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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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베레스 웃사의 죽음

사무엘하 6장 1-11절

1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과 이스라엘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천사들이 먼저 뽕나무 꼭대기에 결집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다윗은 게바에서부터 게셀까지 많은 땅을 정복하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전쟁에 직접 동참하는 이런 기적을 허락하신 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하늘과 땅을 움직여 너를 도와줄 것이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윗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다윗은 이제 쫓아 다니며 괴롭힐 사람도 없고 들이나 굴에서 자면서 굶을 필요도 없으며 안전한 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히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했던 삶이 평안한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백성을 사랑하면서 편안히 살면 됩니다. 열방은 스스로 다윗에게 굴복했고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근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난을 벗어나 편안 해지면 세상을 돌아보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면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고난이 지나고 나면 지금 누리는 평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사보다는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게 됩니다.

고난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므로 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보다 편안할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감사하지 않으면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신앙은 빛으로 나왔다가 다시 굴로 들어가 입구를 돌로 막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이며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큰 그릇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자 다윗은 인간적으로 하나님께 더 잘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성을 바탕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궤를 궁으로 모셔올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한 끝에 삼 만명의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기도했던 그가 기도 없이 일을 처리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은 아름다운 성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궤가 초라한 성막에 있다는 것이 죄송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궁궐로 궤를 옮기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고 각종 악기로 찬양하며 삼만 명의 백성이 이 화려한 예식을 환영하는 가운데 법궤를 성으로 모셔 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성대하게 다윗 성으로 법궤를 모셔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니 다윗은 마음이 벅차 올랐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자신이 대견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대로 행했기 때문에 나라와 백성이 평안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마음을 살폈던 다윗이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며 마음대로 하나님의 일을 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내가 이렇게 기쁘니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히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있고 내 생각이 옳으니까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사람의 생각은 아닌지 먼저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약궤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과 영광이 임재 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이 함부로 가까이 가면 죽는다고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거룩한 법궤를 중심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법궤는 레위인 중에서 고핫 자손들만 어깨에 메고 운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정성을 보이고 싶었던 다윗은 새 수레를 준비하여 법궤를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어쩌면 백성들은 최선을 다하는 다윗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다윗의 충만한 신앙을 닮기를 원했을 것이고 다윗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쭐했을 것입니다. 법궤가 새 수레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 지 자기를 얼마나 칭찬하실 지 생각하며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서 일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정성과 열심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탄에게 속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성은 우상을 향한 악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열심을 절대로 받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지금 성도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행동은 자신의 열심을 핑계로 삼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법궤를 옮기는 이런 일은 하나님을 자신을 돕는 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삼만 명의 사람과 새로 만든 수레와 귀가 아프도록 울리는 악기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행사를 어떻게 보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만족하며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실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얼마나 흥분되고 기쁨에 들떴을지 보이는 듯합니다.

다윗은 정직한 믿음을 가졌을 때 천사가 전투에 참여하는 기적을 보았고 돌멩이 하나로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그런 다윗이 이제는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고핫 자손들이 있는데도 규례를 어기고 새 수레에 법궤를 실었고 악기와 찬양하는 사람을 법궤 앞에 세우며 도리를 다한 것처럼 즐거워하였습니다.

