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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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믿음의 사람 바르실래

사무엘하 19장 16-40절

16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4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우편에 선 사람은 우측이 선이라고 하고 좌편에 선 사람은 좌측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을 보면 자신의 생각과 지식과 소유가 있는 곳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올바른 선의 기준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와에게는 그것이 선한 선택이며 에서에게는 장자 권을 빼앗은 야곱이 악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지금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비록 자기에게 반역한 아들이지만 그의 죽음은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장군들에게 압살롬을 살려 달라고 당부했지만 다윗의 간절한 바램은 너무나 쉽게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요압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압살롬을 살려 둘 이유가 없기 때문에 살인하고도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입장에서는 압살롬을 살려서 다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압이 배신할 때마다 다윗이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죽은 목숨이지만 그는 도리어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빚을 전부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에게 빚을 독촉하며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주인은 크게 노하며 탕감해 준 빚을 모두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데나리온과 달란트는 신약시대의 화폐 단위입니다. 1데나리온은 무게가 약 4g인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이것처럼 요압은 다윗에게 수많은 용서를 받고도 압살롬을 용서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요압을 심판하셨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신을 배신한 아들이라도 살아있기를 바랬지만 요압은 자기 마음대로 압살롬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요압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는데도 다윗 왕이 기뻐하기 보다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화가 났습니다. 다윗의 상처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요압은 다윗에게 따져 묻기를 그럼 압살롬이 승리하고 우리가 패배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왕이 슬퍼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싸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니 당장 밖으로 나가서 부하들을 칭찬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지금 왕이 그들을 위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 사람도 왕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평생 당해보지 못한 화를 당할 것이라고 협박하였습니다. 그 말은 자신이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조카인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준 다윗에게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신하가 왕에게 할 말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당연히 기뻤지만 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죽은 것이 불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이 죽임을 당했을 때 아버지로서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다윗이 같을 수는 없지만 아들을 잃고 아픈 마음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압살롬처럼 반역한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죄의 자리에서 죽어가는 압살롬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던 다윗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아끼시는 영혼들을 영원한 사망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영혼구원을 방해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동조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를 기뻐하시며 성도가 드리는 충성과 헌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압살롬을 슬퍼하던 다윗처럼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나에게 세상에서 잘 살도록 돕지 않느냐고 불평한다면 요압과 압살롬처럼 죄를 짓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 아니면 세상의 뜻대로 사느냐 하는 것에 달렸으므로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반역한 압살롬을 물리쳤기 때문에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고 승리의 기쁨만 고집하는 요압의 행동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성도들이 전도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복만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압이 왕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고 압살롬을 해친 것은 하나님과 다윗의 뜻을 거역하는 옳지 못한 처사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만 왕의 왕께서 우리들에게 영혼을 구원하라고 부탁하셨으므로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19장 13절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다윗은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세우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요압은 자기 대신 압살롬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세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일할 사람을 세웠기 때문에 아마사가 사령관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압이 아무리 전쟁에 능하다고 해도 나라와 다윗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일하고 있으므로 그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요압 때문에 다시 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압의 간교함이 도를 넘었고 아브넬과 압살롬을 죽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요압을 군대장관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는 요압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사람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작은 도구에 불과하므로 다윗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세워야만 다윗이 나라를 다스리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권력을 탐하고 다윗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요압보다는 비록 반역한 압살롬을 도왔던 사령관이지만 그의 인품이나 순종하는 신앙을 보았을 때 아마사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충성심을 보였기 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을 따르던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아마사가 필요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사탄을 위해서 일했던 아마사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다윗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충성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큰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를 받고 충성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회를 받고도 요압은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다윗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8장 25절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베드로는 사람들이 제자인 것을 알아보자 두려운 마음에 세 번이나 저주까지 하면서 극구 부인하였습니다. 죽음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메시아인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거창하게 메시아를 부인했다고 베드로를 책망하기 전에 인간적으로 자신을 3년 동안 영적으로 키워준 예수님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했다는 것 자체가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사랑과 기회를 끊임없이 주었지만 배신당했습니다. 요압은 삼촌 다윗이 준 인간적인 사랑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에 다윗은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요압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돌려받을 생각 없이 무조건 베풀어야 하고 받는 사람은 작은 은혜라도 잊지 말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그 관계는 끝까지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서로 좋은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의 삶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교만한 죄를 절대로 짓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후에 들어갈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진리 안에서 행함이 없는 고백은 그저 공중에 흩어지는 세상의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세운 아마사를 또 죽인 요압을 보면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악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랑과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참 된 믿음은 온전한 인격과 성품이 뒷받침이 되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19장 19절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환궁하는 다윗을 마중 나온 시므이는 전에 자신이 다윗을 저주했던 말과 행동을 마음에 두지 말고 살려 달라고 간청 하였습니다. 다윗의 피난길을 따라가며 저주했던 그가 다윗이 환궁하자 두려운 나머지 베냐민 사람 일 천명을 데리고 나와서 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지금 시므이의 행동을 보면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기 혼자 나오면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에 천명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계산법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한명이나 천명이나 죄인은 죄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기의 죄를 안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혼자 나와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속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직접 심판하기 보다는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고 유언하였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악인은 용서를 받아도 동일한 죄를 반복하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맡기면서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입니다.

