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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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발람(1)

여호수아 13장 22절

22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민수기 22장 12~15절

12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13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15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이 세상은 77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선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성장하면서 좋은 환경과 선한 사람을 만나 후천적으로 선한 마음을 갖는 사람도 있고, 선했던 사람이 나쁜 환경의 지배를 받아 악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데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모든 환경과 악한 영의 역사와 사람의 인격과 이성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가는 길 자체가 다릅니다. 하늘을 소망하는 성도들과 땅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추구하는 것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타협점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흰색과 검은색뿐입니다. 회색을 주장하면서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과 신앙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편협하거나 맹목적인 신앙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사실이며 진실입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과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을 방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말씀을 거역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얕은 생각으로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발람처럼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이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소유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께서 품어주실 수 없는 죄 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고 헌신을 하면서도 선과 악의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세상의 공격을 막아주시기 위해서 방패가 되어주시고,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사탄의 유혹 앞에 산성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락 왕의 유혹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얕은꾀를 부리며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모압의 발락 왕이 주는 재물도 받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선지자의 흉내도 내려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 13장 22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미디안 사람들과 함께 발람이 죽었습니다. 메소보다미아에 있어야 하는 발람이 르우벤 지파가 미디안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갑자기 등장한 발람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부터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물과 양식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에돔의 공격을 받아 불평했을 때 불뱀에 물리는 책망도 받았으며, 이스라엘을 가로막았던 아랏과 옥, 시혼과도 크게 전쟁을 했습니다. 아랏과 시혼, 옥을 격퇴하고 난 다음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 모압을 향해 행진하였습니다.

민수기 21장 22절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이스라엘은 그 누구와도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도중, 세상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아랏과 시혼과 옥이 이스라엘을 지나가도록 길을 내주었다면 전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왕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땅을 지나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먹고 마시는 모든 값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믿었다면 이스라엘은 평화롭게 지나갔을 것이고, 그들은 많은 재물을 받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계획을 막는 모든 나라는 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한다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을 출발한 성도들이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로 가는 동안, 그 길을 막는 세상과 사탄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두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기적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공격하는 모든 나라를 하나님의 은혜로 격퇴하고 요단을 건너기 전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이곳에서 수개월 머무는 동안 모세는 제 2차 인구 조사를 시행했고, 군대를 검열했으며,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도록 율법을 선포하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롯의 후손인 모압이 형제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적대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압은 모든 열방을 무찌른 강력한 이스라엘이 자기의 땅을 지나가겠다고 하자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그들과 싸울 묘책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발락 왕이 자기를 도울 자로 생각해 낸 사람은 바로 발람입니다. 발람의 이름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라는 뜻이 있으며, 그는 하나님을 세상에 있는 신 중의 하나로 보고 있는 술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물리치려는 발락 왕의 요청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모압 왕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알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두려움에 술사를 찾았고, 발람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400년 동안 바로 왕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과 백성이 두려웠다면, 전쟁을 생각하기보다는 기브온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지혜인데, 그는 하나님보다 더 큰 신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술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리석은 인간은 판단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발락처럼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나오기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까지 점쟁이를 찾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점쟁이를 찾는 그 마음은 이미 썩을 대로 썩은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발락과 같은 세상의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술사를 찾아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절대로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성도들은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발람과 같이 영적인 능력이 있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절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은혜 안에 있으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기적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민수기 22장 6절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모압 왕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가 내리고, 축복하면 축복이 내린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인지 모르기 때문에 갖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복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의 인생을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전적으로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저주한다는 것은 곧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는다는 증거이므로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면 그 누구도 함부로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람을 찾으며 일을 꾸미고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모르고 평안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공격할까 봐 불안한 것이 아니라, 인구 조사를 하고 율법을 선포하고 지도자를 세우며 그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은 평안하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 성도들은 지금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뒤떨어질까 봐 성경을 덮고, 꿇었던 무릎을 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는 믿음으로 살면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복된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은 많은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발람에게 발락 왕이 이 많은 복채를 보냈으니 함께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들은 왜 복채를 가지고 왔는지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 발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들에게 화를 내고 왕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가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미디안 사람들을 속인 것 같습니다.

