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과 아히도벨의 실패
15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6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8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20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하니 여인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21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22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23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요약본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외적을 물리쳤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지혜로운 많은 사람들이 거북선과 총과 탄약과 지도를 만들어 이순신을 도왔다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다윗의 곁에도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언제나 돕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궁으로 들어온 후새와 언약궤를 지킨 사독과 잇대와 같이 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압살롬의 모사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첫 번째 계획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다윗을 죽일 두 번째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윗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아히도벨은 만 이 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다윗을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100% 성공할 것이므로 다윗의 미래는 보장받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히도벨처럼 다윗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즉 예수님의 곁에 있던 가룟유다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다윗을 잘 모르는 사람은 사정과 형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격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다윗에게 받은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더 악랄하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반역에 성공한 압살롬은 갑자기 후새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압살롬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한 계획을 실행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을 압살롬으로부터 들은 후새는 완강하게 반대하며 반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새가 말하길 왕도 아시겠지만 그들은 모두 용사입니다. 지금 저들의 상태는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격분해 있습니다. 더구나 병법에 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승리 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아마도 기습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다윗을 공격했을 때 분명히 기습 공격을 당하여 압살롬의 군대가 패배할 것이라고 간곡하게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후새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이 그토록 아버지를 죽이려고 쫓아다녔지만 다윗이 병법에 능해서 결국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버지를 따라간 용사들은 모두 전쟁에 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군대가 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략을 반대하고 있지만 얼마나 떨렸을 까요? 설득에 실패한다면 자신은 물론 다윗과 백성들은 꼼짝 없이 죽은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압살롬의 결정에 따라서 다윗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고민하는 것 같이 보이자 후새는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적은 숫자로는 다윗을 이길 수 없으니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그러니까 이스라엘 전체를 모아서 왕이 직접 출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군사들을 데리고 출정을 한다면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다윗과 그의 백성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부추겼습니다. 후새가 듣기 좋은 말로 계속 유혹하자 압살롬은 아히도벨보다 후새의 전략이 훨씬 좋다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후새의 말에 속아서 압살롬이 마음을 바꾸어서 그렇지 아히도벨의 전략이 훨씬 뛰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군사의 수가 적기도 했지만 아내들과 연약한 백성을 많이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히도벨이 말한 만 이천 명의 군사로 충분했습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직접 출정을 할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지자 아히도벨이 아무리 옳지 않은 판단이라고 간청을 해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만약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압살롬이 실행했다면 다윗은 크게 곤경에 처했겠지만 하나님께서 일의 형세를 뒤바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도록 역사하시므로 의인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악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센 믿음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 악인의 계획조차 여러분이 모르고 지나가도록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압살롬이 후새의 말을 들은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리기 위해서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이 실패하도록 그의 귀를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하나님께서 막을 것은 막아 주시고 세울 것은 세워 주셔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알지 못하고 지나간 사탄의 공격이 얼마나 많았는지 안다면 지금 이렇게 마음대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지혜롭게 모든 일을 판단했기 때문에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들의 지혜를 두려워하거나 세운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도록 역사하시므로 지금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을 우리가 그대로 당했다면 지옥과 같은 인생을 살면서 늘 원망과 불평으로 고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하든지 아니면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불평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과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그 은혜를 늘 깨닫고 감사할 때 다윗처럼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자 그를 죽이려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다윗과 같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17장 23절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아히도벨은 후새가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 그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다윗의 승리를 예감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을 얻은 후새는 곧바로 사독과 아비아달을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빨리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늘 밤에 나룻 터에서 자지 말고 요단을 건너가라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독은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불러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다윗에게 가고 있을 때 마침 그 현장을 본 압살롬의 부하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부하는 바로 압살롬에게 보고했고 압살롬의 종들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잡기 위해서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여인의 지혜로 우물에 숨은 그들은 군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다윗에게 달려가 후새의 말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 두 사람이 압살롬의 군사들을 피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압살롬은 일단 의심해야 하는데 그는 승리에 취해서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자신을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성도들도 세상 일이 문제없이 잘 해결된 것 같으면 사탄이 비밀리에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승리에 취해 마음대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어둠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늘 예민하게 대처해야만 실패하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전에는 반역을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운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의 지혜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신중하게 백성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백성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궁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하자 승리에 취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일함이 후새의 계략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후새의 