사무엘하 6장 6절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뛴다는 말은 ‘소들이 미끄러지다, 걸려 넘어질 뻔 했다‘는 뜻입니다. 소들이 중심을 잃으면서 법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가 순간적으로 궤를 잡았는데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웃사를 죽이셨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법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옮기는 고핫 자손에게 법궤를 만지거나 들여다보지 말라고 이미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웃사가 법궤를 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아주 큰 죄를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궤를 새 수레에 실은 것이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잘못 된 일을 시작한 다윗이 웃사보다 더 큰 책망을 받아야 하며 죽은 웃사의 자리에 다윗이 있어야 합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난 다윗의 결정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이 행사에서는 누구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웃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다윗과 백성들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다윗부터 웃사까지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 것은 목회자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그 자리에서 진리가 아닌 말을 듣는 사람들 또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도 자신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지금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다윗은 편안해지자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분이기 때문에 늘 동일하게 역사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변합니다. 그래서 책망과 칭찬이 반복되는 평탄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의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했습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은 받지 않습니다. 만약 다윗처럼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을 낸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은 법궤를 다윗 성에 모시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웃사가 죽자 마음을 몰라주는 하나님께 화를 내며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고 불렀습니다. 자기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다윗의 신앙이 안타깝습니다. 만약 다윗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왕의 자리까지 이끌어 주기 위해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호해 주셨던 하나님을 잊고 자신만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상대로 싸워 주시고 열방이 굴복하도록 높여 주셨을 때는 그토록 감사했지만 이제 왕이 되고 난 후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며 그 뜻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람과 악기를 많이 동원하면서 최선을 다한 자신의 열심을 몰라주는 하나님이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해진 법대로 일하시기 때문에 법을 어긴 열심을 충성이라고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열심히 일했으니 복을 달라고 매달리기도 하고 응답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나기도 합니다. 인간의 어리석고 악한 생각이 하나님을 도리어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법궤가 궁에 있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화려한 궁으로 옮기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까? 언제부터 새 수레로 법궤를 옮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인간의 열심은 이렇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이 하나님께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믿음과 충성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만든 새 수레를 책망하신 것은 결국 다윗을 살리기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다윗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표출한 어이없는 행동은 결국 다윗의 불행으로 끝이 났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면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모두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물론 함께 믿음을 지켰던 동역자를 함부로 대하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생각으로 충성했다면 여러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웃사처럼 죽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는 것을 보자 그제야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전처럼 겸손했던 다윗이라면 웃사가 죽는 것을 보았을 때 바로 백성들과 함께 옷을 찢으며 머리에 재를 뿌리고 죽도록 회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던 다윗은 신앙이 변질되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틀어진 다윗은 인간적인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궤를 멀리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유혹하는 사탄에게 미혹을 당하자 법궤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우리들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책망을 들으면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을 버리는 결정을 하는데 이런 행동은 받은 복을 모두 다 쏟아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법궤를 오벧에돔에게 보낸 것은 웃사처럼 자기도 재앙을 받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행동은 자신만 징계를 받지 않으면 오벧에돔이 해를 당해도 괜찮다는 악한 생각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다윗은 절대로 이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를 옮겨 놓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신앙을 보면서 사람은 한꺼번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환경을 믿음으로 판단하지 못할 때 아주 조금씩 변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싫고 오벧에돔이 당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태도는 지금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생명을 사랑했던 다윗이 아닙니다. 만약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긴 법궤가 그 집에 복을 내리지 않고 재앙을 내렸다면 다윗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악해지면 자기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실패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벧에돔은 다윗이 강제로 법궤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 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했고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죽었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큰 재앙을 당했으며 눈앞에서 웃사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기 때문에 모두에게 고난인 이 상황이 기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궤를 모신 지 삼 개월 만에 오벧에돔의 집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을 보면 그가 평상시 하나님을 잘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선한 믿음을 갖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이렇게 축복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문지기이기 때문에 법궤를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궤를 사모하던 오벧에돔에게는 가까이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모두 위기라고 말하는 순간이 믿음의 사람에게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좋은 기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돈이 생각났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들어서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 즉 좋은 소식을 전할 좋을 때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물질과 건강으로 축복하시며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환난이 성도에게 고난이 되는 것은 성도가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기회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법궤를 중심으로 한 사람에게는 축복을 한 사람에게는 진노를 내리며 어떤 믿음이 복을 받는 믿음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상심했고 웃사는 죽었지만 오벧에돔은 후손들까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벧에돔처럼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는 물론 자손들에게 까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윗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복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역대상 15장 16절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다윗은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새 수레 대신 레위자손들을 모았고 그들의 몸을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게 된 다윗은 자신의 정성보다는 규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빨리 돌이킨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웃사가 법을 어기고 법궤를 잡는 것과 같은 행동이며 웃사의 죽음을 보고 분노하던 다윗의 죄와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레위 족속의 어른들에게 부탁하여 믿음이 있는 자들을 노래하는 자로 세우고 악기로 찬양하도록 하였습니다. 자기 기쁨에 들떠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레위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찬양을 올려 드리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믿음이 있고 현명한 자들을 세워서 일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교만 하거나 말씀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의가 강한 사람에게 맡기면 모두 죽을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겸손하고 정직하게 인내하면서 일을 해야만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한 순간 다윗처럼 변질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늘 조심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헌신할 때 죄를 짓지 않습니다.

다윗은 믿음을 회복하고 난 다음 다윗 성으로 향하는 법궤가 너무 기뻐서 옷이 다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자기 열심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분노했던 다윗과 의를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의 행동을 보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는 누구의 권면도 듣지 않았습니다. 레위 지파 어른들은 항상 다윗의 곁에서 옳은 말을 해 주었지만 다윗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그들을 부르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다윗은 가장 먼저 레위 지파 어른들을 찾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법대로 하나님의 궤를 옮겼습니다. 사람이 겸손할 때와 교만할 때 행동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명령과 규례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인간의 생각에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분명한 것은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가는 것 같아도 규례대로 행한다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은 곳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지 않기 바랍니다. 교만했던 다윗과 겸손한 다윗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불순종과 순종, 교만과 회개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한 순간의 선택을 통해 영생과 영 벌로 갈라진다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세상과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을 방해하는 세상과 사람은 악한 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진리의 길로 간다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보호하실 것이므로 염려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욕심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굳건한 믿음으로 의지한다면 여러분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만드셔서 도움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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