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긴 다윗
1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2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4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 6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아를 죽이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암몬 자손의 칼로 우리아를 죽일 수 있었고 그의 처를 빼앗는 죄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기 위해서 노력한 다윗이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던 다윗이 지금이라도 돌이켜 회개한다면 그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악한 요압과 암몬까지 이용하여 선한 우리아를 죽인 죄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일지라도 크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가 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부르셔서 다윗에게 가서 내가 알려준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윗을 곧바로 책망하시지 않고 나단에게 비유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을 보면 어쩌면 다윗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곧바로 다윗에게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성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고 가난한 사람은 암 양 한 마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양을 자식처럼 사랑했다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법이기 때문에 어느 날 부자 집에 찾아온 행인을 대접해야 하는데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양과 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말을 여기까지 들은 다윗은 분노하며 부자는 죽어 마땅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빼앗은 양을 네 배로 갚아 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모르고 믿음이 있는 척한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잘 판단하면서 자신도 악한 사람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되는 것처럼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들보와 같은 죄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티만 보았던 다윗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처를 아내로 맞는 일이 순조로웠기 때문에 자신의 엄청난 죄를 잊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시므로 다윗의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므로 다윗을 책망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나단에게 가난한 사람의 암 양을 빼앗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줄 것이며 만일 다른 사람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삭개오처럼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회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를 나단에게 전해 듣고도 이 말씀이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다윗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무척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바랬습니다. 나단의 말을 다 듣고도 악을 행한 부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단은 곧바로 그 사람이 당신이라고 소리치며 지금까지 그에게 복을 주신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해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주었다고 하시며 그가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고 하시며 승리한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주신 복은 네 주인의 집을 네 게 주었고 아내들을 네 품에 주었으며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 게 맡겼고 만일 그것이 부족했다면 내가 네가 필요한 많은 것을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인내하며 지켜온 믿음의 상을 주신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축복해 주셨는데 왜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악을 행했느냐고 진노하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느끼는 것은 다윗에게 이렇게 화를 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분노라고 보기 보다는 다윗을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처럼 보였습니다. 다윗과 함께 많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신뢰하며 사랑하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고 싶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인간의 욕망과 정욕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멀리 한다면 사탄은 여러분의 믿음을 흔드는 시험을 시작할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갖게 하여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죄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을 연결하는 끈은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성령의 충만한 믿음으로 살아낸다면 사탄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2장 9절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이 업신여긴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믿음을 세상의 정욕으로 채우고 선한 사람을 욕심 때문에 죽이며 다른 사람이 받은 복을 세상의 힘으로 강제로 빼앗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길 때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거침없이 쏟아 놓는 나단의 말을 들으면서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이 됩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정도로 믿음을 인정받았고 하나님께 정성껏 제사를 드렸으며 백성들을 사랑했기에 악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자의 암 양을 부자가 힘으로 빼앗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자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정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이 사탄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죄를 짓는 것이므로 늘 성령께 의지하며 사탄의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고 자신과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불합리한 판단과 행동을 자신에게 대입하여 혹시 나는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지 돌아보면서 반성한다면 더 빨리 성장할 수도 있고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양과 소들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자식처럼 아끼는 우리아의 암 양을 빼앗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나단이 책망하기를 그 악한 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하나님이 너무 두려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늘 후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믿음이 없고 악한 사람인지 올바로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다윗처럼 정의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은 의로운 것처럼 행동합니다. 정말 가증스럽고 가식적인 인격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다른 사람의 작은 죄를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자신의 작은 죄를 크게 보고 회개해야만 선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자랑하셨는데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과 살인을 저지르는 다윗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 까요? 여러분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상처가 더 큰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배신이 큰 상처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빠져 나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때도 그렇지만 심판하실 때도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단계 앞을 보고 일하시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우리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을 시작하고 끝맺기 때문에 빨리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고난은 이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아를 죽인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저주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것처럼 그의 아내를 빼앗은 이웃이 백주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슬프게도 그 이웃은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셋째는 다윗과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대신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신 약속을 단 한 가지도 빼지 않고 실행하셨습니다.