발람이 여호와께 여쭈어보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여호와께 무슨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왕이 부탁했기 때문에 출세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예물을 많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놓치기 아까웠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볼 때 발람은 하나님을 유일한 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우상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길,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내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발람은 늘 그랬듯이 신 중 하나에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거절하라고 말씀하시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발람은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에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복채를 받을 욕심에 기도해 본다고 했지만, 어떤 마음이든 바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거절하자 조급해진 발락 왕은 처음 보낸 사신보다 더 높은 귀족들과 예물도 더 많이 보내면서, 발람이 오기만 하면 더 존귀하게 섬기겠다고 간청했습니다.

민수기 22장 18~19절

18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9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겉으로 보기에는 발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발락 왕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의 집을 은과 금으로 가득 채워준다고 해도 가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발람이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나아만이 금은보화를 잔뜩 가지고 왔을 때 엘리사가 만나주지 않은 것처럼, 모압 왕이 보낸 신하들을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굳이 발락의 신하들을 만나서 금과 은은 필요 없지만, 또 다시 기도해 볼 테니까 너희는 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과 왕이 자기를 높이 섬기겠다는 말이 발람의 마음을 이미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왕에게 가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시는 것도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빨리 건져주시지 않는 것 역시 응답이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따르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도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거절하라고 하셨다면, 발람은 어떤 유혹이 있어도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합니다.

발람은 지금 왕에게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과 혹시 왕에게 갔다가 하나님께 책망 받을까 봐 두려운 두 마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발람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느 쪽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성도들도 두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그래도 어떻게 믿음으로만 세상을 살 수 있느냐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며 영적으로 잘 판단해야만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중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그리고 그 말씀이 옳다고 믿고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마음 한구석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 음성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꼭 말씀대로 살 필요가 있느냐고, 발람 왕이 보낸 금과 은을 이번 한 번만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속삭이는 그 음성이 바로 사탄의 음성입니다. 발람에게 지금 네가 하나님이 두려워서 거절했지만, 그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그 음성은 사망으로 이끄는 죽음의 목소리입니다. 발람이 발락 왕과 관계를 단호하게 끊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를 부르고 있는지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 한번은 거절했지만 계속해서 청함을 받자 두 번째는 거절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저들을 따라가도 되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이미 기울어진 발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제 모압 왕에게 가라고 허락하신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발람의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어쩔 수 없이 모압 왕에게는 가지만, 이스라엘을 향해서 저주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발람의 생각이 옳은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라고 허락하신 것은 악한 인간의 생각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저주하지 못하도록 발람에게 은혜를 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있으므로 막을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현대 교회에도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살아온 6일을 숨기고, 성도 앞에서 거룩한 척 설교를 했다고 해서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6일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을 때,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선포한 말씀이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6일의 삶을 세상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이 문란하게 살면서, 주일에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한다고 해서 목회자가 아니며 주일에 거룩한 척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에 굶주려 계신 분이 아닙니다. 인생을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만 기뻐하시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발람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목사들이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고, 돈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며 사탄의 장단에 춤을 추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자신이 전한 그 말씀에 먼저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선포되는 말씀으로 영혼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겠지만, 말씀을 전한 목회자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복을 받으려고 교회에 다닌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열심과 봉사를 통해 교회는 부흥시키시겠지만, 그 성도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평생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도 상급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가는 것처럼 모두를 속였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의 종말은 영원한 사망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직한 믿음 없이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로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막으시는 데도 자기의 욕심대로 강행하는 발람의 행동을 보면서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죄를 짓지 않기 바랍니다.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를 계속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사람을 버리셨기 때문에 발람처럼 세상적인 삶을 살지라도 막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것을 보면서도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없으면 응답인 줄 알고 기뻐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인생에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사탄이 그 사람을 조종할 것이며 영적으로 전혀 분별력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중심에 말씀이 올바로 서야만, 하나님의 응답과 사탄의 응답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으로 판단하며, 발람과 같은 잘못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책망과 질책이 없어서 축복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버림받은 결과는 비참한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고, 하라는 것은 목숨을 다해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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