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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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아버지의 믿음으로 축복받은 므비보셋

사무엘하 9장 1-13절

1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손해가 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편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편리에 의해 쉽게 어기는 편입니까? 약속을 성실히 지킨다면 큰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필요로 인해 약속을 정해 놓고 원하는 것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은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 희생과 노력 없이는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는데 문제가 모두 해결 되었다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감수하며 지키겠습니까?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먼 훗날을 기약했는데 은혜를 베푼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둘만 알고 있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까? 사람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어길 수 있겠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저없이 약속을 이행할 것입니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킨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주었던 요나단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일 정도로 전쟁에 능한 사람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올 때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하자 사울은 다윗을 크게 질투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그 날 이후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왕자였지만 다윗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공격할 때마다 요나단이 나서서 막아주었기 때문에 다윗은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인간적으로 다윗을 좋아했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라는 것과 다윗을 향한 깊은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보호했습니다. 다윗은 그런 요나단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14-15절

14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윗을 사울 왕이 괴롭히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다윗을 돕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다윗을 공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믿었고 다윗은 이 연단이 끝나면 권력을 잡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위에 오르면 자신의 후손을 살려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이런 부탁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요나단이 염려한 대로 그는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요나단과 한 약속은 다윗 혼자만 아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죽었기 때문에 다윗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책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요나단이 없는 지금 자신의 인격과 가치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시험대에 오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억지로 드러내는 행위는 인격이 아닙니다. 다윗처럼 아무도 책망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 희생하고 나누는 이런 인격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올바른 인격입니다.

사무엘하 9장 1절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은 나라가 안정되자 요나단과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만 사울의 집이 망했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은혜를 반드시 갚는 인격을 가졌기에 이런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종 시바를 궁으로 불러서 사울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느냐고 물었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부름을 받은 므비보셋은 자신이 사울의 손자이기 때문에 크게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두려워하는 므비보셋을 안심시켜주면서 내가 네 아비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너에게 갚으려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요나단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사울의 밭을 그에게 주면서 항상 왕인 자신의 상에서 밥을 먹으라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요나단이 세상에 없는데도 다윗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나단과 맹세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저에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그 약속은 저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린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환경이 편안해질 때 가장 많이 배신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받는 때와 나눌 때 마음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도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화목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개치 않는 분이기 때문에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지만 아버지의 헌신으로 은총을 받은 것처럼 죄인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은총을 받고 있습니다.

