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18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2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25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사무엘하 강해 마지막 설교입니다. 사무엘상부터 사무엘하 까지 강해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본성을 아시면서도 긍휼을 베풀어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는 죄를 짓고 난 후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뜻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복 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과 은혜를 배신하고 영생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두신 화와 복 중에 사람들은 언제나 화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24장에는 인구조사를 강행하는 다윗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을 염려하며 말리고 있는 요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은 우리가 알던 다윗과 요압의 모습이 아닙니다.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다윗은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자 그 모든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잊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강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악하게 살던 요압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겠다고 하자 왕께서 원하면 하나님께서 백배의 축복을 주셨는데 왜 죄를 짓느냐고 도리어 말리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던 느브갓네살처럼 다윗은 자기가 다스리는 이 나라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를 중심에 세우면 이런 교만한 행동을 쉽게 합니다. 신앙을 지킬 때는 겸손 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자 사탄이 곧바로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인정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다윗을 막아서는 사람이 바로 요압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과시하고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서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인데 지금은 다윗의 판단이 잘못 되었다고 막고 있습니다. 요압이 다윗의 죄를 막는 이 상황에서도 칭찬 받지 못하고 결국 자기 죄 가운데 죽은 것을 보면 지금 다윗에게 한 충고가 진심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을 보면서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웃음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옳은 판단을 했음에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 죄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만 탓하며 비판과 정죄만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결과를 보면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고 요압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살면서 죄를 지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두려워 회개하는 사람이 용서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상 21장에도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흔들리는 빈틈을 보이자 사탄은 곧바로 공격했고 그 계략에 속아서 인구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역대상의 저자 에스라는 오랜 세월 포로로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긍심이 사라진 이스라엘에게 왕조의 탁월한 능력과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만 기록하였습니다. 그런 에스라가 다윗의 죄를 굳이 기록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승승장구하는 다윗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탄에게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마음대로 인구조사를 한 이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지만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인가 가졌다고 생각되면 사탄의 계략에 속아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한 사건으로 세 가지의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다윗을 배신하고 세바를 따랐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둘째는 다윗이 드린 제사를 받으시고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셋째는 제사를 드린 타작마당에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한 가지 사건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 한 가지만 보게 되면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요압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나라를 부강하게 해 주실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그의 잘못에 대해 충언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의 잘못 된 결정은 지금까지 요압이 했던 행동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죄를 돌아보았다면 요압은 거듭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다윗을 책망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압에게 다윗의 죄를 볼 수 있게 하신 것은 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 못하고 다윗을 책망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살피지 못하고 상대방만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와 성도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잘하는데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요압과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를 판단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보고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행한다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인구조사를 하는 것은 주로 과세와 징병을 목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인구 조사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명령이 있을 때만 인구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군사가 적다고 전쟁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윗의 지금 행동은 하나님을 배제한 교만입니다. 요압을 비롯한 군대장관들은 인구조사를 모두 반대했지만 이미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다윗은 돌이킬 마음이 없었습니다. 인구조사는 결국 10달에 걸쳐 실시되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교만은 느부갓네살이 왕궁 지붕에서 바벨론을 내려다보며 이 큰 바벨론은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한 것이므로 이것들이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게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들짐승처럼 풀을 먹게 된다고 꿈을 통해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바벨론을 내려다보며 이 모든 것이 내 영광이라고 자랑하다가 말씀처럼 짐승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오랜 시간 쫓겨 다녔고 자녀들이 서로 칼부림하는 것도 보았으며 압살롬이 반역으로 죽는 등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지금 사탄이 격동하자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 세우는 불신앙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불신앙을 도구로 다윗을 배신한 세바와 그에게 동조했던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를 기다리셨는데 지금 다윗의 불신앙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지은 죄는 이렇게 때를 따라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교만을 사용하셔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책망하셨고 요압에게는 자신의 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한 사건으로 여러 사람을 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므로 결정하기 전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민수기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계수하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어 회막을 중심으로 배치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만해진 다윗이 인구조사 한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입니다.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죄이므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갓선지자에게 다윗에게 가서 세 가지 중에 어떤 심판을 받을 것인지 고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세 가지는 칠 년 기근과 다윗이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기는 것과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스라엘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가지 중에 고르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그 어떤 것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칠년 기근을 선택한다면 백성들 전체가 고난을 당할 것이고 왕인 자신이 원수에게 석 달을 쫓겨 다닌다는 것은 곧 나라를 빼앗겼다는 증거입니다. 