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지은 죄의 결과
17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18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9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20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21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22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24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요압은 다윗과 함께 모든 연단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다윗을 왕위에 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고 그 역시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를 통솔하는 군대장관이었기 때문에 그가 나쁜 마음을 갖는다면 나라의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요압은 자신의 힘을 믿고 다윗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왕이 생명을 아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압은 다윗의 허락도 없이 아브넬과 전투를 하여 많은 군사들을 잃었습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동생 아사헬을 잃은 것입니다. 요압의 삼형제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뒤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며 교만해졌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연단을 견뎌내고 사울 왕이 없는 헤브론으로 가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선하고 겸손하게 백성을 통치하는 것을 보면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요압이 하나님과 다윗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보셋의 군사들과 의미 없는 전투를 하며 수백명의 생명을 하찮게 여겼던 요압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이 죽자 복수를 위해서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다윗이라면 군사를 잃을 수 있는 이런 전투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며 믿고 의지했던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힘을 갖게 되자 하나님과 다윗을 무시하게 되었고 다윗과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격과 믿음 그리고 신앙에 따라 동일한 일을 겪더라도 이렇게 다른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해석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고난에는 육의 고난과 영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받는 고난과 영적인 훈련을 위해서 받는 고난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훈련을 받을 때에는 이 고난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훈련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인지 성장을 위한 훈련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죄로 받는 고난은 죽도록 회개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한다고 해도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야 하기 때문에 고난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훈련을 받을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문제를 해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때문에 연단이 끝난 후에는 놀랍게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도 인간적인 의가 생길 때마다 세상적인 판단을 하고 행동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로 가라고 하셨지만 그는 블레셋을 선택했기에 오랜 세월을 돌아야만 했습니다. 다윗이 순종하여 유다로 올라가 이방인의 침략을 막았다면 분명 사울의 괴롭힘은 있었겠지만 더 일찍 연단이 끝났을 것입니다. 유다 땅에서 받는 고난이 블레셋에서 받는 고난보다 더 힘들다고 해도 다윗은 분명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분별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 인생의 짐을 지고 더 힘겨운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 하느냐 경쟁하는 전쟁터입니다. 먼지처럼 작은 이 지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욕심에 눈이 가려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손에 움켜쥐고 있던 모든 소유를 세상에 놓고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잊게 되면 오직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이므로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요압은 이런 사실을 다윗을 통해서 모두 알고 있었지만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다윗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다윗과 요압의 이런 작은 생각의 차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을 떠나 멸망 길에 들어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은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요압의 영적 상태는 온전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승리 했으므로 다윗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요압의 능력을 다윗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누군가를 위해 채찍이나 도구로 사용된 후에 요압처럼 버림을 받는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후에 천국에서 살고 싶은 욕심에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 무조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받을 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아바 아버지는 율법을 잘 지켜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며 내 힘과 정성을 드렸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낼 때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집과 자존심, 혈기와 소유욕은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거대한 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 주시며 부활이 사실이라고 알려주셨지만 우리가 두려워서 빈 무덤으로 들어가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인간의 의를 버려야만 어두운 마음에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을 막고 있는 돌을 과감하게 치운 사람이고, 요압은 그 돌을 끌어안고 어둠에 숨어버린 사람입니다. 어떤 결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윗과 요압의 삶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 해졌다는 뜻입니다. 그의 인생은 험한 가시밭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실 때까지 순종하는 믿음으로 잘 살아낸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셨는지 깨닫기 위해서 기도했고 하나님과 함께 할 영원한 나라를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성숙한 믿음으로 통일 왕국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초라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절절하게 기도하는 다윗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훈련 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고난을 끝내시고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예로 쓰레기가 가득한 곳에 백합화 한송이가 피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 백합이 아까워서 옥토로 옮겨 줄 것입니다. 이렇게 쓰레기처럼 더러운 세상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천국의 향기를 내는 백합과 같은 성도를 성령으로 감싸주시고 천사로 보호하시며 부족함 없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백합은 보호받기 위해서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심겨진 곳에서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꽃을 피웠을 뿐인데 그 백합은 사랑받고 보호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런 사랑과 보호를 받기를 바랍니다. 허락하신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옥토로 옮겨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받았던 요압이지만 죄의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자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혈기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가인이 아벨을 살인한 것처럼 요압은 결국 아브넬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바로 자신을 심판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육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살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씀과 멀어지는 것 역시 살인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살인죄는 절대로 지어서는 안됩니다.