다윗은 살인죄와 간음죄를 범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서 자기가 숨 쉬는 것까지 보고 계신다고 고백했지만 사탄에게 사로잡히자 완전 범죄였다며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바늘 끝 만한 죄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위대한 왕입니다. 다윗이 충성하고 믿음으로 인내했을 때는 평안을 주셨지만 이제부터는 연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도 너무 놀랍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다윗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를 미워하신 것이며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다윗에게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아는 아내 밧세바를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부자인 다윗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억울한 죽음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죽었지만 알았더라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다윗과 아내도 지키지 못하고 목숨까지 빼앗겨야 하는 우리아의 이런 사정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 너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정직하다면 양을 빼앗겨도 대신 찾아 주실 것이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강력한 보호자가 계시기 때문에 두려울 것 없지만 다윗처럼 악을 품는다면 작은 죄도 다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아는 사탄은 성도들을 하나님과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도록 유혹했고 우리아를 죽이도록 했으며 밧세바를 궁으로 들여 아내로 삼도록 영적인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면 영적인 판단 능력을 잃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도 잊은 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아들을 잃는 이 두려운 사건을 사람들은 회개하는 기회로 삼지 않았고 다윗도 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조롱하며 하나님까지 비웃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바로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오직 성도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이 유혹했을 때 이미 하나님께 모든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혹을 담대하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사탄의 말에 따른 것입니다. 이 때 사탄이 얼마나 하나님을 조롱했을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을 판단할 자격도 없지만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을 높이기도 하고 부끄럽게도 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고 그 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불행한 일과 아내를 이웃에게 빼앗긴 어처구니없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다윗의 죄가 한 일입니다. 성도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만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병들자 다윗은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미 죄의 열매를 거두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자기가 죽도록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면 혹시 살려 주실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7일을 금식하며 매달린 것입니다. 다윗이 금식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늙은 신하들은 만류했지만 다윗이 듣지 않자 함께 금식으로 도왔습니다. 다윗이 진작 돌이켰다면 이렇게 마지막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7일 만에 아기가 죽자 신하들은 아기가 살아있을 때도 저렇게 간절히 매달렸는데 혹시 아기가 죽었다고 하면 다윗이 쓰러질 것 같아서 소식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곧 바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는 그렇게 간절하게 울더니 죽은 후에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고 신하들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기가 살았을 때는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아이를 살려 주 실까 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나라로 갔기 때문에 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생과 사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도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무리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도 죽은 사람들은 절대로 올 수 없기 때문에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합니다. 살아 계실 때 복음을 전하면서 천국에 갈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죽은 아기 다음으로 솔로몬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을 낳고 솔로몬을 네 번째로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보내어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라는 뜻을 가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특별히 지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삶을 보면 실망스럽지만 그를 사랑하신 것은 다윗에게 한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신 것 같습니다. 솔로몬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는 교만할 것도 낙심할 것도 없이 성령께 의지하면서 선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눈동자와 같이 살펴 주시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2장 28절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요압은 암몬의 랍바에 입성하기 전에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가 성을 점령하면 이 백성들이 내 이름을 높일까 두려우니 왕이 직접 와서 점령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의 말 대로 랍바로 가서 성을 점령을 하였습니다.
지금 이 사건을 보면 요압이 다윗을 존경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건은 요압의 사악함과 교활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므로 지금까지 그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승리는 다윗의 이름을 높였고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헌데 새삼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높아질까 두렵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아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고 난 후 다윗의 악함을 보았기 때문에 왕을 와라 가라하며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죄에 붙들리면 이렇게 악한 자에게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존경과 신뢰는 한번의 죄로 인해 무너지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죄를 짓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에게 술잔을 권하고 음란의 자리로 이끌면서 설마 믿음의 사람들이 내 말을 들을까 하며 처음에는 반신반의합니다. 그러다가 성도가 한번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믿음을 지키지 못한 성도의 믿음을 조롱하면서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까지 업신여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매 순간 사탄이 쉬지 않고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한번만 실수해 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처럼 지금도 사탄은 성도들이 실족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는 되지 않지만 성도의 믿음을 두고 사탄은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과 생명을 빼앗으려는 사탄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계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말고 단호하게 사탄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기 바랍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압과 같이 간사한 자를 분별한다면 나단의 말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며 높여드리는 성도가 되어 빨리 깨닫고 돌이키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