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1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는 하솔 왕을 죽인 다음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 모두 점령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땅을 정복하고 있는데도, 기브온 사람들 외에는 이스라엘에게 화친을 청한 가나안 족속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며 큰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하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힘만 믿고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하나님과 성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보증하고, 성도들의 삶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많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아람 왕의 계획을 언제나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고 방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람 왕은 수많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성을 둘러서 진을 치자, 엘리사를 모시는 사환은 아람 군대가 이 성을 싸고 있는데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사환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눈이 밝아진 사환은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육의 눈으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람 군대밖에 볼 수 없지만, 영의 눈이 열리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와 천사들이 지켜주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성도들도 육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보이지만,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로 자신을 지켜주고 계신다는 것과 그런 세상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셨고, 심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므로 두렵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아람 왕이 엘리사가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고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엘리사를 죽이려고 군사를 보낼 것이 아니라 엘리사에게 그 모든 사실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엘리사를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아람 왕이 자신의 침상에서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엘리사를 두려워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고, 엘리사에게 큰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람 왕은 자기 나라보다 작은 이스라엘이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힘으로 엘리사만 죽이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들을 작은 것, 적은 것, 낮은 것보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힘으로 엘리사 한 사람만 죽이면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람 왕이 조금 더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엘리사가 의지하는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아람 왕은 모든 판단을 세상의 잣대로 본 것입니다. 아람 왕은 지금 어떤 것이 더 큰 힘인지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자신의 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할 수 있다는 그 생각이 결국 멸망을 초래했으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엘리사 한 사람에게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비난을 받는 교회를 보면, 지혜가 없는 목회자들이 세상을 닮아가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도리어 세상의 비난을 받는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말씀을 중심에 세우고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아야 세상도 교회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터인데 교회 스스로 세상을 닮기 위해서 빛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을 도입하여 거듭나지 못한 성도들에게 돈을 받고 직분을 주고 있으며, 교회 건물을 세상의 건물처럼 크고 화려하게 짓기 위해서 성도들의 재산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일 층에 커피숍과 식당을 만들기 위해 그 공간을 중심으로 교회를 건축한 것도 보았습니다. 교회가 완전히 세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나라의 법을 어겨서라도 바벨탑처럼 거대한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목회자들이 세상 사람들도 잘하지 않는 악한 행동을 하므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반박할 말이 없도록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히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데,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성도들은 더욱 판단의 기준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세상에 자랑할 것에 관심을 쏟자 성도들의 영혼은 말씀이 갈급해서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악순환을 불렀고 성도들조차 말씀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교회에 갈 때 들고 가는 장식이고, 교회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다니는 곳이라는 생각에 매이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알고 깨닫고 살아내야만 힘을 얻을 수 있는데 교회 스스로 거룩한 말씀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천국은 말씀대로 살아내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과 교회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그들의 풍요함을 보고 하나님을 버린 것처럼, 하나님을 이용해서 세상의 성공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하나님께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으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을 쉽게 버리고, 데마처럼 사도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세우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말씀으로 충만한 가운데 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형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만 명의 사람이 교회에 있더라도, 여러분 한 사람이 엘리사처럼 먼저 말씀을 알고 깨닫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엘리사의 사환처럼 눈앞에 장관이 펼쳐져도 영적인 눈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의 수를 여러분의 믿음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곁에 있어도 사환이 보지 못하면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상관하지 말고 여러분이 먼저 거듭나는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만 명의 아람 사람이 공격해도 영의 눈이 열려 있는 엘리사 한 사람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이스라엘과 엘리사를 공격한 아람 왕은 미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런 아람 사람들을 멸하기 위해서 그대로 두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아람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들이 은혜 받는 것을 막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기적을 보고 듣고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강퍅한 마음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은 출애굽기 11장 10절에, 모세와 아론이 모든 기사를 바로 왕 앞에서 행했지만,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겪으면서도 바로는 강퍅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바로의 마음을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읽으면 꼭 하나님께서 바로가 저주를 받도록 일하시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가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일부러 강퍅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돌이키도록 도와주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모세와는 달리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듣는데도 자꾸 강퍅해지거나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므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을 들어서라도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없다는 것은 사생자처럼 버림받은 것이므로 말씀을 듣고 먼저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도 인간의 본성 그대로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낙 자손들을 모두 진멸하였고, 가나안의 성읍들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전쟁하느라 고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나누어 주는 그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전쟁에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땅을 차지할 때까지 목숨을 다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역사하셔야만 승리할 수 있지만, 그 역사하심에 맞춰서 이스라엘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면 땅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사람들이 믿음의 행위를 드러낼 때 비로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성도에게 나는 너와 이런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성도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은 