않고 궁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서로 믿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만약 후새가 다윗을 배신하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압살롬이 믿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후새는 다윗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윗도 사랑했지만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후새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아히도벨의 계략을 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성공은 곧 다윗의 죽음이며 이스라엘의 패망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짧은 인생을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사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믿음으로 돕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윗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도 다윗을 도리어 해하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통해 알겠지만 다윗이 준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준 것이기 때문에 다윗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지혜 없는 행동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다윗이 죄가 없어서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압살롬과 아히도벨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악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을 실패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6-17절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압살롬과 아히도벨처럼 다윗에 대해 거짓 증거를 전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것은 사탄의 술수입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빼앗는 것처럼 이웃의 집을 탐내고 소유를 탐내는 것은 이웃이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고 있는 평안과 안식 그리고 믿음을 빼앗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술수입니다. 또한 다윗을 공격하고 방해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므로 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암논의 정욕과 압살롬의 살인은 다윗의 죄는 아닙니다. 아버지로서 자녀를 올바로 키우지 못한 자책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린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도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를 도와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쫓기는 고통스러운 이 상황에서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배신의 아픔만 붙들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 부대를 준비해서 다시 믿음을 회복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숙한 믿음으로 새 부대를 준비하는 사람을 언제나 도와주므로 성도들은 힘을 내어 일어나야 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고집했다면 그는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언약궤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어야 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올바로 서게 하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고집했던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생명을 사랑했던 믿음을 회복했기 때문에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죄를 지을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으며 또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고난이 높은 산처럼 아득해 보여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신앙이 변질되었을 때 압살롬이라는 채찍을 마련하신 것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선택한다면 받은 은혜보다 더 큰 고난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다윗은 궁에서 쫓겨나가면서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당한 고난은 자기의 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탓하면 피해의식이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온전히 문제를 파악할 수 없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죄가 보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난처라는 것까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성도의 지혜이며 축복입니다.
언약궤를 돌려보낸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처럼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겸손과 순종을 회복했을 때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여러분은 겸손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새 부대를 준비하는 성도가 된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지 않는 자녀가 되어 넘치는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