부탁대로 밤새 백성과 함께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자신의 계략대로 실행했다면 우리아의 원수인 다윗을 잡을 수 있었는데도 후새의 명철한 지략에 밀려서 크게 실패하자 실망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예지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압살롬이 후새의 말을 듣는 것을 보고 이제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압살롬에게 실망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 아니라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으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 지금의 삶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더 나은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귀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압살롬은 지혜로운 모사 아히도벨을 만나고도 영원한 사망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다윗을 아버지로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특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더구나 다윗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압살롬은 복수심과 욕심에 매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것을 보면서 목회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성도에게 말씀을 맡겨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전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영원한 세계에 대해 전해야 하며 여러분의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살면서 천국만 소망한다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정말 천국을 소망한다면 이 땅에서 믿음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지옥은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된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하나님께 반역한 사탄을 심판하기 위해서 만드신 곳인데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다가 사탄과 함께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없다고 세뇌시키며 인간이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지 인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속아서 분별력을 잃고 사탄에게 굴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영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아히도벨은 이제 압살롬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완벽하게 후새에게 실패했고 압살롬 역시 다윗을 공격하려는 이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의 의가 강했을 뿐 아니라 복수심이 컸기 때문에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았다면 빨리 돌이키는 것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어두워졌기 때문에 사망을 향해 달렸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버지를 배신한 압살롬을 악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후새에게 속은 그를 사용할 수 없다는 허탈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자신의 모략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후새를 보면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정리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멀리 보기 바랍니다. 눈앞의 일만 보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력을 잃기 쉽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매이면 하나님도 사람도 인생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혜를 주셨던 하나님을 생각했다면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만약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번이라도 했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 때 지혜와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는 누구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것으로 아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이 변질되거나 배신했다고 해서 주신 지혜와 은사를 빼앗지 않습니다. 지혜와 은사를 빼앗는다면 사용할 수 없으니까 더 큰 죄를 짓지 않겠지만 빼앗지 않으니까 그 지혜와 은사를 악한 곳에 사용하게 되어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와 은사가 변질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악하게 사용하므로 귀한 생명을 지옥으로 이끄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은사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런 사람들은 사탄이 준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처음에 하나님께 지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렸고 귀한 은사와 지혜를 자기의 것으로 사용하면서 신앙이 변질 되었을 것입니다.
은사는 방언이나 예언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말씀을 전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 모두 은사입니다. 그 은혜를 자기에게 영광으로 돌리는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은사를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7장 27절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압살롬은 후새의 말 대로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을 건넜습니다. 진심으로 압살롬을 도와주었던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지금 그의 주위에는 다윗을 돕는 사람들만 있으므로 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돕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압살롬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다윗을 공격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압살롬과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궁을 나왔던 다윗은 가는 곳곳마다 돕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압살롬과 다윗이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살아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자 전에 다윗의 신하를 조롱했던 하눈의 동생인 소비와 므비보셋을 보호하고 있었던 마길과 다윗을 존경하는 바르실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양식을 가져와 심신이 지친 다윗과 백성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건 없이 도왔습니다. 다윗이 다시 궁으로 돌아갈 희망도 은혜를 갚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다윗보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헌신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압살롬이나 아히도벨처럼 살 수도 있고 다윗과 그의 동역자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압살롬에게 쫓기는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너는 다윗처럼 살아주겠느냐고 물어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도울 것인지 아니면 당장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압살롬을 위해서 일할 것인지 묻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 그들의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하나님께서 지금 누구를 돕고 계시는지 어떤 판단과 행함이 옳은 것인지 알려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정답을 알려주시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처럼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압살롬과 아히도벨은 다윗을 공격할 수 있었고 후새와 사독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다윗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보지 말고 그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보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는 좁은 길은 생겼으므로 그 길을 걸어가든 아니면 넓은 길로 가든 그것은 여러분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세상 곳곳에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고 좁은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성경책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크게 확대된 천국지도까지 우리에게 주셨지만 좁은 길을 버리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은 모두 사람의 결정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아버지를 버리고 세상의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압살롬을 따를 것인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다윗을 따를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이 결정하기 바랍니다.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인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려고 믿음을 지키는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을 하기 바랍니다.
그 판단과 결정이 천국과 지옥을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큰 유혹을 받으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믿음으로 잘 판단한다면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멀리 보면서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사와 지혜로 사명을 감당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