온역을 선택한다면 이것 역시 많은 백성들이 죽을 것입니다. 어떤 심판을 선택하든 백성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생각 끝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다면 곧바로 그칠 수 있는 온역을 선택한 다음 간절하게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다윗은 하나님께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는 인구조사를 열 달 동안 했으므로 조사를 말리는 요압의 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그 중간에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결단하고 돌이켰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엄청난 후회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혜가 없으면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후회할 일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이 짧은 인생에 죄를 멀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그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5절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자 칠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입니다. 숨 쉬고 먹고 마시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울타리를 벗기면 세상에 널려 있는 불 뱀들이 순식간에 몰려드는데 사람들은 그 불 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온 힘을 다해 회개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은 살려 주시고 자기와 자기 집을 멸해 달라는 다윗의 기도가 진심이라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마음으로 전염병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갓 선지자는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라우나는 천사가 칼을 들고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너무 무서워서 아들 네 명과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다윗이 제사 드리려고 올라왔고 다윗을 본 아라우나는 번 제 드릴 소와 땔 나무를 거저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다윗은 거절하였습니다. 아라우나가 진심으로 헌신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의 헌신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값없이 드리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값을 모두 치르고 그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성도들도 자기의 재물과 능력과 시간을 드리며 하나님께 직접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백성이 마음을 다해 번 제와 화목 제를 드렸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렸고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의 칼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온역이 그쳤습니다. 이 때부터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타작 마당은 창세기22장에 나오는 모리아 산이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진심이 담긴 회개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 역시 성도들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책임감을 가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선한 믿음으로 본을 보이지 못한 죄와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삶을 산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정치를 비판하고 사람들을 정죄하기 전에 자신은 과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데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이 나라에 선교사들의 순교를 통해 영적인 큰 부흥을 허락하셨지만 술과 음란과 재물과 우상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버린 이 나라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 때문에 이 땅에 고난이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이 땅에 고난이 임한 것을 보고 성도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번 제와 화목 제를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대속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피의 제사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다윗도 결국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압처럼 끊임없이 죄를 지어도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고 세상의 힘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긴 세월을 다윗과 요압이 함께 살았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판단을 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갔고 사후에도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좁은 길을 같이 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믿음의 반석 위에 섰다 가도 요압과 같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요압은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결국 세상의 유혹을 버리지 못해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고 권면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윗과 요압은 같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그 사람을 만들었고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하게 만들었으므로 다윗과 요압은 회개하는 마음이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을 때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섬기는 백성들이 있었고 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과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 도리어 불행의 씨가 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을 거두신 순간 그가 가진 소유는 다윗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섬겼던 나라와 백성마저도 그가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재물과 권세를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심판 하시자 그의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결국 자신은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깨닫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를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영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하여 솔로몬의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악한 계획을 저지하는 지혜를 보였지만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영원한 사망에 떨어졌습니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없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있어도 그 길을 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을 가졌다고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산 사람만이 영생으로 이어지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삶으로 살아내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깨닫고 실천하는 행함이 없다면 결국 요압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사망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 봐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성도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격은 가졌는데 말씀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고 말씀은 많이 아는데 좋은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듣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과 좋은 인격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를 높이실 것이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므로 세상이 부러워하는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세상의 권세를 갖게 되면 그 권세를 다윗처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므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인격을 잘 갖췄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말씀을 모르면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드린 말씀은 여러분이 구원과 상급을 받는데 정말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사랑하시겠지만 그 모든 결과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많은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비둘기처럼 순전했던 다윗의 믿음과 뱀처럼 지혜로웠던 다윗의 지혜를 가진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선한 양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