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
5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9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제 친구 중에 특이한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진심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것을 보면서 나라면 저 친구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저도 그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성심껏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제가 힘든 고비를 넘기면 그 친구는 제가 섭섭하게 한 일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것입니다. 친구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했던 저는 그 때마다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지만 제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까지 그 친구와의 관계는 잘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제가 가난해서 어려운 문제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친구의 성격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악 감정을 가지고 저를 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보다 제가 조금 더 부족한 삶을 살기를 바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감정이 있어도 쉽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이런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하면서도 반면에 스스로 패배의식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런 감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아주 악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성도들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평안이 마치 자신의 불행인 것처럼 시기하고 낙심하는 것은 좋은 성품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그대로 표출했던 가인은 진실 된 믿음을 가졌던 아벨을 죽였으며 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했던 야곱을 시기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아벨과 야곱이 자기들보다 더 사랑을 받는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주체할 수 없어서 아벨과 야곱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들이 지혜로웠다면 아벨과 야곱처럼 참 된 신앙을 가졌을 것입니다. 아벨과 야곱의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면 하나님께서 가인과 에서의 죄도 용서하셨을 것이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과 에서가 가진 악한 생각은 사탄이 주는 죄의 씨앗이기 때문에 그 죄는 싹을 틔우고 성장하면서 사망의 열매까지 맺었습니다.
사탄은 간교 하므로 성도들은 믿음으로 악한 생각을 물리쳐야 합니다.
물론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을 이겨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한 믿음이 악한 생각을 이길 수 있으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말씀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은 간음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은 음욕이 결국 간음까지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면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만큼 영원한 나라에 소망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사탄이 주는 마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며 믿음까지 버리도록 유혹합니다.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인내하며 감사하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 믿음이 변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피난을 가면서 그는 자신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울의 종 시바와 자신의 불행을 즐기는 시므이 같이 악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시바는 사울의 종으로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주인으로 섬기라는 명령을 다윗에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피난길에 있던 다윗을 위해 두 마리의 나귀에 떡 이 백개와 건포도 백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아무 준비도 없이 도망 나온 자신과 백성들에게 먹을 양식을 가지고 온 시바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다윗은 시바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것을 준비했는지 그 때는 몰랐습니다.
신명기 15장 7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네 손을 펴서 가난한 형제가 쓸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순종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성도가 어려운 믿음의 형제에게 은혜를 거저 나누어 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동참한 성도들이 가난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자기 소유를 대가 없이 나누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자신도 은혜를 누리면서 상대방의 필요도 채워준다면 하나님께서는 지혜롭다고 칭찬하시며 넘치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시바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좋은 성품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다윗을 돕는 척하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지금 시바가 다윗에게 가지고 나온 양식은 다윗의 힘든 상황을 이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베풀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더 이상 상대방과 관계를 주저 없이 끊습니다.
다윗은 전에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전 재산을 주었고 시바에게 그 므비보셋을 주인으로 섬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못 마땅했던 시바는 므비보셋이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다윗을 영접하러 나오지 못한 것을 기회로 삼아 그를 모함하여 전 재산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바는 다윗에게 므비보셋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불행은 곧 사울의 회복이라고 즐거워하고 있다며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거짓말이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시바의 말을 들은 다윗은 은혜를 배신한 므비보셋에게 분노했습니다. 죽어 마땅한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말만 듣고 전 재산을 시바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잘못 된 결정을 하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 때문에 성도들은 확인하고 난 다음 처리해야 다윗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지혜롭던 다윗이 이렇게 감정에 따라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뇌물이 얼마나 사람의 눈을 가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시바가 가지고 온 양식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 상황을 올바로 판단할 지혜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악한 사람이 작정하고 속일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바는 고난을 당한 다윗의 불행과 걷지 못하는 므비보셋의 장애를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성도들은 어쩌면 장애를 가진 므비보셋처럼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고 악한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시바처럼 약고 악하지 못해서 재물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 사람들이 앞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실패한 사람처럼 실망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성도들도 그들처럼 죄를 짓더라도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가는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끝이라면 얼마든지 죄 된 인생을 살 수 있고 어쩌면 하나님의 지혜를 이용하여 더 악하게 살 수도 있지만 개인 종말 후에 기다리고 계시는 심판 주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시바처럼 살면 안 됩니다.
