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죄를 용서할 때
23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25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26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27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 28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29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30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31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32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33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세상은 죄가 충만한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들이 죄의 종으로 산다면 당장은 영적으로 부딪히지 않아서 편하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죄는 반드시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은 영원한 둘째 사망 즉 영 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과 영 벌은 정해진 시간이 없이 영원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생과 영 벌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영 벌을 받을 것이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된 성도들은 믿음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믿음이 충만했던 사람도 잠시 세상으로 눈을 돌렸을 때 죄를 짓는 것을 보면 사탄의 공격이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있었던 사건이 하나님께 지은 단 한 번의 죄입니다. 그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많은 세월에 비한다면 어쩌면 아주 작은 실수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밧세바 사건을 기점으로 다윗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횟수나 경중으로 따지지 않고 언제나 그 성도가 현재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시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도 있고 우상과 같은 신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왕이 되실 수도 있고 세상이 믿는 신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경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 사람을 구원하시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밧세바를 향한 다윗의 욕심과 정욕이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다윗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배신하므로 하나님은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 죄에 동참한 많은 영혼들은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그의 자녀들의 믿음과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윗은 자녀들이 저지르는 거짓말과 살인을 보면서 타락의 구덩이로 떨어진 자신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셨을 하나님의 마음을 그제야 조금 이해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17장 17절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시대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정략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다윗도 화친을 위해서 여러 나라 딸들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많은 처첩을 두자 결국 여인들로 인해 우상이 들어왔고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 말고도 더 많은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았는데 사탄은 그 자녀들에게 주목했습니다.
사탄은 성도를 공격하기 전에 그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가장 아끼는 세상의 열매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 살피면서 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탄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도록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할 때 북쪽 성벽이 약하다고 판단이 되면 왕은 다른 곳보다 그곳에 군사들을 더 많이 배치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선하게 산다고 해도 연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사탄의 공격을 막아 주시기 위해서 연약한 부분을 지켜 주십니다.
하지만 다윗은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정욕을 탐했습니다. 다윗의 죄로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 버린 그는 자녀를 안전하게 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향한 사탄의 강한 공격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죄는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13장 1-2절
1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정략결혼은 오직 득실만 따지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데도 다윗은 여러 나라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압살롬과 다말을 낳은 여인은 그술 사람으로 요단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독립국의 공주였습니다. 다윗은 더 부강해지기 위해서 많은 나라의 공주들과 결혼했지만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다윗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압살롬의 이복 형인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장자입니다. 장자인 암논은 압살롬의 동생인 다말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다윗처럼 인간의 정욕으로 이복누이를 탐하는 악한 마음이었습니다. 다말은 지금까지 순결을 소중하게 여기며 공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품위와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입니다. 이런 다말을 원했던 암논의 곁에 요나답이라는 간교한 자가 있었습니다.
요나답은 암논의 고민을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암논이 병이 든 것처럼 누워 있으면 다윗이 병문안을 올 것이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누이 다말이 손수 먹을 것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하라고 시켰습니다. 암논에게 속은 다윗은 실제로 다말에게 오빠가 먹을 수 있도록 떡을 만들어 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암논은 다말과 둘이서 침실에 있으라는 요나답의 계략대로 다말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여인을 보호자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일수록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보호자와 함께 있도록 하시지만 사탄은 철저하게 고립시켜서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요나답은 다윗 형 시므아의 아들인데 그는 지혜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지혜를 안타깝게도 간교한 계책을 세우는데 사용했습니다.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영혼을 무너뜨릴 악한 궤계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생명을 살리는데 사용했다면 요나답처럼 살인사건의 중심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암논에게 좀 더 선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불행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지 않았거나 우리아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녀들이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불행이든 씨앗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 불행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모두 솎아내야만 불행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다윗이 정욕을 이겨내고 신실한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었다면 그런 아버지의 믿음을 본 암논 역시 다말을 향한 욕정을 이겨 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답처럼 악한 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가정은 사탄이 계획만 세우면 모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사랑했던 다윗이었고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다윗이지만 그의 죄는 자녀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밧세바를 탐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그 사건을 수습했던 수많은 시간을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는데 사용했다면 성공적인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들에게 존경받았을 것이며 믿음으로 반듯하게 세워진 자녀들과 함께 평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가정을 믿음으로 돌보지 않았으며 자녀들의 영적인 상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아를 죽인 칼이 다윗의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칼은 인간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만들어 낸 악한 본성으로 만든 칼입니다. 우리아를 죽인 칼이 자신의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다윗은 암논의 간청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합니다. 굳이 이복 여동생인 다말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여줘야 한다는 이해하지 못할 요청에 대해 긴장하며 세밀히 살펴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것처럼 백주에 그의 아내들을 빼앗길 것이라는 엄청난 말씀도 들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왕이 아내를 빼앗긴다는 것은 나라가 망하거나 자신의 신변에 큰 문제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영적으로 무뎌 졌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암논의 부탁대로 다말이 손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상으로 오자 그는 강제로 동침하려고 하였지만 다말은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다말을 도와줄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암논을 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결혼상대가 아니라 욕심을 채울 이성으로 보았습니다. 다말을 사랑했다면 아버지께 결혼 허락을 받았겠지만 그는 다말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욕심을 채우고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훈련시키실 때 고립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영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를 끊게 하시고 인간의 의를 세워주는 세상을 버리게 하시며 영적으로 깊은 깨달음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방법을 사탄이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고립시킨 가운데 인내와 순종을 가르치시는 반면, 사탄은 자녀를 고립시켜서 불안과 불만과 쾌락으로 신앙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는 말씀을 중심에 두고 잘 판단하면서 절대로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고립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반면 사탄의 고립은 본인이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분별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13장 17-18절
17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암논은 지금까지 간절히 원했던 다말을 계집이라고 부르며 함부로 대하면서 종들에게 내어 쫓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욕심이 충족되자 이제 다말이 소중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탄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성도들이 실족할 때까지 세상의 좋은 것을 보여주며 유혹하다가 죄를 붙들면 그 때부터 함부로 다루며 고통과 근심과 비참의 구덩이로 던져 버립니다.
