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2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3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5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8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하니 9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실로 진영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10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성도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인간의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면,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인생을 도와주시기 때문에 먼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자기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가족에게 버림받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억울하게 노예가 되고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모든 고난을 이기고 총리가 된 것을 보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는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비록 요셉이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한 민족을 만드시겠다는 큰 계획을 깨닫고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약속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이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그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요셉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주역을 맡게 했고, 모든 고난을 이겨낼 힘이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한 인생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첫 번째처럼 큰 틀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주관하시는 절대자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모든 일을 습관적으로 무조건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을 당장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왜 보내셨는지 점차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도구로 자기가 부름을 받았고,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을 애굽에서 다시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에 고난을 거부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어떤 고난을 만나도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명을 받은 사람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판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애굽으로 왔을 때,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동생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형들을 도구로 사용하셨고, 나를 먼저 이곳에 보내셨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닫게 되면 복수를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탄은 사람을 이용해서 세상을 악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꿈을 두 번 꾼 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는데, 꿈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형들 앞에서는 요셉을 크게 책망했지만 그 꿈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두 번의 영적인 꿈을 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형들도 하나님 약속을 믿었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기대하는 성숙함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을 들은 형들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요셉이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는 것 같아서 질투하는 마음에 그를 팔아버린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귀한 아들의 자리에서 노예로 전락했지만,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바로 순종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이 정직한 성품을 가진 것을 보고는, 자기의 아내 외에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맡겼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운 소년입니다. 그 모습을 본 보디발의 아내가 그에게 동침을 요구했지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노예가 주인의 요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거절했고 여주인의 모함으로 옥에 갇힐 때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고난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을 때 선을 행한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옥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며,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요셉이 해몽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에게 잊혀져갔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중에 총리가 되고 나서 알았지만, 힘들게 기다렸던 2년의 시간은 요셉을 더 강하게 하는 훈련이었고, 믿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을 때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뒤따라 올라와서 살찌고 아름다운 소를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꾼 꿈은 한 줄기에 무성하고 잘 여문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후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이 꿈을 해몽해 줄 사람을 백방으로 찾았습니다.
그때에야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꿈을 해몽해 주었던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이제야 요셉의 고난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늘 믿음으로 성실했던 그의 삶이 열매가 되어 바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삶의 어떤 부분이 훗날 축복의 열매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성도들은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 주고 나서 총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겸손했고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처음에 그의 믿음을 두 가지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부터 깨닫고 살았든, 아니면 성화되는 과정에서 점차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든 상관없이 그 두 삶이 모두 믿음이기에 결과는 동일한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형들에게 노예로 팔렸다면, 당하는 고난이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어떻게 형들이 나를 팔 수 있을까? 꿈 얘기를 괜히 했나? 과연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등등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에게 신임을 얻었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요셉이 하나님을 몰랐다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인간의 의지로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주인의 요청을 허락한다면 편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갈등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스스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이 복을 준다니까 억지로 견디는 사람은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가 당하는 고난과 인내는 이미 고통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물을 인간에게 모두 다스리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해 성자하나님께서 의인이 한 명도 없는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화목제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그 보혈로 인해 천국 문이 다시 열린 것 역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지금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자, 이제 이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구원받은 자로서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소명을 받고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드린 성도는 세상이 주는 고난 때문에 불행해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인생의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의 갈등이 아주 심할 것입니다. 교회에 가는 것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도 모두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안 할 수도 없고, 하려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늘 죄의식만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면 신앙생활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면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거절하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더라도 하나님께서 절대로 부끄럽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견뎌내야 합니다. 만약 그가 게을러서 현실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지금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미래와 연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관원장들이 꿈을 꾸고 당황하고 있을 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영원히 옥에서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현재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 미래도 있는 것이고, 꿈과 포부를 크게 가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고 능력을 갖출 수 있지만, 살다 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사탄의 유혹과 사람들의 경쟁과 예기치 않는 환경을 만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며 어떤 일이든 지체하지 않고 충성한 것입니다. 요셉과 같은 신앙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고난을 겪을 때는 간절하다가, 응답을 받으면 곧바로 세상 사람과 전혀 구분할 수 없이 변질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남은 인생을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상당히 불행한 일이기 때문에 축복을 받을수록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처럼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의 성공을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하며 노력한다면 사람이 상상하지 못할 자리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실 나라를 기대하며, 그 뜻에 동참한 것입니다. 바로 왕의 꿈대로 7년의 가뭄을 만났지만, 총리라는 세상의 직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가족들을 고센 땅으로 데려와서 가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한 가정을 한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400년이라는 시간을 사용하셨고, 바로의 모진 학대를 받게 하심으로 그들이 이방인에게 동화되고 흩어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거저 받는 평안함이 없고, 그저 당하는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젠가 다시 사용되기 위한 도구, 즉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 18장 3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하나님께서 승리로 이끌어주셨지만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언약의 선물로 받고도 그들은 게으름을 피웠고,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한심한 그들을 향해 어느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을 정복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수백 년의 시간을 들여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지만, 백성들은 요셉과 같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가는 사람이었으므로 가나안을 정복할 의지가 없는 그들을 보면서 무척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만 가지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실 텐데, 이스라엘은 스스로 개척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일곱 지파가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3명씩 선정하여 정복해야 할 가나안의 지도를 그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려온 지도를 가지고 제비뽑기로 분배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처럼, 대단한 믿음을 가진 그들의 후손들이 정작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땅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이 땅에 들어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인내하셨는지 그들은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신앙이 땅에 떨어진 이런 이스라엘을 바로 세워주고 싶었습니다.
여호수아 18장 10절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지도를 그려 가지고 온 일곱 지파는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이제 누가 옥토를 차지할지 또 누가 갈렙처럼 산지를 차지할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대로 무조건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분배받은 땅이 산지라 할지라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과 성도들도 하나님께 믿음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실 때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를 물줄기교회라고 부르시기도 합니다. 모든 교회가 분배받은 땅을 정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분배받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목숨을 다해 헌신해야만 합니다. 그 땅은 언약의 땅이고,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땅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처럼 더 많은 땅을 거저 달라고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가 작아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더라도 가나안 족속을 종으로 데리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각 나라에서 지진과 토네이도와 가뭄과 홍수와 화산폭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단처럼 몇 년, 몇 월, 몇 일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굳이 예언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수백 명, 수천 명이 한꺼번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죽을 이유가 너무나 많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분배받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책망을 받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종말과 심판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께 상급이 될 것인지 아니면 책망이 될 것인지 말씀에 비춰봐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없듯이 개인의 종말 역시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오늘 시간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며, 도와주실 때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사기 3장 2절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가르치는 도구로 블레셋과 같이 큰 힘을 가진 이방 나라를 남겨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를 통해 가르쳐주신 명령에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는지 아니면 거역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해결할 능력을 갖췄는지 알아보시기 위해서 잠시 흔들어 보시는 것입니다. 분명 전쟁은 큰 고통이며 고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할 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지배를 당한다면,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맡기신 세상은 믿음으로 지배하라고 주신 것인데 지배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지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쾌락에 지배를 당하고, 물질에 지배를 당하며, 사람에게 굴복하여 그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난까지도 지배해야 합니다.
세상의 힘과 권세 그리고 전쟁과 경쟁은 하나님께서는 지금 성도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신 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종말이 언제인지 모르는 성도들은 받은 사명을 위해서 죽도록 헌신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지체하겠습니까? 언제쯤 영적으로 게으른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갖추고도 어둠의 세력에게 공격을 당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분배받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심만 하면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요셉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영적으로 멀리 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