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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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가나안을 앞에 두고 죽어야 하는 모세

여호수아 1장 1절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서는 B.C 1370~1330년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세운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한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광야에서 사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십 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죽는 것으로 「여호수아」서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태어나게 하시고, 애굽 공주가 키우게 하신 후 광야에서 목동으로 훈련시키시며 이스라엘을 이끌 수 있는 영적 지도자로 키워내셨습니다. 사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애굽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보내신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며,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놀라운 사건을 통해 그들에게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삶을 버리지 못했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십 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한 죄로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사십 년간 광야를 떠돌게 되었습니다. 물론, 광야를 떠도는 사십년 동안 1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십 년의 연단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든 것을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러 길르앗 온 땅을 보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세는 나이가 백이십 세였지만 눈도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 훈련도 받았고 율법도 받았으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은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오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헌신했으므로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명을 거두신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산까지 왔는데 그는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했음에도, 가나안을 보면서 죽어야 하는 모세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백성들이 갈증을 호소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길 내가 므리바 반석 앞에 서 있을 것이니 너는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야 하느냐며 감정적으로 반석을 친 것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자신이 신령한 음료를 주는 것처럼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엄청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진노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또 다른 면으로 보고자 합니다. 가나안을 천국으로, 모세를 율법을 받은 사람으로, 여호수아를 예수님의 예표로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보면 가나안으로 백성들을 인도해서 들어가야 할 사람은 율법을 받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의 예표인 여호수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가르쳤고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은 율법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곳이기에 예수님의 예표인 여호수아를 세우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했던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팔십 년의 훈련을 받았고, 사십 년의 세월을 목숨을 걸고 충성하였습니다. 그렇게 소망하던 가나안이 눈앞에 있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도 없이 순종하였습니다. 모세의 이런 모습은 영적인 성숙함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실존하시는 분이라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헌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서 충성하다가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모세처럼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오늘까지 죽도록 충성했고 자신의 인생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여호수아에게 주고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이고, 여호수아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악한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느보산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오직 믿음으로 감당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는 인생의 종말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오라고 부르시면, 모세처럼 지금까지 감당했던 사명과 누렸던 은혜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하나님 품에 안기면 됩니다. 우리는 유한한 세상을 살고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끝마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가야 하므로,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성도들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본이 되는 삶을 살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너는 죽도록 충성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팔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깨지고 부서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도구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신의 나태함과 부족함을 믿음으로 이겨내며 잘 준비했기 때문에 큰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사십 년 동안 모세를 섬기며 그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지도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시련과 역경을 겪고 나서야 거목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의 욕심과 정욕과 의를 깎고 다듬으면서 이들처럼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은 분명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생명과 인생을 내놓고 헌신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율법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들의 중심에 모세를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율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자, 백성들은 법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온전히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드신 법이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는 백성들은 모세에게 배우며 이스라엘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법만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법을 통해 선과 악을 배웠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법대로 살아내야만 가나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법대로 살았다면, 애굽에서 받은 고통을 모두 보상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모세가 죽도록 충성했다면, 이제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이 믿음으로 살아내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고, 하나님과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쳤던 위대한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스데반처럼 하나님께서 두 팔을 벌려 안아주시는 축복이며, 고단했던 삶을 마치고 안식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위대했던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영적인 사람으로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애굽을 상대해야 하는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하심으로써 자연스럽게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배우게 하셨고, 차원 높은 애굽의 문화와 학문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학문으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모세가 영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 장소를 미디안 광야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동족을 위해서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을 왕자였던 그를 광야로 보내는 기회로 이용하셨습니다. 그가 아무리 동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인했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런 인간적인 심성을 거듭나게 하시려고 훈련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만큼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인간의 성품을 깎는 가장 좋은 장소는 광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보호를 받으며, 왕자로 살던 모세가 이제 미디안에서 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광야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모세처럼 왕자의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하나님께 스스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가면 힘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고 문제를 만나도 해결할 방법이 없으며 벗어날 길도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으며, 소리쳐 울어도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혼자인 것처럼 두렵고 외롭고 의지할 것이 없는 곳이 바로 광야인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셨고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셨습니다.