다윗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나단의 아들을 찾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므비보셋이 요나단의 아들이기 때문에 다윗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과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아 있는 자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리를 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바가 사울의 종이라면 므비보셋 역시 그의 주인인 데도 그는 므비보셋에 대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약점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자녀를 찾아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기쁜 소식보다는 그의 약점을 말하여 므비보셋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구원받을 성도를 찾으실 때 사탄이 방해하기 위해서 성도의 단점만 고자질하는 악한 모습입니다. 다윗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다리에 장애를 가진 므비보셋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사탄은 어떻게 해서 든 성도들의 죄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므비보셋의 상황이나 능력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환경이나 처지를 보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이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세상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귀한 신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빛을 발산하는 성도를 세상의 겉옷으로 덮어서 장애를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이렇게 빛을 내는 성도들이 세상이 두려워서 세상사람들과 동일한 행동을 한다면 그 모습은 더욱 보기 흉할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장애가 있다고 시바가 말을 했는데도 다윗은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성도의 부족한 부분을 고자질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믿음을 가진 성도를 직접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바로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절대로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 게 줄 것이니 나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상 하지도 못한 복을 받게 된 것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기 전에 두렵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므비보셋은 그 누구보다 귀하게 대접을 받았지만 다윗이 정권을 잡은 지금 도망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들이 한꺼번에 길보아산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게 되자 그 소식을 들은 유모가 다섯 살인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리를 저는 장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호의 호식하며 살던 왕자가 이제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를 왕으로 섬기며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영원한 빛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어둠의 세상에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은 더 이상 사탄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밭을 모두 주면서 항상 자신의 상에서 먹으라고 하자 그는 자신은 죽은 개와 같이 비천한 사람인데 왜 자기와 같은 사람을 돌보시느냐고 감격하였습니다.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탄을 주인으로 삼고 세상을 위해서 살아온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용서와 긍휼로 죄의 담을 허물며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안다면 더 충성하고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이 좋아하기 보다는 자신을 죽은 개로 비유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 많았던 요나단을 떠 올렸을 것입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요나단의 사랑에 비하면 지금 자기가 베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원수의 후손을 찾아서 그에게 많은 땅과 재물을 주고 또 자신이 먹는 상에서 함께 먹는 은혜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요나단과 약속을 했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며 그 수많은 세월을 들과 굴에서 살도록 만든 사울의 후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은혜를 베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야 했던 하나님께서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 죄를 짓던 사람들을 그리스도만 보시면서 영광을 나누어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것을, 자신이 교회에 나오는 결정을 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의 믿음으로 다윗에게 은혜를 받았지만 만약 다윗을 배신하면 죽을 수 있으므로 그는 선한 법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배반한다면 영 벌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교회만 다닐 것이 아니라 말씀을 알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8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실제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어부인 베드로가 어떤 생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렸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난 후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경외심을 나타낸 것을 보면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그 사회에서 추방될 것을 알면서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을 죽은 개라고 표현했고 베드로는 죄인이라고 고백 한 것처럼, 우리들도 보혈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죽은 개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 고백을 해야만 큰 축복을 받아도 교만하지 않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하찮게 말했던 시바의 말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므비보셋을 주인으로 섬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바는 므비보셋의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왕의 말은 절대 권력이므로 거역할 수 없는 법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을 만나기 전에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이제 절대 권력을 가진 다윗 왕이 보호자가 되자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지금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선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장애를 가진 것처럼 악한 영은 조롱하지만 성령께서 부끄럽지 않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세상 모든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림 받는 성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요나단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붙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의 생명이 끝나면 그가 누리던 모든 것이 끝나지만 성도들은 이생은 물론 사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는 복을 받습니다. 원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사탄의 종으로 살던 죄인들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깨달아야만 사탄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므비보셋이 왕의 상에서 밥을 먹더라도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성도는 영생을 보장받았지만 세상은 그런 성도를 끝까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상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세상이 볼 때는 전혀 변한 게 없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그 자신이 변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성령께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악한 영은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의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믿고 므비보셋이 교만 해진다면 모두 빼앗길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힘으로 삼고 교만하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어둠의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늘 성령의 등불로 심령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은혜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기 위해서 므비보셋이 최대한 겸손하게 산 것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뜻을 벗어나는 순간 사탄의 영역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늘 하나님을 경배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삶이 편안해지면 하나님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받은 것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셨던 세상의 것을 모두 빼앗고 가난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은 탕자가 재물을 모두 창기에게 빼앗겼을 때 세상이 그를 짐승을 치는 하찮은 곳으로 보내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 자체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 울타리를 벗어나면 단 한 사람도 돌보아 주지 않는 곳이 세상인데 탕자가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탕진한 것은 아버지를 업신 여기는 악한 행동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캄캄한 밤길에서 들고 있던 등불을 끄는 것과 같으므로 어떤 해를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에 성도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지혜롭고 명철하게 살아야 합니다.

왕의 손자로 태어났지만 다윗을 만날 때까지 고난을 당했던 므비보셋은 아버지 요나단의 믿음과 헌신으로 새 인생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헌신은 자녀들에게 복이 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죽음의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아무 공로가 없는 우리들이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비록 죽었지만 그의 아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들이 영원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요나단과 한 약속을 진심을 다해 지켰습니다. 이런 다윗의 좋은 인격과 믿음이 솔로몬이 큰 복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처럼 누가 보든 안 보든 약속을 지키는 인격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득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늘 말씀드린 것처럼 육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세상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법으로 잘 판단하면서 어떤 것이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우선순위인지 잘 판단하기 바랍니다. 성도에게 세상은 영적 전쟁터이므로 세상이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요구하는 것을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행한다면 영적인 부분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이런 요구가 여러분의 영적 뿌리를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하면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어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와 사탄,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에 관해 많은 설교를 했기 때문에 잘 분별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는 육과 영의 문제를 잘 분별하는 명철을 가져야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세상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늘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달아야 하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한 요나단에게 끝까지 약속을 지켰던 다윗처럼,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믿음의 사람들과 한 약속을 잘 지켜서 다윗처럼 영원한 복을 받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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