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라 — 사무엘하 · 조춘숙
나가기
11장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한 하눈

사무엘하 10장 1-14절

1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3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4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한지라 7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매 8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9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10그 백성의 남은 자를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진 치게 하고 11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12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3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4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사람은 은혜를 잘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베푸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갚는 좋은 성품을 갖는 것입니다. 좋은 성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노력했던 그 모든 수고들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하는 사람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을 섬기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젠가 배신을 선택하기 때문에 도구로 잠시 사용될 뿐 동역자는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겠지만 성도들은 말씀으로 잘 판단하여 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영적인 지식과 세상을 올바로 판단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배울 것이 없어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지혜가 없으면 자녀는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배울 수 없고 목회자가 지혜가 없으면 성도들은 영적 지혜를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행하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선한 말씀의 기준이 없으면 미련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준을 높여야만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미련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똑 같은 수준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매사에 잘 판단할 수 있는 올바른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들의 관계는 하나님 안에서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게 되므로 선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 역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희생의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을 직접 경험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며 그것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과 나눌 줄 모르고 자신만 위해서 사는 사람의 삶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의 희생의 노력까지 헤아리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랑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결국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 갖게 되므로 반드시 말이나 행동에 진심을 담아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림] 하나님 = 믿음 = 좋은 인격[성품] = 거듭남 = 변함[말과 행동과 희생]

하나님과 선한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성품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이 아름답고 영화롭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을 주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는지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기 때문에 더 지혜로워집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넓게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늘 자기중심적이므로 인간관계를 깊이 맺을 수 없습니다.

상대가 한두 번 감사를 표하지 않을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거리를 찾아주면서 기다리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 관계는 이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사랑을 주기 위해서 그의 인생을 살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십니다. 감사의 표현은 각자 다를 수 있는데 시간적으로 헌신할 수 없는 사람은 헌금을 드릴 수도 있고 물질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시간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헌신하든 그것은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이므로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한다고 판단하시면 축복의 문을 닫고 그의 기도를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얄팍한 행동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하며 노력하지 않은 일이 해결되기도 하고 노력을 해도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동일한 마음과 행동으로 성품을 다스리는 것이 필요 합니다. 살다 보면 며칠 전 혹은 몇 년 전에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복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죽어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올바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는 값없이 받았으므로 그 은혜를 은혜로 받는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산다면 영원한 생명을 받는 더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성도들은 대가를 지불하는 듯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와 달라고 하신 것처럼 교회를 다녀주고 예배를 드려 주고 봉사를 하면서도 기쁨이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를 은혜로 받을 줄 모르고 진정한 감사를 형식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저 주신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마음대로 주실 수 있지만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돌려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거듭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와 악한 영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넘치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아무런 수고없이 거저 받은 은혜를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축복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하기만 하면 되고 겸손하게 섬기기만 하면 되는데 교만하고 게을러서 그 작은 일도 하지 못한다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사무엘하 9장 13절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므비보셋은 두 발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이제는 왕의 보호를 받는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이런 은혜를 입게 된 것은 므비보셋이 요나단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거저 받은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았으므로 다윗을 존경하며 진심으로 섬겼습니다. 이것을 본 다윗은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갚기 위해서 노력하는 므비보셋을 끝까지 보살펴 주었습니다.

다윗은 암몬 왕 하눈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베풀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감사를 아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들의 인생의 결과가 얼마나 다른 지 깨닫기 바랍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서 므비보셋을 후대한 것처럼 나하스에게 받은 사랑을 그의 아들 하눈에게 갚으려고 하였습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에 오르자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하들을 암몬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하눈은 다윗이 베푼 은혜를 감사로 받을 줄 모르는 강퍅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눈을 비롯해 그의 신하들이 다윗의 좋은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나하스와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아버지와 다윗이 서로 도와주면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눈 곁에는 지혜로운 신하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고 다윗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에게 지혜로운 신하는 누구 입니까?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신하입니까? 아니면 필요할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신하입니까? 여러분에게 지혜로운 신하는 바로 말씀으로 무장한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지혜가 있을 것이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한 희생이 있을 것이므로 죄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짝이는 지혜와 자기희생이 없기 때문에 축복이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간사한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길 다윗은 블레셋과 모압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인데 우리에게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암몬을 정탐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아뢰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눈이 아버지와 다윗의 관계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던 다윗의 좋은 성품을 생각했다면 옳은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왕은 실제로 신하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의 지혜만 있어도 신하들의 간언이 틀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은 신하들보다 더 넓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만 나라와 백성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눈은 좋은 성품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의 뜻을 전하러 온 사신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그들을 모욕했습니다.

만약 사신들의 말을 들어보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들을 능멸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에 따른 엄청난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수염 절반을 깎았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의복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자르는 수모를 주었습니다. 수염을 깎는 것은 사신을 노예로 대하는 수치를 주기 위한 행동이며 의복을 자른 것은 이스라엘과 다윗 왕을 하찮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사신들이 심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사신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여리고에 머물면서 수염이 자라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라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좋은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 보낸 사신을 노예처럼 수염을 깎고 옷을 잘라 수치를 준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는 사람들은 꼭 이렇게 쓸데없는 문제를 만듭니다. 조금만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면 이어갈 수 있는 관계를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과 선한 사람은 베푼 사랑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조건 없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하눈은 그 친절을 배신으로 보답했기 때문에 다윗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다윗의 입장에서 은혜를 베풀지만 하눈은 하눈의 입장에서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 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생을 주시지만 우리는 그 희생을 은혜로 알고 감사해야만 구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고 안전한지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생명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눈은 다윗은 물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짓밟은 것입니다.