여러분은 광야에서 고난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가난 때문에 건강 때문에 혹은 인생의 방향을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까?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광야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지금 광야에 있다면 사람을 찾거나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바랍니다.

아직도 여러분이 ‘나는 소유가 많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광야에 들어서기 전에 지금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빨리 순종하는지, 범사에 감사하는지, 자족하는지… 그의 행함을 보시며 훈련 기간을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그 계획에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광야를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사용하실 수 없었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보고 살아내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영적인 지혜는 말씀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고난과 연단을 통해 말씀의 깊이를 깨닫기도 합니다. 광야에는 왕궁처럼 모세의 말 한마디에 두려워 떠는 사람도, 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는 것입니다. 끝도 없는 광야에서 모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러나 그는 화려한 궁전도,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도 없는 광야에서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힘들었지만, 점차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세상에 붙들려 있던 자신을 내려놓자 지금까지 왕자로서 가졌던 힘도, 권세도, 모두 헛된 안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원해서 낮은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의 욕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것을 원했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크신 능력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라는 것은 귀로 듣는 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는 영적인 성숙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면 사람들은 인간의 자아가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모세가 에티오피아를 무너뜨리고 귀국했을 때, 온 백성이 그를 환호하자 모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는 애굽의 말과 학문에 능통하도록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왕자였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를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시려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자랑과 인간의 의로 가득한 그를 깨뜨리기 위해서 그 무엇도 의지할 수 없는 광야로 보내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석을 깨야 하는 것처럼 모세의 강한 자아가 깨어져야만 그의 안에 갇혀 있던 하나님의 은혜가 생수처럼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기심과 탐욕과 자랑을 깨뜨렸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것으로 알고 살아온 세월의 교만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렇게 당당했던 모세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훈련을 받자, 그제야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정욕과 자랑으로 더럽혀진 심령의 그릇이 연단으로 깨끗하게 닦여지자, 하나님께서는 그제야 하늘의 사명을 담아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심정으로 걷던 그 길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장인의 양을 치며 낙심했던 그 길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셨는지 알게 되었고, 많은 계획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양 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낮아지고 낮아지는 모세를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때를 정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동족을 위해서 살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기는커녕 도망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셨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내가 왜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야 하느냐고 부르짖으며 원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잠잠히 그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잠잠히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모세는 지쳐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에 모세는 모든 희망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잠잠히 계시는 하나님이 두려워 어쩌면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매달려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일 뿐이라는 고백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비참하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비로소 지도자로 세우기 충분한 영적 상태로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영적인 지도자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모세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품이 온유하고 따뜻하며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혈기를 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구원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모세는 모든 과정을 묵묵히 인내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왕자인 모세, 힘을 가졌던 모세,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세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가득했던 혈기가 사라졌고, 말씀에 순종하는 귀한 심령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며 비로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출애굽을 위해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온 모세는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이 동족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던 예전의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지도자였고, 세미한 음성에 늘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힘과 능력을 모두 빼앗긴 초라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능력을 통해 더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한 환경은 어떻습니까? 동행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는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으므로 당장은 하나님께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지금 있는 곳이 광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연약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세워주시고 높여주시며 영화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힘이 있다는 교만을 가졌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힘을 스스로 버릴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여러분, 부질없는 그 힘과 생각과 계획을 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시간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 생각을 버릴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며, 어쩌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으므로 세월을 아끼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제가 드리는 말씀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무력한 인간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세상의 욕심과 정욕과 혈기를 스스로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갖는다면, 복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먼저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선한 길로 가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여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모든 훈련을 받았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혜롭고 순종적인 모세에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믿음으로 판단하는 지혜를 배웠고,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처럼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과 말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신앙과 믿음을 그대로 본받고 행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종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연단을 받으며 거듭난 모세의 신앙을 따라 살아간다면 여호수아는 크게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의 잘 갖추어진 인격도 있지만, 모세처럼 기다리고, 깎고, 훈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세가 이끌었던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여호수아가 모세를 본받아 영적인 열매가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영적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모세가 보였던 순종과 여호수아가 보였던 겸손한 믿음으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집중하며 최선의 삶을 산 모세가 죽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백성들에게 본이 되는 영적 지도자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았던 모세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가나안을 앞에 두고 죽어야 하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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