시므이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비새입니다. 그는 시므이가 처음 다윗을 저주했을 때 자기가 처단하겠다고 분노했었는데 지금 용서를 비는 시므이를 또 다시 죽이겠다며 나섰습니다. 아비새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다윗처럼 그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참는다는 말을 해야만 합니다. 다윗의 믿음을 곁에서 보면서도 아비새는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동일한 행동을 하며 혈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비새처럼 아무리 다윗 곁에서 오랜 시간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말씀대로 삶을 사는 방법은 목회자가 알려줄 수 있지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헌 부대를 버려야 하는 것은 말씀을 들은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힘에 눌려 억지로 용서를 빌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솔로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하 19장 32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조롱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바르실래처럼 다윗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나 왕의 권세를 가졌을 때나 동일하게 섬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복 받는 사람입니다.

피난길에 있는 다윗을 자기가 돈이 있다고 공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다윗을 도왔다는 말을 압살롬이 듣는다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고 다윗을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겸손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다윗의 초라한 외모로 그를 판단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바르실래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었고 다윗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과 다윗과 성도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실래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하나님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궁에서 쫓겨난 다윗이 조롱을 받은 것처럼 보좌를 유보하시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의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어둠의 세상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다윗처럼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을 도와준 바르실래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처럼 믿음의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진 재물로 섬겼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그의 후손까지 축복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만나는 문제들을 믿음으로 지혜롭게 해결하면서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만 다윗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환궁하는 길에 만난 바르실래에게 그 동안 자신을 공 궤 해 준 노고를 치하하며 그의 노후를 편안하게 섬기겠다고 하면서 함께 예루살렘 궁으로 가자고 청했습니다. 이제 바르실래에게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자기는 나이가 많으니까 이대로 고향에서 살겠다고 하면서 다윗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살든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더 큰 쾌락을 찾아다니고, 세상의 딸들이 유혹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더 넓은 땅을 소유해서 사람들의 섬김을 받기 원합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요압처럼 인간의 의가 강해지기도 하고 아비새처럼 매번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바르실래처럼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되는데 요압처럼 압살롬을 죽이고 다윗을 협박하기도 하며 아비새처럼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늘 겸손했고 영적인 귀와 눈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세상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복을 받기 원하거든 먼저 여러분이 주안에서 인간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도하지 못한 것까지 채워 주실 것이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이 서야 할 자리와 서지 말아야 할 자리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늙은 자신보다는 아들이 다윗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아들 김함을 부탁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7절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다윗은 솔로몬에게 바르실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에게 쫓겨나 도망 다니는 처지에 놓인 자신을 바르실래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가장 힘들 때 받은 사랑을 잊지 못하는데 이런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은혜를 받아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악하다고 말씀하시며 크게 책망하십니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감사를 돌려받겠다는 생각보다는 도움을 준 사람이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은 바르실래와 같이 선해야 하며 은혜를 받는 사람은 다윗처럼 감사를 잊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영원할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바르실래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헌신으로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헌신이라도 반드시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처럼 다윗도 바르실래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바르실래의 희생과 헌신으로 아들 김함이 예루살렘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다윗과 바르실래처럼 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르실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성령님의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바르실래는 선한 씨를 가졌기 때문에 영생의 열매를 낳았고 시므이는 악한 씨를 가졌기에 사망의 열매를 낳았습니다. 믿음에 따라서 이렇게 열매도 다르고 받는 복도 다르며 사후에 가는 곳도 달라집니다.

여러분도 바르실래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선한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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