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아간에게 기회를 주신 하나님
4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0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3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14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15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지붕을 고치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필요한데 만약 사다리의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거나, 가장 안전해야 하는 발 받침이 군데군데 빠져 있다면, 그 사다리는 사용할 수 없거나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도구가 온전하지 않으면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사회는 모두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동체가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쌓아놓은 많은 일이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돕는 지체로 만드셨습니다. 서로 한 곳을 바라보며 한 뜻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상한 감정과 욕심대로 행동한다면 그 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상한 지체를 잘라내야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천 명 이상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건설 노동자인 청년이 건물더미에 깔린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스스로 자른 뒤 살아남는 슬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청년은 여진이 계속되자 사람들을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건물이 덮치기 전에 다리를 잘라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아주 힘든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18살의 나이에 자신의 다리를 스스로 잘라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위급할 때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소중한 다리를 포기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청년뿐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가 구원을 위해서, 날마다 생명을 걸고 결정해야 하는 믿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한 지체이고, 지금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서로 지체이며, 작게는 우리 교회 역시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약 교회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청년처럼 고통스럽더라도 다리를 잘라야 하는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다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구해줄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신체 일부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끝까지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부분으로 인해 몸이 썩는다면, 그때는 모두를 위해서 자르는 결단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6장에 성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는 멋진 승리를 거둔 후, 바로 7장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간이 하나님의 것을 취했기 때문인데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해 있던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 전체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의 죄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줄도 모르고 아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3절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3절에 아이 성을 정탐한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보고하기를, 백성들이 다 올라갈 필요는 없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 성을 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리고에 비해 아이 성은 그 정도로 작았고, 그들은 여리고를 정복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아이 성은 해발 800m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신중해야 하는 전쟁인데도, 정탐꾼들은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여리고 성의 승리를 자신들의 능력인 것처럼 교만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기를 벗어나 조금 잘 되는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능력인 것처럼 오해하므로 쉽게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의 성공, 가정의 평안함, 교회의 외적 부흥이나 직분을 허락하시면, 지금까지 겸손했던 믿음을 버리고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드는 악한 마음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먼저 임하실 것입니다.
적은 수의 군사만 올라가도 쉽게 정복할 수 있다는 정탐꾼의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삼천 명을 골라 아이 성으로 보냈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늘 신중하던 여호수아조차도 이 전쟁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 군사를 보냈던 것입니다. 한 번도 전쟁에 패한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는 아이 성처럼 작은 성에 패하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전쟁에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녹았던 가나안 사람들처럼,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을 잊고 감사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실수를 하고 있고, 헛된 자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면서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혹은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무조건 자신의 편이라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무조건 세상일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믿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만약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성도를 높여주실 것이며, 많은 재물과 능력으로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도리어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실 것이며 더 낮은 자리에 앉도록 고난을 겪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9절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왜 작은 아이 성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있는데도 도와주시지 않는지 원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만 잘 믿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백성들에게 확신을 주었는데, 작은 아이 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했으므로 이제 백성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 만약 아간의 죄를 알았다면 회개를 드렸겠지만 몰랐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불신을 당하실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난에 빠지면 그 자체로 하나님 이름에 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고난이라 할지라도 겪게 하시는 분입니다. 자녀가 올바른 길로 갈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내하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기도하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더 깊고 더 넓으신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조롱도 받으실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대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 성에 패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을 조롱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이스라엘을 참된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해서 아이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자녀를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아버지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여호와의 크신 이름이 땅에 떨어진다 해도 자녀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세상의 조롱을 받으시는 그 사랑을 볼 수 있어야 성화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 때문에 이스라엘이 패했다는 것을 몰랐을 때, 그는 8절에 우리가 원수에게 쫓겨 패배했으니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9절에 신이 난 가나안 족속들이 모두 일어나 우리를 죽일 터인데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그 계획은 모두 어떻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이제 누구의 왕이 되시겠느냐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자신 있게 가나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 백성들에게 패배한 것에 대해서 변명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스라엘의 왕이신데 이스라엘이 패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마음으로 그리고 자녀를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앞날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7장 11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간과 그의 아들들과 딸들이 함께 도둑질하고, 속이고, 감춘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한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것에 손대지 말라고 그토록 말씀하셨지만, 아간과 그의 자녀들은 전리품을 도둑질하며 속이고 감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계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간의 죄를 아시기에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밤새 눈물로 통곡하던 여호수아보다 더 아프셨을 것입니다.