미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또 다른 믿음의 사람을 키워서 일하시겠지만, 처음 택했던 그에게 상급과 축복을 주고 싶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읽다가 마음에 감동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으로 알고 헌신한다면 여러분에게 준비하신 능력과 은혜 그리고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살이하는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즉 목축하기에 좋은 땅, 풍요로운 식물이 있는 축복 된 땅에서 넘치는 번영과 충만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을 믿고 애굽을 떠났지만, 작은 고난을 만날 때마다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 불평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일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에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기뻐했던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지 그것을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의 인생으로 만들려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불평하다가 멸망당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12장 24절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모두 서른한 왕이었더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정복한 성읍은 서른한 개의 성이며, 그 성을 다스렸던 서른한 명의 왕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순종했을 뿐인데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항할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 할례를 행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수 없도록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셨습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공격할 때도 이스라엘이 쉽게 이길 수 있도록 전략을 주시며, 이스라엘이 죽인 자보다 하나님의 역사로 죽은 자가 훨씬 많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거저 안겨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목숨을 다해 전쟁에 임했기 때문에 큰 승리는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승리의 기쁨 안에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들이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친 모세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고 천국으로 오라고 하셨을 때, 그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모세는 이날을 위해서 여호수아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알려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모세의 신앙을 본받아 백성들을 이끌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전쟁에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모세는 비록 세상에 없지만 그를 부끄럽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앞선 지도자와 부모의 신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믿음으로 앞선 모세와 부모가 세상에서 만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서 사는지,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지 배우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모세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을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실천하며 백성을 인도한 것입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이 이럴 때 어떤 말을 했고, 또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고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접목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상시에 어떤 인격을 가졌는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원치 않는 환경과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배운 습관대로 대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모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지금 똑같이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환경이 자신에게 녹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듣고 본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교회는 성도의 믿음을 위해서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진리가 흐르는 곳에 있는 사람은 세상의 문제를 만났을 때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듣고 깨달은 말씀대로 행동으로 옮기면 선한 결말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모르면, 돌이키고 싶어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실수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게 가르쳐야 하며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들은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보여준 선한 행위와 간절한 기도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후손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복된 삶을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위한 기도이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이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이든, 기도의 열매를 쌓는 그 자체가 자기희생이 필요하므로 그 간절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중보기도는 생각지 못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사람이 죄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기도는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하게 전쟁에 임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어 준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섰기 때문에 모세 뒤에 세워진 여호수아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바로 서야만 여러분의 교회와 가정이 믿음으로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바로 선다면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과 믿음의 형제가 있다는 것은 영적인 축복이 늘 준비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람이 여러분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도록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본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를 본 것처럼 믿는다면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선 자들이 말씀으로 올바로 살지 못하면, 뒤를 따르는 귀한 영혼들의 앞길을 막는 휘어진 나무처럼 그들이 곧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방해한다면 하나님께서 단번에 베어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보호하시지만, 방해하는 자들은 흔적조차 없애버리는 아주 두려운 분이 하나님입니다.
교회와 성도와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만들어낸 걸작품입니다. 이 걸작품을 인간의 의와 욕심과 정욕으로 망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스스로 버린 죄인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믿음이라는 조건을 주셨고 그마저도 은혜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가나안 왕들처럼 전쟁을 준비하며, 호시탐탐 성도들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악한 자와 악한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아이 성을 공격할 때처럼 하나님께 기도 드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믿으며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든 혼자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탄이 파 놓은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하늘의 능력으로 도와주실 것이며,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악한 영과 대적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이 성은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 뒤에는 사탄이 웅크리고 있으므로 여러분 혼자서는 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탄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기도 없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에 개입하실 수 있도록 기도로 아뢰며, 겸손과 순종으로 자리를 내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늘 긴장하고, 믿음 안에서 판단해야만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고, 겸손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고, 믿음의 형제들과 협력하여 여호수아처럼 서른한 개의 성을 정복하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엘리사처럼, 여호수아처럼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복을 받아 누리며 승리의 찬양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호수아처럼 승리할 수 있으며, 엘리사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 여러분의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믿음의 등불을 높이 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이며 여러분으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서른하나의 성을 정복하는 귀한 도구가 되어 드리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