부모가 평생 노력해서 쌓아 놓은 관계를 자녀가 잘 이어받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모든 자녀가 부모의 인격과 믿음을 닮는 것은 아닙니다. 므비보셋처럼 감사할 줄 아는 자녀는 아버지가 쌓은 공을 상급으로 받지만 하눈처럼 미련하고 교만한 자는 좋은 관계까지 모두 끊어버립니다. 자녀들이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진실한 믿음과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늘 말씀으로 교훈 하며 삶에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뜻대로 풀어 낼 수 있도록 성령께 의지하는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셨고 자신의 생명으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거저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값없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교만하게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데 성경은 세상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성도들은 성경의 교훈을 잊지 말고 헛된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어느 시대이든 믿음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에 실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사탄의 역사가 강하다는 증거이며 사람들이 은혜를 버리고 자기를 위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미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해서 진리 밖으로 나가다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암몬 왕 하눈보다는 이스라엘 왕 다윗이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그런 다윗이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하눈은 다윗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하눈은 다윗이 보낸 사신들을 모욕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다윗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겠지만 더 최악인 것은 하눈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다윗과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기를 도와줄 나라와 사람들을 돈을 주고 고용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만 봐도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일을 그르치기 전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행동하겠지만 만약 잘못을 했을 때 먼저 자신을 낮추고 처음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랬다면 하눈은 다윗이 용서할 때까지 잘못을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를 해치고 나서 변명하는 것은 설사 관계가 개선된다고 해도 악한 행동과 말은 상대방에게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신뢰를 회복하기 힘듭니다. 하눈은 철저하게 세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를 희생하며 섬기거나 아량을 베풀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문제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과 권력이 힘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넘치는 복을 받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며 원수라 할지라도 복수하지 않았고 소원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자신의 계획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았고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눈과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전쟁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도와주실 것 같습니까? 만약 하눈을 용서하신다고 해도 그릇이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크신 하나님의 계획과 응답을 담을 수 없어서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하눈과 같은 사람은 다윗과 같이 성숙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은 은혜조차 자기 식으로 바꾸어 이해하므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듭니다. 하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지혜가 없기 때문에 자신도 다윗처럼 왕이라는 생각에 부족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윗처럼 이 상황 전체를 보는 눈이 없습니다. 지금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과 기도를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하며 삶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받은 사랑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베푼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만족보다는 교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눈처럼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말씀을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현명하게 행동했습니다. 하눈에게는 즉시 심판을 내렸지만 요압은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요압은 가족이기도 하고 명목상 백성들에게 다윗의 신하로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다윗과 하눈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눈과 다윗의 전쟁은 눈을 감고 있는 자와 눈을 뜨고 있는 자의 전쟁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눈은 다윗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무엘하 10장 6절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사람과 소바 아람사람의 보병 이만명과 마아가왕과 그의 사람 천명과 돕 사람 만 이천명을 고용한지라

그 당시 아람은 통일된 나라를 갖지 못했지만 워낙 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눈은 여러 도시에서 아람사람들을 돈을 주고 고용했습니다. 군사를 많이 모으면 다윗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세상적으로 상대했기 때문에 그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에서 선발한 자 중에서 한번 더 엄선하여 아람군대와 싸우도록 하였고 후발대는 아우 아비새에게 맡겼습니다. 아람사람들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요압과 아비새는 긴장했지만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군대와 돈을 받고 전쟁터에 나온 아람군대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람이 크게 패하자 암몬 사람들은 모두 숨어버렸습니다. 아람동맹군이 크게 패하자 이번에는 하닷에셀의 군사령관 소박이 아람의 병사를 모아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하였습니다. 군사령관 소박이 아람동맹군을 다시 모아서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다윗은 아람 병거 칠백대와 마병 사만을 죽였고 군대장관 소박까지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요압이 쫓아낸 아람군대를 다윗이 나가서 모두 물리친 것입니다. 세상의 전쟁은 사람의 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요압이 아람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몰려왔습니다. 이것처럼 사탄의 유혹과 미혹과 욕심을 완벽하게 물리치지 않으면 다시 공격을 당하므로 성도들은 마지막까지 성령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의 힘만 믿고 공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전쟁을 돕고 계셨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곧 패배를 자처하는 일입니다. 다윗이 어디서 어떤 전쟁을 하든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과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윗처럼 성령께 더욱 의지하며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군사령관 소박이 다윗에게 패배하자 하닷에셀에게 속한 모든 왕들은 다윗에게 화친을 청했습니다. 다윗을 치기 위해서 암몬을 도우려고 했던 자신들의 판단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자 다윗에게 굴복한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흩으시면 파도에 사라지는 모래성과 같습니다. 하눈은 다윗보다 군사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람 군대가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며 보호자이기 때문에 다윗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눈이 다윗이 베푼 은혜를 감사하게 받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고 헛된 시간을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왕이 되면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람들이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왕과 지도자와 부모로 세워져야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받은 은혜를 나누어 줄줄 아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현명한 지혜로 은혜를 진심으로 갚을 줄 아는 인격을 갖추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선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겸손한 믿음과 인자한 성품을 보시고 그에게 더 큰 능력과 권세를 주신 것처럼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좋은 성품을 갖는다면 천대까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갚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아낌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한 하눈
44% · 11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