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발람(3)
22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민수기 23장 1~12절
1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3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4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5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7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11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2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여호수아는 레위 지파에게 정복할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땅을 소유한 다른 지파와 달리 레위 지파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땅을 분배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대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거제물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주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가져오는 모든 거제물, 즉 십일조와 첫 예물을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을 기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백성들이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린 헌물을 기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성도들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더욱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진리를 들을 수 없고,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일해서 드리는 헌금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물질에 욕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말씀과 멀어지고, 말씀과 멀어지면 성도의 영혼에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회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야 하고, 목회자는 교회가 베푸는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일하므로 하나님께 거룩한 삶을 보여드려야 하고, 백성들의 신앙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성도들도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는 것이 외롭고 힘들지만 레위인처럼 정결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서, 영적인 사역을 하는 발람의 욕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면서도 쾌락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그는 모압 왕이 소문을 듣고 부를 정도로 지혜롭고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민수기 22장 20절, 35절
20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35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발람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동일한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서 발람 앞에 선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어나시면서 세상의 일을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구약에 보면 많은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셨으므로 이미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해서 가시는 길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불속에 들어갔을 때 그 불속에 함께 계셨으며, 삼손의 부모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 등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성도들에게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도와주시고, 발람과 같이 악한 자에게는 심판주로 나타나셔서 그 죄의 값을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시며 그를 막으려고 하셨지만, 발람이 말을 듣지 않자 모압 왕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발람에게 마지막 기회가 지나고 만 것입니다.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셔도 마음을 닫은 사람은 그 기회를 생명의 기회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기회를 붙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까? 말씀을 듣고 배울 기회도 있었을 것이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도 해 주셨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부끄러운 말을 듣게 하셨을 것이고, 환경을 통해 고난과 연단도 주시고, 권면하는 사람도 만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나 발람처럼 끝까지 인간의 의와 욕심과 자존심과 정욕을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는 기회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떠났는데도 책망이나 어려움이 없다면 긴장해야 합니다. 어쩌면 발람처럼 은혜의 울타리 밖으로 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밖으로 나간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뿐 아니라 구원도 없습니다.
민수기 22장 38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발람이 온다는 말을 들은 발락은 모압에서 멀리 떨어진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나와서 그를 영접했습니다. 이제 발람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그를 영접하러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발람은 욕심이 가득한 그의 입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막으셨기 때문에 발락의 뜻대로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22장 14절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미가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발람과 미가야는 동일한 말을 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발람이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더 많은 재물을 갖기 위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미가야는 자기의 의지와 믿음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을 것을 각오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발람과 미가야는 믿음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발람은 땅을, 미가야는 하늘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들의 종말은 달랐습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먹고 마시고 일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므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고, 놀고 싶어서 놀고, 일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일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생명을 오늘 걷어 가실 것이므로 소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입으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인격을 갖추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 어떤 것을 의지하고 있는지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지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감추고 싶어도 말과 행동은 자기가 아는 만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판단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만 사람들을 영권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보다 세상이 더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은 결국 세상 말만 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만 전할 것입니다. 지금 발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그의 마음은 쾌락과 방탕한 삶을 살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모두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막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인다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발람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겠다고 하지만, 발람은 이미 발락이 주는 모든 조건을 수락한 상태이므로 발락 왕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삶으로 보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든지 주님을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과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을 성부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그 의를 위해서 날마다 죽겠다는 믿음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며, 말씀대로 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성부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이며, 성령 하나님인데도 두려움 없이 너무 쉽게 하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하나님을 믿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꾀를 쓰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제발 구원을 받아달라고 구걸하시는 것처럼 교회를 다녀주며 그 대가를 세상의 재물로 채워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발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의 믿음에 상관하시지 않고, 지금까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믿지 못하고 있는 그 약속은 마지막 날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발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날 모든 영혼의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3장 1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발람이 제단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지금까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처럼 자기가 아는 대로 제사를 지낼 것입니다. 제단을 쌓은 후, 발락 왕에게 모압 백성을 대표해서 번제물 곁에 서 있으라고 하고는 자기는 기도하기 위해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발람은 술사들이 하는 대로 제단이 아닌 신접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서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발람의 이런 행동은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는다고 해도, 그가 알고 있는 제사법은 신접한 자들이 하는 것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자신이 아는 세상의 지식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우고, 올바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발람은 지금까지 사탄에게 의지하여 점괘를 알아냈던 것처럼 주술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그런 발람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4~5절
4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이 사건을 두고, 모세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이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발락 왕에게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저주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 때문에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제단을 쌓고,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 외에는 저주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이 언덕으로 가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을 부르는 발람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모르고, 그는 그저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없이 내가 일곱 제단을 쌓았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며 정성을 보여 드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기가 정성을 드렸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도 귀신처럼 내 정성을 받으시고 점괘를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악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임하실 수 있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죄인의 형상까지 입으셨기 때문에 택함 받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 발람의 저주를 직접 막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하나님과의 약속과 신앙을 저버리고 살고 있지만, 성령님께서 구원을 위해 끝까지 돕고 계시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발람처럼 전능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알려주신 말씀을 듣고 발락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궁금해 하는 발락에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며, 행하시는 일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자는 그 누구도 저주할 수 없으므로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의 말을 듣고 있던 발락은, 내가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에게 돈을 주고 데려 왔는데 도리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다면서 화를 냈습니다. 뇌물을 받은 발람에게 다시 저주하라고 강요하자, 두 번째 제단을 비스가 꼭대기에 세웠고 세 번째 제단을 브올산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는 사탄과 세상은 물론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발람이 아무리 사탄의 힘을 입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어도 사탄조차 하나님께 복종하는 영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정직한 신앙과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여러분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4장 1절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발람은 몇 번을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하자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람은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이 지파대로 평화롭게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발람은 그제야 자신이 지금 거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악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4장 3~4절에서 발람은 자기를, 지금까지 어둠에 가려 눈을 감았던 자라고 말했고, 이제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고백하기를, 전능자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죄를 환상을 통해 보여주셨지만 이제야 자신의 죄를 알았고, 두려운 마음에 엎드려 낮은 자리에 오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큰 축복인지 깨달은 눈을 뜬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함을 깨닫고 나서 그는,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다’고 진심으로 이스라엘 축복하였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저주하지 못하고 자기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스라엘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길을 떠난 발람이 왜 메소보다미아에 가지 않고 미디안에서 죽었을까요? 발락이 뇌물을 줘서라도 발람을 데리고 오라고 보낸 사람들이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었습니다. 미디안 장로들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고, 발락 왕에게 쫓겨나자 그를 물질로 유혹하여 자기의 땅으로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발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들었고, 그것을 대단한 능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발람에게 많은 예물을 주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해 달라고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발람은 하나님을 많은 신들 중의 하나로 섬기면서 점을 쳤을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세상의 쾌락과 방탕함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 눈을 감은 자로,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을 보지 못하는 자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의에 이르지 못하고 이스라엘에게 죽임을 당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발람이 거듭났기 때문에 그에게 임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람이 은혜를 경험하고도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하고, 물질의 종이 되었으며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발람이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 은혜의 울타리를 걷으시고, 그냥 두셨기 때문에 발람은 악한 본성으로 돌아갔고, 이스라엘을 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발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이 축복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도 삶으로 자기가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인간의 의를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버려야만 발람처럼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은혜의 울타리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여러분에게 세 번에 걸쳐서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는지 그리고 발람이 왜 끝까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전해 드렸습니다. 결론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으므로 훨씬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실 때 믿음으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기 위해서 인내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듣는 자로,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로, 엎드려서 눈을 뜬 자로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