사무엘하 16장 5절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다윗의 불행을 즐기는 두 번째 사람은 사울의 친족 시므이입니다. 다윗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선한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시므이 같이 악한 사람도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살다 보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그 때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생각하면서 옳은 판단을 하기 바랍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근친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지도급 인사였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퍼 부은 저주가 얼마나 심했던지 다윗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은총을 주실지도 모른다고 말을 했을 정도입니다.
다윗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한마디도 못하다가 어려움을 당하자 쫓아가면서 괴로울 정도로 저주를 퍼 붓는 것을 보면 그가 다윗의 불행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울의 근친이기 때문에 다윗의 고난은 그의 기쁨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과 행동이 하나님께는 죄가 됩니다.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곧 세상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조건이 되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므이는 지금 다윗의 처지만 보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약 다윗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 왕권을 회복할 것을 알았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 만 왕의 왕으로 심판 주로 통치하실 것을 몰랐기 때문에 마음껏 조롱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헛된 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만약 천사들이 수종을 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비웃거나 조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모르기 때문에 성도들을 조롱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주신 위대하신 구세주를 조롱하고 저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를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조롱한 사람은 사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이 이토록 귀한 것이므로 성도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16장 10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시므이가 다윗을 지나치게 저주하자 아비새가 그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비새를 말리며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허락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에 놓였는데 이렇게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윗의 신앙이 그만큼 성숙하다는 증거입니다. 저주의 말을 듣게 하신 것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다윗은 시므이의 조롱을 감당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다윗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므이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지금 시므이가 정말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자신의 저주와 조롱이 다윗에게 상처를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함께 듣고 계시기 때문에 그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이 화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므이의 저주는 다윗이 잘못한 것이 있어야만 저주가 임하는데 다윗은 강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시므이의 저주는 결국 시므이 자신이 받았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중보기도를 했을 때 상대가 축복을 받을 그릇이 없으면 기도를 한 성도에게 그 기도가 돌아와 복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으면 세상과 악인들의 저주는 성도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환궁했을 때 시므이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 두려워 다윗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처지와 상관없이 선한 성품과 충만한 믿음으로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며 자기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못하는 작은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유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람을 판단하시기 때문에 상대를 쉽게 생각하고 던진 말과 행동은 결국 자기에게 저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올바로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성도입니다.
사무엘하 16장 22절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압살롬은 아히도벨과 반역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다윗의 부탁을 받은 후새가 압살롬에게 와서 여호와와 백성이 택한 왕과 함께 있기 위해서 돌아왔다고 아부하자 압살롬은 후새를 받아주었습니다. 압살롬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서 다윗을 배신했다는 후새를 자세히 살피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히도벨이 처음으로 낸 계략은 압살롬이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것입니다. 원한을 가진 아히도벨은 다윗이 회복하지 못하도록 폐륜 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아들인 압살롬 역시 죄가 되는 행동을 주저 없이 행했습니다. 아히도벨과 압살롬은 다윗에게 아무리 서운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생각해서 이런 폐륜적인 일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이 다윗을 무너뜨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판단하여 이스라엘 무리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였습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들과 동침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반역에 성공했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권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생각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 죄가 되기 때문에 그는 왕위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정한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한 말과 행동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마다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금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기 전에 망설이고 돌이키는 것을 보면 성도나 세상 사람들이나 죄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더 악하게 변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 죄책감을 버리기 위해서 더 악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싶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는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심판해 보라고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손을 든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겠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분이고 너무나 무서운 분이기 때문에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 상과 사무엘 하를 통해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고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지 배웠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의식했던 사울 왕과 그의 죄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을 보면 절대로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곁에서 모사의 역할을 감당했던 아히도벨은 마음이 변하자 다윗은 물론 하나님까지 배신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시므이의 조롱을 받고도 그 저주까지 모두 하나님께 맡겼던 다윗처럼 아히도벨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맡겼다면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을 다른 방법으로 위로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을 칭찬과 책망은 이렇게 자신의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천국은 가고 싶은데 아히도벨처럼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면 그런 행동 자체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시바와 시므이 그리고 아히도벨은 남의 불행을 기회로 삼아 자기만족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악순환을 가져올 뿐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그 불행을 대신 당할 뿐입니다. 혹시 여러분 곁에 불행을 당한 사람이 있거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돕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높여 주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저주와 조롱을 들어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며 칭찬을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나는 엄청난 고통을 당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현실이 녹록치 않겠지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긴다면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혈기를 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충만한 삶을 살면서 거룩한 자녀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