암논은 다말을 그것도 자기 동생을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깐의 쾌락을 위한 이 사건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말이 힘이 없어서 당한 이 사건을 보면 아버지가 조금만 더 지혜롭게 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식들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무관심이 딸의 인생을 망쳤고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가장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바랍니다.
다말은 정조를 빼앗기기 전에는 아름답게 빛이 났던 여인이었지만 정조를 빼앗기자 빛을 잃었고 어둠에 갇혀 버렸습니다. 이것처럼 사탄도 믿음을 잃은 성도를 아낌없이 버리고 맙니다. 아버지 다윗이 영적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사탄의 조종을 받는 암논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장수였고 지혜자였으며 선지자인데도 연약한 딸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바랍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다말이 겁탈당하고 버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암논에게 죄를 묻고 대가를 받게 해야만 더 큰 사건을 만들지 않는데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은 아버지가 암논의 일을 듣고도 화만 낼 뿐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자 직접 암논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윗은 어쩌면 암논이 자신과 동일한 간음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암논의 잘못을 책망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암논이 죽은 사건은 죄가 죄를 용서했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만든 슬픈 사건입니다.
혈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압살롬은 암논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의심받지 않고 암논을 자기의 집으로 부르기 위해서 아버지 다윗을 이용했습니다. 암논과 압살롬 두 아들이 모두 믿음으로 충만하지 못한 다윗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죄가 얼마나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자기의 집에 양털을 깎는 날에 왕께서 신하들을 데리고 오셔서 축하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느 집이든 양의 털을 깎는 날에 큰 잔치를 벌였기 때문에 가족들을 초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또 한 번의 큰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압살롬의 초대를 받은 다윗은 나까지 가면 너에게 누를 끼칠까 염려가 된다며 청을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그렇다면 아버지 대신 암논 형과 형제들을 보내 달라고 청했습니다. 다윗은 이 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암논에게 다른 아들들과 함께 압살롬의 집에 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이 굳이 암논을 꼭 보내 달라고 한 이유를 생각해야 하는데 다윗은 또 생각 없이 암논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거나하게 술에 취했을 때 죽이라는 명령을 하인들에게 내렸습니다. 다윗의 집에서 간음사건에 이어 성폭행과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다말이 암논에게 억지로 강간당한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암논이 다말을 비참하게 버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말의 고통을 보며 화가 났을 그녀의 오빠인 압살롬에게 암논을 보낼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라면 아니 어른이라면 사건 전체를 보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다윗은 이미 그런 지혜를 모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암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그제야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누워 통곡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항상 일이 생기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적으로 무디어져 앞을 내다보는 지혜도 없고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던 열심도 사라졌습니다.
성도들도 다윗처럼 성령을 멀리하면 고통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늘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가야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면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어둠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지혜롭게 판단하고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은혜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먼저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셨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었으며 죄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자들이 모두 죽은 줄 알고 통곡하고 있었는데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다른 왕자들은 무사하고 암논만 죽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요나답은 자기의 계략 때문에 암논이 살해당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자신의 죄가 완벽하게 숨겨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태연하게 다윗에게 암논의 죽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에 총명했던 다윗 같으면 요나답의 계략을 찾아냈을 것이고 그 집에서 요나답을 쫓아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분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요나답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다윗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우리아에게 거짓말을 했던 악한 행동을 요나답에게 똑같이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복과 죄는 부메랑과 같아서 던진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을 던질 것인지 아니면 죄를 던질 것인지 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형을 죽인 압살롬은 자신의 외가로 도망쳐서 삼 년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졸지에 두 아들을 잃었고 절망하는 딸을 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봤을 때 자제해야 했고 한번만 더 인내하면서 우리아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칠 때도 있지만 욕심에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충만할 때도 있고 의심할 때도 있으며 기뻐하고 감사할 때도 있지만 더 채워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도 세상을 능히 이기는 믿음을 가질 때도 있지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더 욕심을 갖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릴 때도 있지만 구원을 버리고 욕심을 채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은혜를 갚을 때도 있지만 자기의 편안을 위해서 배신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서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윗처럼 자신은 물론 자녀들이 그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좀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하나님을 좀 더 두려워했더라면 그의 자녀들은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를 올바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 하루가 여러분의 삶은 물론 자녀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사탄은 절대로 여러분을 속일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지혜롭게 살아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돕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