저는 6절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날이 저물도록 울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그래도,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께 기도라고 할 수 있으니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정말로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감당하셔야 하는 그 아픔은 누가 치료해 드릴 수 있으며, 누가 위로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궤 앞에서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그 모습을 보셔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누가 위로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죄를 짓고 있으며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시고, 인내하시며 또 다시 품어주기를 반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자녀를 버릴 수 없어서 그 자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홀로 아픔을 감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에 있는 전리품은 여호와의 것이므로 절대로 갖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죄를 짓는다면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들과 함께 있지 않겠다는 말씀은 정말 무섭고 두려운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아간은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곳간에 바친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가지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리고를 철저히 파멸시키고 저주하는 진멸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파멸시키고 저주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이 절대로 가지면 안 되는 것을 아간이 훔치고 말았습니다. 다음 전쟁에서 모든 전리품을 백성들이 다 갖도록 허락하신 것을 보면, 지금 여리고에서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세상을 향한 그들의 욕심을 놓게 하는 훈련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을 갖고 누리도록 주실 터인데,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욕심으로 인해 사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죄를 저지르면 그 죄와 함께 그도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가인이 바친 제물은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가인이 아무리 인간의 정성으로 제물을 바쳐도 그와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4절
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아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또 다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려고 돕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다 지파를, 유다 지파에서 세라 족속을, 세라 족속 안에 삽디 가족을, 삽디가족 가운데 갈미 가정을, 그리고 갈미의 아들인 아간을 찾아내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전체에 속한 족속과 가족과 아들을 차례로 뽑을 때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여호수아는 분명히 죄를 지은 자는 그의 전 소유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간은 자기를 부를 때까지 잠잠히 지켜볼 것이 아니라 먼저 나서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알리고 책임을 졌다면 그의 자녀들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는 이렇게 더 큰 죄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천히 아간을 향해 좁혀 들어가신 것은 그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아간은 빨리 돌이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심판이 임할 때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은 고난을 만나도 늘 피할 길이 있습니다. 믿음은 고난을 만나도 그 가운데 피할 길이 보이며 그 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내가 진실로 말하는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며 그 사람이 자기냐고 물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앉아 있었던 가룟 유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회개의 기회가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길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인데, 그가 아니더라도 나는 성경이 기록한 대로 정해진 길로 가지만, 나를 파는 그 사람은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픈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시자 마음이 찔린 유다가 내가 그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잘못을 빌지 않고 죄를 감춘 그는 두 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마음에 찔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기회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네가 올바로 알고 있다고 확답을 주셨습니다. 유다는 세 번째 기회를 붙들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매달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어둠 속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어둠의 세력에 붙들리면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간절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남아 있을 때, 교만을 버리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주시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사망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죄를 지은 아간까지 찾아주시는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입니다. 물론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고, 아간이 죽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고통은 이스라엘을 다시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24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아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그의 소유가 가치 있는 것입니다. 아간이 살아있을 때 그의 아들이고 딸이며, 그의 소와 나귀와 양이며, 그의 장막인 것입니다. 여러 번 돌이킬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결국 그토록 아끼던 소유와 함께 아골 골짜기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공동체를 실패의 자리까지 몰고 갔던 아간은 영원한 사망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는 아간 때문에 고난을 겪기는 했지만, 회복할 기회를 받았고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백성들과 함께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아간이 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지 못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확실한 것은 죄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는 자신들의 손으로 아간을 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고통을 느꼈을 것이며,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고난을 겪어야 했고,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아이 성 정복이 늦어졌습니다.
가정에서도 아간과 같은 사람이 있으면 가정이 흔들리고, 가족 모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간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온 가족이 더 많이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가족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아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직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마음에 아간과 같은 불평과 욕심이 있으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이런 교회와 가정과 심령은 하나님께서 결국 사용하시지 않으므로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간과 그의 소유를 완전히 멸했을 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에 있는 아간을 몰아내지 않으면 여러분을 위해서 역사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아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 돌로 쳐서 묻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도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사람을 치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아간을 쫓아내도록 여러분에게 기회를 계속 주시겠지만, 스스로 쫓아내지 않으면 여러분이 아간과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도 도와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선을 선택하도록 많은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실 때 믿음을 보여드리고 말씀을 깊이 깨달아 지혜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붙들어 주고 계신 지금이 바로 돌이킬 기회이므로, 믿음으로 잘 판단하여 늘 충만한 삶을 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