사무엘하 3장 6절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아브넬은 왕이 된 이스보셋을 허수아비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겁도 없이 사울의 첩 리스바를 취했습니다. 왕의 첩을 신하가 취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에게 네가 어떻게 내 아버지의 아내와 통간할 수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넬은 적반하장으로 내가 너를 다윗으로부터 보호하였고 왕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 공도 모르고 어떻게 나를 책망할 수 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물론 이스보셋은 아브넬 덕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하가 왕에게 할 말은 아니며 아브넬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협박하던 중에 놀라운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협박하였습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아브넬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통일 왕국을 이루시겠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증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 주기를 원하시는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세상을 왕으로 섬기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취하고도 왕을 협박한 것처럼 세상을 위해서 살면서도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배신한 아브넬 때문에 다윗은 쉽게 나라를 통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가 통일 된 것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지 아브넬 때문에 통일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 요압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아브넬은 자신의 수고를 내세우며 다윗에게 더 높은 자리를 원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축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믿음을 자랑하며 교만해지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 주셨기 때문에 겨우 구원받은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다면 요압과 아브넬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 주셨기 때문에 군대 장관이 되었는데 요압과 아브넬은 자신들의 지혜를 믿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다윗과 이스보셋을 하찮게 여기며 매사에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일조차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헌신하는 것은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작정했다고 봉사하거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힘에 지나도록 충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도와주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요압과 아브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넬의 악한 마음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기도록 하셨고 아브넬은 자신의 죄로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처럼 우리 역시 선한 마음이든 악한 마음이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아브넬이 선한 사람이라면 요압에게 허무하게 살해 당하도록 보고 계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구원받지 못한 아브넬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여러분은 허무하게 죽은 아브넬과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무엘하 3장 12절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
아브넬은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어 당신이 나에게 약속만 해 준다면 내가 이스라엘을 넘겨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나라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힘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신변을 보장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물론 신변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아브넬의 신변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호해주시지 않으면 악한 자와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이 약속을 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성령께서 보호하지 않으면 광야 한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계획은 이렇게 헛된 것이며 수백 가지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과 베냐민사람들에게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겠다고 하자 모두 찬성하며 기뻐했습니다. 기쁜 소식을 아브넬을 통해서 들은 다윗은 피를 흘리지 않고 나라를 통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브넬을 후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다윗에게 넘긴 것처럼 우쭐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넬에게 굳이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굳이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그가 악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알기에 그의 생명을 해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마침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요압은 다윗에게 후한 대접을 받고 아브넬이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다윗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살려 보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이 때 요압이 조금 더 멀리 보는 영안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장 눈앞에 펼쳐진 것만 보지 말고 다윗이 아브넬을 살려 보낸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었다면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다윗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돌아가던 아브넬을 불러서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죄는 죄를 부르고 혈기는 살인을 부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브넬이 죽은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다윗이 요압과 결탁하여 이스라엘을 빼앗고 아브넬을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통일 왕국을 다스려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요압이 살인했기 때문에 다윗은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그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금식했고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상여를 따르도록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요압이 사사로운 개인 감정으로 아브넬을 죽였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다윗이 죄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압 때문에 이런 곤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압의 죄를 묻지 않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다윗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보다는 우유부단하게 모든 일을 덮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잘못해도 복수하지 않고 늘 용서하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자기가 해결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데도 복수심이나 분노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것보다 성숙한 신앙은 없습니다.
악한 자는 그대로 악한 것처럼 요압은 다윗의 용서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조카인 요압은 삼촌 다윗에게 돌이킬 기회를 받았지만 죄는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요압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죄의 대가는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돌이키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순되게도 아브넬과 요압의 공로로 다윗은 통일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심판을 받지 않았다면 다윗에게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없었다면 나라를 통일 시킬 수 없었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교만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택함을 받은 다윗을 도왔기 때문에 나라를 통일시킬 수 있었지만 그런 다윗을 무시했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했지만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는 악한 대로 사용하십니다. 그들이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 능력을 사용하셔서 선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복을 누리는 다윗이 될 것인지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한 어리석은 요압이 될 것인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기도 하지만 선택은 환경과 상황과 사람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믿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더 멀리 넓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 사건이 있기까지 여러분이 어떤 결정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내린 이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랑으로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악인의 공격을 모두 막아 주신 것은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은혜로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지혜롭게 판단하며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